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이나 영화가 후속편을 끊임없이 쏟아내다 어느 정도 한계를 느끼게 될 때, 혹은 식상하다는 팬들의 야유가 들려올 때쯤 제작사는 여지껏 나열해왔던 이야기의 기원으로 돌아가곤 합니다. 시리즈 최초 작품의 이야기보다 그 이전의 이야기를 다루는 것, 프리퀄이라고도 불리는 이러한 방식은 뻔한 후속작에서 벗어남과 동시에 아무도 몰랐던 과거의 이야기나 사건의 진상을 알고 싶은 팬들의 욕구를 자극하는 훌륭한 촉매제 작용을 해줍니다. 이번 리뷰 타이틀인 사일런트 힐 오리진 역시 1999년 PS1으로 발매되어 많은 인기를 끌었던 사일런트 힐의 이전 이야기를 담은 게임입니다.
국내에 정식 발매된 타이틀은 북미 버전과 마찬가지로 사일런트 힐 오리진이며, 우리나라보다 조금 늦게 발매(2007년 12월 6일 발매)되는 일본판의 타이틀은 사일런트 힐 제로입니다. 기원을 의미하는 오리진이라는 단어에 제로라는 말 그대로 사일런트 힐 1의 7년 전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는 사일런트 힐 오리진의 등장으로 인해 사일런트 힐 오리진 - 사일런트 힐 1 - 사일런트 힐 3로 이어지는 알레사 트릴로지(…) 스토리가 구축되었습니다.
특유의 분위기를 자아내는 타이틀 화면. |
이젠 트레이드 마크가 된 그 장면이 돌아왔다. |
사일런트 힐을 대표하는 이미지라고 하면 역시 무섭다는 그런 느낌이 아닌, 불쾌함에 가까운 기분 더러운 분위기가 먼저 떠오르게 됩니다. 사일런트 힐은 북미 쪽 제작진이 만들었기 때문에 발매 이전에는 우려를 사기도 했으나 시리즈 특유의 분위기를 잘 살려낸 편입니다. 기괴한 모습을 하고 불편한 걸음걸이로 다가오다 후려치면 바닥에서 부르르 떠는 크리처들, 이면 세계로 변했을 때는 절대로 발을 들이고 싶지 않은 꾸질한 배경은 이 게임이 사일런트 힐 시리즈의 최신작이라는 사실을 게이머에게 확실하게 주입시켜줍니다.
뭐야 이 괴물 같은 괴물은. |
아… 정말 싫다. |
그리고 그런 분위기를 게이머에게 직접 와 닿게 만들어주는 것이 멋진 BGM과 사운드 연출입니다. 어쩌면 사일런트 힐이라는 게임에서 시각적인 요소보다 게이머의 정신을 잡아두는 것은 시리즈 대대로 내려오는 으슥한 사운드 효과와 잊히지 않는 BGM일지도 모르겠습니다. 3편을 플레이해봤다면 마지막 헤더와 더글라스가 차 안에서 이야기를 나눌 때 흘러나오는 음악이 뇌리에 깊이 남았듯이 사일런트 힐 오리진의 도입부에서도 애절한 보컬 곡이 게임 시작부터 게이머를 묶어둡니다. 시종일관 신경을 긁는 라디오 소리는 분위기를 으슥하게 만들어줌과 동시에 게임에 직접적인 개입을 하는 요소로 사일런트 힐 시리즈를 다른 호러 게임과는 다른 차별점을 부여합니다.
이때 흘러나오는 음악이 너무 멋져버려요. |
라디오 잡음과 화면에 얽힌 노이즈는 오리진에서도 여전. |
제작진이 바뀐 것과 함께 그동안 PS1이나 PS2라는 거치형 콘솔에서 PSP라는 휴대용 기기로 발매 기종이 바뀌었음에도 콘솔용 사일런트 힐 시리즈의 분위기를 꽤 훌륭하게 묘사했습니다. 제법 볼만한 그래픽에 부드러운 움직임, 시리즈 특유의 노이즈 효과까지 분위기를 잘 살렸으며 게임을 진행하거나 이면 세계에 돌입할 때에도 로딩이 짧아서 지루하지 않게 게임을 플레이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사일런트 힐 시리즈에서 빼놓을 수 없는 손전등의 그림자 연출은 PSP로도 이 정도로 만들 수 있다는 것에 새삼 놀랄 정도로 자연스러운 연출을 보여줍니다. 처음 게임을 실행했을 때 로딩이 조금 오래 걸리는 것 외에는 별 불만이 없을 정도로 만족스러운 모습입니다.
