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기차게 [신천마계], [신기환상], [스펙트럴 포스] 시리즈를 내놓으며 자신들만의 세계관을 구축하고 있는 아이디어 팩토리의 새로운 PSP용 타이틀 [이디스 메모리즈 -신천마계 GOC5-]가 지난 2월 15일 텍스트 한글화를 통해 정식발매되었습니다. 워낙에 짧은 기간 동안 다양하게 관련 작품을 내놓은 터라 이 게임이 그 게임인지 저 게임인지 정확하게 인식·분류하기가 힘들긴 하지만 꾸준히 한글화 작업을 거쳐 나왔기 때문에 한국 게이머에게는 좀 더 눈에 띄는 위치에 있는 시리즈이기도 합니다. [이디스 메모리즈]는 지난 2006년 11월 텍스트 한글화를 거쳐 정식발매되었던 [신천마계 GOC4]의 후속작으로, PS2로 발매되었던 작품을 다시 PSP로 이식한 타이틀입니다.
동영상을 사용해서 독특하게 연출한 타이틀 화면. |
역시나 아이디어 팩토리의 네버랜드 브랜드. |
[이디스 메모리즈]는 지하-지상-천상의 세 개로 나누어진 세계관을 기본으로 깔고 있으며, 각 장소에 따라 등장 캐릭터와 주인공, 시나리오 등이 달라지는 형식입니다. 덕분에 이전 시리즈보다 좀 더 플레이 시간도 길어지고 다양한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습니다. 지하 세계에서부터 게임이 시작되었던 PS2 버전과는 달리 PSP용 [이디스 메모리즈]는 플레이어가 처음 시작하는 장소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습니다(하지만 처음 플레이하는 게이머라면 그냥 마음 편하게 지하에서부터 시작하자).
등장 캐릭터 역시 원작의 캐릭터 외에 PSP 오리지널 캐릭터가 등장해서 단순히 PS2용 타이틀을 PSP로 옮긴 타이틀이라는 인상을 지우기 위해 애를 쓴 모습입니다. 게다가 게임의 배경 또한 기존 시리즈가 네버랜드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였던 것과 달리 [이디스 메모리즈]는 제목 그대로 이디스라는 섬을 배경으로 게임이 진행되는 등, 기존 시리즈와 동일한 토양에서 자라난 타이틀임에도 조금씩 차이를 두고 있습니다.
원하는 곳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다. |
간단히 말하자면 땅따먹기 게임. |
PSP용 [이디스 메모리즈]에서 추가된 캐릭터들(중 일부). |
게임의 장르는 판타지 시뮬레이션 RPG로, 국내 게이머들에게도 친숙한 [삼국지] 시리즈와 비슷한 플레이 감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월드맵, 필드맵, 전투맵 등으로 게임 화면이 구분되며, 플레이는 주로 필드맵 상에서 이루어집니다. 마치 보드 게임과도 같은 모습의 필드맵에서 플레이어 턴이 되면 이동과 전투를 비롯한 다양한 행동의 대부분을 소화해내야 합니다. [이디스 메모리즈]는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이기 때문에 단순히 이동-전투-승리로 끝나는 단순한 공식으로 게임을 풀어나가야 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템도 구입하고 파트너 무장과 병사, 포로들의 상태도 점검해야 하고 거점 탐색도 해야 하는 등 마음 편하게 간단히 시간 때우며 플레이할 수 있는 게임이 아니라 시스템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바탕으로 시간 들여 꼼꼼하게 플레이를 해야 하는 게임입니다.
필드맵은 보드 게임 같은 구성. |
월드맵은 대충 이런 느낌. |
보통 다른 게임들이 그러하듯 [이디스 메모리즈] 역시 적의 거점을 빼앗거나 전멸, 혹은 장수를 잡으면 승리를 하고 그 반대의 경우 패배하게 됩니다. 전투 방식은 플레이어가 능동적으로 개입하게 되는 완전 수동 방식이 아니라 세미 오토 방식으로, 전투 도중 명령을 내리거나 할 수는 있지만 명령을 내리고 나면 어디까지나 전투에 직접적인 개입은 들어가지 않는 형태입니다. 또한 여러 부대를 이끌고 한 부대를 두들기는 것이 아니라 한 부대와 한 부대가 맞부딪히는 방식으로 전투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이것저것 생각하지 않고 물량전으로 잔뜩 끌어서 적들을 초토화하는 것이 아니라 적군의 세력과 아군의 세력을 파악해서 전투를 벌여야 합니다. 여기에 지형 속성과 부대 진형, 시간대까지 전력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멍하니 버튼 연타로 게임을 진행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해집니다.
