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내 이름은 조쉬.
이 곳에 오게 된 건 순전히 우연이었다.
그것이 이 곳에는 구원이었을지도 모른다.
1.
내가 왔을 때, 이 곳은 이미 엉망이었다.
전기는 모두 나가있었고, 곳곳은 피투성이였다.
그나마 의료실로 보이는 곳에서 한 명을 찾은게 전부이다.
수감실에도 한 명이 남아있었다.
그러나 이 자를 살려둘 생각은 없었는지, 이미 곳곳이 피투성이에, 그의 유전자가 착출되어 남겨진 흉터만이 보일 뿐이었다.
어리석게도, 저 남자는 이 자를 처형하기 전에 그의 유전자를 탐한 모양이다.
몸이 그걸 쉬이 받아들일 수 있을 리가 없는데.
선택지는 내 손에 있었다.
이런 곳에 갇힌 채 피와 유전자를 모두 빨려 죽어가는 저 흡혈귀를 도울지,
혹은 그의 삶을 탐내 취하였던 어리석은 자를 도울지.
내 선택은, 자비가 아닌 순리였다.
이유는 간단했다. 나는 그렇게 자비로운 자가 아니니까.
그리고, 이 엉망이 된 정착지의 남은 것들이 탐나기도 했기 때문이다.
이 곳에 계속 머무를 선택을 할만한 건, 당연히 둘 중에는 원 주인이 훨씬 가깝지 않겠나.
비록 수복하려면 손이 좀 가겠지만, 그럴만한 가치는 있었다.
메크링크.
간단하면서도, 굉장한 기술이 들어간 물건이다.
아직 저 자가 쓰지 않았다는 건, 주인이 없단 뜻이리라.
메카노이드. 위협적인 방랑자들이다.
하지만 아군이 되어준다면 그만큼 든든한 존재이기도 하다.
이 곳을 정리하기 위해 나는 그들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문득, 주인 없는 메크링크에 비해 아직 멀쩡한 시설들에 의문을 가졌지만, 그에 대한 진실은 깨어난 원주민... 데니스로부터 들을 수 있었다.
그도 처음부터 이 곳의 주민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 전에 있던 메카나이터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괴물들의 습격에, 이렇다 할 대처도 하지 못한 채 죽어갔다고 한다.
희한한 일이다. 이정도로 정비된 정착지가, 그 정도의 대응도 못하다니.
방어에 유용하지 않은 설계 때문일지도 모른다.
사실 그보다 더 놀란 것은, 그 괴물들을 가둔 곳이었다.
이것에서 나오는 자원은 유용하다고 한다.
하지만 설령 그렇다 해도... 별로 가까이 하고 싶지는 않았다.
저런 것들과 비슷한 것이라면 본 적 있다. 그들은 이치를 배반하며, 순리를 잡아먹는 괴물이다.
이 곳의 규칙에 저항할 생각은 없지만... 내키지 않는 건 않는 거다.
2.
방어가 허술하다는 말은 취소하겠다.
여러 차례 각종 부족들의 습격이 있었으나, 모두 이 정착지에 들어오기도 전에 죽임을 당했다.
겉보기엔 시간만 벌 뿐인 길이지만, 곳곳에 놓인 함정이 그들의 목숨을 마치 옥수수처럼 수확해버렸으니.
생각보다 교묘한 구조였다. 편법을 좋아하는 이들이 걸려들기 쉬운 함정이었으니.
그리고 나는, 괴물들과 가까이 했다.
여전히 그것들을 바라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들을 억제하지 않으면, 그들은 더욱 번성할 것이다.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모든 규율이 업신여겨지며 짓밟히는 곳이라니...
이런 곳에 새로운 이가 방문하는 건 드문 일은 아니다.
하지만 밀라... 그녀는 조금 달랐다.
오해를 대비해 첨언하자면, 그녀의 신념이 나와 다르다는 점 때문이 아니다.
그녀는... 달랐다.
밀라, 그녀는 우리를 바라볼 때마다 그 눈길에 언제나 차가운 계산이 서려 있었다.
그 눈을 마주할 때면 언제나 소름이 끼쳐왔다.
그리고 그건 단순한 기분 탓이 아니었다.
멀쩡한 수감자를 상대로 '장기 이식' 준비를 멋대로 진행하더니, 실패하고도 아무렇지 않게 그 시체를 들고 빠져 나왔으니까.
더 끔찍한 것은, 그 시체에게 애도를 표하기는 커녕 잔인하게 도륙내버렸다는 점이다.
용납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녀의 의도가 이 정착지에 득을 가져다주려는 것인 이상... 용납하지 않을 수도 없었다.
그래, 되돌아보면 이 때, 그녀를 용납하지 말아야 했을지도 모른다.
3.
긴 시간이 지났다.
정착지는 평화롭다고만은 할 수 없지만, 모든 고난을 어렵지 않게 이겨냈다.
그녀는 그 때 나타났다.
그녀, 테오우스.
아름다운 미모. 그에 걸맞는 오만.
그러나 그 자만 아래 기꺼이 남을 들이는 관용.
