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여름
그해 여름 산수동 오거리에 새교회가 서고부터
사람들은 잃었던 빛과 희망을 꿈꾸었다
다섯 갈래 여섯 갈래 찢겨진 마음들도 다시 돌아와
조용히 기도하고 찬송하며 당신의 그날이 올 것을 꿈꾸
었다
장중하게 쌓아올린 높은 벽과 은빛 십자가에
지나간 시절의 어둠과 고통을 함께 묻었다
땀과 먼지로 뒤범벅된 행상에서 돌아와 바라보면
몇 층인지도 모를 은빛의 교회는 우뚝 서 있고
사람들은 이 거리에 번져나갈 녹슬지 않은
절대의 푸른 종소리를 생각했다
그 여름내 희망을 간직한 사람들은 행복하였고
은빛의 십자가는 더욱 은빛으로 높이 치솟았다
구름과 새와 치솟는 햇살이 사람들의 가슴속
깊은 꿈과 하늘 높은 곳에서 만났다
그러나 끝내 사람들은 불안하였다
그 긴 여름 고단한 저녁상에 놓인
한 그릇의 밥과 열무김치 앞에서 사람들은
당신의 옛 주인이 산상과 호수와 초원에서 자유롭게
희망을 나누어주던 옛 추억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그해 여름 산수동 오거리에 육중하고 튼튼한 교회가 서
고부터
오거리의 양떼들은 울 안의 양떼와 울 밖의 양떼로 갈라
서게 되었다
아무도 울 밖의 양떼를 양떼라 부르지 않았다.
사평역에서
곽재구, 창비시선 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