설마 PSP로 가능할까 생각했던 그림자 연출. |
초기 로딩은 좀 걸리지만 그 외에는 쾌적한 편. |
아쉽지만 PSP 치고는 선방했다고 해야죠 뭐…. |
휴대용 게임임에도 시리즈의 외적 요소는 물론 내적인 요소도 충실히 재현했습니다. 3인칭 시점의 배경을 나 홀로 쓸쓸히 찐득한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듯한 이면 세계를 오가며 퍼즐을 풀고, 소박한 타격감이 끝내주는 갖은 무기를 이용한 액션 등 사일런트 힐의 전통적인 진행 방식은 여전합니다. 시리즈 최초로 맨손 격투 요소를 도입하고 무기의 내구도 개념이 생겨서 무기를 많이 사용하면 호쾌하게 부서지기도 하는 등 새로운 요소가 추가되었지만 프로듀서가 인터뷰를 통해 획기적으로 바뀐 부분이 없다는 게 획기적이라고 언급할 만큼(근데 솔직히 뭔 소린지는 모르겠음) 사일런트 힐 특유의 요소를 그대로 이어갑니다.
초반부 게이머를 반기는 인체 퍼즐. |
으무아ㅓ물ㄴ아ㅓ& #47358;대꿰엑. |
상쾌한 타격감을 선사하는 맨손 격투. |
이제 이 시스템은 빠질 수 없는 요소가 된 건가. |
사일런트 힐 1편의 7년 전 이야기. 말 그대로 그 이전의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사일런트 힐 1이나 3에 대한 암시는 있지만 트래비스라는 주인공의 존재 때문에 그 이상은 당연히 던져주지 않습니다. 어디까지나 오리진의 주인공은 과거에 끔찍했던 경험을 겪었던 트래비스이며, 다른 시리즈에서는 볼 수 없었던 그가 과연 1편과 3편에 어떤 식으로 영향을 끼쳤는지를 따라가는 게 오리진입니다. 오히려 1편과 3편을 하고 오리진에 흥미를 느낀다기 보다 오리진을 하고 1편과 3편에 흥미를 가질 사람이 많을 듯한 스토리이기도 합니다.
음 음. 어디서 많이 본 듯하네요. |
이때 생각나는 건 \'헉, 꿈이었구나!\' |
시리즈 3편과 4편이 자막 한글화를 거쳐 발매되었기 때문에 사일런트 힐 오리진 역시 한글화를 하지 않을까 기대했었지만 아쉽게도 한글화 작업 없이 영문판 베이스로 발매되었습니다. 그리 어려운 수준은 아니지만 멋져버리는 스토리로 유명한 사일런트 힐 시리즈인만큼 메모지의 내용이나 캐릭터들의 대사를 익숙하지 않은 영어로 보기엔 조금 아쉽습니다. 특히 3편의 주인공인 혜자양의 수줍은 명대사 "아가리 닥쳐, 미친년아!"를 기억하는 팬이라면 사일런트 힐의 스토리를 남의 나라말로 즐겨야 사실이 더욱 가슴 아프게 다가올 듯합니다. 다만 북미 버전 베이스 발매였기 때문에 일본보다 훨씬 먼저 플레이해볼 수 있다는 건 불행 중 다행.
푸쳐핸섭 푸쳐핸섭. |
전설로 남은 혜자양의 일갈이었습니다. |
이면 세계와 현실 세계가 따로 분리되어 있어서 이 부분 끝내면 다음 부분으로 가는 식이 아니라 현실 세계와 이면 세계를 계속 오가면서 진행해야 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목표 지점이나 이면 세계의 통로 등 몇몇 중요한 요소를 자동으로 체크해주는 지도 기능은 상당히 편리한 기능입니다(어떤 의미로는 유저 편의 시스템의 극치). 로드와는 별개로 컨티뉴 메뉴가 있지만 임시 세이브 기능은 아닌, 가장 최근에 세이브를 했던 파일을 자동으로 로드해주는 기능입니다. 하지만 세이브 장소가 한정되어 있다고는 해도 어차피 PSP 자체의 슬립 기능을 이용해서 언제든지 중단할 수 있는 것도 PSP용 사일런트 힐만의 장점이라면 장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편하긴 하지만 길 찾기는 여전히 고욕이다. |
세이브 포인트(?). |
얼핏 게임이 빠듯해 보이긴 합니다. 처음 플레이를 하면 무기의 수는 넘쳐나는 편이지만 체력 회복제의 수가 이전 시리즈보다 적은 편이어서 부담없이 지르는 스타일은 지양해야 합니다. 전투 난이도가 그리 높은 편은 아니고 손전등을 끄고 다니면 눈에 띄지 않게 잘 피해 다닐 수 있다는 것은 본 게임에서 굳이 적과의 전투에 목을 맬 필요가 없다는 것을 방증해줍니다. 묵직한 타격감이 아깝긴 하지만 사실 플레이어가 신경 써야 할 부분은 전투보다는 퍼즐 풀기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집중해서 길을 찾아야 하고 스쳐 지나갈 수 있는 작은 아이템을 눈여겨봐야 합니다(사실 길 찾기도 이전 시리즈에 비하면 그나마 많이 줄어든 편입니다).
