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저 아래에 있는 게시물 전 트롤러였던 56611336이자 지금은 루리웹 1650988431의 게시글을 읽고 어이가 털려서 쓰는 글입니다.
솔직히 본문이 삭제되어서 이 사람의 정확한 주장이 무엇인지 글을 읽으면서 제대로 반박을 할 수는 없습니다만 어차피 글을 읽어도 논지가 거기서 거기이므로 그냥 제 생각 속에 남은 저분의 논지를 중심으로 글을 전개해나가겠습니다.
일단 루리웹 1650988431의 논지는 간략하게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강우규가 일본천황을 위해 사이토마코토를 암살했다.
2. 그 근거는 판결문이다. 거기에 모든 근거가 있다. 무슨 원피스냐
3. 자 봐라 판결문에 일본 천황폐하의 성덕을 칭송한다는 말이 나오지 않느냐!! 내 말이 거짓말이냐!! 이건 1차 근거다. 그러므로 이걸 반박하는 사람은 모두 사이비!!
정상적인 분이시라면 1번 - 2번 - 3번으로의 논지 전개가 붕 떠있고,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하시겠지만 이 트롤러는 아니죠.
그러므로 좀 철저하게 박살내야합니다.
근데 논지를 본격적으로 전개하기 이전에 강우규가 정확히 어떤 사람인지 알 필요성이 있습니다.
도대체 그는 어떤 사람이며, 무슨 인생을 살았으며, 진짜 독립운동가였을까요?
(1) 강우규의 인생(1910년 이전)
강우규는 1855년 7월 14일(음 6월 1일) 평안남도 덕천군 무릉면 제남리에서 가난한 농가의 4남매 가운데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본관은 진주, 호는 왈우(曰愚)
이 덕천군은 평양에서 약 150리 북방에 위치한 곳으로 산골이었다고 하네요. 평양 시내로 갈 수 있는 길이 고갯길 하나밖에 없다고 했으니까요.
이 분의 어린 시절에 대해서는 별로 알려진 바가 없는데 부모님을 일찍 여의시고 남매 중 이후 누님의 집에서 기거했으며 10세 때 전통적인 한문을 공부하였으며 어렸을 때에 한방의술을 좀 공부해서 한의업에 종사하였다고 합니다.
30대 초반에 함경남도 홍원으로 갑자기 이사를 했는데 이 이유는 명백히 밝혀져 있지는 않으나 학계의 연구결과에 의하면 이 시절 때 모종의 애국운동에 관여하여 신변이 위태로워졌다고 합니다.
근데 이사갈 때 허둥지둥 이사를 오지는 않고 거금을 가지고서 홍원으로 갔다고 합니다. 이후 이 밑천을 바탕으로 홍원에서 잡화상(물감, 담뱃대, 면사, 포목등을 팜)을 경영하였고 장사수단이 좋았는지 여기서도 상당한 부를 쌓았습니다.
여기서 사회주의계열 독립운동가인 이동휘를 만나 국권회복운동과 기독교 선교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는 강우규의 손녀인 강영재의 증언이 뒷받침이 되는데
'그(이동휘)가 홍원에 나타나면 온 읍내가 잔치 집처럼 들떠서 그를 접대하였다. 읍내 유지들은 제가끔 자기 집에다 음식을 마련해놓고 그를 데려다가 그 지방 풍습으로 <때를 한다>고 하여 한끼식 식사대접을 하였다. 우리집에서도 몇 차례 이동휘 씨를 모셨다.'
라고 합니다. 즉 강우규와 독립운동가였던 이동휘씨의 관계가 서로 친밀하다는 입증이 되면서 강우규의 사상, 행동이 친일파가 아닌 독립운동가에 가깝다는 증거이기도 하지요. 벌써부터 논지 깨지고 있구나 으이구
이동휘씨는 독립운동가이자 기독교 장로교 사상가였는데 이때부터 강우규씨는 기독교 장로교에 대해 믿기 시작하였으며 민족의식을 고취시기기 위해 자기 사비를 털어 교회, 학교도 설립하게 되었지요.