그녀의 타고난 권위는 매력적이었다.
그런 그녀에게 내가 끌리지 않는다는 건 불가능하지 않았을까?
그녀는 흔쾌히 나를 받아들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녀가 오만한 게 아니라 내가 오만했다.
내가 하지말았어야 할 두번째 실수가 있다면, 그녀를 사랑한 것이리라.
4.
새로운 자가 접근해왔다.
나는 그 자가 영 미심쩍었지만, 잠시의 회의 끝에 우리는 그녀를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
무엇보다 그녀가 우리가 억제하고 있는 것들에 대해... 많은 것을 아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공포는 미지에서 온다. 약함에서 온다.
앎은 힘이며, 그것은 공포를 물리치는 법이다.
기분나쁠 정도로 빠르게, 그녀는 오벨리스크의 정체를 알아내었다.
그리고 그 저편에 숨겨진 힘 마저도.
나는 그 힘이 영 마땅찮았지만, 그 유용성에 대해 설파하는 이들을 결국 설득하지 못했다.
그 희생자는... 아니 대상자는, 내 연인이었다.
이유는 단순하고, 잔인했다.
그녀가 방문객이라는 점.
언젠가 떠날 것이라는 점.
... 그녀가 떠나고 나서도 그녀를 기억할 수단이라며, 그들은 나를 위로했다.
심지어는 테오우스, 그녀마저도. 자신을 영원히 기억해줄 수단이라며 설득했다.
내게 반대할 논리는 결국 바닥났고,
그녀의 새로운 존재가 탄생했다.
완전히 같은 얼굴, 같은 성격, 같은 말투.
그러나 나를 속일 수는 없었다.
그것은, 테오우스가 아니었다.
그래도 괜찮다.
그 가짜가 있더라도, 진짜 테오우스가, 나의 그녀가 여전히 남아있었으니까.
그러나, 내 눈 앞에서 그녀의 배는 갈기갈기 찢어졌다.
그 안에서 나온 것은 괴물이었다.
아니 괴물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그것이, 그것이! 그것이... 나의 테오우스를 상처입혔다는 점이다.
그것을 제압했지만, 그녀의 부상은 심각했다.
나는 그녀를 걱정하며, 직접 치유했다.
나는 이 곳의 의사이기도 했기에 거절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오히려, 그녀의 감염을 보건대 그 복제본에게도 똑같이 있을지 모른다는 설을 제기하기까지 했다.
그것은 가짜, 내가 염려해줄 필요는 없다.
결과는 장기 부패였다.
그것들... 박사에 따르면 메탈호러라 불리는 것들은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안심해야할까? 내겐 복잡한 일이다.
내가 진짜를 잊어버릴 리 없다 해도, 가짜는 보이지 않는 편이 이득이니까.
5.
끔찍했다.
내가 내 손으로... 무고한 자의 장기를 적출해야 하다니.
뒤늦게 그 일은 밀라의 일이라는 걸 알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뭐가 바뀌는가?
죽는 것을 그저 바라만 보는 것과, 직접 죽이는 것.
그 둘이 얼마나 다르단 말인가?
... 살리기 위해서라고 한다
테세우스, 그녀가 아닌... 그녀의 복제품을 살리기 위해서.
정녕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는 말인가?
나도 물론 수감자를 처형한 적이 있지만...
그 장기를 마치 냉장고처럼 빼내는 건, 처형과는 다르다. 그 어떤 권리조차 무시하는 것이다.
나는 나의 사랑 테오우스에게 하소연했고, 그녀는 괜찮다며 웃어보였다.
올바른 선택이 아니라도, 그릇된 선택이 아닐 거라며.
내가 스스로 선택한 것이 그럴 리 없다고.
그녀는 나의 마음을 위로해주었고, 믿어주었다.
6.
그 모든 것의, 어디서부터가 가짜였을까.
나는 그녀를 지킬 수 없었다.
잔인한 일이지만... 나는 결국 그런 사람이다.
자비로운 자라는 호칭은 나와는 멀다.
하지만 그런 나라도... 그녀의 죽음은 버틸 수 없었다.
아니, 그것만이 아니다.
그녀의 심장을, 복제본에게 주기 위해서라니!!!
누가 진짜고, 누가 가짜냐는 말이다!!!
그래, 안다.
그녀는 배신자고, 그 복제는 배신자가 아니다.
진실과 거짓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손익이며, 신뢰다.
하지만... 하지만 나는....
나는 그녀를... 사랑했는데...
7.
이 장은 나의 일기가 아니다.
이미 죽은 자에게 남겨져 있던 일기장을 인용한 것이다.
5504년 3분기 7일.
실체들이 탈옥을 시도했다.
그 가운데에는 우리가 직접 상대해본 적 없는 망령과 걸신이 존재했다.
우리들의 역량으로는 부족했기에 남서부 펜파이눔의 동맹을 불렀다.
결국 나까지 제압에 나섰으며, 걸신은 어렵지 않게 제압했다.
그렇게 하나하나 억제실에 돌려보낼 때, 억제실 한 켠이 비어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 발견은 너무도 늦었다.
