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소설은 거울단계 이벤트의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아직 해당 이벤트를 진행하지 않으셨거나 진행중이신 유저분이 계시다면 추후에 읽어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시야가 변하기 시작했다. 눈앞에 보이는 건 지금까지 보던 붉은 공간이 아닌, 어떤 낡은 시설의 내부.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공간이 내게 익숙하게만 느껴졌다. 이건 대체 뭐지? 꿈인가? 발걸음을 옮기려 하지만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내 시야는 빛을 피하려는 듯 점점 어둠 속으로 사라져갔다.
그리고 그 순간, 난 내 귓가에 들려오는 소리에 심장이 멎을 것만 같았다.
“저길 보세요! 거의 다 왔어요!”
기억 속에서만 듣던 그리운 목소리. 언니의 목소리였다. 정확히 어디에 있는 거지? 대화를 들어보니 언니는 누군가와 함께 있는 듯했다. 다행이다. 언니도 결국은 친절한 사람들하고 같이 다니고 있었구나. 이제 나에겐 이 상황이 꿈인지 현실인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언니를 보고 싶었다. 이 두 눈으로, 반드시.
그리고 마침내. 시야에 언니의 모습이 들어왔다. 마치 공연이 끝나고 어두운 무대에서 혼자 조명을 받는 배우처럼 환하게. 양팔을 벌리고 등을 보이며 언니는 바로 몇 발자국 앞에 서 있었다. 으으, 제발 언니. 이쪽으로 돌아서지! 아니면 내가 그쪽으로 갈 순 없으려나?
내 간절한 바람을 읽은 건지, 시야는 점점 언니가 서 있는 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하이힐이 또각거리는 소리와 함께.
또각.
또각.
어...라? 내가 하이힐을 원래 신었던가? 게다가, 내 입가엔 미소가 지어져 있었다. 물론 언니를 찾은 생각에 기쁜 건 사실이다. 하지만 평소에 내가 짓는 미소와는 다르게 나의 입꼬리는 뭔가, 좀 아플 정도로 올라가 있었다.
또각.
또각.
나를 보고 경악스러운 시선을 보내는 분홍머리 여자가 눈에 들어온다. 왜지? 왜 나를 보고 그렇게 놀라는 거야? 게다가 손에는 총까지 들려있다.
또각.
또각.
옆에 있는 남자 또한 마찬가지. 하지만 그는 아직 상황을 파악하듯 나와 언니를 번갈아가며 쳐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분홍머리 여자가 갑자기 파란 램프를 높게 들기 시작했다.
“! 마흐리안!!!”
남자가 다급하게 언니의 이름을 외친 것과, 나와 언니의 거리가 가까워진 것은 거의 동시였다. 언니의 보라색 머리가 내 눈 바로 앞에 나타난다. 그리고,
푸슛!
“잡았다, 사랑스런 우리 언니.”
분명 언니를 만난다면 비슷한 말을 하지 않을까 생각하곤 했다. 하지만, 내 입에서 나온 대사는 뭔가, 많이 왜곡되어 있었다.
“아......!”
언니의 가슴 사이를 꿰뚫은 칼날. 왼팔은 내 손이 붙잡고 있지만 오른팔은 이상한 기계 같은 것에 붙잡혀 있다. 아무래도 이 기계는, 내 몸에 붙어 있는 것이 분명했다.
‘나’는 고통에 일그러져가는 언니의 뺨에 얼굴을 맞대며 미소 지었다. 뺨을 통해 점점 힘을 잃어가는 언니의 상황이 생생하게 전해졌다.
“이렇게 꼭 안으니, 우리 사이의 거리도 좀 더 가까워진 것 같지 않아요?”
도대체 이 녀석은 무슨 얘길 하는 거야? 오히려 우리 사이를 갈라놓는 건 정체를 알 수 없는 너라고!
“수천 번... 수만 번을 껴안아도...”
“응?”
“우리, 사이는... 한 뼘도 가까워지지 않아...”
언니는, 이게 내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알고 있으니까. 죽어가는 와중에도 저런 말을 당당하게 할 수 있는 거였다. 바보같이.
“우리 착한 언니, 여전히 고집이 세다니까요. 죽기 직전인데도 전혀 저와 친해지려 하질 않고.”
‘나’ 역시 비슷하게 생각을 하고 있는 듯했다. 물론 나하고는 전혀 다른 의미였지만.
“뭐, 괜찮아요. 안심하고 먼저 가세요. 언니의 친구들도 하나씩 하나씩, 곁으로 보내 줄 테니까.”
