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슨은 전구를 만들면서 수많은 실패를 반복했다는 비아냥에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1000번의 실패를 한 것이 아니다. 1000번의 단계를 거쳐서 전구를 만들었을 뿐이다."
세상에는 살인마라고 불리는 녀석들이 있다. 나도 그 중 하나다.
재수없게 붙잡히기는 했지만, 인권이라는 녀석 덕분에 교수대로 직행하는 것은 면할 수 있었다.
그대신 다다음 세기가 오기 전까지 꼼짝없이 감옥에 있어야 한다는게 짜증이 날 뿐이지만.
어쨌거나 살아는 있으니 그걸로 만족한다. 아니, 만족하고 살고 있었다.
그 자식이 오기 전 까지는 말이지.
"면회다."
독방에서 무료한 나날을 보내고 있던 나에게 면회신청이 날아왔다.
가족도 없는 나에게 면회같은게 올리가 없다.
내 변호사는 판결이 난 뒤 안 죽은 기념으로 내가 축하빵을 날려줬으니 찾아올리도 없고...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정신이 나간 놈이 틀림없다.
검은 양복에 선글라스를 낀 사람이 세 명 있다. 취미 한 번 고상하시구만.
차림새를 보아하니 나에게 성경같은걸 줄 것 같지는 않다.
내가 자리에 앉자 한 사람이 맞은편에 앉으며 말을 건다.
"처음 뵙겠습니다. 이야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공손하게 나오는 사람에게 폭력을 휘두를 필요는 없다.
"용건이 뭐요?"
나름대로 공손하게 대답해준다.
"당신이 해주었으면 하는 일이 있습니다."
"누굴 죽여달라는 거요? "
"하하. 설마요, 그런걸 바라는 건 아닙니다. 단지 테스트에 참여해주셨으면 좋겠다는겁니다."
테스트라... 이래뵈도 일찍 나가보려고 이것저것 테스트한 적이 있었다.
무슨 이상한 약을 먹이거나 주사한 다음, 그 결과를 기록하는거 말이지.
하지만 그것도 두 달 전이 마지막이었다.
무슨 발기부전 치료제의 결과가 신통치 않았다며 웃고 있는 자식의 면상에 한방 갈긴 후로는 아무도 부르지 않았으니까.
"...뭘 하면 되는데?"
어쨌거나 형량을 한 두 해라도 줄여야하니 뭐든지 해야겠지.
부작용(불면증같은거)은 좀 있어도 죽지는 않으니까.
그는 의외로 정직하게 대답했다.
"안정성이 불안한 기계의 사용입니다."
"그럼 안해. 난 죽기는 싫다고."
그렇다. 난 죽기 싫다. 애초에 자기가 죽고 싶어서 사람을 죽이는 놈은 없잖아?
아무리 형량을 줄이고 싶다고 해도 말이지, 내가 이딴짓까지 해가며...
"50년입니다."
"뭐?"
"50년 감형입니다. 이미 정부와 계약도 맺었습니다."
유혹이다. 분명 이건 그 정도로 위험한 물건이라는 거다.
하지만... 50년이면 내 형량의 3분의 1이 날아간다. 살아서 나갈 확률이 올라간다.
"무슨 물건이지?"
"그건 기밀사항입니다. 계약을 맺어야 설명해드릴 수 있습니다."
수상하다. 그리고 위험하다. 하지만 이미 선택의 여지는 없다.
"하지. 그 50년 진짜겠지?"
"물론입니다. 그건 보장하지요. 계약서를 보여드릴까요?"
귀찮다.
"몇 가지만 추려서 요약해봐."
"알겠습니다. 저희는 우선 세 가지 기계를 준비했습니다. 그중에 하나를 골라서 테스트하시면 됩니다. 단, 셋 중 하나는 반드시 골라야 합니다."
"다른 건 없나?"
"다시 말씀드리죠. 받아들이기로 한 이상, 당신에게 거부권은 없습니다. 이걸 명심해주시기 바랍니다."