노예는 이미 그 망령에게 붙잡혔고, 우리가 발견했을 때는 알아들을수 없는 헛소리를 내뱉을 뿐이었다.
그저 노예는 "악몽, 악몽이야! 그것은 공포 그 자체라고!" 같은 헛소리만을 중얼거릴 뿐이었다.
우리는 그가 무엇에 당했는지 알 수 없었지만, 추측은 가능했다.
우리들의 격리실에서 빠져나간 것은 오직 하나.
망령 뿐이었으니까.
비명.
나는 그 비명을 들었다.
연구실에서 휴게실로 빠져나오던 순간, 온 정착지에 울려퍼지는 비명을.
아아 그래, 그것은 메탈호러였다.
그에게 무슨 이름이 더 필요하겠는가?
그것은 강철로 되어있으며, 공포 그 자체인 존재이다.
나는 데니스를 불러 그들을 붙잡으려 했다.
그 공포는 나의 살도 꿰뚫고, 뼈도 바스라뜨렸다.
희미해지는 의식 속에서 다가오는 데니스가 보였다.
아아... 아직 말하지 못한 것이 많은데.
아직 그들을 고발해야 하는데...
수첩이 피로 물들어간다. 더 이상은 글이... 보이지 않...
... 이것이 그의 마지막 기록이었다.
마지막장은 쓰러진 그의 피가 더럽혔지만, 글을 알아볼 수는 있었다.
나는 수첩을 접었다.
아직 그의 목숨은 살아있지만, 그 메탈호러들을 제압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
나는 나의 충실한 메카노이드들과 함께 창고로 걸아갔다.
그리고 총을 겨눠
그 잘난 공포를 바스라뜨렸다.
이제는... 이제는 정녕 혼자란 말인가???!
이럴 수는 없다. 이럴 수는 없어.
그 어떤 외지인들도 막을 자신이 있었다.
기계 군주라도 두렵지 않았단 말이다!!
사납게 달려드는 곰이라도 두려워할 게 아니었다!!
메탈호러, 결국 강철로 된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단 말이다!!
겨우 이런 것에, 이런 것에 정착직가... 이렇게...
희노애락이 섞여있었지만, 비록 겨우 1년이 지나는 시간이었다 해도...
이렇게, 이렇게 처참하게는...
8.
정신을 차렸을 때는 밤이었다.
그리고 수감자가 정신을 놓았다.
그도 노예와 같은 말을 반복했다.
"이건 악몽이야, 있을 리 없어... 내 눈앞에서 꺼져! 살려줘, 제발... 나는 잘못했으니까 용서해줘..."
두서없으며, 비논리적이다.
그러나 그 공포만은 진짜였다.
강철로 된 공포 말고도, 아직 공포는 남아있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차마 상상하기조차 어렵다.
나는 피와 시체, 먼지와 역겨운 냄새가 가득한 곳에서 용기를 열었다.
진득한 쇠의 냄새.
끈적한 피의 냄새는 어딜 가도 사라지지 않는다.
마치 내 옷, 아니 내 몸에 들러붙은 것처럼.
그렇다면 피하지 않는 것이다.
모두가 죽었다.
아니, 흡혈귀인 데니스만큼은 그 탐욕 덕에 살아남았다.
내가 깨어났을 때, 방은 반이 타고 남은 잿더미와 함께 무너져있었는데,
과연 데니스, 그가 깨어났을 때는 어떨까.
... 적어도, 나와 같은 충격은받지 않았으면 좋겠다.
9.
삐익 거리는 경고음이 울렸다.
그라이프... 이제는 죽어버린 그의 발명품이다.
오벨리스크가 위험한 활성도에 돌입했다는 증거.
내버려둔다면, 어쩌면 다음에는... 정착지가 전부 괴물로 뒤덮일지도 모른다.
아직 망령이 살아 돌아다니고 있지만, 멈출 수는 없다.
나는, 안전한 벽을 떠났다.
그 순간, 접근 탐지기로부터 긴 사이렌이 울려퍼졌다.
포탑의 발사소음이 벽 너머에서 들린다.
멈출 수는 없다. 어차피 도망칠 수도 없다.
그렇다면 맞서 싸울 수밖에 없다.
나는 그것을,
그!!!것으!!!!!을!!!!!
아... 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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림월드 1도 몰랐는데 인방스트리머가 어노말리하는거 보고 진짜 재밌게 봤었음 몇번을 멸망하려하는데 끝까지 포기않고 결국 엔딩까지보는데 진짜 박수쳐젔음 중간에 글에 나오는 맨인블랙도 나왔었고 다회차? 하기에는 아쉽다는 평이 많은데 1회차 한정으로 역대급 DLC라고 평가하는듯함 | 24.09.13 08:33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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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평소엔 그럼. 당장 저 조쉬 합류 이전 스토리도 이렇게는 안썼고. 근데 이번에 진짜 대참사나가지고... 한숨 쉬면서 생각해보니 이 모든 일의 중심점에 조쉬가 있어서 적어봄 | 24.09.13 14:24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