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틀 | 씨 오브 시브즈 | 발매일 | 2018년 3월 20일 |
제작사 | 레어 / 마이크로소프트 | 장르 | 액션 어드벤처 |
기종 | XONE / PC(윈도우 10) | 등급 | 15세 이용가 |
언어 | 영문 | 작성자 | Eclaire |
비디오 게임이란 근본적으로 역할놀이입니다. RPG(Role Playing Game)라는 단어가 지금은 특정 장르를 지칭하는 말로 굳어졌지만, 가상의 세계를 무대로 고유한 역할을 부여받아 현실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여러 가지 일들을 해볼 수 있다는 점에서 모든 비디오 게임은 결국 RPG의 범주에 속한다고 봐도 무방할 것입니다. 특히 서구의 유저들이 동양권 유저들에 비해 이런 인식이 강한 편인데, 일례로 서양 쪽 MMORPG에는 동양에선 찾아볼 수 없는 ‘RP(Role Playing)’라는 룰을 따르는 서버가 따로 존재하기도 합니다. 캐릭터의 종족이나 클래스의 범주를 넘어선, 게임 속 세계관을 살아가는 한 명의 주체적인 존재로서 자신의 역할을 ‘연기’하는 방식입니다. 말 한마디를 하더라도 NPC들의 대사마냥 세계관에 어울리는 어투가 강제되고, 파티를 모집할 때는 특정 클래스를 구한다는 말로 광고할 것이 아니라 악의 무리를 무찌르러 갈 용사들을 모집한다는 표현을 써야 하죠.
이러한 역할놀이를 재미나게 즐길 수 있는 이유는 역설적이게도 그것이 현실적인 개연성과는 거리가 멀다는 사실에서 기인합니다. 게임이 추구하는 궁극적인 목표는 결국 ‘재미’이고 현실의 고단함은 재미와는 거리가 멀기 때문에 대부분의 게임들은 복잡하고 귀찮은 과정을 간소화함으로써 재미의 정수만을 추구합니다. 이를테면 판타지 게임 속의 마법은 별다른 조건 없이 버튼 하나로 간편하게 시전할 수 있고, FPS 게임에서는 아무리 많은 총알을 발사해도 탄이 걸리거나 총열이 휘는 등의 사태는 결코 벌어지지 않습니다. 이러한 비디오 게임 특유의 편의적인 요소는 주어진 역할에 집중하면서 게임을 재미있게 즐길 수 있도록 하는 원동력이 됩니다. 하지만 그러한 전통적인 비디오 게임의 규칙을 뒤집고 새로운 방식의 역할놀이를 선보인 작품이 하나 있습니다. 본 리뷰에서 다룰 ‘씨 오브 시브즈(이하 SOT)’가 바로 그것입니다.
'SOT'는 너른 바다 위에 몇 개의 섬만이 둥둥 떠 있는 가상의 해역을 무대로 한 명의 해적이 되어 모험을 떠나는 게임입니다. 배를 띄울 때마다 목숨을 걸어야 했던 현실의 대항해시대마냥 시리어스한 배경을 내세운 작품은 아니고, 그보다는 만화나 영화 등에서 주로 표현되는 ‘낭만적인 해적’의 왜곡된 이미지를 차용하고 있습니다. 그래픽과 사운드 등 게임을 구성하는 외적인 요소들 역시 이런 점을 잘 반영하고 있어서 게임을 하다 보면 한 편의 애니메이션 속에 들어와 있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다만, 윈도우 10과 Xbox One으로만 발매된 마이크로소프트 스튜디오의 독점작임에도 불구하고 현지화가 되지 않았다는 점은 한국 유저 입장에서 매우 아쉽게 느껴집니다.
일단 외양적인 부분부터 살펴보자면, 'SOT'는 딱히 그래픽이 좋은 게임은 아닙니다. 캐릭터들은 하나같이 못생긴데다가 소위 말하는 ‘양키 센스’로 디자인되어 있어서 미형 캐릭터를 선호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선 게임을 시작하자마자 불쾌해질지도 모릅니다. 게임에 등장하는 배경과 사물의 모델링 역시 퀄리티가 썩 높다고는 할 수 없고 카툰풍의 텍스쳐는 다소 밋밋하다는 느낌마저 듭니다. 하지만 개성적인 콘셉트와 미술적인 요소 역시 그래픽을 평가하는 중요한 기준이라는 점을 놓고 보면, 'SOT'의 그래픽은 긍정적으로 볼만한 부분도 있습니다. 더욱이 시시각각 변하는 수면과 파도의 묘사는 지금까지 나온 그 어떠한 비디오 게임보다 뛰어나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입니다.