...도대체 뭘 시험하겠다는걸까? 내 팔을 자르고 이상한걸 갖다 붙이기라도 할건가?
"좋아. 그런 말을 듣는다고 무서워할 성격은 아니라고. 그럼 언제 시작하면 되지?"
"지금 곧바로 준비하죠. 기다리는건 지루하실거 아닙니까?"
"...잠깐만. 설마 그 기밀사항인 녀석을 여기로 가져왔다는거야?"
"아니죠. 저희 연구시설이 있습니다. 그쪽에서 테스트하시면 됩니다."
이놈들 혹시 천사가 아닐까?
"날 여기서 꺼낸다는 거야?"
"네. 어쨌거나 이건 기밀사항이니까요."
그 다음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간수를 부르고, 이야기를 나누고, 나한테 옷을 주고, 밖으로 내쫓고.
지금은 이렇게 싸구려 승용차 안에 앉아있다.
"이게 뭐야. 당신들은 월급도 못 받고 사나?"
운전석에 앉은 그가 말한다. (나머지 둘은 내 좌우에 앉아있다. 안도망간다니까.)
"비밀엄수가 생명이니까요."
꽤 받는 모양이다.
"자, 그럼 안대를 해주시겠습니까?"
그가 그렇게 말하며 안대를 나에게 건넨다.
"비밀이다 이거지? 알았어."
고분고분 안대를 한다. TV같은 데에서 자주 나오니까 뭐.
한참을 달리는 동안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이거 무슨 납치같은거 아냐?"
"그럴리가요. 저희는 사적인 감정같은건 전혀 없습니다."
"내가 죽인 녀석들 가족한테서 뭔가받고 일하는거 아니고?"
"그 사람들은 이럴 힘은 없을 겁니다."
...아무래도 무시무시한 놈들이랑 엮인 것 같다.
도착했다.
"실험복을 드리죠. 갈아입어주십시오."
...환자복이겠지.
"자, 다 입었으니 설명좀 해주시지. 내가 써봐야 하는게 뭔가? 무기?"
"아닙니다. 아직 프로토타입도 나오지 않은 상태라 군용으로 쓰기도 뭐하죠."
무기가 될 수도 있는 무언가. 점점 호기심이 생기기 시작한다.
"이제 전부 보여드리죠. 자료를 봐주십시오."
무슨 서류라도 주나 했더니 사진 몇 장을 내민다.
뭔가가 달린 헬멧, 이상하게 커다란 레이저 발사장치(로 보인다.), SF영화에서 보던 공간이동장치(처럼 생긴 거.).
뭐가뭔지 전혀 모르겠다.
"이제부터 기계의 이름과 용도, 사용방법, 부작용에 대해서 설명해드리겠습니다."
'부작용'이라는 말이 무섭게 들린다.
"이것의 이름은 '반중력이론을 이용한 뇌파조정형 자유비행장치'. 코드네임은 'DH-32'입니다. 몸에 부착하면 공중에 떠오르는거죠."
흠... 꽤 재미있겠군. 하지만 난 별로 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
"부작용은 컨트롤이 어렵다는겁니다. 실제로 벽이나 바닥, 천장과 격돌한 사람도 있었고, 야외실험 당시엔 이 시설 밖으로 날아가다가 자동방어시스템에 격추당한 사람도 있었죠."
도망갈 생각을 말라는거로군. 안할거니까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물론 당신은 하지 않겠죠. 조사한 바에 따르면 당신은 심한 고소공포증이 있으니까요."
...알고 있으면 뭐하러 내밀었냐.
"실험에 실패했을 당시의 영상이 있습니다. 봐주시겠습니까?"
거절했다.
"두번째 장치는 '원자확대이론을 이용한 물체부피 변환장치' 코드네임은 'BL-7'입니다. 아직 초기단계죠."
"초기단계라는게 무슨 뜻이야?"