대표적인 구한말 기독교를 통한 국권회복을 노린 독립운동가의 기질이 이때부터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2) 강우규의 인생(1910년 이후)
이후 1910년 일제에 의하여 조선이 점령되자 매우 크게 분개했습니다. 홍원에서 산지도 약 20년, 재산도 상당히 많이 쌓은 거부이며, 그냥 홍원에서 편하게 살면 개인으로써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겠지만 국권 회복, 대한 독립을 위해 망명을 결심하게 됩니다.
북만주와 길림성 동부, 러시아 연해주를 순방하다가 1915년 하바로보스크로 있다가 1917년 북만주 길림성 요하현으로 이주하는데 이렇게 정신없이 왔다갔다한 이유는 요하현이 블라디 보스크, 하바로 보스크에서의 독립운동단체들과 내왕하기가 용이하고 서로 연락을 취하기 쉬운 거점을 확보하기 위해 이렇게 손수 발로 뛰신 것 같습니다.
1917년 봄 사립 광동학교를 세워서 교장의 직위로 조선인의 교육에 전념하였고, 배일사상을 고취시켰으며 교단에 설 때마다 일본인의 야만적인 침략주의를 규탄하고 가끔 학교 강당에 동네사람들을 모아 놓고 민족의식을 고취시키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독립운동을 전개하는데 머지않아 대한 독립운동 역사상 큰 일이 터지고 말지요. 바로 1919년 ~ 1920년에 일어난 3.1 운동입니다.
(3) 강우규의 일생(3.1 운동부터 순국 직전까지)
1919년 국내에서 3.1운동이 전개되자 강우규는 신홍동에서 약 400 ~ 500명으로 직접 모아서 만세운동을 주도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해 4월 조선의 정세를 알아보기 위해 블라디 보스크로 향하였는데 바로 이 당시 여기서 노인동맹단이 결성되었습니다. 그리고 강우규는 자연스럽게 노인동맹단에 가담하게 되고요.
노인동맹단에서 활약을 여러가지로 하게 되나 다 쓰면 너무 길어지므로 생략하고 이렇게 활동을 계속해서 하는 중 당시 조선총독이었던 하세가와가 스스로 사임하였다는 뜻밖에 소식을 듣게됩니다.
이 소식을 강우규는 하세가와가 3.1운동을 통하여 조선 민중의 무서운 힘을 자각하여서 스스로 사임하게 되었다고 해석하였는데 이후 새 총독인 사이토 마코토가 부임하게 되자 크게 분노하게 됩니다. 이후 사이토 마코토의 처단을 스스로 결심하게 되지요.
1919년 6월 말경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만난 러시아 사람으로부터 50루블을 지불하고 수입폭탄을 구입한 다음에 몰래 휴대하여(폭탄을 헝겊 속에 싸서 꿰맨 뒤 한 끝을 허리에 매고 두루마기 밑 옷 속에 찼습니다.) 입국하게 됩니다.
8월 초부터 서울에 머물던 강우규는, 신문 보도를 통해 8월 12일 사이토 마코토가 신임 총독에 임명되어 9월 2일 부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 후 신문에 난 사이토의 사진을 오려 가지고 다니면서 그의 얼굴을 익혔고, 사이토 부임 전인 8월 28일부터 남대문역 부근의 여인숙으로 거처를 옮겨 매일같이 역전에 나아가 지형지물을 조사하면서 투탄 위치를 탐색하는 등 주도면밀 하게 거사를 준비하였습니다.
거사 당일인 9월 2일, 남대문 밖 중국음식점에서 간단히 식사를 한 강우규는 오후 5시 부임식을 마치고 막 관저로 떠나는 사이토의 마차를 향해 폭탄을 투척하나 빗나가 뒷 차를 맞히면서 거사에 실패하게 됩니다.