리얼하게 표현된 바다는 단순한 비주얼적인 배경이 아니라 게임플레이에 매우 중요한 영향을 미칩니다. 일반적인 샌드박스, 혹은 오픈 월드 게임들이 점, 혹은 선의 형태로 플레이어와 세계 간의 상호작용을 구현했다면, 'SOT'의 바다는 면의 형태로 구현된 상호작용입니다. 실시간으로 반영되는 날씨와 파도의 자연스러운 변화 덕분에 배를 몰고 바다를 돌아다니는 것만으로도 잔잔한 재미와 운치를 느낄 수 있을 정도입니다. 너른 해역을 무대로 하는 멀티플레이 게임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상당히 인상적인 결과물입니다. 'SOT'는 비록 최초의 해상전 멀티플레이 게임은 아니지만, 현실적인 날씨 변화와 현실적인 파도 묘사, 그리고 현실적인 범선의 움직임이라는 3가지 요소를 서로 자연스럽게 연결한 최초의 게임이라는 사실만큼은 결코 부정할 수 없을 겁니다.
현실적인 환경 묘사만큼이나 게임 플레이 방식도 현실 지향적인 면모를 보입니다. 배를 바다에 띄우려면 닻을 올리고 돛을 펼친 후 방향타를 원하는 방향으로 잡는 3단계를 반드시 거쳐야 합니다. 방향타를 조작하는 동안에는 해도를 펼쳐볼 수 없기에 침로를 지정해줄 사람도 따로 있어야 합니다. 함포를 쏘려면 한정된 개수의 포탄을 일일이 장전 후 발사해야 하고 그마저도 정확한 탄착 위치를 알려주지 않기에 약간의 감에 의존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혹여나 적의 공격을 받아 배에 구멍이 나면 가라앉기 전에 판자로 빨리 구멍을 막아야 하며, 새어 들어온 물은 바가지로 일일이 퍼내야 합니다. 돛이 3개나 되는 갤리온을 타면 해야 할 일이 한층 많아지고 그만큼 많은 사람이 필요하죠.
일반적인 RP 게임이 자신의 캐릭터를 ‘연기’하는 방식이라면, 'SOT'는 실재하는 행동의 영역으로까지 역할의 범위를 확장합니다. 지금까지의 비디오 게임에서는 불편한 요소로 치부되어왔던 금기적인 디테일을 적극적으로 도입함으로써 게임에 접속하는 플레이어들을 자연스레 해적의 일원으로 만들고 있는 것이죠. 넓게 보면 'SOT'에서의 게임플레이도 탱커, 힐러, 딜러로 나뉘는 일반적인 MMORPG 속 역할군의 범주에서 벗어나진 않지만,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SOT'에선 주어진 역할을 거부하는 것도 일종의 재미 요소로 작용한다는 것입니다.
서로 간에 합이 잘 맞지 않으면 스트레스만 유발하기 쉬운 여타 파티게임과 달리, 'SOT'에서는 의도적인 방해든 의도치 않은 미숙함이든 트롤링 그 자체가 하나의 콘텐츠가 될 수 있습니다. 누군가가 트롤링을 해도 항해는 계속되고 죽음에 대한 페널티가 적어서 아는 사람들끼리 파티 채팅으로 떠들면서 웃고 즐기기엔 최적의 환경입니다. 조작에 손이 많이 가는 범선과 바다라는 미지의 환경은 이러한 게임 스타일에 상당히 긍정적인 시너지로 작용합니다. 그리고 해적은 근본적으로 악당입니다. 플레이어에게 주어진 역할은 ‘의무’가 아니라 ‘선택’일 뿐이죠. 선장의 말을 고분고분 잘 들을 것인지, 혹은 사사건건 방해하고 행패를 부릴 것인지 고르는 것은 어디까지나 플레이어의 몫입니다. 그 과정에서 플레이어 본인의 의도와 상관없이 상당히 능동적인 형태의 해적 RP 플레이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SOT' 특유의 아날로그적인 게임 시스템 역시도 본작이 의도하는 바를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SOT'에는 평판을 체크할 수 있는 현황판과 아이템 선택 휠, 체력 바 정도를 제외하면 별다른 그래픽 UI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날씨는 어떤지, 발사한 포탄은 어디로 날아갈 것인지, 파도의 흐름이 어떤지 예측할 수 없고 따라서 이 게임에서 100% 완벽한 파티플레이라는 것은 애초에 성립할 수가 없습니다. 게임의 진행 방식도 마찬가지여서 마을에서 주어지는 3종류의 평판 퀘스트를 제외한 모든 콘텐츠는 무작위로 발생합니다. 일반적인 MMO 게임들마냥 명확한 목표를 정한 뒤 파티를 모으는 것이 아니라, 일단 무작정 배를 띄운 뒤 의도치 않게 발생하는 여러 변수를 즐기는 방식이죠. 어찌 보면 ‘모험’이라는 단어의 진정한 의미를 비디오 게임의 세상에 제대로 구현한 거의 최초의 사례일 수도 있겠습니다.
