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량 징발대, 1967년
나세드킨 아나톨리 레오니도비치 / Наседкин Анатолий Леонидович (1924-1994) 작
"1920년에 나는 특수부대에 배속되었어요. 그리고 곡물을 징발하러 떠났어요. 1급의 중요성을 가진 일이었지요. 나는 그것을 늘 이해하고 있었어요. 그리고 물론 탐보프 현에 있는 마을 바실리세보에서 곡물을 찾았어요. (중략) 미리 지령이 내려져 있었어요. 곡물을 은닉한 자들을 본보기로 총살할 것."
- 소네치카. 류드밀라 울리츠카야 作
평소처럼 소련 명화를 찾아 돌아다니는 와중에 처음 보는 프로도트랴드 / Продотряд 라는 단어가 나와서 뭔가 했더니 대충 뒤져보니 식량(징발) 부대(продовольственный отряд)의 약자더라.
맨 위의 그림을 보면 아마도 밀이 실려있을 마차 두 대가 거친 도로를 통행하던 도중 총기로 무장한 불한당의 습격을 받아 약탈당할 위기에 빠지고, 볼셰비키 병사는 불한당들을 노려보며 한 손으로는 마구를, 다른 한 손으로는 식량 포대를 잡고 몸으로 식량을 지키려 한다. 뽈갱이다운, 영웅적인 병사를 그린 그림이다.
실제로는 이런 모습이었다 하니 고증도 확실한 편이고
아무튼, 정확히 이들이 누구인가 하면 러시아 내전 당시인 1918년 즈음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당시 볼셰비키는 백군이라는 주적 외에도 고질적인 식량 부족, 굶주림이라는 다른 적에게 시달리고 있었고 이 문제에 대한 해결법은 생각 외로 간단했다, 식량이 충분한 농민들과 부담을 나누는 것. 여기서 주요 대상이 된 것은 당장 먹을 식량 이상을 축적하고 있는 부농층 쿨락(кула́к)으로 대부분의 식량 징발이 이들에게서 이루어졌다. 당장 한 계절을 넘기기도 힘든 가난한 농가도 징발 대상으로 선택되었으며 선전용 자료와는 다르게 마을의 농부들이 식량을 은닉했다는 이유로 떼죽임당하는 일도 있었다.
물론 무장한 병사들로 이루어진 보급부대는 대부분의 경우 "평화적인" 수단으로 잉여 식량을 징발했는데 만약 농민이 재산을 숨기거나 내주기를 거부한다면 재산을 몰수당하고 감옥으로 향할 수 있었으며 최악의 경우 주변의 본보기로 일가친척 전부가 살해당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돈강과 츠나강 유역의 지나친 징발로 탐보프 지역에서 반란이 일어나기도 한다. 식량 징발은 1921년 신경제정책(НЭП)으로 인하여 나아진 식량 사정으로 인하여 중지되었지만, 이 시기에 미운털이 단단히 박힌 쿨라크는 몇 년 뒤 아주 탈탈 털리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