다양한 조건이 제시된다. |
적의 무장을 쓰러트리면 해당 전투에서 승리한다. |
부대 명령도 다양하게 내릴 수 있다. |
나름(…) 화려한 스킬 연출. |
이렇듯 전략 시뮬레이션이라는 장르 자체가 그리 녹록지 않은 장르이기 때문에 초기 진입장벽은 꽤 높은 편입니다. 단순히 시간 때울 요량으로 게임을 시작하게 되면 이것저것 커맨드는 많고 필드맵에 나와서 도대체 무슨 커맨드를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 어떻게 진행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 되기 때문에 처음에는 거부감이 드는 것도 사실이지만 어느 정도 시간을 들여서 게임에 익숙해지고 나면 오랜 시간 지루하지 않게 꾸준히 플레이할 수 있는 장르가 바로 전략 시뮬레이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디스 메모리즈]는 초반 튜토리얼에 많은 시간을 할애해서 게이머로 하여금 이 게임에 익숙해지도록 유도를 하고 있습니다(물론 그전에 재미를 못 느끼고 떠나버리는 경우가 있어서 문제지만). 특히 요즘처럼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알아서 다 챙겨주는 게임이 흔한 시대에는 [이디스 메모리즈]의 게임 방식이 그만큼 난해하게 다가오고 귀찮은 게임으로 치부되기 십상일 듯합니다.
여러 가지 건드려야 할 것은 많지만 바꿔 말하면 그만큼 오래도록 파고들 요소가 많다는 이야기도 된다. |
게임 외적인 요소로도 수집적인 요소가 즐비한데다 게임 자체가 그런 수집욕을 자극하기 위해 리스트를 따로 준비해두고 있기 때문에 장수를 모은다거나 하는 데에 많은 시간이 할애되기도 합니다. 게임 자체도 오랜 시간 플레이할 수 있고 이것저것 종류별로 따져가며 수집을 하는 요소도 준비되어 있기 때문에 한번 시작하면 게임 내적으로나 외적으로나 참으로 징하게 우려먹을 수 있는 타이틀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필연적으로 등장하게 되는 문제가 바로 로딩 문제인데, 오랜 시간 플레이해야 하고 수시로 플레이를 해야 하기 때문에 그만큼 다른 장르에 비해서 로딩 문제에 민감해질 수밖에 없을 겁니다. 전작이라 할 수 있는 [신천마계 GOC4]는 바로 이 부분에서 큰 문제점을 지니고 있었는데, 로딩이 굉장히 잦고 길다는 것입니다.
한두 시간 플레이하는 것도 아니고 전투 또한 한두 번 치르고 끝나는 게임이 아니기 때문에 로딩이 길면 길수록 게임에 질려서 플레이를 중단할 가능성이 커지는데, 다행히도 [이디스 메모리즈]는 전작과는 다르게 초기 기동 로딩을 제외하고는 플레이 도중의 로딩을 획기적으로 줄여서 [신천마계 GOC4]를 플레이 할 때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쾌적하게 플레이를 할 수 있습니다. 게임의 재미와는 상관없이 로딩 때문에 게임을 제대로 플레이할 수 없었던 유저라면 이번 작품은 로딩에 대해 큰 불만 없이 플레이할 수 있을 듯합니다.
