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종 독점 관련 이야기와 프로듀서인 제이드에 대한 대대적인 홍보 등 발매 전 무척이나 많은 화제를 낳으며 유저들의 이목을 끌었던 UBISOFT의 액션 어드벤처 게임 어쌔신 크리드. 많은 주목을 받아왔던 만큼 좋은 이야기도 많이 나오고 불만스러운 시선도 무척 많이 받은 게임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거대한 규모의 배경과 높은 자유도, 독특한 세계관 등 흥미로운 요소가 많은, 모처럼 간만에 등장하는 오리지널 대작 타이틀이라는 이유로 많은 기대를 모아왔던 타이틀입니다. 발매 전 만큼이나 발매 후에도 많은 이야깃거리를 생산하며 지난 2007년 12월 20일, 한국에도 음성/자막 완전 한글화를 통해 정식으로 발매되었습니다.
독특한 느낌의 타이틀 화면. |
프레스용 배포 CD에 프로듀서 사진 넣은 거 보고 솔직히 무서웠다. |
암살자의 후손이 제약회사에 붙잡혀 선조의 기억을 강제로 되살리기 위해 애니머스라는 기계를 통해 과거의 기억과 동조한다는, 조금 황당하기까지 한 스토리를 바탕으로 게임이 진행됩니다. 실제 게임은 중세 시대를 살아가는 암살자 알테어가 되어 게임을 진행하며, 이벤트 연출 등을 통해 제 3자의 입장에서 관찰하는 듯한, 어느 정도 실험체를 다루는 느낌으로 진행됩니다.
매뉴얼 또한 그러한 전제를 바탕으로 모든 것을 설명하고 있으며 게임을 처음 시작할 때에도 플레이어가 알테어라는 것이 아니라 알테어라는 과거의 기억을 더듬어가는 개념으로 조작 방법을 가르쳐주고 게임의 요소를 주입시켜줍니다. 덕분에 게임의 대부분이 중세를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다른 중세 배경의 게임을 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이질적이기까지 한 느낌을 게이머에게 전달해줍니다.
게임의 주무대는 중세 시대. |
현실 세계의 주인공은 25세의 데스몬드. |
기본적으로 현대와 중세를 돌아가며 플레이하는 방식입니다. 하지만 중세와 현대의 비중이 비슷하다기보다는 현대 파트는 지극히 단순한 어드벤처 형식으로 스토리를 진행시켜주는 기본적인 역할만 하고 본격적인 게임은 중세 파트에서 대부분 이루어지는 식으로 반듯하게 구분된 느낌입니다. 손가락 깍지 끼우듯 면밀히 연결된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 시점까지는 전혀 다른 세계를 이야기합니다. 강제로 기억의 시점을 이동시켜 게임의 주요 장면만 뭉텅뭉텅 자르는 듯한 호쾌한 편집과 정신 못 차리게 연결되는 스토리 진행은 묘한 속도감마저 느끼게 하며, 결과적으로 근래 들어 보기 힘들었던 독특한 이야기 구조까지 제공해줍니다.
다른 작품과는 전혀 다른 진행 구조의 이벤트 연출. |
어쌔신 크리드의 경이롭기까지 한 부분은 게임 안에서 거의 하나의 완전한 마을을 만들어냈다는 것이며, 그 넓은 배경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활보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R 버튼과 A 버튼을 눌러서 어떤 장애물도 타고 넘으며 손가락 끼울만한 공간만 있다면 어떻게든 벽을 타고 건물을 기어오를 수 있으며 여기저기 얽혀 있는 지붕 위를 뛰어다니거나 담을 타고 아슬아슬하게 이동할 수 있습니다. 더 올라갈 수 없을 정도로 높이 올라간 뒤 달구지를 향해 다이빙하는 쾌감은 다른 게임에서는 절대 느껴볼 수 없는 카타르시스까지 안겨줍니다.
초반에는 게임 스토리를 진행시키는 것보다 멋진 그래픽으로 이루어진 건물과 건물 사이를 뛰노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재미를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그 즐거움이 각별합니다. 그만큼 어쌔신 크리드에서의 배경과 그 배경을 활용한 자유로운 액션은 제작사의 아이디어를 넘어선 높은 기술력을 여실히 느끼게 해줍니다. 흔히 GTA와 비슷한 플레이 방식으로 묘사하곤 하지만 이러한 본격적이면서도 자유로운 액션성은 어쌔신 크리드만의 고유 영역을 만들었고 게이머에게 깊은 인상을 남겨주었습니다.
생각한 것 이상의 자유로운 이동이 가능한 게임. 이것만으로도 어쌔신 크리드의 재미를 느낄 수 있을 정도. |
넓은 배경과 수많은 엑스트라들을 표현하고 있으면서도 그래픽의 수준은 상당한 수준을 자랑합니다. 도시마다 고유의 색감으로 치장하고 있으며 너무나 큰 것을 묘사하는 게임이지만 작은 디테일 또한 놓치지 않은 세심함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수많은 엑스트라와 자연스러운 생활상을 보여주는 여러 소품을 구경하다가도 높은 건물 꼭대기에 앉아 드넓은 배경을 둘러볼 수 있는, 극과 극을 오가는 스케일의 차이를 몸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한 번 플레이하면 잊을 수 없는 분위기 연출을 너무나 잘 잡아냈기 때문에 겉보기 등급 하나만큼은 절대 무시할 수 없는 게임이기도 합니다. 게다가 로딩 또한 짧은 편입니다. 도시 진입을 위한 로딩만 끝내면 방대한 맵을 쾌적하게 뛰어다닐 수 있다는 것도 또 하나의 장점입니다.
