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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익-. 삐익-.'
기계음이 희미하게 몽롱한 귓가에 들려온다.
-내가 뭘 하고 있었지….
의식이 희미해졌다가 다시 돌아왔다가 반복하는 가운데, 주변에 도란거리는 말소리가 들려왔다.
“…건 …수 없는…”
“…체… …분열 기관….”
“…덤 존스가… 해서는… 되는… 물을….”
무언가 알 수 없는 대화가 들려오지만, 제대로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저 깨질 듯이 아픈 머리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눈을 천천히 돌려, 자신이 어떤 상황에 있는지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 되었을 뿐.
그리고 시선이 움직여지지 않는 몸뚱이를 향한 순간-.
-어…?
동공이 쪼그라들었다.
숨이 막히며, 뇌리에서 상황의 이해를 거부하기 시작했다.
-어…
“째서….”
가슴부터, 아랫배까지 처참하게 ‘해체’당한 채 내장기관이 마치 전시물이라도 되는 것 같이 주렁주렁 꺼내져 있는 이성을 마비시키는 광경. 그것이 자신의 것이 아니기를 바랬지만, 목 아래부터 느껴지는 형언할 수 없는 이 기괴한 감각은 그녀의 몸이 ‘해부’당해 있음을 명확히 알려오고 있었다.
‘덜컹, 덜컹!’
“.....!!!‘
그리고 그 순간, 팔과 다리가 경련을 일으키듯 뒤틀리며 쇳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입이 벌어지며, 소리 없는 비명이 울리기 시작했다.
“…성 상태로 돌입, 마취제 더 투입해!”
“안 됩니다! 마취가 안 듣습니다!”
이제 점점 더 선명하게 들려오는 목소리는 그녀의 의식이 점점 더 또렷해지고 있음을 알려오고 있었다.
“아아, 아아아아악!!!”
그것을 증명하듯, 이제는 소리 없는 비명이 아니라 명확히 실체를 가진 비명이 그녀의 입에서 날카롭게 울렸다. 그와 동시에 사지가 요동치면서 이번엔 입이 아니라 등에서 빛의 줄기가 뻗어 나오다가 이내 강렬한 충격파로 변하여 사방으로 요동치며 흩어졌다.
-키이잉, 키이이잉….
’쿠르르르릉…!‘
푸르고 하얀 그 실체를 띈 충격파를 휘말린 실내는 일순간 진동했지만,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끝없이 삑삑거리던 소리와 깜빡거리던 빛들이 일순간에 사라졌다. 전자기기들 곳곳에서 푸른색 불꽃과 하얀색 불꽃이 튀어 오르며 작은 소용돌이가 만들어진 후 빛의 줄기로 빨려 들어가는 가운데, 상식을 벗어난 형상을 본 이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생체 발광 계측 개시, 물질의 에너지화 확인!”
“계측기기들이 전부 작동을 멈추고 있습니다! 이대로는 진행할 수 없습니다!”
“맙소사….”
순식간에 모든 전기 에너지를 빨아들이다 못해, 몸에 닿은 물체들마저 융해시켜 흡수해버렸음에도 불구하고 점점 밀려오는 고통은 어찌할 수 없었다. 통제할 수 없는 격통으로 인해 고개가 좌우로 요동쳐서 주변의 광경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 가운데, 시야가 점점 푸르고, 하얗게 변하기 시작했다.
“쿨럭! 끄르르륵…!!!”
목이 꺾일 정도의 극심한 통증에 시야가 끊기고, 이성이 마비되면서 입에서 붉은 거품이 끓어올랐다.
대체 왜?
무엇을 잘못해서?
묻고 싶다, 자신이 무엇을 잘 못 했는지 묻고 싶다.
“아파, 아파…!”
이 이유를 알 수 없는 고통에서 해방되고 싶다.
“아버님… 아버님… 제가 무언가를 잘못했나요…?”
묶인 채로 몸부림친 탓일까, 더는 비명을 내지를 여력도 사라진 그녀는 갈라져 있던 몸에서 튄 피가 얼굴에 튀면서 시야가 점점 붉게 변해가며 그리운 사람을 찾으며 손을 허우적거렸다.
-끼기기긱…!
단지 그것만으로도 다시금 주변의 사물들이 진동하며, 물건들이 고열과 함께 녹아내리기 시작했지만, 그녀로서는 알 수 없었다.
’쾅!‘
“세상에, 레아…! 이 인간 말종 놈들, 대체 무슨 짓을 하는 거야!!!”
급격히 밀려오는 엄청난 고통으로 다시금 의식이 멀어지기 시작하는 가운데, 몸이 떨릴 정도의 진동이 들려오면서 익숙한 여성의 경악에 찬 절규가 들려왔지만, 천천히 감기기 시작한 눈과 닫히기 시작한 귀는 이미 그 목소리가 누구인지 아는 것을 거부하고 있었다.
“…바 존스 님, …기에… …되는…!”
“…닥쳐, …먹을 …레기 …식들아! …장 …하지 …으면 …부 …여버릴 …야!”
천천히 암전되는 의식 속에서, 주변을 뒤엎어버리다 못해 아수라장으로 만드는 것만 같은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오는 가운데 ’오베로니아 레아‘ 프로토타입의 기억은 다시 신기루처럼 흩어졌다.
-
“윽….”
욱신거리는 가슴의 통증에 ‘둥지’의 한가운데에서 조용히 잠들어 있던 베타-13, 아니 오베로니아 레아 프로토타입은 고통에 신음하는 소리를 내며 천천히 눈을 떴다.
-또 그 꿈이구나.
주변을 붉은색과 푸른색, 두 가지 색으로 뒤섞고 있던 비단과도 같은 질감의 ‘둥지’의 내벽이 마치 꽃이 개화하듯 스르륵 열려 펼쳐지면서 다소 탁한 에메랄드빛 눈으로 드러나기 시작한 하늘을 쳐다보고 있던 레아는 그리운 단어를 중얼거렸다.
“아버님…….”
이제 기억 속에서만 존재하는 이를 갈구하듯이 부른 그녀는 이내 둥지의 형태에서 벗어나, 자신의 등으로 돌아온 거대한 빛의 날개를 하늘을 향해 뻗었다.
-대체 전 무슨 죄를 지었던 걸까요…?
강대한 돌풍이 순식간에 주변에 휘몰아치며, 하늘에 우울함이 느껴지는 먹구름이 드리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와 함께, 대지가 격렬히 진동하며 사방에 엄청난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것을 순백의 옷으로 받아내던 오베로니아 레아 프로토타입은 잠시 말없이 서 있다가, 이내 날갯짓을 하며 하늘을 향해 솟구쳐 올랐다.
“저는, 당신이 없는 이 세상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 걸까요…?”
임시로 거처하기 위해 만들었던, 거대한 날개를 꽃잎처럼 사용해 만들었던 둥지가 거두어지자 드러난 도시의 폐허를 내려다보며 씁쓸한 듯이 중얼거린 레아 프로토타입은 목표의식도 잃은 듯, 하늘을 잠시 푸르게 물들였다가 이내 무언가에 홀린 것만 같이 휘청거리는 궤적을 남기며 어딘가로 나아갔다.
장장 40년의 긴 잠에서 깨어난 요정의 여제는 익숙하지만, 동시에 너무나 고독하고 낯선 세상에 내던져 진 이방인 신세가 되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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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엘리 라마 사박다니?
한동안 혐성력이 부족했다고 반성하고 있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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