"아직 사람에게 직접 써본 적이 없다는 거죠."
"무슨 물건이길래 아직 못써봤다는 거지?"
"쉽게 말하자면 물건의 크기를 바꿀 수 있습니다."
순순히 대답해줬다. 이렇게 나오면 나도 머리가 나쁘진 않다는 걸 알려줘야겠지.
"사람에게 한번도 안써봤다면 부작용은 아직 모르겠군."
"예리하시군요. 하지만 예상 부작용은 알려드릴 수 있습니다."
이놈은 친절한 악마가 틀림없다.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는 것은 광선을 직접 닿은 환부의 크기만 변화할 경우죠."
"뭔 소리야. 쉽게좀 말해봐."
"피부만 줄어들고 근육등의 안쪽 기관의 크기가 유지될 경우, 또는 팔다리만 커질 경우, 또는..."
"...뭔가 떠오를 것 같다. 그만해."
벌써 두개가 이모양이다. 나머지 하나에 모든 것을 걸 수 밖에 없다.
"잊지는 않으셨겠죠. 당신에게 '포기한다'는 선택은 없습니다."
그 말이 신호인 듯 녀석에 뒤에서 말없이 서있던 놈들이 나에게 다가온다.
허튼 수작부리지 말라는 건가.
"마지막 장치는... 상당한 진전이 있는 물건입니다."
다행이다.
"'차원이동 이론을 이용한 공간전송장치'. 코드네임은 'UM-164'입니다."
"순간이동이나 뭐 그런건가?"
"그렇습니다. 통과하는 물체를 입자화시켜 다른 곳으로 순식간에 이동시키는 거죠."
"안정성은?"
"...일반 사물의 경우엔 거의 원형에 가깝게 나왔습니다."
거의? 잠깐만.
"그럼 사람이 들어갔을 경우엔 어떻게 되었지?"
그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사진을 보여드리죠."
사진을 봤다. 구역질이 올라왔다.
"이게 사람이라고? 이 미친 새끼야! 너 도대체 뭘 만든거야!"
"그건 초기 실험체... 아니, 피실험자의 사진입니다. 이후 모델은 점차적으로..."
"아 그래, 점차적으로 나아져서 팔다리라도 바꿔달렸나보지? 그게 그나마 나은거냐?!"
"흥분하지 마시고 제 이야기를 들어주십시오. 차원을 이용한 기계는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예를들어 '4DP-216'의 경우..."
"그래서 뭐야! 잘 하면 크게 안변하고 끝날 수 있다는거야? 이꼴이 된 놈한테도 그런 소리를 한거 아냐!"
"그 사람은 7번째였습니다. 몇 년 전 사진이고요. 현재 기술의 발전은 그 이상으로 진보했습니다."
"그럼 난 몇번째인데? 160몇번이라고 했으니까 그 정도 되나? 그럼 내가 160번대 희생자라 이거냐?"
미쳤다. 이새끼는 분명히 미친게 틀림없다.
나보다 더 많은 사람을 죽였을테니까.
"아까 전에 말했지. 난 죽고 싶지 않다고 말했어. 이건 계약위반 아닌가?"
"아닙니다."
그는 딱잘라 말했다.
"그 사진의 인물도 살아 있었으니까요."
"저꼴로 남아있는것도 살아있다고 할 수 있냐! 나같은 놈을 불러서 뭐하나 했더니, 이렇게 작살내려고 한거였냐고!"
"그럼 누가 합니까?"
말문이 막힌다.
"이런 물건을 일반인이 테스트 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하십니까? 과학의 발전을 위해선 그에 따른 대가가...."
"이 ㅆㅂ새꺄!!!"
난 놈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내 뒤에 있는 녀석들이 더 빨랐다.
바닥에 엎어진 나에게 녀석이 주사기를 들이밀었다.
"역시 이걸 쓰게 되는군요. 안심하십시오. 단순한 마취제니까요."
너라면 안심하겠냐!
