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에 그가 있었다
일본 게임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인 [이스(YS)]는 1987년 세상에 처음 선보인 이후, 거의 2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여러 작품이 나온 장수 시리즈 중 하나이다. 하지만 긴 시리즈의 게임임에도 불구하고 [이스]는 한결같이 한 사람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으니 그 인물은 게임의 주인공이자 붉은머리가 인상적인 모험가 \'아돌 크리스틴\'. 16세부터 63세로 사망할 때 까지 에우로페 대륙 여기저기를 여행하면서 그의 발길 닿은 동네마다 묵묵히 마을 문제들을 해결해 주고, 그 결과 숱한 마을 처자들과 염문을 쌓았다는 전설의 사나이 아돌. 보통 RPG의 서사적인 서술과 달리 개인의 일상에 초점이 맞춘 세밀한 시선이 돋보인 스토리 라인과 몸통 박치기라는 독특한 공격법으로 일본 3대 RPG라는 별칭이 붙은 [이스]는 꽤나 우여곡절을 많이 겪었던 게임이기도 하다.
1) 게임 [이스] 이야기(YS ~ YS6)
대개 [이스]를 이야기할 때 1편과 2편을 그 중심에 두고 나머지 작품들을 외전 형식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크다. 그도 그럴 것이 [이스]와 [이스2]는 이야기가 이어질 뿐 아니라, 제작사인 팔콤도 2편을 끝으로 이야기를 완결 지으려 했었다 하니까. 하지만 2편으로 하기엔 못내 아쉬운 구석이 많아서 시리즈로 이어진 3편부터 6편까지는 파란만장이라 불러도 어색함이 없을 것이다.
3편은 무엇보다 이전 시리즈와 전혀 다른 횡 스크롤 액션 RPG로 급격한 변화를 해서 [이스]의 팬 층이 갈라지는 결과를 낳았던 문제작. 그렇지만 4편만큼 이례적인 모습은 아니었을 것이다. 4편은 팔콤이 직접 제작에 나선 것이 아닌 원안과 스토리만 제공하고 PC엔진용 [이스4 - Dawn of YS]는 \'허드슨\' 에서, 수퍼패미컴(SFC)용 [이스4 - Mask of sun]은 \'통킹 하우스\' 에서 제작되어 [이스4]란 이름 아래 서로 다른 두 타이틀이 존재해서 다소 이례적인 모습을 띄는데, SFC와 PC엔진으로 제작된 [이스]는 단순히 서로에게 이식이 아닌 각각 하드웨어에서 다른 모습으로 제작되어 비교의 대상이 되었다. 압도적인 퀄리티를 자랑했던 PC엔진의 [이스4]가 더 좋은 평을 얻었지만 원작과 다른 시간대를 구성하는 등 스토리에 수정이 있어서 아쉽게도 정식 시리즈가 아닌 외전으로 분리된다. SFC의 [이스4]도 물론 좋은 완성도와 [이스]의 정통 후계자라는 지위를 가졌지만 PC엔진과의 격차로 인해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였다.
이후 팔콤이 직접 콘솔용으로 제작한(이전까지는 PC가 우선 발매되고 컨버전 되는 형식이었다) [이스5]는 [이스]의 운명을 바꿀 뻔 했던 무척 중요한 작품으로 기억된다. [이스]의 진한 개성이 묻어나던 몸통 박치기를 버리고 직접 공격하는 검술액션을 넣었던 최초의 작품으로, [이스]의 새로운 도약을 염두에 둔 작품인건 확실하지만 액션의 추가는 어이없게도 난이도를 매우 하향시키는 결과를 낳아 유저들의 질타를 피할 수 없었던 작품이다(이후 Expert라는 난이도 조절 버전이 따로 발매되었지만 같은 작품의 패치버전을 두 개 구입해줄 만큼 너그러운 유저는 그리 많지 않았다). 난이도가 낮아진 이유는 과도기적인 액션 추가 때문이었다. 풀어 설명하자면, [이스]의 오랜 전통, 몸통 박치기를 동작이 있는 액션으로 바꾸면서 몸통 박치기를 구성하던 요소 중 히트 백이 그대로 검술에 남아 있게 되었다. 즉 몬스터를 한 번이라도 맞추면 적은 뒤로 물러나게 되고 그럴 때마다 계속해서 연타하면 아무리 강한 몬스터도 쉽게 잡을 수 있었다. 게다가 방어라는 요소까지 곁들여 아돌은 완전 무적상태가 될 수 있어 전작들 보다 전투가 시시해지고 버튼 연타라는 피곤함마저 더해져, 결국 쉽게 흥미를 잃어버리는 결과를 낳았다.
