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예보 사건의 피해자인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황태자인 프란츠 페르디난트와 황태자비인
조피 마리아.
이0들의 신분이 황태자 및 황태자비이고 전쟁의 도화선이 됐다가 유명하지만 디테일하게 파고들면
더 참담한 사건임. 최소한 저 양반이 살아 있었으면 1차대전이란 미증유의 사건을 회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
오스트리아 쪽은 독일권에서도 꽤나 구석진 곳에 있다보니 생각보다도 제국내 독일인의 비중이
그리 크지 않은 반면 지역에 따라 이민족들의 비중이 복잡하게 얽혀 있었음.
그중에서 그나마 기존 지배계층인 독일계의 오스트리아와 제국에서 비중이 큰 헝가리계가
기득권을 공유키로 하면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성립된 거였으나 여전히 인구비 과반을 넘지
못 하는 불안정한 상황이라 나폴레옹 전쟁 이후 민중의 혁명과 민족주의 바람이 계속되며 제국의 불안은 심각했음.
그 속에서 저 페르디난트 황태자는 차별을 해소한 진짜 '다민족 국가'안을 제시하며 미래지향적인 안을
제시했고 제국내 비중이 낮은 소수민족들도 그에게 기대를 가질 정도 였음.
그러나 그의 진보적 사고방식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을 탄생시킨 현 황제, 프란츠 요제프 1세에겐
달갑지 않은 소리였고 무엇보다도 황태자비인 조피 마리아가 급이 낮은 하급귀족이였다보니
둘 사이의 자식들은 황위 계승권에서도 제외되는 탓에 더더욱 체통을 중시하는 왕공귀족들 입장에선
황태자와 황태자비는 꺼림칙한 존재였음.
황태자비가 어찌나 시집살이를 혹독하게 치르는지 유명할 지경이였고 저 사라예보 사건 때
사건을 일으킨 세르비아 민족주의자들도 황태자는 몰라도 황태자비에 대해선 악감정이 없거나
되려 연민을 느꼈는 지 후일 암살자도 그녀가 숨진 것에 대해선 유감을 표했을 정도...
심지어 사라예보에 함께 들린 것도 시댁에서의 압박에서 벗어나 어떻게든 차기 황후인
아내의 기를 살려주고자 함이었는데 저리 됐으니...결국 이미 속이 문드러져 있던 오-헝제국은 패전 후
제국이 해체되며 영토가 다 분리되는 엔딩을 맞이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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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진 않을껄? 극단적 민족주의로 인해 발칸은 유럽의 화약고 였고 당시 부상하던 독일제국과 영국과의 군비경쟁도 있었기에 크던 작던 1차대전은 있었을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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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레양
그렇진 않을껄? 극단적 민족주의로 인해 발칸은 유럽의 화약고 였고 당시 부상하던 독일제국과 영국과의 군비경쟁도 있었기에 크던 작던 1차대전은 있었을꺼임 | 25.06.21 17:02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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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다른 게 발단이 되어 전쟁 자체는 발생했겠지만 저정도로 뒤로 미룰 수단이 없진 않았을 거..오스트리아 입장에서 황태자가 백주대낮에 암살됐으니 그 본보기로 연결된 세력-국가는 조지지 않으면 제국의 권위가 바닥까지 떨어지는거라.. | 25.06.21 17:03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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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셜록홈즈 영화보면 왜 이렇게까지 알렸는데 아무도 중단을 안할까. 위에서는 전쟁을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뭐 그런 파트 있었는데 | 25.06.21 17:04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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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으로 동서양을 막론하고 대전쟁이 일어난 주요 원인이 패권국가 vs 패권국가에 도전하는 부상국가였기에... 패권국가를 넘어서기 위해 지도부는 전쟁을 원하긴 했음 | 25.06.21 17:05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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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걸로 발생했을거임 저 당시 유럽에 힘이 너무 축척된 상태에서 그걸 소모하던 식민지 정책도 저이상 공격할만한 국가가 없어서 내부적으로 군비증강, 시장포화로 경제 성장 불안등 여러 이유로 터질수 밖에 없던 전쟁이라고함. | 25.06.21 17:07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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