이렇게 실패하게 되자 일단은 그 자리에서 벗어난 강우규는 다시금 거사를 진행하려고 하나 9월 17일 자신의 하숙집에서 순사에게 붙잡히게 되면서 일이 무산되었으며 1920년 경성지방법원 두번째 공판에서 사형을 선고받게 됩니다.
고등법원에 상고하였으나 이는 받아들이지 못했으며 1920년 5월 27일 사형 확정, 11월 29일 서대문 형무소 교수대에서 향년 66세의 일기로 순국하게 됩니다.
여기까지 간략하게 강우규의 일생을 정리하였는데 보시다싶이 친일파의 행적이 두드러지나요? 아니면 독립운동가로서의 행적이 두드러지나요?
(4) 루리웹 1650의 궤변과 그에 대한 논파.
루리웹 1650의 의견은 아마 다음과 같습니다.
'내가 공판 기록을 보았는데 여기서 강우규는 일본 천황 폐하의 은덕을 칭송하고, 일본 천황 폐하를 위해 사이토 마코토를 처단하려고 했다더라. 자 봐라 이놈이 진짜 독립운동가냐?'
아마 이게 논지의 전부인데, 공판기록 하나 가지고 그 사람의 일생을 운운하는 것도 웃기거니와 저 공판 기록도 자기 멋대로 해석한 엉터리 해석에 불과하지요.
일단 논지의 주 전개가 된 공판 기록을 살펴봅시다.
'먼저 나는 일본 천황 폐하의 성덕을 좀 말하고자 하오. 작년 6월에 세계가 평화된 이후에 나는 신문에서 이러한 말을 읽어보았소. 일본 천황께서는 세계평화와 같이 일반 신민은 인도와 정의로써 모든일에 대하여 더구나 동양평화를 유지하기 위하여는 어디까지던지 노력하라하신 칙명을 읽어본 후 나는 일본 천황폐하의 성덕에 감명하였소.'
겉으로 보기에는 '아니 일본천황폐하라니? 이 양반이 갑자기 머리가 돌으셨나? 뒤에서 호박씨 까고 있던 양반 아닌가?'하고 생각하실지도 모르지만 사실 그 당시의 주변 분위기를 주도면밀하게 살펴보셔야할 필요가 있습니다.
일단 저 발언을 하나하나 차근차근히 뜯어볼까요? 강우규 열사의 저 발언을 하게 된 계기를 아주 잘 나타내주는 단어가 있습니다. 바로 '작년 6월'이라는 단어입니다. 무슨 일이 있었길래?
바로 1차 세계대전을 사실상 종결짓는 조약인 베르사유 조약이 체결된 때이지요. 정확히 1919년 6월 28일로 그 큰 전쟁을 마무리하고 비로소 세계에 드디어 평화가 찾아왔습니다. 그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서 국제세계에 큰 조직이 성립되는데 그게 바로 국제연맹이지요.
비록 지금은 비판을 많이 받는 국제연맹입니다만.. 초창기 시절에는 취지는 좋았습니다. 3.1운동에 크게 영향을 미쳤던 민족자결주의에 무려 60개국이 참가한 대규모의 조직이었으니까요. 자 여기서 중요한 단어가 있습니다. '민족자결주의'
'각 민족이 스스로의 의지에 따라서 그 귀속과 정치 조직, 운명을 결정하고 타민족이나 타국가의 간섭을 받지 않을 것을 천명한 집단적 권리를 뜻한다' 이게 민족자결주의의 핵심 모토였으며 국제연맹의 기초(위임통치)가 되기도 했습니다.
물론 이러한 조항들은 패전국에만 통용되지 승전국 즉 국제연맹의 상임이사국이었던 일본,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에게는 씨알도 안 먹힐 소리였지만 당시에는 크나큰 충격이었으며, 식민지 국가에게는 굉장한 소리로 들렸죠.
