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직 국내에 단행본으로 정식발매되지 않은,
코믹 챔프 연재본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와노쿠니 편 후반부에 상당히 갑작스레 툭 튀어나와서, 주인공의 진정한 능력이자 세계의 진실과 연관된 존재로서 느닷없이 대서사를 관통하는 초거대 설정이 된 '태양신 니카'.
설정이 공개된 게 너무 후반인데다 나온 맥락도 영 어색해서, 설정 자체는 나름대로 받아들여진 지금까지도 급조설정 의혹을 많이 받고 있다.
...솔직히 '태양' 상징 자체는 몰라도 '태양신 니카' 설정에 급조설정 티가 팍 나는 건 부정하기가 어렵지.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이 태양신 니카 설정이 오다 작가의 창작자로서의 천재성과 역량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생각한다.
정확히는 니카 설정 자체가 아니라,
그 설정을 세계관의 역사 안에 녹여내는 작가의 세세한 디테일이 우리를 놀라게 하기 충분하기 때문이다.
무슨 얘기냐고?
니카에 대한 세부묘사를 살펴보는 것만으로,
우리는 그 신에 대한 말해지지 않은 서사를 매우 풍부하게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마치 고대의 역사를 살피는 역사학자의 눈으로 보면 말이다.
'글 제목이 이게 뭐임? 논문 쓰냐?' 라는 생각을 했을 당신,
바로 그것이 이 글을 쓴 목적이 맞다.
필자는 지금부터 클로버 교수님께 학위논문을 제출하는 오하라역사대학 대학원생이 된 기분으로,
《원피스》에 나오는 니카에 대한 단편적인 묘사를 모아서 오다 작가의 세계관 구축 능력과 나아가, 원피스 세계의 진실에 대한 나름의 탐구 결과를 제시해보려 한다.
자, '니카'에 대한 언급이 최초로 등장한 건 와노쿠니편 후즈 후의 대사인데, 그는 니카가 노예와 죄수들이 믿고 숭배하는 신이라고 설명했다.
억압받는 자들을 족쇄에서 해방해주는 자유의 전사라고.
그리고 에그헤드 편 쿠마의 회상에서, 우리는 니카가 쿠마의 일족인 버커니어족의 전승에 전해내려오는 신이라는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바솔로뮤 클랩이 설명하는 니카는 후즈 후의 언급과 크게 다르지 않다. 사람들을 웃게 하고, 자유롭게 하는 전사.
그리고 버커니어족이 세계정부한테 대대로 박해를 받아 존재 자체로 노예로 전락하는 종족이란 것을 감안하면,
노예가 된 버커니어족들이 믿던 니카 신앙이 역시 노예 처지에 있던 어인 등 다른 종족에게 전승되었으리라 가정하는 것은 합리적이다.
즉 버커니어 족의 민족신이었던 니카가, 노예 상태인 다른 민족에게 전해져서 보편적인 '해방의 전사'가 되었다고 가설을 세워보자.
버커니어족은 거인족의 피가 섞인 혼혈 종족으로, 거인의 방계(傍係)라고 할 수 있는 종족이다.
그리고 실제로 니카 신앙은 엘바프 거인들에게도 널리 퍼져 있으며, 태양신에 대한 언급이 있는 신전(神典) 역시 엘바프에 보관되어 있으므로,
니카라는 신은 본디 엘바프 거인들이 섬기던 신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즉 엘바프 → 버커니어족 → 다민족 노예들 순서로 니카 신앙이 전파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니카 신앙의 본가라고 할 수 있을 엘바프에서는, 버커니어족이나 노예들이 설명하는 것과는 사뭇 다른 모습의 니카가 존재한다.
엘바프 거인들이 니카의 신적 정체성에 대해 논하는 모습을 보면, '지배', '해방', '파괴', '웃음' 등 매우 다양한 속성이 니카의 특징으로 제기된다.
엘바프에서는 니카의 성격에 대한 해석이 저마다 달라서 분쟁이 벌어지기도 하고, 최고 장로인 야를조차 니카란 어떤 신인지 정확히 정의하지 못하고 '영웅인지 파괴자인지 모르겠다' 라며 규정을 보류하고 있다.
