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폴로니아)-1863년, 1864년
얀 알로이지 마테이코 / Jan Alojzy Matejko(1838-1893) 작
저번 글에서 폴란드-리투아니아 연합과 모스크바 공국의 전투(1514년)와 폴란드 1차 분할(1773년)까지의 이야기를 했다
이번 그림은 화가의 생애와 가까워진 1863년, 폴란드인의 근성을 보여준 사건중 하나였던 폴란드 1월 봉기를 다룬 그림이다
세 열강의 폴란드 1차 분할이 있고 나서도 몇차례의 충돌 끝에 두번의 분할이 더 있었고
1795년 3차 분할이 있고 나서는 폴란드-리투아니아 연합은 역사의 뒤로 사라지게 되었으며 몇차례의 봉기가 있었지만 전부 실패하고 만다
19세기가 되면 나폴레옹이라는 혜성이 나타나 전 유럽을 쥐어패고 황제가 되어 여기저기 시비를 걸고 다녔는데 그 과정중 하나가 바르샤바 공국의 탄생이다
위대한 대프랑스 동맹이 탈탈 털리기 시작하자 폴란드인에게 희망이 찾아오기 시작하는데
전 폴란드 영토였던 프로이센 점령지에서 폭동을 일으키기 시작하고 버티지 못한 프로이센은 1807년 틸지트 조약을 맺는것으로 종전하게 된다
조약의 내용은 그리 길지 않지만 걔중에 하나가 폴란드 분할 당시 프로이센이 차지했던 영토를 독립시켜 프랑스의 괴뢰국인 바르샤바 공국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나폴레옹의 전성기인 오스트리아 전쟁을 거치고 나서는 전 폴란드 영토를 어느정도 수복할 수 있었고 어느정도 나라꼴이 생기기 시작한다
하지만 폴란드 영토를 가장 많이 차지했던 러시아에게 이는 명백한 견제였고 프랑스에게 반기를 들기 시작한다
나폴레옹은 그에 답해 1812년 러시아 원정을 "폴란드 전쟁"이라 부르며 10만명의 이르는 폴란드 병사와 함께 나섰으나
뭐 결국 러시아는 건드는게 아니라는 역사의 증명을 하나 남기고 참패하게 된다, 어허 폴란드야 열강에게 또 속냐!
1813년 2월 러시아 원정에서 거진 십만명의 장정이 끌려가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은 바르샤바 공국은 결국 바르샤바를 러시아군에게 점령당하고
여름이 오기 전에 공국의 영토를 대부분 상실하게 된다. 그 이후 1814-1815년 나폴레옹의 똥을 치우기 위한 빈 회의에서 폴란드 영토는 다시 한번 쪼개지고
러시아 공국이 차지한 부분은 폴란드 입헌왕국, 세 나라가 감시하는 크라쿠프 자유시, 프로이센의 포젠(포즈난) 대공국으로 나뉘게 된다
그리고 폴란드 입헌왕국을 제외하면 1830년 폴란드의 대대적 봉기인 11월의 밤(Noc listopadowa) 사건으로 각각의 국가에 완전히 합병되는 형태로 끝난다
하지만 독립에 대한 근성은 세계에서 알아주는 폴란드인은 1853년 크림 전쟁으로 러시아의 국력이 소모되는 것으로 희망을 보았으며
비교적 젊은 청년층에서는 러시아 제국의 군대에 징집되어 원정을 나가야 하는 것에 불만을 가져 소규모 저항세력이 생겨나기 시작하였다
결국 폴란드는 1863년 좌파 세력을 중심으로 폴란드 국민정부를 세우고 1월 봉기를 일으켰다, 다만 이번에는 정규군보다는 개릴라전에 치중할 수 밖에 없었다
기대했던 열강의 지원은 러시아의 심기를 건들지 않으려는 조심스러운 태도에 꺾였으며 비스마르크는 한술 더 떠서 러시아와 알벤스레벤 조약을 맺어
국경을 넘어온 폴란드 반군을 추격할 수 있고 서로 협력한다고까지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폴란드 저항군은 게릴라전을 멈추지 않았으며
1864년까지 천번이 넘는 크고 작은 전투를 일으키며 저항지만 십만이 넘는 러시아 대군의 추격을 뿌리칠 수 없었고
1865년 러시아에게 패배하여 폴란드 입헌군주국은 1867년 러시아의 프리비슬린스키 크라이로 흡수당하게 된다
Si Deus Nobiscum quis contra nos
만일 하느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그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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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결국 폴란드 러시아에 뺏기네 허;; | 18.03.24 12:25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