5편의 실패는 팔콤에게 큰 상처였는지 [이스5]의 후사(後事)는 그로부터 8년이 지나서야 정해졌고, 그 긴 시간 사이에는 여러 기종으로 [이스]의 리메이크나 리뉴얼 등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그러던 중 [이스]의 1편과 2편의 리메이크 작 [이스 이터널(1998)] 시리즈가 탄생하면서 [이스]의 부활을 앞당기는 견인차 역할이 되었고 마침내 오랜 침묵 끝에 [이스 - 나피쉬팀의 상자(YS - The Ark of Napishtim, 이하 [이스6])가 PC를 통해 발매되었는데, 이번 [이스6]는 새로운 [이스]의 부활과 어정쩡했던 모습에서 벗어나 온전한 액션에 대한 자신감이 서려 있는 복합적인 의미를 가진 작품이었다.
2) 대한민국에서의 YS
이것은 어디까지나 일본의 사정. 국내의 경우 세계에 유래 없는 독특한 [이스]가 하나 존재하는데, 팔콤에서 라이센스를 얻어 \'만트라\' 가 직접 제작한 정통시리즈에도 외전에도 들어갈 수 없는 [이스2 스페셜]이 그것. 오리지널 유저들에게 눈 밖에 난 [이스 2 스페셜]은 스토리도 정식 [이스2]와 [이스 OVA - 천공의 섬]을 섞어 놓은 것 위에 \'단군의 탑\', \'만트라 개발실\' 등 억지스러운 장치들로 코믹함이 묻어나는 세계관이었고, 게다가 전통적인 전투스타일인 몸통 박치기를 검을 휘두르는 공격으로 제작해 [이스]라고 하기엔 너무도 개성이 강한 게임이었다. 하지만 적어도 대한민국에 정식으로 기록된 최초의 [이스] 시리즈이며, 적어도 [이스]라는 게임을 소개한 그의 업적까진 부정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PC로는 [이스2 스페셜]과 [이스 이터널] 시리즈 밖에 정식 발매되지 않았지만, [영웅전설], [브랜디쉬], [밴티지 마스터] 시리즈 등 완성도 높은 팔콤의 게임들이 정식 발매되어 국내 게이머가 팔콤 게임에 강한 신뢰를 가지기 충분하였고, 이런 신뢰가 유명한 \'쯔바이 사건\' 의 원동력이었으리라(※ 주1). 그리고 콘솔로는 처음 국내에 정식 발매된 [이스6] 역시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물론 선행 발매된 PC판을 먼저 플레이한 유저들도 있겠지만, 플레이스테이션(이하 PS)2 버전의 [이스6]는 원작을 특별한 변화를 주지 않고 순수하게 보강만 하여 완성된 퀄리티와 다양한 모드를 가진 완전판이라 부를 수 있는 작품이었다.
※ 주1 : 팔콤의 RPG인 [쯔바이]를 정식발매하기 위해 총 894명이 서명하여 한글화 정식발매를 해낸 사건을 말한다. 유저들이 원하면 할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었던 사건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이런 의지에도 불구하고 출시 된지 하루 만에 와레즈를 통해 체계적으로 퍼져 나가 전체 판매량에 악영향을 미쳐 팔콤이 한국시장을 부정적으로 보는 결과를 가져온 사건이기도 했다.