이것은 사실 매우 의아한 현상이다.
왜냐하면 이전 니카에 대한 언급에서, 즉 후즈 후와 바솔로뮤 클랩은 모두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는 해방의 전사'라는 명확한 니카상(象)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후대에 전승받은 집단에게는 '해방의 전사'로 명확히 이미지화되어 있는 니카가, 정작 그 신앙의 발원지에서는 고정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것은 베가펑크의 언급을 포함해 봐도 마찬가지다.
베가펑크의 니카에 대한 지식은 적지 않은 부분이 친구인 쿠마로부터 얻은 것으로 추정할 수 있는데, 이는 클랩과 베가펑크, 후즈 후가 제시하는 니카 이미지가 공통적으로 '해방'과 '웃음'을 핵심 키워드로 삼고 있음에서 볼 수 있다.
그러나 엘바프 거인들에게 '해방'과 '웃음'은 니카를 구성하는 다양한, 그리고 불확실한 속성 중 하나일 뿐이다. 적어도 그것이 니카에 대한 다른 해석을 압도할 권위를 가지지는 않는다.
이는 버커니어계 전승자들(클랩, 쿠마, 후즈후, 베가펑크)은 거의 필수적으로 언급하는 '해방'이란 말이, 정작 엘바프에서는 위의 컷 한 차례만 언급되는 것에서 추론할 수 있는 사실이다.
따라서 우리는 여기서 한 가지 답을 찾을 수 있다.
엘바프 전통의 '니카'와 버커니어족에게 전래된 이후의 '니카'가 그 원형은 같은 신이긴 하지만, 그 신앙집단의 문화와 열망에 의해 상징적 기능이 분화된 존재라는 것이다.
이것은 각 전승집단에서 묘사하는 니카 이미지의 차이를 통해서도 분석할 수 있다. 자, 위는 후즈 후의 회상에 나오는 버커니어 족의 니카고, 아래는 야를이 묘사하는 엘바프 전통 니카다.
편의상 위측을 '버커니어-니카', 아래를 '엘바프-니카'라고 구분하자. 둘 사이의 차이점이 보이는가?
버커니어-니카는 칼과 창을 들고 있기는 한데, 해당 무기들이 후방을 향하거나 지면 쪽을 향하고 있어서 '전투 중'이라는 인상이 강하지 않다.
또 니카의 시선 역시 정면보다 훨씬 위쪽을 향하고 있어서, 정면에서 적을 맞아 싸운다기보다 하늘을 바라보며 들떠 움직이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의 움직임은 춤추는 사람에 가까우며, 이는 '해방의 드럼으로 사람들을 웃게 하는' 그의 신격에도 보다 적합하다.
한편 엘바프-니카를 보자. 버커니어-니카와 가장 먼저 구분되는 차이점은 방패를 들어 몸을 가리고 있다는 것이다. 방패는 적의 공격을 막는 보호구가 아닌가? 그렇다면 방패의 존재는 니카에게 공격을 가하는 어떤 상대를 상정하고 있지 않은가?
또 니카가 칼을 잡은 자세도 보자. 팔꿈치째로 훅 들려서 칼끝이 뒤로 쭉 향해있는 버커니어-니카와 다르게, 엘바프-니카는 칼을 역수로 쥐어 힘있게 찌르는 자세를 취하고 있으며, 그 칼끝은 바로 앞을 향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하늘을 바라보는 버커니어-니카와 달리, 엘바프-니카의 시선은 정면을 똑바로 주시하고 있다.
즉 그는 방패로 자신에게 오는 공격을 막고,
상대를 똑바로 보면서 달려들어,
역수로 쥔 칼을 힘껏 꽂으려하는 전장의 전사다!
정리하자면, 버커니어-니카의 실루엣이 무기를 들고 신명나게 제의적 춤을 추는 모습이라면, 엘바프-니카는 실제로 칼과 방패를 들고 적과 투쟁하는 모습이다.