갤러리 모드에서는 일러스트 감상이나 수집 리스트를 확인할 수 있다. |
전투하기가 겁이 났던 [신천마계 GOC4]. |
초기 로딩만 제외하면 엄청 쾌적해졌다. |
그래픽 또한 아기자기하면서도 세세한 부분까지 꽤 신경을 써서 보기 좋은 모습이며, 휴대용 타이틀임에도 꽤 큼직한 캐릭터가 화면을 가득 메워서 전투에 돌입하면 병사들이 우르르 달려가 싸우는 30 vs 30의 장쾌한 화면도 별 무리 없이 연출합니다. 배경도 3D로 제작되어서 깔끔한 모습을 보여주고 스킬을 사용할 때에도 컷인 연출을 곁들이며 다양한 연출을 보여주기 때문에 휴대용 타이틀임에도 꽉 차고 화려한 화면을 만들어냅니다. 병사들의 모습도 이것저것 다 생략하고 단순하게 묘사된 모습이 아니라 준비되어 있는 일러스트도 많고 전투 시의 그래픽 또한 다양한 모습을 연출해줍니다. 다수 대 다수의 대규모 전투에 나름 화려한 컷인 연출과 3D 이펙트, 전작보다 나아진 움직임 등은 휴대용 게임이면서도 보여줄 것은 이것저것 다 보여주는 느낌입니다.
아군이고 적군이고 한 화면에 우글우글. |
나름대로 화려한 연출을 여럿 집어넣었다. |
다만 깔끔한 그래픽을 바탕으로 멋진 캐릭터가 등장하는 게임임에도 게임 도중 볼 수 있는 몇몇 동영상은 그리 화질이 좋지 않습니다. 단순히 보기 안 좋은 수준이 아니라 자막이 들어간 동영상의 경우에는 자막을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뿌옇게 나오기 때문에 깔끔한 게임 그래픽과는 전혀 다른, 답답한 화면이 출력된다는 것이 아쉽습니다. 사실 동영상이라고 해도 움직임이 많고 화려한(=돈이 많이 들어간) 영상이 아니라 조금은 가난해 보이는 영상이긴 해도 화질만 좋았다면 그렇게 눈에 거슬리는 일은 없었겠지만 화질이 너무 안 좋으니 차라리 동영상이 아니라 일러스트를 이용한 정지 연출이 훨씬 낫지 않았을까라는 생각도 들 정도입니다(물론 한국판이 이렇게 된 이유에는 꽤 절절한 아픔이 있었다고 하지만…).
확실히 동영상의 화질은 불만족스럽다. |
[이디스 메모리즈]는 솔직히 어마어마한 자본력이 결집된 대작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타이틀입니다. 물론 대작이 아니라고 해서 그래픽의 질이 턱없이 떨어진다거나 시스템이 낡았다는 것이 아니라, 대작 게임과는 어느 정도 노선을 달리 한, 다시 말해 대작 타이틀 사이에서 틈새시장을 노리는 타이틀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장르 자체도 안정적으로 팬층을 형성하며 오랜 시간 플레이할 수 있는 시뮬레이션 장르이며 캐릭터 일러스트와 성우에도 꽤 신경을 써서 보기에도 좋고 듣기에도 좋은 게임이 되었습니다.
게다가 한글화 타이틀을 찾아보기 힘든 상황임에도 자막 한글화를 했기 때문에 한국 게이머에게 있어서 [이디스 메모리즈]는 그만큼 빛을 발하는 타이틀입니다. 뭐니뭐니해도 전작에서 아쉬운 부분으로 지적되었던 요소를 대부분 수정·보완해서 쾌적한 로딩과 빠른 게임 진행이 가능하게 된 점은 마땅히 할 게임이 없어서 선택하는 게임이 아니라 충분히 할만한 게임이 되었다는 것을 역설해주고 있습니다. [이디스 메모리즈]는 전작을 재미나게 플레이한 게이머에겐 더욱 재미난 게임이 될 것이며, 로딩 때문에 플레이를 포기한 게이머에겐 비로소 게임에 대해 호의적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 게임이 되어 돌아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다른 걸 다 떠나서 전작은 로딩 하나 때문에 다른 장점은 다 죽어서 눈에 제대로 들어오지도 않을 정도였으니).
장르가 장르이니만큼 한글화의 여부가 크게 작용하는 게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