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모시에라 전투, 1837년
표트르 미할로브스키 / Piotr Michałowski (1800-1855)
저번 글에서는 1월 봉기의 진압과 폴란드 입헌군주국의 멸망에 대한 이야기를 했는데 이번에는 시간을 1808년으로 돌려보도록 한다
1807년 프랑스와 프로이센 사이에 맺은 틸지트 조약으로 프로이센이 폴란드 삼국 분할 당시 차지한 영토를 프랑스의 위성국인 바르샤바 공국으로 독립시킨다
그리고 나폴레옹은 동유럽 방면이 정리된 후 영국의 견제를 위한 대륙 봉쇄령에 참여하지 않는 포르투갈을 정리하기 위해 이베리아 반도로 출병하다
포르투갈을 점령하는 일은 크게 어렵지 않았지만 문제는 에스파냐에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하자 크게 반기가 일어났던 점이다
바일렌에서 에스파냐군에게 대패하여 꼭지가 돌아버린 나폴레옹은 자신의 중기병들과 바르샤바 공국의 경기병을 이끌고 마드리드로 진격한다
마드리드로 진격하는 길까지 몇번의 전투가 있었지만 승리를 반하며 마드리드로 향했고 그 중간에 하나의 거점, 소모시에라가 있었다.
부르고스에서 마드리드까지 곧바로 진격하기 위해서는 시에라데과다르라마 산맥의 일부인 소모시에라 언덕을 거치지 않을 수 없었는데
경사는 완만하나 최고 높이가 1400미터에 정상 인근의 길목이 좁아 에스파냐군이 방어진을 치고 있다면 큰 손실이 생길것이 자명한 일이었다
그 사실을 에스파냐군의 지휘관이었던 베니토 데 산 후안도 잘 알고 있었고 최대한 군사와 화포를 모아 소모시에라에서 방어를 시도한다
에스파냐군은 긴 길을 따라 열 여섯대의 화포를 네 지점으로 나누어 배치하였으며 화포를 지원하기 위해 병사를 주변에 주둔시킨다
다만 길목이 너무나도 좁았기 때문에 주력은 능선 너머에 배치하여 예비대로 지원하게 할 수 있게 하였다
나폴레옹의 중기병대는 산길이 좁아지기 직전까지의 적병을 섬멸하고 나서 돌파를 시도하였으나 큰 피해를 입고 퇴각하였으며
보병을 진격시켜 화력이 집중되는 일을 막았으며, 곧 폴란드 기병을 불러 4열 종대로 돌격하게끔 명령한다. 당시 폴란드의 기병은 우리가 아는 그 경기병이었는데
좁은 길목에 배치된 대포와 종대로 돌격하는 폴란드 기병은 큰 피해를 입게 된다. 쉽게 말해서 사람을 일렬로 쭉 세워놓고 거기다가 대포알을 쏜 셈이 된다
하지만 기병들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전진하여 첫 포대의 포병들을 소시지로 만들어 점령했으나 포대간 거리는 사정거리와 엇비슷하게 배치했기 때문에
멈춰있다가는 피해가 더 커질 것이라고 판단하여 마지막 포대까지 점령하게 된다. 하지만 능선 너머에 배치된 예비대가 정상의 포대로 몰려들자 퇴각했고
에스파냐군의 화포를 운용할 병력은 모두 사망하여 큰 위협이 사라진 나폴레옹은 쉬이 자신의 정예 병력으로 소모시에라 전투에서 승리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