따라서 엘바프-니카는 확실히 버커니어-니카보다 강렬하고 선명한 전사신(戰士神)의 면모를 간직하고 있음을 여기서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반대로, 웃음을 주는 해방자로서의 면모, 즉 구세신(救世神)적 면모는 후대 전승일 버커니어-니카에게서 더 강하게 드러난다.
즉 우리는 이러한 결론을 잠정적으로 내릴 수 있다.
'본래 엘바프 거인들이 숭상하는 이상적인 전사였던 니카가, 방계인 버커니어족에게 전승된 후 춤추는 해방자로 그 성격이 변하게 되었다' 고 말이다.
이를 뒷받침할 증거가 있나? 물론이다. 앞서 나왔던 야를의 대사를 다시 보자.
"세계가 망하지 않게끔 나타난 영웅인지.... 모든 것을 부순 파괴자인지. 그는 이 세계의 형태가 크게 바뀔 때 나타났다!
그런 까닭에 그 시대의 권력자들은 니카의 출현을 두려워하는 것이야.
'태양의 신'이라 할 만큼... 희망을 찾아내지 못하는 이들은 빠짐없이 그를 좇았지. '니카'는 하얀 구름을 두르고, 새하얀 머리카락과 의상으로 박장대소하며 나타난다고 한다."
이 대사에서 보면, 야를은 '니카가 절망한 자들을 구원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다만 '니카는 세계의 변혁에 관여하고, 그래서 절망한 자들이 그를 추종한다' 라고 말할 뿐이다.
니카는 세계의 변혁이라는 자신의 기능을 다할 뿐인데, 현재의 권력체제에 억압받는 이들에게는 니카의 그러한 기능이 구원처럼 다가왔고, 그래서 결과적으로 피지배자들의 숭배를 받는 신이 되었다는 것이다.
즉 버커니어-니카에게 '해방' 자체가 핵심 기능이라면, 엘바프-니카는 우주적 순환에 참여하는 중요한 신인 건 분명하지만 딱히 그 스스로가 해방자의 정체성을 가진 것은 아닌 것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야를이 묘사하는 니카(볼드체 부분)을 자세히 읽어보자. 뭔가 빠진 느낌이 들지 않는가?
그렇다. 야를만이 아니라 엘바프 주민들이 묘사하는 모든 니카의 특징에는, '해방의 드럼'에 대한 이야기가 전혀 없다.
얼마나 이상한 일인가! 클랩에서 쿠마로, 쿠마에서 보니로 이어진 구원의 소망을 상징하는 소재가 바로 '해방의 드럼'인데, 엘바프 거인들은 아무도 '동도돗토 동도돗토' 하는 그 리듬에 관심이 없다. 마치 엘바프-니카에게는 '니카는 해방의 드럼을 울리며 온다'라는 모티프(motif)가 애초에 없기라도 하듯이 말이다.
즉 니카의 상징같은 해방의 드럼소리는, 버커니어족이 엘바프 신화 속 니카에게 자체적으로 덧씌운, 그들만의 설정인 것이다.
이 사실을 뒷받침하는 세부묘사가 또 있다.
위는 쿠마 부녀가 친구들과 파티를 벌이는 장면이고, 아래는 엘바프의 왕 하랄드가 인간 마을과 함께 연회를 벌이는 장면이다. 둘 모두 사람들이 특징적인 니카 댄스를 추고 있다.
그런데, '둥둥두둥' 하는 해방의 드럼 리듬은 위 컷에서만 나온다. 아래의 연회에는 '쿵', '챙' 하는 효과음만 나올 뿐, 니카 특유의 '둥둥두둥'은커녕 '둥' 한 글자도 나오지 않는다.
오다가 니카 리듬을 효과음으로 넣는 걸 잊어서일까? 하지만 니카와 해방의 드럼은 거의 한 세트인데, 그걸 그리는 본인이 니카 춤을 추는 장면에서 그 효과음을 깜박한다는 건 별로 그럴듯하지 않아 보인다. 게다가 앞 야를 장면을 포함한 엘바프의 밀짚모자 환영 연회에도 효과음은 '쿵'과 '챙'만 쓰일 뿐, '둥'은 전혀 나오지 않는다.