이렇게만 놓고 보면 'SOT'는 정말 혁신적인 게임, 더 나아가 위대한 게임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멀티플레이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고 싶어 하는 마이크로소프트 스튜디오가 추구하는 미래를 엿볼 수 있는 선례이기도 하고, 지금껏 나온 여러 게임들과 전혀 다른 방향성을 택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단 도전 그 자체는 칭찬할만합니다. 하지만 좋은 의도가 반드시 결과를 정당화하진 않습니다. 현재의 'SOT'는 전통적인 비디오 게임의 가치의 상당 부분을 무시하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필연적인 공백을 효과적으로 채우지 못했습니다. 지금부터는 이 문제에 대해 세부적으로 짚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 번째 문제는 절대적으로 부족한 콘텐츠의 깊이와 분량입니다. 앞서 언급한 대로 'SOT'는 플레이어 자신이 목표를 정하고 수행하는 게임이 아니라 항해의 과정에서 의도치 않게 발생하는 변수를 즐기는 모험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재미를 느끼려면, 그러한 ‘변수’가 매우 다양해야 합니다. 그런데 현재로선 마을에서 받을 수 있는 반복적인 퀘스트를 제외하면 게임 내에서 즐길 수 있는 콘텐츠는 해골섬 공략, 크라켄 사냥, 난파선 탐색, 유리병에 숨겨진 퀘스트 수행, 적대적인 해적과의 교전 등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로 적습니다. 사실 이 퀘스트들도 동선이 약간 더 복잡하고 난이도가 조금 높을 뿐이지 근본적인 플레이 양상은 평판 퀘스트들과 크게 다를 바가 없습니다.
퀘스트 수행 방식이 지나치게 일차원적이라는 점도 문제입니다. 대부분의 퀘스트는 지도 혹은 의뢰서를 보고 땅속에 묻힌 보물 상자를 캐거나 물자를 구하는 등의 방식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복잡한 절차나 추리를 요하는 경우가 많지 않아서 몇 번 하다 보면 금방 질리게 됩니다. 평판 레벨이 올라가면 퀘스트 난이도도 덩달아 오르긴 하는데, 그냥 더 많은 보물 상자를 찾아오거나 더 많은 해골을 때려잡으라는 식으로 바뀌는지라 별다른 의미가 없습니다. 그나마 조금 난이도 있는 콘텐츠인 해골섬 공략은 몰려오는 해골 웨이브를 막아내기만 하면 되는 상당히 단순무식한 방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결국 개발진이 마련한 콘텐츠는 금방 생명력을 잃고 나중에는 파티원들끼리 서로 트롤링하고 놀거나 적대적인 해적을 만나 노략질하는 것이 최종적인 목표가 됩니다.
