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르M, 고전의 훌륭한 복각일까 또 하나의 리니지일까
위메이드 신작 ‘미르M’이 지난 23일 PC 및 양대 앱마켓으로 정식 출시됐다. 부제는 ‘뱅가드 앤 배가본드’다. 약 1년 반 전 선보인 ‘미르4’에 이어 두 번째 ‘미르’ IP 기반의 모바일 MMORPG인데, 사실 두 프로젝트는 시작될 때만 해도 방향성이 상당히 달랐다. ‘미르4’가 처음부터 차기작으로 기획되었다면, ‘미르M’은 오늘날 ‘미르’ IP의 토대가 된 2001년작 ‘미르의 전설 2’를 복각하는데 초점을 맞췄다. 그러다 보다 완전한 리메이크로 규모가 커지며 개발이 장기화된 끝에 이제야 만나볼 수 있게 된 것. 그사이 위메이드도 P2E(Play to Earn) 플랫폼 위믹스의 성공으로 눈높이가 달라진 만큼, 마케팅비를 쏟아붓다시피 하며 신작 ‘미르M’에 큰 기대를 거는 모습이다.
"우와~ 이거 엄청난 대작인데요?" 마케팅 공세가 돋보인 신작 '미르M'
여러 의미에서 그 시절 감성을 느끼며
이야기는 이러하다. 달빛이 운무에 가리운 어느 밤, 일군의 가면 쓴 살수 집단이 한 협객을 추격한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거동조차 불편한 협객은 곧 죽을 위기에 처하나 때마침 현장에 난입한 정체모를 두 여고수 덕분에 목숨을 건진다. 살수 집단을 쫓아낸 두 여고수는 부상 여파로 의식을 잃은 협객을 가까운 은행골 촌장에게 맡기고, 한참 후에야 깨어난 그는 마을의 고민거리를 해결해주며 차츰 더 큰 세상으로 나아간다. 그렇다. 도입부부터 죽네 사네 고생하는 이 협객이 바로 유저의 분신이 되어줄 주인공이다. 직업은 강력한 힘과 맷집으로 전위를 담당하는 전사, 회복과 독술에 정통한 도사, 원거리서 강력한 마법을 구사하는 술사 가운데 선택할 수 있다.
먼저, 게임의 첫인상을 결정하는 그래픽은 훌륭하다. ‘미르의 전설 2’ 복각을 표방하는 만큼 쿼터뷰 고정에 8방향 그리드로 움직임이 제한되긴 하나, 전체적인 풍광과 확대 시 조형은 과연 수준급이다. 우거진 수목과 굽이진 절벽이 퍽 아름답고 초가와 기와집으로 채워진 동양풍 마을은 활기가 넘친다. 인물 묘사도 괜찮은데, 뭣보다 사전 공개 영상과 실제 인게임 모델링이 너무 달라서 논란이 된 모 경쟁작과 달리 애초에 ‘미르M’은 비주얼로 주목받은 적이 없다. 딱히 기대하지 않다가 깔끔히 마감된 그래픽을 보니 더 좋게 느껴지는 이치다. 이렇게까지 전부 뜯어고치면 사실상 다른 작품이라 20년 전 ‘미르의 전설 2’의 추억이 스치거나 하지는 않지만서도.
쿼터뷰 고정, 8방향 그리드라는 제약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운 화면을 뽑아냈다.
시점과 별개로 모델링 퀄리티는 상당히 뛰어나며, 컷신을 통해 확인 가능하다.
아, 물론 ‘미르의 전설 2’과 똑같지 않다는 게 세련된 작품이라는 칭찬은 아니다. 그냥 과거 에셋과 BGM을 그대로 가져오진 않았다는 것뿐. ‘미르M’ 자체는 90년대 범람하던 국산 MMORPG가 무척이나 떠오르는 예스런 게임이다. 특히 PC로 플레이할 경우 그 시절 감성이 제대로 묻어난다. 즉 복각의 의미는 그럭저럭 잘 살린 셈인데, 문제는 필자가 느끼기에 ‘그 시절 감성’이란 애써 재현할 만한 미덕이 아니라 그저 당시 여건으로 인한 고갈과 불편함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스토리는 듬성듬성 비었고, 무의미한 퀘스트는 사냥에서 또다른 사냥으로 이어지며, 그 마저도 끊기면 필드 닥사로 귀결되는 반복 플레이. 요즘은 매크로가 공식 지원된다는 정도나 다를까?