즉 이것은 실수가 아니라 의도적 배제다. 하랄드를 비롯한 엘바프에게 중요한 것은 '니카 댄스'지 '니카 리듬'이 아니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니카 리듬이 중요한 것은 그것이 '해방의 날'을 상징하는 징표라는 데 있는데, 그것은 엘바프-니카에게는 핵심 정체성이 아닌 여러 부수 속성 중 하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버커니어-니카는 어째서 그 기원에는 옅던, '해방자'라는 선명한 정체성이 부여되기에 이르렀을까? 왜 엘바프-니카에게는 노예해방과 같은 모티프가 그리 뚜렷하지 않을까? 이것은 각 신앙집단의 문화와 생활 환경을 고려하면 쉽게 답이 나온다.
엘바프 거인족은 남의 노예가 된 적이 없으므로 '해방'이 그리 중요한 가치가 아니다. 오히려 다른 섬을 약탈하는 전사민족인 그들에게 위대한 신은 곧 위대한 전사였다.
반면 세계정부에 의해 집요하게 박해받아온 버커니어족에게 '해방'은 민족 최대의 소망이었으며, 그래서 그들은 니카의 전사적 성격을 구원자적 성격으로 바꾸고 '해방의 전사'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부여하였다.
요컨대 남에게 지배받아 본 적 없는 엘바프는 그 상무(尙武)적 문화에 걸맞게 전사로서의 니카를 숭배했으며, 노예가 되어 한없는 고난을 당한 버커니어는 자신들을 구원해줄 해방자로서의 니카를 숭배한 것이다. 민족이 처한 서로 다른 환경이 한 신의 성격에 차이를 만들어냈다.
이렇듯 하나의 신이 역사적/지리적 조건에 따라 여러 성격으로 변모하는 경우는 현실에서도 매우 많다.
본래 유목민족을 수호하는 전사신이어서 호전적이고 난폭한 성격이 강했던 구약의 야훼가, 로마라는 다민족 보편제국을 맞아 사랑과 평화의 자비로운 신으로 재해석된 경우가 가장 대표적이며,
그리스 특히 아테나이 지방에서는 난폭한 살육자로 묘사되다가 로마에 들어와 이상적인 군인상으로 변모한 아레스(마르스)도 그렇다.
개중 특히 니카를 연상시키는 케이스로는 고대 아리아(인도이란)족의 신 '미트라'가 있다.
고대 인도-중동 지방의 아리아인들이 주신으로 섬긴 '미트라'는 우주의 섭리를 관장하는 주신 중 하나로, 우정의 신이자 맹세의 신으로서 왕권과 질서의 신인 바루나'와 짝패를 이뤘다. 그는 밤의 창공인 바루나의 시간이 끝나면, 세계에 새벽을 가져오는 아침의 태양이기도 했다.
그런데 인도계와 이란계가 분리되면서 이 미트라 신은 독특한 운명의 갈림길을 마주한다.
이란, 즉 페르시아에서 미트라는 조로아스터교의 야자타[善神, 기독교의 천사와 유사한 신적 존재] 중 으뜸가는 자리에 놓이며, 그의 아버지이자 창조주인 아후라 마즈다의 뜻에 따라 악마를 섬멸하는 태양의 전사라는 정체성을 얻었다.
그리고 이러한 페르시아 제국의 미트라 신화는 더욱 서방으로 전파되어, 로마에 이르러 미트라라는 전사신(戰士神)을 주신으로 모시는 밀교(密敎)로 발전하기에 이른다.
로마 미트라교에 등장하는 미트라는 바위에서 태어난 강력한 전사로, 세계의 원초적 혼돈을 상징하는 거대한 황소를 죽인 뒤 그것을 도축해서 자신의 동맹자인 태양신 솔(Sol)과 연회를 벌인다는 것이 그의 서사 얼개다. 즉 그는 혼돈의 괴물을 죽여 세계를 재창조하고 태양을 회복하는 자이다.