그리고 게임 내 모든 퀘스트의 발생 빈도는 결국 ‘랜덤’이라는 사실에 주목해야 합니다. 제 경우엔 항해를 하면서 끝내 크라켄을 발견하지 못했고 병 속에 숨겨진 랜덤 퀘스트를 수행한 횟수도 손에 꼽습니다. 사실 게임 내 콘텐츠가 지금보다 조금만 더 많았더라면, 임무 수행 방식이 좀 더 창의적이었더라면 무작위적인 퀘스트 발생 빈도는 큰 문제가 아니었을 겁니다. 그런데 유저가 직접 선택해서 플레이할 수 있는 평판 퀘스트는 플레이 방식이 지나치게 평면적이다 보니 그나마 랜덤 퀘스트라도 좀 자주 발생했으면 좋겠다는 아쉬움이 드는 것이죠. 무작위적인 상황 발생은 'SOT'의 장점이 될 수도 있었으나, 현재로선 부족한 콘텐츠 때문에 도리어 단점으로 작용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두 번째 문제는 지속적으로 게임을 플레이할 동기를 부여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SOT'에서 게임플레이로 얻을 수 있는 보상은 오로지 돈뿐입니다. 그런데 돈을 아무리 많이 벌어도 구입할 수 있는 것은 복장이나 무기, 배의 디자인을 바꾸는 치장 아이템이 전부이고 플레이어의 능력치로 연결되는 부분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허름한 옷을 입은 초짜 해적과 화려하게 차려입은 베테랑 해적의 능력치가 똑같다는 것은 좋게 보면 신규 유저 유입에는 상당히 유리한 조건이 될 수 있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게임을 오래 즐길 이유가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저는 이 부분이야말로, 'SOT'가 범한 가장 큰 실책이라고 봅니다. 일례로 MMO 장르의 대표적인 성공사례인 ‘데스티니’의 경우, 출시 직후엔 부족한 콘텐츠 문제로 크게 비판받긴 했지만 체계적인 아이템 파밍 시스템과 슈팅 그 자체의 손맛에 힘입어 상업적으로는 큰 성공을 거둔 바 있습니다. 더 강한 캐릭터를 만들고자 하는 욕망은 장르를 막론하고 게임플레이에 동기를 부여하는 가장 쉽고도 가까운 방법입니다. 물론 'SOT'는 데스티니와 달리 PVP가 무작위적인 조건으로 발생하는 게임이기에 지나친 능력치 격차는 게임 밸런스에 방해가 될 수 있는 것도 엄연한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어떠한 대안도 마련해놓지 않은 채 치장 아이템만으로 만족하라고 하는 것은 지속성과 성취감이 핵심인 멀티플레이 전용 게임을 만드는 개발사로서는 직무유기에 가까운 행태입니다.
세 번째 문제는 게임의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상황이 너무 조건부라는 것입니다. 앞서 언급한 대로 'SOT'는 RP 플레이가 핵심적인 요소이기에 혼자서 할 때보다는 2인으로, 2인보다는 3인, 4인으로 플레이할 때 참맛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음성채팅으로 소통할 수 있는 지인과 함께 플레이할 때와 매치메이킹으로 플레이할 때의 온도 차이가 너무 극명합니다. 일단 매치메이킹으로 만난 사람들이 음성채팅을 열어두는 경우가 너무 적고, 그마저도 외국인이 많은 게임 환경의 특성상 한국인의 입장에서 재미를 느끼기엔 상당히 불리한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혼자 즐겨도 별다른 문제가 없는 대다수의 멀티플레이 게임들과 달리, 'SOT'는 함께 놀 친구가 없다면 굳이 플레이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문제는 본작에서 제공하는 콘텐츠가 모조리 파티플레이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에 발생합니다. 'SOT'는 기본적으로 컨트롤이 어려운 게임이 아니고 게임을 하는데 있어서 복잡한 지식이나 이해가 요구되지도 않습니다. 튜토리얼이 없다 보니 처음 접하는 사람의 입장에선 적응하기 다소 어렵긴 한데 막상 기본기를 익히고 나면 이보다 쉬운 게임이 없습니다. 반대로 말하면, 개인플레이에서 깊이를 느낄 수 있는 부분이 사실상 전무하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무기의 종류가 다양한 것도 아니고 슈팅 및 근접 교전 등의 전투 시스템에 깊이가 있는 것도 아니며 그렇다고 여타 플레이어들과 차별화할 수 있는 고차원적인 항해술이 존재하는 것도 아닙니다. 손발이 잘 맞는 크루가 모이면 분명 재미있는 게임이지만 그렇지 않을 때를 위한 대안이 전혀 마련되어 있지 않은 것입니다.
엄밀히 말하면 지인들끼리 모여서 웃고 떠들면서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게임이 'SOT' 하나뿐인 것도 아닙니다. 넓은 맵과 상호작용을 제공하는 게임으로는 GTA 시리즈도 있고 요즘 최고의 인기를 구가 중인 배틀로얄 장르 역시도 파티플레이를 할 때 더 큰 재미를 느낄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떠한 보상도 없고 게임플레이의 깊이도 부족한 'SOT'를 굳이 즐길 이유가 있을까요? 개인플레이에서도 충분한 재미를 느낄 수 있고 한국인과도 쉽게 매칭되는 PUBG 같은 게임조차도 얼마나 합이 잘 맞는 팀원을 만나느냐에 따라 게임의 질이 크게 달라지는 판국에, 'SOT'가 택한 파티플레이 지향적인 플레이 방식은 분명한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리뷰 초입에 줄기차게 언급한 것처럼 'SOT'에도 분명 장점이 있으며, 혁신적인 시도가 돋보이는 게임인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기술적, 시스템적인 부분에서 그렇다는 것이고 정작 플레이하는 유저의 입장에선 크게 와 닿지 않는 장점들이라는 것이 문제입니다. 비디오 게임은 파티원의 유무와 상관없이 내가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방식으로 플레이하더라도 최소한의 재미를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80-90년대의 레트로 게임들은 친구와 함께 TV 앞에 앉아 두 개의 컨트롤러로 놀면 한층 즐겁게 플레이할 수 있었지만, 그 게임들이 1인 플레이를 한다고 해서 가치가 떨어졌던 것은 아닙니다. 반면 몇 세대나 앞선 기술로 만들어진 'SOT'는 손발이 착착 들어맞는 파티원들과 함께 완벽한 RP 플레이를 하더라도 다른 게임들과 ‘차별화된 경험’을 느낄 수 있을 뿐이지, 다른 게임을 뛰어넘는 ‘재미’가 느껴지진 않습니다.
