중앙 트레센 졸업생 모임.
흔히들 그렇게 부르는 모임은 또 다른 별명도 하나 가지고 있다.
바로 중앙 트레센 유부녀즈.
심볼리 루돌프 시절 만들어져, 당시에는 직접 모이는 형태였던 이 모임의 인원은 하나같이 생각보다 꽤 무서웠다. 모임을 만들자마자 들어온 미스터 시비, 시리우스 심볼리, 마루젠스키는 뭐 창단 멤버로 유명하고 그 이후 세대들에게도 이어진 이 모임에는 눈 깜빡했더니 스피드 심볼리, 토키노 미노루-어째 타즈나 씨라는 소문이 돌지만-가 들어와 있는 건 물론이오, 골드 시티, 타마모 크로스, 그리고 3강까지 있었으니까.
그렇게 세대를 거치며 점점 몸집을 불려 간 이 모임은 어느새 6기가 되었다.
적게 잡아도 멤버는 두 자릿수 중반, 죄다 유부녀.
휴대전화가 발전함에 따라 아예 LANE에 단체방을 파서 상시 온라인 교류하는 이 모임은 오랜만에 오프라인에서 모임을 가졌다.
“왜 매번 새로 들어오는 애들까지 죄다 기혼자인 걸까. 미혼인 애들 진짜 없는 거야?”
그리고 카페에서 시작을 끊는 이는 당연히, 심볼리 루돌프의 뒤를 이어 모임의 축이 된 토카이 테이오다.
사실 이건 예정된 일이기도 했다.
학생회장 자리마저 몇 년 하다 그녀에게 넘기고 자유를 만끽하러 갔던 루돌프 아닌가. 졸업하고 나서도 오랫동안 어느 집단의 두뇌가 될 생각은 없었고, 그 생각은 테이오가 졸업하고 모임에 들어오자마자 바로 자리를 넘겨주는 것으로 또 구현되었다.
표면적으로 들이댄 이유조차 명쾌했는데.
‘심볼리 가 가주가 되니 일이 너무 많다, 뒷일을 부탁한다, 테이오.’
물론 그걸 듣는 시리우스나 마루젠스키의 심정은 ‘퍽이나 바쁘겠다’로 요약할 수 있었다.
뭐, 몇 년간 전대 이사장이 방치하는 바람에 몇 년간 학생회장으로서 심각하게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던 그녀니까 이제 좀 쉬고 싶다는 생각 드는 건 이상하지 않긴 하다. 그런데 그걸 애둘러 ‘응 나 바빠서 너한테 넘김’하고 한 건 솔직히 좀?
토카이 테이오가 졸업 후, 머지않아 결혼한 후에 들어간 첫 모임에서 저래 버리니 뭐라 반박할 틈도 없었다.
당장 심볼리 루돌프의 뒤를 이어 학생회장이 되었다가 ‘전대 회장인 루돌프에게 부여되던 권한은 훨씬 컸지만, 그만큼 혹사당했다’라는 타즈나의 말에 그냥 얌전히 운명을 받아들였을 뿐. 물론 그렇다고 이걸 평생할 것 같냐, 하면 이야기는 또 달랐다.
그녀가 차기 회장으로 점찍은 우마무스메가 입학하고, 선발 레이스에서 두각을 드러내자 ‘다음은 너다’하고 그냥 냅다 자리 던지고 튀었으니까.
그래, 키타산 블랙이 지금 아주 열심히 갈려 나가고 있었다.
토카이 테이오와 마찬가지로, 동경하는 사람이 넘겨준 거라 어버버하던 사이 황금 옥좌에 안치되었다. 뭐, 알아서 잘하고 있겠지.
“이사장이 매번 ‘시발! 또 결혼 은퇴! 타즈…나도 결혼 은퇴! 크아아악!’하고 포효하던데, 이게 전통이라도 된 거야?”
그렇게 옥좌에서 풀려났음에도 또 다른 옥좌에 강제로 앉게 된 테이오가 어릴 때와 달리 커피를 앞에 둔 채 그 안의 얼음을 빨대로 휘저으면서 말했다.