서두에서 ‘미르M’이 ‘미르의 전설 2’ 복각 프로젝트라 소개했는데 엄밀히는 다르다. 1998년작 ‘리니지’와 2017년작 ‘리니지M’이 실은 껍데기만 비슷한 별개 게임이듯, ‘미르M’도 알멩이는 전적으로 리니지-라이크 시스템 및 콘텐츠로 채워졌기 때문이다. 더 나쁜 건 복각이란 미명 하에 그 ‘리니지’보다도 방만하게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반 년 전 ‘리니지W’가 눈 가리고 아웅이나마 무슨 콘솔급 연출이니 서사적 캠페인이니 늘어놓은 건, 어쨌든 엔씨소프트가 외부의 시선을 의식한다는 방증이다. 반면 ‘미르M’은 되도 않은 이유로 포악한 시귀니, 앙칼진 시귀니 온동네 괴물을 다 때려 죽이라고 시키는데 뭐라 지적할 수가 없다. ‘복각인데 어쩌라고’하면 끝이니까.
예전에는 그냥 닥사를 했다면, 요즘은 메인 퀘스트가 닥사를 시킨다. 에라이…
가끔 보스전도 나오지만 어차피 컨트롤이랄 게 별로 없다. 물약컨? 스킬컨?
‘미르의 전설 2’보다 ‘리니지’에 가까운
좋다. 20년 전 작품을 복각했다는데 이제와 닥사를 지적하는 건 억지스러울지도. 그렇다면 게임의 나머지 부분은 어떨까. 상술했듯 ‘미르M’은 이른바 리니지-라이크 장르다. 그리 새삼스럽지도 않은 게, 위메이드는 벌써 몇 년째 엔씨소프트 바라기를 자처해왔다. ‘미르4’ 출시 당시 장현국 대표 스스로 ‘리니지’를 참고했다 밝혔고 실제로도 그런 게임이 나온 바 있다. 무언가 큰 성공을 거뒀을 때 시장 참여자들이 그것을 레퍼런스로 삼는 건 어느 산업에서나 흔히 벌어지는 일이다. 다만 그걸 무슨 ~라이크라며 자연스런 수순처럼 여겨도 곤란하다. 90년대 쏟아진 그 많던 국산 RTS가 스타크-라이크 장르였던 건가? 아니지. 그냥 ‘스타크래프트’ 아류작 무더기였을 뿐이다.
‘오딘’도, ‘트릭스터M’도, ‘블소2’도 그랬지만 매번 똑같은 시스템 및 콘텐츠를 처음 보는듯 하나하나 소개하고 분석하려니 속된 말로 현타가 온다. 그래도 입장상 ‘리니지랑 대강 다 똑같아요~’하고 넘길 수 없으니 하나씩 살펴보자. 게임으로서 ‘미르M’의 주된 목적은 캐릭터를 성장시켜 파티던전과 환상비경 등 전투 콘텐츠를 공략하고, 이를 통해 더욱 성장을 촉진시켜 궁극적으로 개인 및 대규모 PvP서 활약하는 것이다. 여기서 캐릭터 성장이란 곧 전투력 상승을 뜻하며, 노력이 필요한 부분과 과금이 필요한 부분이 맞물려 돌아간다. 레벨업과 파밍이 노력의 영역이라면 화신, 탈것, 영물 등 뽑기는 과금의 영역이다. 물론 과금이 받쳐줘야 사냥 효율도 올라간다.
이런저런 콘텐츠가 있지만 어쨌든 전투력 상승을 위해서고, 이는 PvP로 귀결된다.
'미르M'의 경우 기술 만다라를 통해 장인도 전투원만큼 대우 받을 수 있을 전망.
일반적으로 게임을 또다른 게임에 빗대어 설명하는 건 썩 좋은 방식이 아니다(그 게임에 대해 모두가 알진 못하므로). 하지만 리니지-라이크라면 원본인 ‘리니지’와 얼마나 콘텐츠가 일대일 대응하는지 살펴보는 것도 나름대로 재미있으리라. 우선 화신은 변신이다. ‘미르M’은 3D 게임이지만 캐릭터를 직접 꾸밀 수 없고 화신을 통해서만 외형 변경이 가능하다. 성별도 마찬가지로 화신에 따라 달라진다. 여기에 파괴, 명중, 회피, 공속, 이속 등 중요 스펙이 엄청나게 붙어있어 전투력 상승을 위한 최우선 요소다. 화신은 일반, 고급, 보물, 성물, 신물, 무림사조의 여섯 등급으로 나뉘며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곤 과금으로만 획득을 노려볼 수 있다.