너무나 넓은 배경이지만 그래픽은 절대 단순하지 않다. |
프레임도 생각보다 잘 나오는 편. |
그래픽만큼이나 분위기 연출 또한 기가 막힌 수준. |
게이머는 중세를 배경으로 활동하는 암살자인 알테어를 조작해서 암살 임무를 부여받고 하나씩 해결해나가야 합니다. 먼저 임무를 부여받은 후 대상이 있는 지역까지 이동하고, 높은 곳에 올라가서 암살자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포인트를 발견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엿듣거나 소매치기를 해서 암살자에 대한 정보를 얻는가 하면 으슥한 골목까지 따라가서는 사정없이 두들겨패서 정보를 강제로 얻어내기도 합니다. 결국 암살 자체보다는 암살을 위한 정보를 입수하는 것이 게임의 주요 포인트라 할 수 있는데, 어쌔신 크리드의 재미는 이러한 중간 과정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건물 꼭대기까지 올라가야 하는가 하면 마을 곳곳에 있는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도와주기도 해야 합니다. 멀리 있는 목적지까지 가기 위해 말을 타고 드넓은 배경을 내달리고 독수리눈 아이콘이 뜬 건물 위에 올라가 맵을 작성하기도 합니다. 때로는 병사들과 전투를 해야 하기도 하고 감시의 눈을 피하기 위해 학자들과 함께 몰래 경비원의 눈을 속이고 목적지까지 가기도 합니다. 그렇게 정보를 얻어낸 후에는 비밀기지에 가서 암살 임무를 받아서 목표를 제거해야 합니다. 때로는 적의 함정에 걸리기도 하고 시내를 질주하는 추격신을 펼치기도 합니다. 물론 암살 직후 열심히 도망가는 것도 암살자의 주요 임무라면 임무이기도 합니다.
일단 지정된 건물 꼭대기에 올라가 동기화를 통해 지도를 생성하는 게 급선무. |
몰래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엿듣기도 해야 하고. |
정보를 얻기 위해 소매치기도 해야 한다. |
때로는 신나게 두들겨패서 입을 열게 하자. |
정보를 다 얻었으면 임무를 부여받고 암살 고고고. |
알테어의 행동은 사회적인 행위와 반사회적인 행위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쉽게 말하자면, 조용히 걸어가거나 남들과 소란을 일으키지 않고 사람을 피해 다니면 괜찮지만 이리저리 뛰어다니면서 남들과 부딪히거나 벽을 타고 이동하고 점프를 해대는 등의 눈에 튀는 행동을 하면 적의 눈에 찍히게 되고 결국은 다수의 병사들에 둘러싸여 전투를 해야 합니다.
거리를 걷다 보면 거지가 들러붙어 구걸하기도 하고(상상 이상으로 짜증 납니다) 미치광이가 나타나 앙탈을 부리기도 하니까 되도록이면 소란을 치우지 않고 조용히, 그리고 최대한 몰래 이동해서 정보를 얻어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사람 환장하게 만들 정도로 적의 인공지능이 탁월하게 좋은 편이 아니기 때문에 그리 빠듯하게 게임을 진행하는 느낌은 들지 않습니다.
한마디로 튀는 행위를 하면 쫓아온다는 이야기. |
나만의 공간을 제공하는 안락한 도피처. |
후반으로 갈수록 어려워지는 전투. |
학자들 사이에 끼어 무사통과. |
어쌔신 크리드는 많은 부분에서 칭찬이 아깝지 않은 게임입니다. 수준 높은 그래픽과 방대한 세계 표현, 독특한 게임 감각과 꽤 멋지게 연결되는 재미난 스토리, 중후한 음악과 박력 있는 전투 연출 등등 대부분의 요소가 평균점을 훨씬 상회하는 타이틀입니다. 하지만 애초에 스토리 자체가 계속해서 여러 명을 암살하는 내용이기에 반복적인 미션이 이어지며, 결국 처음과 끝이 동일한 게임이 되었다는 것이 중론입니다. 본 게임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정보를 얻어내는 과정 또한 뒤로 갈수록 더 어려워지고 요구하는 종류가 많아질 뿐 본질적인 내용 자체는 완전히 동일합니다.