그들이 모임을 가지고 있는 카페 맨하탄의 주인장, 맨하탄 카페가 아이스커피 주문에 인상을 찌푸리는 걸 피할 수 없던 데다, 얼음까지 짤랑거리니 더더욱 한숨을 내쉬며 종종걸음으로 들어가는 가운데 그 말을 들은 이들이 답했다.
“엄….”
“전통이긴 하죠.”
“어느 둘이 일을 터트린 덕에 완전히 전통이 됐지.”
답해준 건 나이스 네이처, 메지로 맥퀸, 그리고 골드 쉽.
전부 유부녀.
그리고 그들이 말하는 ‘어느 둘’의 주인공은 시선을 회피하고 있었다.
“도대체 무슨 말인지 모르겠네.”
“커피가 맛이 좋군요. 원두 좀 사 갈 수 있을까요.”
미스터 시비와 어드마이어 베가.
중앙 트레센을 혼활 현장으로 만들어버린 희대의 문제아들.
“아이고 마, 꼴랑 그거 가지고 아직도 박박 긁나. 그럼 난 뭐가 되겠나.”
물론 이런 기류가 영 탐탁치 않은 이가 하나.
“두 세대를 몽땅 다 결혼 은퇴하게 만든 건 내도 있는디 왜 만만해 보이는 애들을 잡고 있드나. 니 위 내 아래로 함 다 까볼까?”
“…”
타마모 크로스.
이제 장녀를 어떤 과정을 밟게 할지 고민 중인 너무 앞서 나간 우마무스메.
다들 외면하고 있지만 두 개 세대를 모조리 결혼이라는 인생의 무덤으로 골인시켜버린 혁혁한 공을 세운 그녀는 ‘이제 작작 좀 해라’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러니 고마해라 마, 으짜피 예정된 일이라 생각하고 다들 받아들이란 말이여. 다들 계기만 있었으면 죄다 또레나 서방 삼으려고 안달이지 않았남.”
그리고 그녀는 묵직하게 현실을 직시하는 말을 꽂아 넣었다. 어차피 등 떠미는 누군가가 필요했을 뿐이지 다들 그런 결말을 바라는 게 아니었냐고. 그러니 카페 주인장부터 시작해서 죄다 시선을 돌렸다. 다들 찔리지?
모인 이들이 딴 대상 경주의 수만 따지면 그걸로 은하수를 그려도 되겠다만, 거기에 반지를 더하면 무슨 반지의 제왕을 써나가도 될 정도니까.
“뭐, 잡담은 여기까지. 이제 본론으로 넘어가야 가야 해.”
이런 분위기 속에서 한 우마무스메가 입을 열었다.
왼쪽 귀 우마무스메들에게 돌풍을 불러온 당사자, 메지로 라모누.
“왜 굳이 모이자고 했는지 알 사람은 알 거고, 모르는 사람도 있겠지. 그러니 설명을 부탁할 게, 오구리 씨?”
학창 시절 때처럼 타인을 시시하게 얕잡아 보는 기질은 사라진 그녀는, 카사마츠 트레센에서 지방 트레이너로서 여전히 현역으로 뛰고 있는 옛 전설을 향해 말했다. 그리고 회색 털의 괴물은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내며 눈을 반짝거렸다.
“다른 게 아니라 아이들이 어린 나이에 달리려다가 다치면 큰일 아닌가. 그래서 아예 유아용 신발을 디자인하면서 지도법도 짜왔다.”
“오….”
“그거 확실히….”
딸부자가 많은 것이 이 모임의 특징 중 하나.
그렇기에 한순간에 다들 귀가 쫑긋쫑긋했다.
“그런데 검증이 안 됐다면 오히려 더 위험하지 않을까요?”
물론 이런 의견도 나오지, 이건 메지로 아르당이 낸 의견이다.
“기건 걱정 말그라. 내가 내 딸내미한테 직접 신게 하고 뛰게 하믄서 기초 검증은 끝냈데이.”
“엑.”
근데 타마모 크로스가 ‘내가 써봐서 아는데’로 답해서 문제지.
