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탄- 폴란드의 몰락, 1866년
얀 알로이지 마테이코 / Jan Alojzy Matejko(1838-1893) 작
개판이다
그림 오른쪽 하단의 남자가 레이탄으로 의회에서 결정된 폴란드 분할에 대하여 항의를 하고 있다.
그 외의 인물로는 친러파중 하나였고 후일 2차 폴란드 분할의 주역중 하나인 스타니스와프 슈체스니 포토츠키(당시 그는 겨우 스물 한살이었고 세임에 없었다)
그리고 아담 포닌스키, 프란치셰크 크사베리 브라니츠키등이 보인다
저번 폴란드 명화를 다룬 글에서 스탄치크와 폴란드-리투아니아 연합에 대한 이야기를 했는데
스탄치크가 마지막으로 고용된 왕인 폴란드의 지그문트 2세는 자식이 없었기 때문에 그를 마지막으로 야기에우워 왕조가 끝나고
지역 군주들의 의회인 세임(seym)은 국왕을 의회에서 선출하는 방식으로 변경한 뒤 앙리 3세를 왕으로 선출한다
그 이후 헨리크 조항이 어쩌고저쩌고 하는 이야기는 너무 길어지니까 대강대강 패스하고 시간을 약 200년정도 뒤로 밀어 1772년으로 이동한다
당시 폴란드는 밥먹듯 일어나는 반란과 스타니스와프 지지파와 아우구스트 지지파가 충돌하는 왕위 계승 전쟁으로 개판이 난 상태였다
승리한 것은 내전에서 러시아군을 등에 업은 아우구스트 2세였으며 그가 사망하고 나서 즉위한 스타니스와프 2세는
급진적인 개혁정책을 내세웠으나 이에 반대하며 러시아의 개입에 질린 귀족들은 바르 동맹을 구성하여 국왕을 납치하고 저항하였고
수보로프가 이끄는 러시아군에게 탈탈 털려버린 후 2차대전보다 약 200년 빠른 시기 최초로 시베리아로 향하게 되는 폴란드인 집단이 된다.
이런 상황이 되자 예카테리나 2세는 동유럽의 호구가 된 폴란드를 차지하려고 들었으며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2세는
러시아가 유럽에 미치는 영향력을 경계하여 마리아 테레지아와 요제프 2세를 불러 1차 폴란드 분할 조항에 대해 제의했고, 곧 모두가 찬성했다
같은 해 8월 삼국은 약속대로 세 방향에서 폴란드를 침공했으며 무력한 폴란드군은 유의미한 저항 없이 상당한 영토를 내주게 된다
1773 년 4월 21일 삼국이 공식적으로 영토를 내놓지 않으면 죄다 뽀사먹는다고 협박하는 상황에서 세임은 바르샤바에서 중요한 결정을 내리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그림의 상황인 폴란드 분할 조항에 찬성하는 것이다. 당시 세임은 뇌물을 받아먹었거나, 쫄았거나, 혹은 둘 다인 사람이 대다수였는데
유일하게 결사적으로 저항한 의원이 타데우슈 레이탄(Tadeusz Reytan)이었다. 하지만 곧 조약이 채결되고 레이탄은 7년 뒤 자결한다.
(IP보기클릭)117.111.***.***
(IP보기클릭)112.173.***.***
폴란드는 우주로 갈 수 없다 | 18.03.24 03:02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