괴물 살해라는 모티프에서 우리는 이 미트라가 굉장히 전사적인 신임을 추론할 수 있다. 또 실제로 이 미트라 밀교는 여성의 가입을 원천 거부하고 남성 신도만을 결사의 성원으로 받았으며, 또 상당히 가혹한 입사의례를 치러야 했다고 한다.
결정적으로 미트라교의 신도는 대부분 로마군 병사였다고 하니, 그런 점에서도 로마 미트라신이 상무적인 전사신이었음을 파악할 수 있겠다. 본래 섭리를 주관하는 우정의 신이었던 아리아의 마트라가 혼돈의 괴물을 죽이는 전사이자 군인들의 수호신이 된 것이다.
한편 인도 본토의 미트라는 그 신앙의 세가 약해져서, 우리가 잘 아는 인드라에게, 힌두교 시대에는 브라흐마-비슈누-시바에게 주신 자리를 넘겨주고 다소 마이너한 신으로 남았는데,
고타마 싯다르타에게서 시작되어 민중 사이에 퍼진 불교가 미트라와 만나면서, 또 하나의 희한한 화학변화가 일어났다.
그렇다. 마이트레야(maitreya)- 곧 미래에 강림해서 온 우주의 중생을 구원한다는 미륵보살이 바로 불교화한 미트라이다.
당대나 지금이나 인도 피지배 민중을 억압하는 카스트라는 강경한 신분문화가 그것을 부정하고 모든 인간의 구원 가능성을 역설하는 불교의 가르침을 탄생시켰고,
이 불교가 억압받던 하위 카스트 민중에게 큰 호응을 얻어 '비참한 현세를 갱신해줄 구원자'로서의 부처상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거의 쇠했던 이 광명과 우정의 신은 신분제에 신음하는 피지배계급의 성원을 받아들이고 구원을 약속하는 해방자로 재탄생한 것이다.
즉 기원에 있어서는 같은 태양신에서 비롯했던 동서양의 '미트라'가, 문화와 민중의 가치관에 따라서 거의 정반대로 다른 존재가 된 것이다.
페르시아와 로마라는 정복제국의 상무정신이 반영된 미트라는 강인한 우주의 전사로,
인도 특유의 사색적 문화와 카스트의 질곡 속 민중의 염원이 반영된 미트라는 자비로운 구원자로 말이다.
그리고 이 정도로 극적인 차이는 아니라도, 《원피스》 속 '니카'라는 신 역시 그를 신앙하는 집단의 문화적 환경에 따라서 성격의 변모를 거쳤음을, 우리는 작품 속 세부묘사의 디테일한 차이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필자가 오다의 천재성에 감탄하게 되는 것은 바로 이 부분이다.
우리는 그가 그린 작은 묘사의 파편을 정리하고 비교해서, 큰 비약 없이도 이러한 니카 신앙의 변천을, 신의 역사를 통찰할 수 있다. 니카라는 신은 비록 갑작스럽게 소개되었을지언, 그 세계 안에서 고유의 역사를 가지는 신이다.
심지어 그것을 드러내기 위해 오다는 지루하고 현학적인 (그래, 이 글처럼) 구구절절한 설정풀이를 사용하지 않았다. 그는 '이 신은 엘바프에서 시작되어 버커니어로 이어졌고 버커니어족은 이 신에 해방의 이미지를 부여하여 자신들의 삶을 위로하였고....' 따위의 지리한 썰을 풀어내는 대신, 사소한 실루엣의 차이로, 등장인물들의 대사로, 심지어 등장인물이 말하지 않는 것을 통해 말했다.
엘바프인들이 해방의 드럼을 언급하지 않음으로써, 하랄드의 춤에 북소리가 없음으로써, 그 부재의 언어로 자신이 만든 세계를 설명하는 능력, 그럼으로써 오히려 핍진하게 이 '가상세계의 역사성'을 그려내고 독자의 머릿속에 스르르 스미게 만드는 간지(奸智). 이것이야말로 오다 에이이치로가 만화계에서 가지고 있는 독보적인 이야기꾼의 재능이 아닐까? 필자는 그렇다고 믿는다.
