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MP45
UMP45는 이 11구역 지휘관이라는 사람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손톱만큼도.
그녀는 누군가에게서 동정 받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특히나 인간에게서 동정 받는 건 더더욱 좋아하지 않았다. 그게 증오스러운 그리폰의 인간이라면 두말할 필요조차도 없을 정도로 좋아하지 않았다. 늘 그런 식이었다. 더러운 일도 참 많이 당했다. 외모에 혹해서, 능력에 혹해서 동정하는 척 그녀나 그녀의 소대를 이용하거나 손에 넣으려는 자들은 한둘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은 언제나 그녀의 총탄 아래에서 끝을 맺었다.
“인형 하나 구하자고 수송기를 돌렸다가 주피터에 격추나 당하고, 겨우 구한 인형은 다리ㅂㅅ이 되어서 도움도 안 되고, 참 기분이 더러우시겠어요, 지휘관님?”
“…….”
그녀는 빙글빙글 웃는 낯으로 지휘관의 등을 향해 매도의 말을 퍼부었다. 목소리는 부드러웠지만, 거기에는 뿌리 깊은 독기가 서려 있었다. 하지만 지휘관은 묵묵히 눈을 헤치며 그녀가 따라올 길을 만들 뿐이었다. 그런 그를 보며 UMP45는 다시 이를 빠득 갈았다.
…사고이자, 재앙이었다.
404소대가 지역을 이탈하기 직전, 철혈 잔존 병력의 습격이 있었다. 불행히도 탄약은 딱 인형 하나 분이 남아 있었고, UMP45는 나머지 세 명을 헬기에 (강제로) 태운 뒤 스스로 희생을 자처했다. 멋들어진 가족애 따위가 아니라, 그게 제일 합리적인 방법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무장도 제일 가벼웠고 철혈과의 싸움을 장기전으로 이끌 수 있는 연막탄도 보유하고 있었다. 단지…단지 예상 외로 철혈의 잔존 병력의 저항이 거셌을 뿐이었다. 전투 후 그녀는 등과 다리에 치명상을 입고 쓰러졌다. 더미는 모조리 파괴되었다. 다리는 가누기 힘들 정도로 망가졌고, 등 쪽의 상처는 하필 통신이나 좌표 시스템을 건드린 모양인지 이후부터 통신이 먹통이었다.
그리고 그 절망적인 상황에서 그가 나타났다. 11구역 지휘관이. 그는 그녀를 구했고, 둘은 조난을 당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참을 수 없는 굴욕이었다.
UMP45는 이를 빠득 갈며 소리쳤다.
“난 인형이야, 그것도 당신네 부대 소속도 아닌 그냥 인형! 당신이 구하지 않았더라도 어차피 나중에 마인드맵 복구만 하면 됐다고! 대체 왜 나를 구하려고 하다가 이딴 상황에 발을 들이미는 거야? 아하, 이번에 그리폰에서 신기술을 개발해서 인간도 마인드맵 복구를 받을 수 있나봐? 어머나 신기해라!”
마인드맵 복구는 거짓말이었다. 그녀는 마인드맵 복구를 할 수 없었으니까. 그래도 이 지휘관 앞에서는 허세를 부렸다. 이건 그녀의 자존심이었다. 오래 전, 자신의 자매였던 UMP40을 제 손으로 죽인 이후부터 그녀는 인간에 대해 뿌리 깊은 증오심과 불신감을 가지고 살아왔다. 그런 그녀에게 동정심, 그것도 그리폰의 인간으로부터 얻는 동정심은 정말 참을 수 없는 모욕이었다. 지금 그녀는 정말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었다. 통신도 못하고 탐지도 못했다. 그렇다고 전투가 가능하냐 하면 또 그것도 아니었다. 그것이 그녀를 더 비참하게 했다.
"……."