이것이 완전판 [이스6]
1) 강렬하고 화사한 2D & 3D 혼용체
게이머에게 [이스]를 물어 본다면, 누구든 아름다운 2D 비주얼이 먼저 떠오를 것이다. 그만큼 2D의 고전미와 색채미를 잘 아는 게임이 [이스]이며, 팬들이 가장 사랑하던 [이스] 역시 2D 그래픽의 진수를 보여주던 작품들이었다. 그렇기에 [이스6]의 3D 도입은 이례적이면서 과감한 도전이라 말할 수도 있는 부분이다. 특히 PS2용 [이스6]는 PC 때 보다 3D의 비중을 높이고 있는 점이 눈에 띠는데, 완전 풀 3D CG 무비로 제작된 오프닝과 이벤트들은 분명 새로운 느낌을 전달하는데 모자람이 없다. 특히 PS2용의 오프닝은 멋진 헤비메탈 사운드에 셀 애니메이션이 더해져 강렬하게 끌어당기는 매력을 준 PC 버전의 오프닝과 달리, 왜 아돌이 쿠아테라 섬에 쓰러져 있었는지를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차근차근 설명해 주고 있다. 게다가 시리즈 최초로 3D CG로 제작된 아돌의 모습은 무척 낯설긴 하지만 나름대로 신선함을 주긴 충분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발매를 담당한 코나미는 [이스]의 오랜 전통, \'아돌이 말을 하지 않는다\' 를 너무 강조한 나머지 연출 상 엄청나게 어색한 모습을 만들어 3D의 완성도를 바라보기 전에 반감을 사게 한다.
오프닝의 풀 3D와는 달리 [이스6]의 전반적인 그래픽은 어디까지나 현대적인 감각에 어울리는 2D 그래픽을 만들기 위한 3D, 다시 말해 입체감을 더해 주기 위한 3D일 뿐 3D가 전면부로 돌출되어 있진 않고 있다. 때문에 그 어떤 2D 그래픽 보다 강렬한 색상과 화사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는 것이 [이스6]의 특징이며 전반적으로 PC 원작보다 줌 - 아웃(Zoom - out)된 카메라 앵글로 바뀌어 맵이 넓어졌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마지막으로 캐릭터의 디자인이 다소 바뀐 점 역시 눈에 띄는 대목 중 하나. 아돌의 경우 3등신 대두형에서 적절히 몸매가 잡힌 5등신으로 바뀌었고, 히로인 \'오르하\' 와 \'이샤\' 를 비롯한 NPC들도 볼륨 있는 몸매를 가꾸는데 성공하였다. 하지만 줌 - 아웃 상태가 되면서 캐릭터의 크기가 작아져, 전투의 박진감은 PC에 비해 좀 떨어지는 부정적인 면도 있다.
2) 아름다운 사운드 & 음성 지원
[이스] 하면 그래픽 보다는 음악이 더욱 더 강한 인상으로 남는 게임 중 하나다. 이번 작품 역시 게임 O.S.T. 명반에 들어 갈 만큼 아름다운 사운드로 구성되어 있다. 강렬한 기타루프와 빠른 비트의 헤비메탈 사운드의 전투 음악은 보스 전에서 매우 흥겹게 전투를 즐길 수 있게 긴장감을 잘 조성해 주고 있으며, 각 마을마다 주어진 아름다운 뉴에이지 풍의 BGM은 고된 전투에 지친 아돌과 플레이어에게 편안한 휴식을 안겨주기 충분하다. 그렇지만 [이스6]의 사운드 중 가장 인상 깊은 것은 BGM 보다는 타격음이 아닐까 한다. [이스6]의 타격음은 다양한 것이 아니라 검의 타격음 하나로 되어 있지만, 적을 벨 때 그 느낌을 강렬하게 잘 전달하고 있어 전투가 지루함이 아닌 중독으로 바뀌게 하는 매력을 가지고 있다.