결국 'SOT'가 안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는 한마디로 지나치게 미래지향적이라는 것입니다. 미래지향적이라는 단어는 듣기엔 좋을지 몰라도 반드시 긍정적인 뜻만을 담고 있지는 않습니다. 몇몇 샌드박스형 게임들을 제외하면, 지금까지의 비디오 게임들은 대부분 개발진이 닦아둔 의도적인 토대 위에서만 놀 수 있는 방식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반면 'SOT'는 결과보다는 과정을, 의도된 콘텐츠보다는 자율적인 콘텐츠를, 정적인 환경보다는 동적인 환경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기존의 비디오 게임이 미끄럼틀이나 시소 등의 놀이기구라면, 'SOT'는 마치 놀이터의 모래밭과도 같습니다. 창의력을 키우기엔 모래밭에서 두꺼비집이나 수로를 만드는 것이 더 좋을지 몰라도, 대부분의 아이들은 미끄럼틀 타는 것을 더 좋아합니다. 그편이 더 손쉽게 스릴과 재미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죠.
그리고 개발진이 추구하는 방향성에 공감하기에는 기술적으로도, 그리고 게이머라는 집단 그 자체로도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습니다. 이 게임을 즐기려면 완전히 개방된 형태의 사회적 소통이 필요하지만 정작 라이브 음성 채팅 기능은 소통을 원하는 사람에게만 열려 있으며, 플레이어의 문화적 성향과 사용 언어, 선호하는 게임 방식 등을 완벽하게 파악해서 그에 대응하는 플레이어를 매칭해주는 고차원적인 인공지능이 등장하지 않는 한 솔로 플레이어의 외로움은 앞으로도 계속될 겁니다. 도전적인 시도도 좋지만 좀 더 안전한 방식을 택했더라면, 뛰어난 기술력으로 이룩한 현실적인 바다와 자연스러운 항해의 토대 위에 전통적인 방식의 아이템 파밍이나 던전 레이드 등의 개인적인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콘텐츠를 도입했다면 훨씬 재미난 게임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드는 대목이죠.
그럼에도 저는 'SOT'에 아주 약간의 기대는 남겨놓고 있습니다. 단순한 멀티플레이 게임이 아닌 일종의 소셜 게임으로서 모든 플레이어의 취향을 포용할 수 없다는 명확한 한계가 있기는 하나, 그래도 콘텐츠의 깊이와 분량만 충분했다면 특정 취향 유저들에게는 최고의 게임이 될 수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동양권 유저들에겐 큰 호응을 얻지 못했지만 역할놀이를 즐기는 서구권에서는 평단의 혹평과는 별개로 일반 게이머들 사이에서는 긍정적인 반응도 적지 않게 나오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렇기에 저는 'SOT'를 ‘가능성의 게임’이라 부르고 싶습니다. 그러나 가능성‘이’ 있는 게임과, 가능성‘만’ 있는 게임은 어감이 완전히 다릅니다. 그리고 'SOT'는 현재로서는 가능성‘만’ 있는 게임입니다. 지속적인 업데이트가 예정되어 있긴 하지만 발매 당일에 59.99달러라는 비싼 가치를 지불한 유저들의 기대를 충족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고, 얼리 액세스라는 비아냥을 들어도 할 말이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 과정에서 잃은 신뢰를 되찾는 것도 쉽지 않은 길일 겁니다. 새로운 것에 대한 집착보다는, 유저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행보를 통해 지금의 부정적인 평가가 언젠가 반전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편집: 김영훈 기자 (grazzy@ruliwe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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