도발이 먹힌 건지 어쨌는지는 모르겠으나 지휘관은 걸음을 멈췄다. 그는 등 뒤로 힐끗 UMP45를 보더니 허리춤에서 뭔가를 뒤적이기 시작했다. 권총이라도 뽑아서 머리라도 날리려고 저러나, UMP45는 그런 실없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녀의 예상은 빗나갔다. 돌아선 그의 손에 들린 건, 초코렛 조각과 수통이었다.
“…뭐야?”
“배고프다는 거 아니었나?” 지휘관이 무뚝뚝하게 말했다. "조이(Joy)도 배가 고프면 날카롭게 굴었거든."
"조이가 누군데?"
"내가 전에 기르던 개일세."
"야! 내가 니 개랑 똑같은 줄 알아?"
졸지에 개 취급을 받은 UMP45가 빽 소리를 질렀다. 무척이나 날카로운 소리였지만, 주변의 눈 덕분인지 지휘관의 표정은 변함이 없었다. UMP45는 그의 얼굴을 보며 차라리 조정이 덜 된 전술인형도 저것보단 감정 표현을 잘 하겠다고 속으로 투덜거렸다.
"다리까지 다쳤으니 영양 보충이 무엇보다 중요하네. 그만 고집부리고 이만 쉬지."
"난 전술인형이야, 지휘관. 인간하고 똑같이 취급하지 말해주겠어?"
"그럼 받아두기라도 하게. 먹을 게 필요하긴 할 테니."
"……."
UMP45는 수통과 초코렛 조각을 받아들고 말없이 입을 삐죽였다. 아무리 그래도 저렇게 이상할 정도로 저자세로 나오는 사람을 상대로 계속 짜증만 부리기도 뭐했으니까. 지휘관은 다시 등을 돌렸고, 그녀는 잠시 망설이다 목을 축였다. 그리고 잠시 말을 골랐다.
“지휘관?”
그는 그녀를 돌아봤다. 그제야, UMP45는 처음으로 그의 얼굴을 찬찬히 훑어볼 수 있었다.
선이 굵은 남자였다.
무뚝뚝하게 앙다문 입술, 그동안 겪은 세월이 녹록치 않았다는 것을 말해주는 듯한 거친 피부와 흉터들, 그리고 무엇보다 깊디깊은 그의 황갈색 눈동자가 보였다. 얼굴은, 솔직히 말해 그녀의 취향도 아니었고 그리 잘생겼다고 볼 수도 없었다. 군복만 입고 있지 않았다면 그냥 평범한 40대 남성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외모였다. 하지만 이런 절박한 상황 속에서도 침착함을 잃지 않고 있는 그의 모습은, 확실히 일선에서 가장 치열한 전투를 치루고 있는 지휘관의 모습다웠다.
“왜 그러나?”
“…아무 것도 아냐. 헬리포트까진 오늘 내로 도착하는 거야?”
“아니, 아마 내일까지는 걸어야 할 것 같네. 운이 좋아서 날 찾고 있는 인형들과 만난다면 귀환이 조금 더 빨라지겠지.”
“그래, 그럼 나도 길 가면서 오늘 쉴만한 곳을 찾아볼게.”
“그래준다면야, 나야 고맙지.”
지휘관은 그녀가 의외로 고분고분하게 나오자 조금 갸우뚱하며 다시 걷기 시작했다. UMP45는 그런 지휘관의 등을 보며,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수통의 물을 마시고선 움직이기 시작했다.
부지런히 움직여야 했다. 일단 살아야 불평도 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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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트 하나가 더 있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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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부분 생각 안 나서 그냥 스킵했습니다. 움45 캐릭터성도 뭔가 맘에 안 들게 나왔고 그래서요. 원래 쓰던 거 다시 쓰기 전에 손풀기로 써봤는데 영 안 나왔네요. | 18.06.15 03:3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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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안 좋은 성격일 수록 좋아질 방향 밖에 안 남는 법이죠 안 좋은 상황도 이제부터 좋아지면 되는 겁니다. | 18.06.15 03:49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