솔직히 이 말을 바로 옆에서 들었더라면 조금은 괜찮지 않았을까도 생각해봤다. 하지만, 이 말을 내 입으로 직접 할 수밖에 없는 사실이 너무나도 고통스러웠다. 그래. 이건 아무래도 꿈인게 분명해. 이 꿈에서 깨어나면, 깰 수만 있다면......
하지만, 언니의 가슴 사이에 박힌, 내 몸에 연결된 칼날에서 느껴지는 떨림은 너무나도 생생했다.
“로...빈...출구는...바로...저 앞...이에요...”
눈앞의 남자, 로빈에게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는 언니. 그리고, 그게 언니의 마지막 말이었다.
“불쌍해라...”
언니의 가슴을 관통한 칼날에 힘이 들어가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순식간에 사라졌다.
핏줄기를 뿜으면서, 언니는 바닥에 힘없이 쓰러졌다.
“몰리도!!!!”
!
로빈이라는 남자의 분노에 찬 외침. 그 거친 목소리가, 어둠 속에 묻혀있던 나의 정신을 일깨웠다.
웃음이 멈추질 않았다. 싸늘하게 주검이 되어 발 밑에 있는 마흐리안의 시체. 드디어 자신의 손으로 ‘실패작’을 처치할 수 있다는 기쁨에 몰리도는 몸을 떨었다.
‘후후... 순서가 조금 바뀌긴 했지만 상관없어. 메인디쉬를 끝냈으니, 조금씩 갉아먹히는 너희들을 디저트로 삼을 차례야. 하지만 그 전에...’
이전부터 그녀는 눈치채고 있었다. 마이나. 완벽하게 지배해놨다고 생각한 이 녀석이 다시 건방지게 기어오르려 하고 있다.
‘뭐, 마침 이 녀석도 날 보고 싶어하는 것 같고. 저 녀석들도 내 병력을 상대하느라 꽤 시간이 걸릴 것 같으니. 잠깐의 유흥 정도로 놀아주고 오도록 할까?’
자신이 피해를 받지 않을 정도의 위치에 몸을 숨기고, 몰리도는 마이나의 영혼이 기다리고 있는 의식의 바다로 들어갔다.
짝!
왼쪽 뺨이 얼얼했다. 고개를 돌려보니, 녀석이 잔뜩 화를 내며 서 있는 모습이 보인다. 이미 눈가가 불어있는 것으로 봐선 꽤나 오래전부터 울고 있는 듯했다.
“!!!!”
탓!
다시 한번 내 뺨을 때리려 손을 올리는 녀석의 손을 나는 너무나도 허무하게 잡아챘다. 분노에 휩싸여 있는 적을 상대하는 것은 어린아이의 손목을 비트는 것보다도 쉬운 법. 그리고, 실제로 난 그렇게 해줬다.
“아악!”
“왜 그래, 마이나? 너답지 않게. 그렇게 화내면 건강에 좋지 않다고?”
말은 그렇게 했지만, 속은 전혀 아니다. 더 화를 내줬으면 했다. 좀 더 나를 즐겁게 해주길 바랐다. 그래야, 잡아먹는 보람이 있으니까.
“내가 묻고 싶어. 왜 날 속였어? 왜! 왜 언니를 죽인 거야!”
손목이 꺾인 채로도 그렇게까지 저항할 수 있다니. 정말... 그 언니의 그 동생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뭐, 아닐 수도 있겠지만. 어디, 그럼 이쯤에서 조금 조미료를 쳐보도록 할까?
“후후. 실은 말야, 마이나? 그 사람, 실은...”
“뭐? 언니로 위장한 테러리스트라고 할 셈이야? 아니면 오류라도 일어났다고? 웃기지도 않은 소리 집어쳐. 난 절대 널 믿지 않으니까!”
알아서 거미줄 위를 굴러다니다니. 난 너무나도 기쁜 나머지 소리라도 지르고 싶을 지경이었다. 하지만 겨우 그런 충동을 억누르고, 극한의 한 방울까지 뽑아내기 위해 녀석을 밑바닥까지 떨어트릴 준비를 했다.
“왜...? 이번에도 그냥 믿어. 그게 네가 제일 잘 하는거 아냐? 의심하는 척. 못 믿는 척은 혼자서 다 해놓고! 뻔뻔하게,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믿는 거. 이번 일도 그것들 중 하나일 뿐이야.”
