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제1집 광주시 동구 산수 3동 1295 고추밭
제2집 광주시 동구 지산 2동 70812 수수밭
제3집 광주시 동구 산수 2동 51635 들깨밭
일년 반 동안
세 권의 동인지를 내면서
베짱이는 세 번의 이사를 했다
허름하고 낡은 세 권의 동인지에는
가난한 여름 베짱이 한 마리가
물어다 모은 스물 몇 편의 시가 들어 있고
눈 오던 수수밭 이삿길에
그해 담근 햇장 항아리를 깨뜨리고
어머니는 눈 위에 번지는 먹장빛
얼굴로 한 시대의 서러운
슬픔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눈이여 저문 거리에 내쫓긴
죽은 듯 고요한 몇 마리의 겨울 정물을
흔적도 없이 덮어주는 뜨거운 사랑이여
월세 삼만원에 힘에 부쳐
들깨밭으로 집을 옮기던 가을
식구들은 논둑 위에 앉아 삶은 옥수수를 먹고
베짱이는 무거워진 이삿짐을 덜기 위해
희망이 적힌 몇 권의 낡은 시작노트를
강물 속에 구겨넣었다.
사평역에서
곽재구, 창비시선 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