같은 암살자를 다루는 게임인 히트맨 시리즈의 경우 어느 정도 제약이 있긴 하지만 목표물에 접근하는 방법이 꽤 다양하고 여러 루트가 존재할 수 있기 때문에 좀 더 다양한 시각으로 게임을 바라볼 수 있지만 어쌔신 크리드는 그런 부분을 거의 원천봉쇄하고 대신에 넓은 배경을 자유롭게 뛰어다닐 수 있는 다른 의미의 자유도에 집중한 느낌입니다. 임무 수행 방법에 좀 더 변화의 폭을 두거나 종류를 다양하게 했다면 훨씬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었겠지만 아쉽게도 이번 작품에서는 이 정도로 만족해야 할 듯합니다.
물론 어쌔신 크리드는 어쌔신 크리드만의 독특한 느낌을 높은 기술력으로 잘 살려냈기 때문에 어느 정도 경직된 느낌의 임무 수행에 숨통을 틔웠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반복적인 플레이가 이어진다고 해도 후반부로 갈수록 전투의 난이도가 높아지고 조사 임무 또한 꽤 복잡해지기 때문에 마냥 같은 행동만 되풀이하는 단순하고 지루한 게임이라고 치부할 수만은 없다는 게 개인적인 감상입니다(오히려 어쌔신 크리드에서 가장 문제 삼고 싶은 것은 클리어하고나서도 이벤트 스킵을 지원하지 않는다는 것).
결국 9명을 암살하기 위한 과정은 모두 같다는 이야기. |
그래도 전투 시스템 자체는 잘 만들어진 편. |
처음엔 재밌지만 후반엔 좀 지리해지는 신뢰의 도약. |
어쌔신 크리드는 음성/자막 완전 한글화를 거친 타이틀이고 한글화 자체는 생각보다 잘 되었습니다. 게임의 특성상 화면에 뿌려지는 자막을 읽는 게 아닌 사람들의 음성을 들어야 하는 진행방식 때문에 음성까지 한글화한 것은 무척이나 어울리는 선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성우분들의 연기도 무척 좋은 편이고 간만에 꽤 많은 분들이 참여해서 겹치기가 그다지 느껴지지 않은 풍성한 음성한글화가 이루어졌다는 것도 무척 반갑습니다. 하지만 가끔 더빙이 안 된 듯한 부분도 나오고 성우분들의 연기력과는 별개로 전혀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뜬금없는 연기는 조금 거슬리는 부분이기도 합니다(신나게 두들겨 맞고 정보를 토해낼 때도 엄청 멋진 목소리로 이야기해준다).
발매 전 많은 소리를 들었던 폰트지만 실제 게임을 플레이하다보면 의외로 무덤덤하게 넘어가는 느낌입니다. 스크린샷 하나만 보면 미연시 게임 폰트 같지만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게임 진행을 겪어보고 게임의 설정과 배경 등을 머릿속에 입력하고 나면 전혀 어색하지 않게 느껴집니다. 다만 개인적으로는 폰트보다는 번역이 좀 어색하게 느껴지곤 했습니다. 본 게임의 번역은 딱딱한 직역체의 문장이 많으며 몇몇 도전과제를 번역한 것은 원문의 내용과 전혀 상관없는 오역의 축제가 펼쳐집니다(신기하게도 한국인이 한글로 된 문장보다 그냥 영어로 된 문장을 보는 것이 훨씬 이해가 빠를 수도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줍니다).
오오 한글화. |
자막 없이도 진행되는 스토리. |
자막 폰트는 보다 보면 귀여워지기까지. |
원래 뜻은 100명의 적을 죽이는 동안 알테어가 죽지 않을 것. |
어쌔신 크리드는 무척 매력적인 게임입니다. 현실과 중세를 오가는 배경에 선조의 과거를 훑으며 탐험하는 신선한 설정, 감각적인 연출과 멋진 분위기의 그래픽, 거기에 음성/자막 완전 한글화라는 보너스까지 간만에 즐겁게 플레이할 수 있는 오리지널 타이틀의 등장이라는 감상입니다. 물론 단점도 많은 게임이지만 그러한 단점을 덮을 정도로 어쌔신 크리드만의 재미는 각별합니다. 기존 인기 시리즈의 후속작도 아닌, 오리지널 신작 타이틀이 이 정도의 완성도와 반응을 이끌어내는 것은 꽤 고무적인 현상이며, 높은 판매량은 단순히 미녀 제작자(…)로 인한 게 아니라는 것을 직접 플레이해보면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재미나게 잘 만들어진 게임입니다.
본디 3부작으로 기획된 시리즈이기에 제작사 측에서도 엔딩 부분에서 거리낌 없이 후속작 떡밥을 뿌리고 판매량 또한 좋은 편이니 어쌔신 크리드의 후속작 소식은 그리 멀지 않은 시점에 들려올 듯합니다. 다음에 등장할 후속작은 이번 작품에서 미처 다 구현하지 못한, 홍보 영상으로만 존재했던 다양한 액션을 제대로 구현하고 웃음거리가 되곤 하는 불안정한 부분을 잡아내서 더욱 쾌적하고 재미나게 플레이할 수 있는 후속작으로 발매되기를 기대해봅니다.
굽신 굽신. |
몰래 다가가 암살검으로 푸욱. |
그래픽도 멋지고 분위기 또한 좋은 편. |
다만 이벤트 스킵이 안 된다는 건 좀 가슴 아픈 부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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