기술적으로 돌비 프로로직2를 지원하는 것 이외에는 새로운 추가 곡 등 변화 없이 PC판과 동일한 사운드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약간 불만이긴 하지만, 음성지원이 그 불만을 잠재우기 충분하였다. 아돌을 제외한 모든 등장인물들이 각각의 목소리로 말을 하는 것은 그만큼 이야기에 빠져 들게 하는 매력적인 부분이다. 물론 기대했던 한글화가 아니라 일본어로 떠드는 것이 아쉽긴 하지만...
자신감 넘친 [이스6]의 액션
1. RPG 요소를 줄인 액션 RPG 시스템
1) 심플한 인터페이스
전통적인 [이스]의 심플한 인터페이스를 채용하고 있으며, 캐릭터의 성장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무기, 갑옷, 액세서리 등은 이벤트를 통해서 얻는데 비교적 입수방법이 간단하다. 특히 회복제와 갑옷, 액세서리로 단순하게 분리되는 상품 체제는 배경이 되는 카난 섬의 열악한 경제상황을 보여주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며, 타 RPG에서 느끼는 아이템의 입수나 무기의 속성 때문에 장착을 고민하는 일 같은 것은 없다. 때문에 RPG의 장르 특성상 여러 설정과 아이템의 쓰임새 등을 익혀야 하는 것이 매우 간소화되어 누구나 쉽게 적응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2) 빠른 성장과 빠른 스토리 텔링
스토리 텔링(story telling) 역시 아돌의 성장 정도에 따라 해결할 수 있는 이벤트가 순차적으로 나타나는 지극히 평범한 성장형 구조와 선(線)형 구조로 되어 있어 이야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이해도가 빠른 특징을 가지고 있고 이것이 바로 [이스]만의 몰입감이며 즐거움일 것이다. 또한 이야기는 현재이지만 전체적인 [이스]로 바라보면 아돌의 과거이기 때문에 모든 일은 정해진 수순으로 흐른다는 것이다. 때문에 선택이 존재하지만 이것이 이야기를 뒤바꿀 만한 반전을 가지지 못하고 그저 "배고픈데 밥을 먹을래? 햄버거를 먹을래?" 처럼 어떤 것을 선택해도 결과가 같기에 플레이어의 간섭이 없는 것과 같아진다.
무엇보다 [이스6]는 그 어떤 [이스] 보다 스케일이 작아졌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무대가 쿠라에타 섬이란 작은 공간에서 벌어지는 모험이라 등장인물도 적은 편이고 다양한 마을이나 이벤트가 준비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허전한 구석이 많으며, 무엇보다 인물들 간의 갈등이 현저하게 줄어들어 스토리를 건조하게 만든다는 점이 눈에 띈다. 히로인인 \'오르하\' 나 \'이샤\' 와 아돌의 대화를 들어보면, 아돌과 오르하의 관계가 이전 시리즈의 히로인들과의 관계와는 조금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들의 관계는 간단히 \'기브 앤 테이크(Give & Take)\' 로 아돌이 오르하 어머니의 유품인 거울조각을 가져다 줄 때 마다 기뻐하면서 남자의 조건 없는 호의에 항상 대가를 지불하듯 아이템을 내민다. 분명 공명정대하고 명명백백한 세상이긴 하지만 플레이어가 원하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니다. 플레이어는 아돌과 오르하의 은은한 로맨스가 보고 싶은 것이다! 이방인에 지나지 않는 아돌과 종족을 초월한 사랑을 그리기엔 [이스] 팬들의 영원한 히로인 \'리리아(2편의 히로인이며 PC엔진판 [이스4]에서 아돌과의 미래가 담긴 엔딩이 준비되어 있었다)\' 의 존재가 큰 것이었을까? 아돌과 오르하의 관계는 이야기가 끝이 날 때까지 이 이상 선을 넘는 일은 없다.