덧. 여기서부터는 좀더 추측에 가까워지는데,
바솔로뮤 가의 교회는 필시 니카를 섬기는 교단일 것인데, 위 묘사를 보면 현실의 기독교를 강하게 연상시키는 심볼을 사용하고 있다.
실제로 원조 엘바프 신앙에서 엘바프-니카는 다신교(多神敎) 체제의 여러 신 중 하나일 뿐이지만, 바솔로뮤 가문은 니카 외의 신을 아예 언급하지 않는다. 즉 버커니어-니카는 그 종교적 전통 속에서 유일신, 혹은 적어도 단일신[Henotheism, 여러 신들의 존재를 인정하되 특정한 한 신만을 숭배의 대상으로 삼는 종교로 위의 로마 미트라교가 대표적]으로 존숭되었음을 추론할 수 있다.
주지하다시피 기독교는 성부 하느님 야훼를 믿는 동시에, 그 한느님이 육신을 입으신 모습, 곧 화신(化身)으로서의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종교다.
그리고 이 예수는 바로 유대민족의 하느님을 인류 전체의 하느님으로, 사랑과 자비의 하느님으로 재해석하여 야훼 신앙을 보편종교로 혁신시킨 위대한 종교사상가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그렇다고 한다면 말이다,
우리는 '조이보이'가 바로 800년 전, 유대교에 있어서의 '예수'와 비슷한 역사적 위치에 있었다고 가정할 수 있지 않을까?
즉 세계의 순환에 관여하는 거인족의 전사신(戰士神)이었던 엘바프-니카를, 억압받는 민중의 해방자라는 보편종교적 존재로 재해석하고 자신의 사상의 아이콘으로 삼은 것이 바로 조이보이라면?
그리고 그 조이보이의 새로운 니카해석에 조응해서 그와 함께 20왕과 싸운 것이 버커니어족이고, (혹은 조이보이 자신이 버커니어족일 수도 있겠다) 조이보이의 패사 이후로도 그들의 겨레 내에서 '新니카 해석'이 대대로 전해내려온 것은 아닐까?
실제로 조이보이의 동료였던 즈니샤는 기어5의 심장박동을 '해방의 드럼'이라고 부르며 니카가 아니라 조이보이를 언명한다.
그런데 공백의 100년 시점에서 세계정부는 아직 범인류적 패권을 쥐기 전이므로, 이미 노예가 된 상태를 전제로 하는 '해방의 드럼' 모티프가 기존의 엘바프-니카에게서 파생하기엔 너무 이르다는 느낌이 든다.
그러나 만약에, 조이보이 자신이 이 심장 박동에 '해방의 드럼'이라는 이름을 붙인 사람이라면 어떨까? 이 '해방'이 이미 오래된 예속만이 아니라, 앞으로 있을 예속의 음모에 대항하기 위한 구호였다면?
말하자면 이렇다. '둥둥두둥 둥둥두둥' 하는 심장 박동 자체는 이미 기존 니카 신화에도 존재하는 요소였고, 따라서 고무고무 열매의 각성을 통한 변신(기어5)에도 반영되어 있었지만, 아직 그것은 '해방의 드럼'이라는 상징성이 부여되지는 않은, 그냥 심장 박동이었다.
엘바프 문화의 특성상 이 심장소리는 어쩌면 전사들에게 진격을 명령하는 싸움의 북소리[戰鼓]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러나 열매를 먹고 니카의 화신이 된 조이보이는 타 종족을 억압하고 노예로 부려 지배하려는 20왕의 계획에 저항하며 다음과 같이 외쳤지 않을까.
"나는 니카의 화신, 살아있는 니카다.
그리고 나의 이 심장소리는 바로 모든 민중의 해방을 약속하는 드럼소리다. 구원의 약속이다.
이 드럼소리에 맞춰 함께 춤추고 싸우자, 그러면 지배의 사슬이 산산이 부숴지는 새벽이 오리라!!"