무기가 많은 편인데다 특전 무기까지 입수하면 그야말로. |
밟아주는 거 잊지 말고. |
사일런트 힐이 초창기 바이오 해저드 시리즈의 아류작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도 첫인상을 제외하곤 전혀 다른 게임이었는데다 바이오 해저드와는 전혀 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게임 내내 답답하게 만드는 화면 노이즈, 제한된 앵글과 제한된 시야, 크리처의 등장과 함께 커지는 라디오 잡음, 미쳐버린 듯한 세계관과 구역질이 날 듯한 디자인은 바이오 해저드와는 또 다른 재미를 안겨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부분을 PSP용 사일런트 오리진은 휴대용 게임임에도 무리 없이 잘 살려냈고, 그것만으로도 이 게임은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다 좋을 수는 없는지 게임의 스케일이 그리 크지 않은 편입니다.니다. 딱히 난이도 구별도 없어서 2회차부터는 플레이 타임이 급격히 줄어드는 데다 특전 무기도 강력해서 더욱 게임이 짧게 느껴집니다. 그래도 엔딩이 3개 존재하고 무기나 복장, 손전등 모양 등 특전 요소도 상당히 많은 편이기 때문에 짧은 플레이 타임을 어느 정도 보완했습니다. 엑스트라 옵션에서는 핏빛 발자국 연출을 선택할 수 있으며 화면 노이즈 효과도 끌 수 있기 때문에 이전과는 다른 분위기의 게임을 즐길 수 있습니다.
누구야 너. |
손전등 센스가 너무 멋지다. |
엑스트라 옵션에서 노이즈 효과를 끌 수도 있다. 너무 깨끗하니 좀 어색. |
사일런트 힐 오리진의 전체적인 인상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다면, 얼핏 시각적인 연출도 좋은데다 짜임새가 있어 보이지만 막상 플레이를 해보면 조금씩 부족한 부분이 눈에 띕니다. 모든 부분에 조금씩 브레이크를 밟은 느낌이라 해도 좋을 듯합니다. 스토리는 큰 충격적인 부분 없이 흘러가며, 위에서도 언급했듯 몇몇 새로운 시스템을 추가했지만 액션 자체가 그리 중요한 게임은 아닙니다. 퍼즐 또한 너무 눈에 뻔히 보이는 수준이어서 쉽긴 하지만 형식적인 것처럼 느껴집니다. 플레이 시간도 조금 짧은 편이며 공포라는 면을 따져봐도 3편의 거울방과 같은 충격적인 연출을 기대하긴 힘들어 보입니다. 실망스러운 작품은 아니나 어딘가 부족한, 갈증이 나는 느낌입니다.
액션 게임으로 분류되지만 시리즈 대대로 기교 있는 액션은 존재하지 않으며, 액션이 게임의 중심인 시리즈도 아니다. |
단순한 바이오 해저드의 아류작이라는 첫인상과는 달리 그 내용물은 실로 무시무시했던 시리즈 첫 작품 사일런트 힐 1에서부터 PS2로 이어지는 세 편의 후속 시리즈와 과거 GBA로 발매되었던 사운드 노벨, 그리고 제법 원작의 묘미를 잘 살린 영화까지 사일런트 힐 시리즈는 짧은 시간 동안 상당히 인상적인 족적을 남겨왔습니다. 그리고 그 시리즈의 최신작이 PSP로 발매되기까지 많은 이야기를 낳기도 했습니다. 사일런트 힐 1편의 리메이크라는 이야기에서부터 바이오 해저드 4의 시스템을 따라갔던 초기 개발 버전, 그리고 결국 북미 쪽 제작사가 개발한 것은 시리즈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옴과 동시에 기원을 다루는 사일런트 힐 오리진이었습니다.
이전 시리즈를 두루 섭렵해서 사일런트 힐과 의식, 알레사나 다른 인문들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게이머에게는 뭔가 미처 다 끝내지 못한 느낌이 드는 아쉬움은 있겠지만 PSP라는 휴대용 기기라는 제약 속에서 사일런트 힐 오리진은 놀라울 정도로 제 역할을 해주며, 그래픽과 사운드 부분은 휴대용 게임으로는 최고의 수준을 자랑하는 타이틀이기도 합니다. 아쉬운 부분은 있지만 그것이 게임의 완성도를 낮추는 단점은 아니며, 사일런트 힐 오리진을 통해 처음 시리즈를 접하는 게이머에게 본 작품은 이전 작품을 찾아서 플레이하고 싶은 기분이 들게 해주는, 동기 부여적인 존재로는 충분한 역할을 해주는 타이틀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일런트 힐 오리진의 시작. |
이게 다 달리아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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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 22.10.27 15:5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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