또한 전반부에 등장인물 간의 갈등이 아돌의 영웅적인 행동 하나로 봄 햇살에 눈 녹아내리듯 해결되고 이를 바탕으로 레이싱을 하듯 빠르게 전개되는 이야기는 RPG로는 매력이 많이 떨어지는 부분이다. 이야기의 흐름만큼이나 빠른 레벨업은 두 가지 의미를 던져주고 있는데, 보통 빠른 성장이 가능한 RPG들은 스토리에 비중이 크거나 전투 자체를 유저들이 더 흥미 있게 하길 유도하는 모습이다. 특히 일본식 선형 RPG 구조에선 이벤트와 이벤트 사이에는 꼭 적당한 수준의 레벨업을 필수로 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레벨업이 빠르다면 당연 이야기 진행속도가 빨라지고 전체적으로 플레이 타임이 많이 줄어들게 되어 게임이 짧다는 인식이 강해진다.
3) 액션성을 강조하기 위한 다양한 모드
마지막으로 [이스6]에 수록된 다양한 모드는 [이스6]가 새로운 액션을 강조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PS2용에 수록된 치트 모드는 영어자막과 PC버전의 오프닝 선택 이외 PC에서 1주차 클리어 후에 선택할 수 있었던 여러 특전들을 게임 시작부터 활용할 수 있다. 이런 모드들 중 눈에 띄는 것은 바로 난이도 선택과 타임어택 모드, 마지막으로 랭킹제이다. 여타 RPG에서는 보기 드문 형태의 난이도 선택과 누가 빨리 엔딩에 이를 수 있느냐를 경쟁하는 타임어택 모드의 탑재는 꽤 이례적인 발상이다. 게다가 클리어 후 개인마다 생성되는 패스워드를 코나미 홈페이지에 등록하면 자신의 세계 순위를 알 수 있다는 것은 [이스6]가 액션을 얼마나 강조하는지 쉽게 알 수 있게 하는 대목. 직선형 RPG인 [이스6]에서는 이미 정해져 있는 이벤트를 거치지 않고서는 엔딩에 이를 수 없다. 그렇다면 이야기의 전개에 필요한 시간은 모두가 같게 정해져 있다고 할 수 있으며 플레이 타임을 줄이려면 당연 전투를 빠르게 진행해야 한다. 다시 말해 전투를 얼마나 효과적으로 빠르게 해결해 가느냐가 높은 순위을 위한 핵심이 되며, 그러기 위해선 [이스6]의 전투를 완벽하게 익히지 않으면 안된다.
2. 그러므로 주목할 필요가 있는 [이스6]의 전투 시스템
RPG로써 매력을 감소시키면서 까지 강조한 [이스6]의 액션인데 이전 작품들을 보면 오히려 단순한 몸통 박치기에 더 큰 지지를 보냈고, 새로운 액션을 보였던 3편과 5편은 좋은 성과를 얻지 못했다. 또한 리메이크 작품들의 액션도 그러하니 팔콤에게는 고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몸통 박치기에 대한 지지와 사랑이 강하다 할지라도 몸통 박치기로 돌아간다는 누울 곳만 보고 다릴 뻗겠다는 안이한 생각은 하지 않았다. 다행히 팔콤은 5편에서 실패한 액션을 시대에 맞게 개량하는 작업을 통해 움직임을 살린 액션 RPG로 일단 거듭나는데 성공하였다고 본다. 이는 단순히 액션성을 강조하기 위함만이 아닌 오랜 시간 동안 [이스]를 사랑한 유저들까지 포용할 수 있는 매력을 가진 전투시스템을 갖추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스6]는 어떤 해법으로 전투를 풀어냈을까? 크게 3가지인 타격감, 심플한 조작, 그리고 웨폰 체인지 시스템으로 새롭게 전투를 구성하였다. 특별한 커맨드 없이 간단한 버튼 연타로 가능한 검술, 레버 중립이라는 거슬리는 커맨드가 있지만 조금만 연습하면 쉽게 쓸 수 있는 대시점프나 대시 어택은 몸통 박치기와 같은 간편한 조작감을 연상시켜주는 21세기의 액션 RPG에는 어울리지 않는 고전미가 서려있다. 그리고 가드와 히트 백을 없애고, 단순하지만 타격감이 남다른 3단 치기를 기본으로 아돌의 새로운 무기가 된 세 자루의 검인 리발트(바람), 브리란테(불), 에릭실(번개)을 이용한 속성공격과 검마다 주어진 필살기를 이용해 이전 보다 다양한 패턴의 공격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은 웨폰 체인지 시스템이다. 