이렇게 조이보이는 엘바프 신화에 등장하는 전사신 니카를 자신의 사상에 맞게 재해석함으로써 민중의 구원자로 재탄생시켰다. 즉 니카가 조이보이를 만든 것이 아니라, 어떤 의미론 조이보이가 니카를 만들었다!
이러한 관점을 따를 때 조이보이는 고대왕국과 20왕 간의 대전쟁에서 싸움을 주도한 인물일 뿐 아니라, 민족종교를 보편종교로 승화시킨 종교개혁가이자 사상적 리더였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이를테면 '칼을 든 예수'였으며, 한국사에서 말하자면 최제우와 최시형, 전봉준을 한데 합친 존재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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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만든 설정인가 < 동의함 근데 너무 늦게 본격적으로 풀기 시작했는가? < 이점에서 감점이 들어간다고 생각함 이정도로 중요하다면 하늘섬 쯔음에 아니면 억지로라도 1부 끝날 시점에 니카라는 이름이 언급이라도 됬어야 한다고 생각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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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최중요설정이 책 90권쯤에 처음 나온다는 것부터가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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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줫 간지임 솔직히 아무리 설정을 잘짜도 기어4수준으로 나왔다면 원피스 끝났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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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신이더라도 문화권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수 있다는 거 진짜 중요한 부분. 니카가 파괴자이자 해방자인 게 이거 때문이라고 생각함. 현 세계의 질서를 파괴한다는 건 권력자(천룡인)들에게는 나쁜 일이지만, 억압받는 사람들(노예)에게는 좋은 일이지. 우리는 흔히 질서롭고 평화로운 치세가 좋다고 생각하지만, 난세가 아니면 영웅이 태어나지 않기도 하고. 오다는 이걸 해적이라는 존재, 더 나아가 루피에게 빗댄 거 같음. 루피는 영웅이 되겠다는 생각없이 자기 모험을 하고, 친구를 괴롭히는 놈을 쓰러뜨리지만 그것이 누군가에게는 해방. 동시에 임펠다운 사건처럼 누군가에게는 평화를 어지럽히는 범죄에 불과한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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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적으로 급조인거 자체는 나도 동의함. 다만 세계내적인 관점에서 고고학적 방법으로 모종의 문화적 변천을 추론할 수 있을만큼 오다의 니카 묘사가 핍진한 게 흥미롭다는 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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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피가 니카되기 직전에 급박하게 후즈후가 풀었다는게 문제지 90권에 작품전체 관통하는 최중요설정이 나오는거 자체에는 문제없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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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떠레스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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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최중요설정이 책 90권쯤에 처음 나온다는 것부터가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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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촌광음
루피가 니카되기 직전에 급박하게 후즈후가 풀었다는게 문제지 90권에 작품전체 관통하는 최중요설정이 나오는거 자체에는 문제없지 않나? | 25.10.11 16:15 | | |
(IP보기클릭)59.24.***.***
오다가 어느정도 메인 플롯을 잘만들지만.. 급설정도 잘만들어서 나타난 현상인듯 ㅋㅋㅋㅋ | 25.10.11 16:16 | | |
(IP보기클릭)118.235.***.***
쿠마 관련 설정이랑 고무고무 관련 설정은 꽤 옛날 부터 있었던듯 독자상담(SBS)였나에서도 언급하고. | 25.10.11 16:17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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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만든 설정인가 < 동의함 근데 너무 늦게 본격적으로 풀기 시작했는가? < 이점에서 감점이 들어간다고 생각함 이정도로 중요하다면 하늘섬 쯔음에 아니면 억지로라도 1부 끝날 시점에 니카라는 이름이 언급이라도 됬어야 한다고 생각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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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에서는 급조설정느낌나는 걸 부정하기보다 긍정하는데 설정상으로 인문학적 역량이 엄청 크게 보이는 잘 만든 설정이란 지점을 분석하고 있는 듯 | 25.10.11 16:15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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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적으로 급조인거 자체는 나도 동의함. 다만 세계내적인 관점에서 고고학적 방법으로 모종의 문화적 변천을 추론할 수 있을만큼 오다의 니카 묘사가 핍진한 게 흥미롭다는 얘기. | 25.10.11 16:17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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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짓을 하면 또 너무 중반부터 코난들이 야 루피가 사실 니카 아냐?? 