녀석의 눈동자가 급격하게 흔들렸다. 자주 보여줬던 눈이다. 화는 나는데 뭐라고 반박할 수 없을 때 취하는 행동. 동시에 이건, 먹잇감이 구석에 몰렸다는 뜻이기도 하다.
나는 슬슬 무력해지기 시작한 녀석을 줄에 걸어버리기로 했다.
쿵!
“히, 히익!”
큰 발을 활용해서, 녀석을 몰아붙였다. 이미 심리적으로 궁지에 몰려버린 녀석에겐 더없이 효과적이었다. 잔뜩 웅크린 채 오들오들 떨고 있는 꼴을 보고 있자니 그만 먹어치우고 싶은 마음이 한가득이었지만, 그만두기로 했다. 슬슬 움직일 시간이다. 대신, 나중에 천천히 음미할 수 있도록... 고치 속에 먹이를 넣어두도록 할까?
“아~ 그러고 보니 하나 잊은게 있었네?”
주저앉아 고개를 떨구고 있는 녀석을 내버려두고 가다가 걸음을 멈춘다. 그리고 녀석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일부러 제3자에게 지나가듯이 얘기한다.
“상자 안에 들어있던 사진 말이야. 거기에 왜... 사람 얼굴 하나가 지워져 있었을까?”
“!!”
굳이 뒤돌아보지 않아도 느낄 수 있다. 나의 말에 녀석은 아주 크게 동요하고 있다. 당연하겠지. 왜냐하면 그건 너의 역린이고 무엇보다...
“혹시 말야... 너란 존재는, 어쩌면 처음부터 이 세상에 없었던 게 아닐까?”
내가 너에게 남아있는 마흐리안의 기억을 토대로... 멋대로 지어낸 얘기니까. 후후.
힐 소리가 경쾌하게 들려온다. 모든게 내 계획대로다. 언니도 죽여버렸고, 저 같잖은 반쪽짜리 녀석도 굴복시켰다. 이제 녀석이 두 번 다시 ‘나의 몸’으로 바깥을 볼 일은 없을 것이다.
언젠가 아버님께서 내게 말씀하신 적이 있다. 나의 힘의 원천... 그건 바로, 완벽함에 대한 끝없는 갈망이라고. 어쩌면 그건 나를 만들었을 때의 반쪽짜리 재료가 남긴 유산이 아닐까도 생각해봤다. 아무래도 이번 일로 그것마저 증명해낸 듯하다.
이제 날 막을 것은 아무것도 없다.
지금의 난, 비로소 완벽해졌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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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이렇게 마무리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읽어주신 분들, 정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결국 뭐였을까요?
이 소설은 마흐리안의 여동생 마이나의 이야기로 시작해, 몰리도 포거트의 이야기로 끝납니다.
그리고 마이나의 1인칭 시점으로 시작해, 몰리도의 1인칭으로 끝납니다.
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건 결국 몰리도 포거트의 팬픽이었습니다 ㅎㅎ
사실 거울단계의 마무리가 각성한 M4의 여신강림으로 마무리되었기 때문에
이 소설에서처럼 완벽선언을 한 몰리도가 다음 이벤트에서 당장 활약할 가능성이 그렇게 높아보이진 않아보입니다 ㅎㅎ;;
다만 제 개인적으로 몰리도 포거트라는 캐릭터를 고찰했을 때 아무래도 각본진은 이런 생각으로 만들지 않았을까 싶은 마음에
이런 스토리를 구성했고, 마무리까지 구성할 수 있었습니다.
이번 이벤트를 통해 마흐리안을 죽인 몰리도를 거의 증오 수준으로 싫어하는 분들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 듯 한데,
사실 전 이런 매력적인 빌런 캐릭터들을 정말 좋아합니다!
단순히 주인공에게 명분을 주고 빛나게 해주는 것을 넘어서서 그 이상의 매력을 주는 것 같아서...
그래서 마지막 몰리도 1인칭 부분을 쓸 때 어떻게 하면 마이나를 더 괴롭게 할 수 있을지 잠시 빙의해서 고민하기도 했습니다 ㅎㅎ...
.... 이상하게 생각하진 마시고 ㅠㅠ
거울단계 후기나 제 개인적인 생각 등 더 자세한 이야기에 대해서는 아마 내일 올리게 될 것 같습니다.
막상 또 지금 글을 쓰려니 머릿속이 복잡해지네요 ㅠㅠ
토요일 잘 보내시고, 내일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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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전하던 엑스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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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도라, 영통 끄세요. | 21.03.06 15:56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