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년(209년), 주유와 조인이 서로 대치한 지 1년이 넘어, 죽거나 부상당한 자가 매우 많았다. 조인은 성을 버리고 달아났다. 손권은 주유를 남군태수(南郡太守)로 삼았다. 유비는 표를 올려 손권에게 거기장군(車騎將軍)을 대행하도록 하고 서주목(徐州牧)을 겸임하도록 했다. 유비는 형주목(荊州牧)을 맡아 공안(公安)에 주둔했다.
-오주전
-선주전
유비가 점령하고 장사군을 손오가 나누는데 유촉측 기록에서 딱히 그거에 대한 언급이 없음
만약 합의하고 나눈거라면 유촉측 기록에서도 나와야 하는게 정상인데 그게 없음
만약 유비측과 손권측이 세력의 크기 차이로 인한 차이가 있지만 동맹이라면 이걸 손오 마음대로 나눈거라면 큰 무례고
합의로 한거라면 합의를 했다고 유촉측에 기록이 있어야 하는데 유촉측에 그런건 없고 손오측도 딱히 합의를 한 문맥은 아님
이당시까지 유비 세력은 손오의 영향력 아래에 있어서 유비가 형주목이지만
실질적으로 손오의 영향력 아래에 있긴 때문에 발생한 현상으로 보는게 더 타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