잘하면 우리도 독립할 수 있겠구나!! 더군다나 일본도 순순히 베르사유 조약에 찬성했어! 오오 천황이 그래도 개념은 있구나!
(깜빡 잊었는데 베르사유 조약에도 민족자결주의와 관련된 항목이 나옵니다.)
또 3.1운동의 여파로 조선의 제 2대 총독인 하세가와 요시미치가 나 못하겠다면서 사임을 표명합니다. 조선인들 특히 강우규 열사의 입장에서는 아 이제 독립이 다가오는구나하고 느끼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습니다.
근데 이게 왠 일? 후임 총독으로 사이토 마코토가 들어온다는 소식에 '그러면 그렇지 믿은 내가 바보지 ㅠㅠ' 이 상황이 되어버리고 이 사실에 대해 강우규 열사는 격분을 하게됩니다. 일본 정부의 입장은 민족자결주의에 찬성하고 그게 천황의 의지일텐데 왜 갑자기 듣보잡 녀석이 나타나서 조선을 식민지 상황으로 유지시킬려고 하느냐? 너 이놈 안되겠다. 좀 죽자 이런식으로 간거죠.
이제 좀 이해가 되실련지 모르겠습니다만 간략하게 요약하면
베르사유 조약 체결 → 민족자결주의가 퍼짐→ 2대 총독 사퇴 → 독립이 가까워지네? → 3대 총독인 사이토 마코토가 부임한다는 소식이 들려옴 → 우이씨 그럼 베르사유 조약은 뭐고? 너 어디서 굴러먹다온 돌이야!! 너 좀 죽자 짜샤
이렇게 된겁니다. 이걸로 궤변논파 끝
덧붙이자면 강우규 열사는 재판 중에도 독립연설을 하였으며, 재판장이 '이미 망한나라는 망한 나라이니 일본의 신민으로 충성을 다하는게 옳지않느냐'라고 말하자 '내가 어린애니? 그런 말에 속을 것 같아?'라면서 독립의지를 다시금 다진 열사이십니다. 이거 독립운동사자료집에 있는 내용이니 혹시나하시는 분들은 참조하시길 바랍니다.
끝으로 제발 부탁하는데 루리웹 56611336, 1650은 제발 자기 보고 싶은 부분만 번역기로 돌려서 체리피킹하지말고 전체를 봐서 상황 이해, 문맥 이해할 수 있는 능력 좀 키우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이 글에 반박하기 전에 너 의견 지지하는 논문이나 학술책 좀 가져오시길.
참고 문헌
강우규의 의열투쟁과 독립사상 - 박환
강우규의사의 의열투쟁 - 김창수
강우규 의사 일대기 - 박환
독립운동사자료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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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저게 친일이라고 보가보다는 외국 군주에 대한 격식을 차린걸로 보는게 맞죠.왕정시대 사람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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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지하게 반박하셔도 소용이 없을겁니다... 닭 귀에 경읽기임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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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swalte//제목만 보면 진짜 강우규가 친일파라는 그놈인 줄 알앗어요 .. 죄송해요. 내용은 반박글이었네요. 암튼 왠 ㅄ죄수번호 한마리가 윤동주 친일파, 강우규 친일파니 토론게시판 흐려놓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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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지하게 반박하셔도 소용이 없을겁니다... 닭 귀에 경읽기임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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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swalte//제목만 보면 진짜 강우규가 친일파라는 그놈인 줄 알앗어요 .. 죄송해요. 내용은 반박글이었네요. 암튼 왠 ㅄ죄수번호 한마리가 윤동주 친일파, 강우규 친일파니 토론게시판 흐려놓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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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저게 친일이라고 보가보다는 외국 군주에 대한 격식을 차린걸로 보는게 맞죠.왕정시대 사람이니까요. | 14.10.19 01:05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