"마지막 선택입니다. 만약 당신이 선택을 거부한다면 저희가 임의로 선택하겠습니다."
주사를 놓으며 말한다. 악마 그 자체로구만.
좋아. 쿨하게 생각하자.
첫번째는... 역시 못하겠다. 빌어먹을 고소공포증.
두번째... 역사적인 첫.. 그만큼 위험하고... 죽을 확률도 그만큼 높아..
세번째... 100명도 넘게.. 그나마 낫...
"...셋..."
"알겠습니다."
난 정신을 잃었다.
눈을 떴다.
여긴 어디지? 실험이 벌써 다 끝난건가?
"깨어나셨군요."
그 자식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죽지는 않은 모양이군.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디서 많이 봤던게 보인다.
그 차원 어쩌고 하던거.
"으아아아아아악!"
깜짝놀라 벌떡 일어선다. 그제서야 내가 홀딱 벗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몸은 멀쩡하다. 아직 시작도 안한건가?
"놀라셨다면 죄송합니다. 옷과 융합해버릴 가능성도 있으니까요."
스피커에서 나오는 존댓말도 비웃는 것처럼 들린다.
...이젠 될대로 되라지.
"이제 가동하겠습니다. 저 안으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출구가 보일겁니다."
"잠깐만. 유언 하나만 남기지."
"뭐죠?"
"만약 내가 이상한 걸로 변하면... 그냥 죽여버려."
"괜찮으시겠습니까? 분명 죽기 싫다고 하셨을텐데요?"
"...그딴 건 살아있다고 하는게 아냐."
말도 못하기 전에 미리 말해놓고 싶었다.
"그럼 가동하겠습니다."
사형대의 전원이 켜진다.
차원 뭐시기는 가운데 사람이 지나갈만한 링이 세워져 있다. 그 곳에 빛이 모인다.
그 빛은 점점 밝아지며 어떤 영상이 나타난다. 저기가 출구의 풍경이겠지.
그 저편에는 많은 사람들이 준비를 하고 있다.
하나같이 얼굴을 마스크로 가리고 수술복 비슷한걸 입고 있다.
만약의 사태... 아니, 확실한 사태에 대비한 거겠지.
"뭐하십니까? 이제와서 안하실 수는 없습니다."
...난 세상을 살아오면서 한가지 결심한게 있었다.
죽을 때만큼은 쿨하게 가자고.
"좋아. 좋다고. 내가 딛는 한걸음이 인류의 위대한 도약이 된다 이거지?"
"잘 아시는군요."
웃음소리가 섞여서 들려온다. ㄱㅅㄲ.
당장 튀어나가서 저 새끼를 붙잡아다 처넣고 싶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다.
실험을 성공시키자. 실험이 성공만 하면 되는거다.
저새끼를 죽도록 팰 수도 있고, 세상 밖으로도 나갈 수 있다.
난 기계앞에 섰다. 저쪽에서는 내가 보이지는 않는 모양이다.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뛰어들었다.
[에필로그]
"...저기말야, 나 궁금한게 하나 있어."
"뭔데?"
"네가 쓰는 도구들말야, 그런건 누가 만든거야?"
"음... 미래에 관련된 사실은 함부로 말해줄 수 있는게 아니야."
"그게 뭐야? 치사하게..."
"그래도 말이지, 이것들을 만들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노력하고 고생했지. 그건 말할 수 있어."
"아아. 그렇구나. 정말 힘들었겠다."
"그러니까 너도 이런 도구들을 쓸데없는 일에 쓰지 않는게 어때?"
"응. 그래야겠어. 그래도 오늘 놀러갈때는 써야지."
"...그런 걸 쓸데 없는 거라고 하는거야. 그러니까 오늘은 안빌려줘."
"뭐? 그런게 어딨어~~~ 도~~라~~에~~몽~~~"
"에휴... 넌 정말 어쩔 수 없다니까..."
=본격 SF 소설 - 진구는 찌질해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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