하고 추측 날릴거아냐 니카라는 개념이 나오고 ㄹㅇ 얼마 안가서 국내에서 사실 고무고무열매가 니카열매 아님? 하고 예측 올라왔었고 뭐.... 너무 뜬금없이 나온 개념이라 개소리말라고 당시에는 몰매맞았지만 만약 이게 중반부터 떡밥이 돌았으면 그럴듯한 소리로 들렸을테니 독자들도 결국 올것이 왔구나!! 하고 말았을지도 | 25.10.11 16:17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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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하늘섬을 샨디아가 섬기는 4명의 신: 태양신, 숲의 신, 땅의 신, 비의 신이 모두 엘바프의 헐리에 나오더라고. 공백의 100년에서 대격변을 주도했다고. 정확히는 비의 신은 안 나오고 바다의 신이 나오지만. | 25.10.11 16:37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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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박동 자체는 원래부터 니카 변신의 특징인데, 거기에다 '해방의 드럼'이라고 이름붙이고 상징성을 부여한 것이 조이보이라는 게 요지임. | 25.10.11 16:16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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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보면 되긴하겠네 | 25.10.11 16:19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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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ㄴ 인도의 하누만임 | 25.10.11 16:16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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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대성 컨셉은 묘하게 나미가 가져가는중ㅋㅋ 구름,늘어나는 봉,도술같은 기술들 | 25.10.11 16:23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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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라 생각해보니까 그러네 나미 루피 자식이 제천대성 완전체라도 되는곤가.. | 25.10.11 16:31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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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자 자체도 우솝이 가져간 판이라.. | 25.10.11 18:50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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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줫 간지임 솔직히 아무리 설정을 잘짜도 기어4수준으로 나왔다면 원피스 끝났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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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어 4 까지는 카이도가 압도적인 힘으로 찍어누른다는 느낌이었는데 기어 5는 우스꽝스러운 전투법에 그 카이도와 동등한 전투를 펼친다는 점에서 임팩트가 엄청났지 | 25.10.11 16:27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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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신이더라도 문화권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수 있다는 거 진짜 중요한 부분. 니카가 파괴자이자 해방자인 게 이거 때문이라고 생각함. 현 세계의 질서를 파괴한다는 건 권력자(천룡인)들에게는 나쁜 일이지만, 억압받는 사람들(노예)에게는 좋은 일이지. 우리는 흔히 질서롭고 평화로운 치세가 좋다고 생각하지만, 난세가 아니면 영웅이 태어나지 않기도 하고. 오다는 이걸 해적이라는 존재, 더 나아가 루피에게 빗댄 거 같음. 루피는 영웅이 되겠다는 생각없이 자기 모험을 하고, 친구를 괴롭히는 놈을 쓰러뜨리지만 그것이 누군가에게는 해방. 동시에 임펠다운 사건처럼 누군가에게는 평화를 어지럽히는 범죄에 불과한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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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글 넘 좋당 잘 읽고 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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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보이에 대한 흔적 자체는 하늘성부터 간접적으로 나오는걸로 봐서 그당시에도 존재하긴 했을거임 그걸 그때부터 적극적으로 풀었으면 좋았을텐데.. | 25.10.11 17:20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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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보이는 어떤 인간의 문제나 결점들에도 계속 웃으며 그의 드럼으로 저항할 수 없는 리듬을 만들며 인간의 고난을 치유합니다. 조이보이의 음악을 듣는 누구든지 그의 춤에 끌리며 절망이 떨어져나갈 때까지 춤추고 노래합니다. -조이보이 전승- 어인들이 카리브해의 모티프가 많이 들어간 걸 생각하면 어인들의 태양신 = 니카, 조이보이라는 걸 조금 더 일찍 어인섬 쯤에도 풀었으면 좋았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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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황은 조이보이 주니어 그 자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