이전과 달리 속성이 있는 세 자루의 검을 언제든지 교체하면서 전투를 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단순히 무기를 바꿀 수 있는 점 보다 더 중요한 요소를 가지고 있다. 바로 마법 검의 사용인데, 이전 [이스] 시리즈에도 좀 약한 편이긴 했지만 \'공격 + 보조 계열\' 마법이 존재했었다. 그런데 [이스6]에서는 회복 등의 보조 마법은 아이템이 대신하고, 오로지 공격마법만 존재하고 그것마저 검술과 합체시켜 버리는 새로운 시스템을 완성하였다. 마법의 사용에 있어서도 MP 개념이 아닌 한 번 사용하고 시간이 지나면 다시 사용할 수 있는 방식을 채택하여 자연스런 횟수 제한과 전투의 전략성까지 부가시키는 긍정적인 효과를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현대 게임의 추세에 비추어 봤을 때 이 변화의 크기는 미미하다 말할 수 있다. 이미 많은 액션 RPG에선 보다 극적인 액션성을 부여하기 위해서 대전 액션 게임과 같은 커맨드 입력이 가능하거나 3인 이상 파티를 운영하는 등 다양한 모습으로 변화를 추구하고 있으니까. 물론 많은 유저들이 편하게 게임을 즐길 수 있다는 장점이 되지만, 눈높이가 올라간 유저들의 입맛을 맞추기엔 그 변화의 속도가 느리다는 것이 못내 아쉽다.
"할머니, 그 다음엔 정령을 만나나요?"
창가를 붉게 물들이는 저녁노을을 등지고 앉은 노부인 곁으로 옹기종기 모여앉아 장난치는 아이들...이순을 바라보는 뾰족한 귀와 꼬리를 가진 라다족의 무녀 오르하는 은은한 미소로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천천히 미소 짓던 입으로 이야기를 꺼내놓기 시작하자 장난치던 아이들은 이제 두 눈에 오르하만을 채워 넣으며 이야기에 집중한다. 아이들은 듣는 건 그녀가 젊은 시절 만난 붉은 머리 용사의 모험담. 그의 용기와 열정을 라다족의 장래를 이끌어 갈 아이들에게 들려주고 있었다.
필자는 [이스6]를 끝내고 먼 미래의 모습을 상상해 보면서 [이스]의 본 이야기도 재밌지만 아돌이 60이 되었을 때 그와 인연을 맺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상상해 보는 것도 꽤 재밌는 구석이 있었다. 인생은 무수한 단편들이 이어져지는 장편소설과 같다고 한다면 [이스]의 매력은 바로 본 작에서 끝나버린 이야기의 뒤를 상상하는 것에 있지 않을까. 아돌과 오르하, 쿠레아타 섬의 이야기는 끝이 났어도 그의 남은 모험은 계속될 것이며 이를 기대하는 유저들은 할머니의 구연동화에 턱을 괴고 바라보는 아이의 눈망울과 같으리라.
분명 [이스]는 [이스6]를 통해 한 단계 더 진보하였다. 고전미와 현대적인 감각이 적절히 어우러진 완성도는 칭찬해도 좋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만은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이스]는 이야기로 승부해야 하는 게임이라는 것. [이스]만의 고유한 액션을 만든 자신감을 강조하려다 정작 플레이어를 끌어들어야 하는 부분이 너무 짧아 과유불급한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생긴다. 유저들은 아돌의 모험담을 즐기기 위해 이 게임을 선택했지 새로운 액션을 즐기기 위해서 이 게임을 선택하진 않았다는 걸 결코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물론 스토리가 아주 짧은 것은 아니지만 줄리엣과 한창 사랑을 속삭이려 할 때, 동이 트는 소리에 황급히 떠나야 하는 로미오의 복잡한 심경을 플레이어에게 남기니 현명한 모습은 아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