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살이었을 때쯤 2, 3주 정도 심한 악몽에 계속 시달린 적이 있다.
어렸을 때의 일이라 잘 기억나지 않지만 어머니가 말씀하시길,
매일 밤마다 절규하면서 바닥을 구르곤 목을 긁어댔다고 한다.
아침에 일어나면 자면서 흘린 땀으로 축축해져 있었다.
이게 하루만 그런 거면 괜찮은데 매일 계속됐다.
자는 게 정말로 무서웠다. 금새 수면부족이 됐다.
해골처럼 앙상하게 말랐고 얼굴색은 진흙처럼 되었다.
의사나 영능력자에게 가보았지만 원인을 알 수 없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괴로움에 몸부림치는 밤은 계속되었다.
그래서 부모님도 여위셨다.
두 분이 훨씬 더 심한 병에 걸리신 게 아닌가 할 정도로.
앞서 밝힌대로 나는 2, 3주만에 구해졌다.
은인이 된 건 영능력자도 스님도 신사 주지도 신부도 교사도 아니었다.
맞춰보겠는가. 절대 맞추지 못할 거다.
정답은 [최면술사]다.
최면술사라 해도 아마추어의 아저씨지만.
아버지의 가벼운 공포증을 치료한 적이 있다며 나도 한 번 봐주기로 했다.
'최면술사 따위'라고 생각했지만 나는 아버지를 닮아서 암시에 걸리기 쉬운 체질이란 게 판명됐다.
그 사람이 택한 작전은 악몽을 잊게 하는 것이었다.
기묘한 일이게도 나는 무슨 꿈을 꾸었는지 일어난 뒤에도 확실히 기억하고 있었다.
당시 계속 이어서 꾸고 있던 악몽만이지만.
최면술사의 선생님은 집 모양의 종이에 꿈의 내용을 적게 했다.
생각해내는 것도 고통이었다...하기 싫은 작업이었다.
선생님은 그 종이를 상자에 넣고 뚜껑에 부적을 붙여 열지 못하게 하고는, 우리 둘밖에 모르는 장소에 숨겼다.
구체적으론 말할 순 없으나 [상자를 꺼내려면 간단히 꺼낼 수 있지만, 남이 찾으려고 하면 절대로 생각해낼 수 없는 곳]이다. 아무리 부모님이라도.
선생님은, 악몽은 이 안에 가둬놓았으니까 무서워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내가 상자를 열지 않으면 괜찮다고. 이게 신기하게도 딱 들어맞아서 난 악몽으로부터 해방됐다.
우리집이 얼마나 선생님께 감사했는가는 상상에 맡긴다.
그런데 그 악몽이 담긴 상자는 아직 내 손이 닿는 곳에 있어서 그게 쭈욱 마음 한구석에 걸려 있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고향집에 돌아갔을 때다. 아, 맞다. 그 상자는? 하고 생각났다.
그렇게 한 번 떠올리고나니 매우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당시의 꿈이 얼마나 무서웠는지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지만 어떤 건지 내용은 잊어먹었다.
무서웠다는 감정은 확실히 있었다. 하지만 어린애의 공포란 건 어른이 보면 허접한 거다.
지금의 나는 당시 선생님의 말씀이 자신에게 어떤 암시를 걸은 건지 대충 추측할 수 있다. 속임수의 정체도 모두 알고 있다.
나는 당시의 공포를 명백한 빛 아래에 드러내어 웃을 수 있는 이야기로 하고 싶었다.
그래서 몰래 상자를 찾으러 갔다.
뚜껑에 붙여진 부적이 보였다. 선생님에게 영능력은 없다고 생각하니 꽤나 허접하게 보였다.
벗겨내기 위해 끝부분을 손톱으로 긁기 시작했다.
그러자 갑자기, 10년간 잊고 있었을 터인 꿈의 내용이, 머릿속에서 재현되어갔다.
나는 전통적인 방에 있고, 빛이 들어오는 미닫이 문을(시골집이나 한옥의 한지가 붙여진 그 문을 생각하시면 될 듯합니다) 보고 있다.
툇마루에 있는 대나무의 그림자가 보인다. 그리고 그 미닫이 문의 위에는 사각으로 깔끔하게 뚫려진 곳이 있었다.
그곳으로부터 복스럽게 생긴 중년의 에비스(일본의 복신이고 대충 살찌고 푸근한 얼굴로 유명합니다) 얼굴이 히죽 히죽 웃으며 이쪽을 들여다보고 있다.
근데 정말 얼굴뿐이다. 미닫이 문에는 대나무의 그림자만이 흔들리고 있을 뿐. 그 녀석의 몸통 그림자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내 등뒤에는 또 다른 미닫이 문이 있고, 그 문을 열면 방이, 또 문을 열면 방이...그렇게 계속 이어지는 것도 알고 있다.
구-, 구-, 하고 작은 비둘기가 우는 듯한 작은 소리가 희미하게 들린다.
이어서 탕, 탕, 탕 하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점점 크게 들려온다.
계속 이어져 있는 미닫이 문을 열면서 무언가가 이쪽을 향해 전력으로 달려오고 있다.
깔깔깔 웃는 남자의 목소리가, 진심으로 즐거워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그건 점점 커져갔다. 나는 그 자리에 굳어버렸다.
절대로 뒤를 돌아봐선 안된다. 그것만큼은 확신할 수 있었다.
탕! 하고 내 등뒤에 있는 미닫이 문이 열렸다.
그 녀석은 내 목덜미에 비린 숨을 내뿜었다. 일부러 그런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내 귓가에 조용히 속삭이며 이렇게 말했
...상자를 떨어뜨렸다. 그 소리에 제정신을 차렸다.
나는 상자를 원래 있던 곳에 놓고 곧바로 집에 돌아갔다.
그래서 지금도, 악몽의 상자는 그곳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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