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1920년대 북로군정서(대한군정서)의 군복을 그려봤습니다. 기본적인 형태는 청산리전투 승전기념사진에 찍힌 군복을 참고하여 그렸습니다. 북로군정서는 사관연성소를 만들어 독립군을 양성하고, 운반대를 조직하여 러시아와 체코의 장비를 입수해 사용했습니다. 군복의 색깔은 회색의 군복을 입고 훈련했다는 기록과 황색모자에 하얀 옷을 입었다는 기록이 있어 그것을 참고했습니다.(옅고 진함은 차이가 있을 수 있음)
독립군 개인의 장비로는 소총 1정, 탄환 500발, 수류탄 1개, 비상식량용 조 6되, 짚신 1켤레 등이 있었다고 합니다.
【황색모자에 백색군복을 사용하던 북로군정서 기록】
「현재 훈련을 종료한 것은 그들의 칭하는 군인(軍人)으로서 그 수는 600여명이고 지금 또 300여명의 재영중(在營中)의 것이 있다 한다. 이들 학생(學生)과 불령선인(不逞鮮人) 등의 복장(服裝)은 황색모자(黃色帽子)를 쓰고 모장(帽章)은 지나식(支那式)에 방불하고 태극휘장(太極徽章)을 붙였으며, 백복(白服)을 착용하고 소매에 자색(紫色)의 횡선(橫線 )을 붙였는데 마치 일본군인과 상당히 흡사 한 바가 있다고 한다. 그리하여 해소(該所)에 집합(集合)해 있는 불령선인(不逞鮮人)은 적어도 1,000명을 내려가지 않는다고 한다. 」
【사관연성소에서 회색군복을 입고 훈련하던 기록】
「서대파(西大坡)로부터 왕청하(汪淸河) 상리(上里)의 3리(12킬로미터‥‥‥필자) 지점에 있는 서대파(西大坡) 상촌(上村)의 군정서(軍政署) 직영의 무관학교(武官學校)에는 현재 약 400명의 재학생(在學生)이 있다. 회색(灰色)의 군복(軍服)을 착용하고 누구나 상등병격(上等兵格)의 견장(肩章)을 붙인 18세로부터 30세까지의 청년(靑年)이다. 6개월의 강습(講習)을 완료(完了)하면 모두 소위격(小尉格)이 되며 1소부대(小部隊)의 지휘관(指揮官)이 될 수 있게 되어 있다 」
청산리전투 승전기념사진
위 사진은 청산리 전투에서 승리한 기념으로 찍은 사진입니다.(최근에는 봉오동전투 때 사진이라는 의견도 있음). 맨 앞쪽에 앉아 있는 사람은 김좌진 장군으로 추정됩니다.
사관연성소 졸업사진
위 '기전사가' 라는 노래는 청산리전투 당시에 독립군들이 부르던 노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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