‘미르의 전설 2’ 시절의 탈것은 남들보다 빠른 이동속도와 자부심 정도만 제공했으나, 이제는 여기도 각종 스펙과 스킬이 붙어 과금을 요구한다. 심지어 네 부위의 탈것 장비도 챙겨야 한다. 영물은 펫(혹은 마법인형, 아가시온 등 편한 데로 부르자)이다. 일반, 고급, 보물, 성물, 신물, 신수의 여섯 등급이며 당연히 위로 갈수록 중요 스펙이 많이 붙는다. 총 세 마리까지 장착 가능한 건 덤이다. 이외에도 리니지-라이크서 빼놓을 수 없는 컬렉션(장비를 소모하여 도감을 채우면 스펙을 좀 올라가는)이 전투, 생활, 화신, 영물에 존재한다. 각 지역마다 몬스터를 반복해서 사냥하거나 수집품을 모았을 때 보상을 주는, 요즘은 주로 내실이라 부르는 콘텐츠도 갖췄다.
현 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BM은 화신이다. 물론 무과금은 넘볼 수 없는 영역.
당연히 영물도 잘 뽑아야 한다. 그런데 이 게임은 무협 세계관 아니었나!?
그나마 미르M’서 차별화되었다 할만한 부분은 제작으로 대표되는 생활 콘텐츠의 강조다. 스킬 트리의 일종인 만다라가 매우 중요한데, 이 만다라가 전투와 기술 계통으로 나뉠 정도로 서로 대등한 위상을 지녔다는 것. 그러니까 소위 ‘쟁’게임에서 최상위 전투원이 누리는 위세에 꿀리지 않을 만큼 장인도 대우해준다고. 아예 서버 랭킹에 들어야만 해금되는 제작 레시피도 있다는 모양. 다만 서버 최고 레벨이 30 전후인 현 시점에선 만다라를 두 개 이상 찍은 유저도 드물 정도로 재료인 용옥이 귀해서, 이 부분은 최소한 한 달은 지나야 확인 가능할 듯하다. 어차피 장인도 거대 문파가 계획적으로 육성할 게 뻔한지라 그다지 일반 유저에게 와닿는 내용은 아니겠다.
이렇듯 ‘미르M’은 빼도 박고 못할 무협 + 리니지지만 실은 상당히 중요한 차별점이 하나 더 있다. 유료 경험치 보정, 변신, 탈것, 펫, 컬렉션까지 다 가져왔으나 그 과금 부담만은 전체적으로 살짝 낮췄다는 것. 이 또한 뭇 리니지-라이크가 꾸준히 취하는 전략인데, 특히 ‘오딘’이 리니지-라이크면서도 ‘리니지’가 쌓아온 악명의 반사이익을 크게 본 경우다. ‘미르M’ 역시 앞서 ‘리니지’에 빗대어 설명했으나 엄밀히 따지면 ‘오딘’을 거치며 완화된 형태에 가깝다. 사실 위메이드는 가상화폐 위믹스와 동명의 P2E 플랫폼이 흥하면 자연스레 떼돈을 버는 구조라 게임 자체의 BM을 너무 악독하게 설정할 이유는 없겠다. 참고로 P2E는 연말에 나올 글로벌 버전만 들어간다.
활력이란 이름의 경험치 보정도 존재한다. 화신 특전에다 추가로 보충하는 방식.
'오딘'이 그러했듯 '미르M'도 과금 부담만 살짝 낮추는 식으로 차별화를 꾀했다.
리니지-라이크를 위한 자리가 더 있나
서두로 돌아가자. 당초 ‘미르의 전설 2’ 복각을 목표한 ‘미르M’은 보다 완전한 리메이크로 규모를 키우며 오늘에 이르렀다. 이제는 그냥 ‘미르’ IP에 기반한 또 하나의 대작 MMORPG로 봐야할 것이고, 이는 출시된 지 2년도 채 안된 ‘미르4’와 포지션이 겹친다는 의미기도 하다. 더욱이나 두 작품 모두 리니지-라이크 아닌가. 물론 ‘리니지M’, ‘리니지W’, ‘리니지2M’이 모두 앱마켓 TOP5에 안착하여 천문학적인 매출을 뽑는 나라에서 ‘미르’ 하나쯤 더 낸다고 누가 뭐라 하겠는가. 다만 역으로 그런 시장이기에, MMORPG의 진창이자 각축장이기에 P2E조차 없는 ‘미르M’을 할 이유가 딱히 없지 않나. 국내는 그저 글로벌 버전을 위한 테스트 서버가 될까 걱정될 따름이다.
우리가 마주한 전설이 20년 전 그 '미르의 전설 2'가 맞긴 한가, '리니지' 아니고?
김영훈 기자 grazzy@ruliweb.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