“파인 모션도 아일랜드에서 써보고 있다고 하고, 다양한 환경에 맞춰서 여러 모델을 만드는데 데이터를 얻었어. 인맥은 이럴 때 활용해야 한단다, 아르당.”
“앗, 아아.”
라모누가 쐐기를 박자 아르당은 할 말을 잃었다.
아일랜드의 왕녀님까지 테스트에 합류하고 있다면 막을 방도가 없지.
“그래서 결론만 말해보자면, 출시 전 마지막 시험용 제품들을 모임에 보급하려고 한다. 간단히 후기만 URA를 통해 남겨주면 된다.”
“그 정도면 괜찮은데요, 유아용 신발들 괜찮은 거 구하기도 어려웠으니.”
오구리가 눈을 반짝거리며 말하자 최근에 모임에 들어온 스틸 인 러브가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그도 그럴 것이, 우마무스메용 신발이라는 물건은 유아 때부터 보통 가격이 아니다. 이걸 맞춤형으로 구할 수 있다면 그만큼 좋은 게 없지.
“그런데 데이터는 어디서 얻는 거죠? 일상생활에서 만으론 힘들 텐데.”
근데 듣다 보니 무언가 이상함을 느낀 어드마이어 베가가 묻자, 메지로 라모누가 희미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핵심을 잘 짚었네. 데이터는 전국의 포니컵에서 얻을 거야.”
테이블을 톡톡 치면서 마성의 여인은 변화한 메지로의 방향성을 말해줬다.
“메지로가 나아가는 길은 이제 직접적으로 가문 내에서 우수한 우마무스메들을 길러내는 것이 아니야. 더 많은 우마무스메들이 걱정 없이 자라날 토양을 만들어 내는 거지.”
하긴, ‘메지로’ 성을 단 우마무스메가 경기장을 안 뛰게 된 지 이제 몇 년이 되었던가. 아예 경주 우마무스메의 길을 접고 ‘금과 주식으로 지은 성’을 만들었다는 소문이 돌 정도였으나, 아예 손을 뗀 건 아닌 모양이었다.
“이건 그 중 기초 사업이라고 생각해 줘. 지방하고도 연계된 사업이거든, 그렇지? 스페셜 위크 씨.”
“앗, 그렇죠.”
다소 맹하게 있던 스페셜 위크는 자신이 지목되자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몇 개의 서류첩 안에서 나온 종이들은 인원수에 맞게 배분되었다.
“심볼리, 메지로, 사토노, 황금일족 4개 가문의 협업을 얻어 추진된 유아식품 사업이에요. 전부 지방 특산물로 만들어져서 질 대비 가격은 엄청나게 싸고요.”
“내가 강력하게 밀어붙여서 비타민과 필수 미네랄도 좀 강화하라고 했지.”
토카이 테이오는 남은 커피를 쪽쪽 마시며 말을 덧붙였다. 현역 시절 비타민D와 칼슘제를 달고 살았던 기억 때문에, 자식 세대만큼은 그걸 자라면서 미리 좀 차단하고자 하는 의도가 담겨있었다. 솔직히 약 먹기 싫잖아. 애들인데.
“기렇다고 너무 강화하면 결석 생겨서 개고생한데이. 울 서방 요로결석 왔다 아이가.”
“헙.”
“크아아악!”
근데 옆에서 나지막하게 타마모가 한 말에 모두가 움찔했다.
결국 그 곰탱이, 맥주 달고 살다가 결석 왔구나.
“요약하자면 이번 모임은 이거야, 우리 애들한테 좋은 거 신기고 좋은 거 먹이며 앞날을 보게 하자고.”
요로결석의 공포에 모두가 떠는 사이, 토카이 테이오는 잔을 깔끔히 비운 후 말했다.
“물론 우리 애들‘한테만’ 하면 양심 없으니, 언젠간 이걸 퍼트려야지.”
사실상의 카르텔 선언이나 다름없다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알 길은 없지만 말이다.
트레센 유부녀즈의 영향력은 실로 막강했다.
좋은 의미로.
황금 옥좌에 안치된 키타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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