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링크
“그래서 언니가 가끔 저나 하치코한테도 말을 않고 어딘가로 나가던 거였군요. 주인님께 잘 보이려고 무리하는 건 줄 알았는데, 처음부터 두 분이 짜신 거였다니. 뭔가 배신당한 기분입니다.”
도서실.
어느새 펜리르의 옆에 온 페로도 사령관이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이야기를 들으면서 어느 정도 지금껏 보였던 리리스의 행보가 이해가 되는 듯이 작게 한탄 섞인 한숨을 내뱉으며 감상을 말했다. 그것을 쭉 듣고 있던 하치코는 문득 뭔가 이해가 안 가는 게 생긴 듯, 고개를 갸우뚱했다.
“어라, 주인님. 그럼 궁금한 게 있는데요.”
“뭐가 이해가 안 가니?”
“그, 리리스 언니가 주인님의 키 카드를 가져갔을 때 있잖아요. 그것도 언니랑 이야기하신 건가요?”
하치코의 순진무구하지만 예리한 질문에 순간 사령관은 굳어버렸다. 그리고 얼굴을 감싸 쥐며 한숨을 내쉬었다. 소완의 도시락 소동의 발단이 되었던 일이 떠오르자 그 자초지종도 알고 있는 머릿속이 착잡해졌다. 그리고 이내 입을 열었다.
“그 일 말이구나. 아니, 그건 리리스의 독단이었어. 소완을 홀로 끌어내려는 함정을 파기 위한 독단.”
“엥. 뭐라고용.”
“예?”
뜻밖의 말에 페로와 하치코가 눈을 동그랗게 뜨는 가운데, 전혀 이야기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펜리르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저기, 주인님. 이 이야기가 대체 소완이랑 언니 사이의 일이랑 무슨 관계가 있는 거야? 내가 모르는 게 잔뜩 있다는 거라는 건 알겠는데…….”
마치 소외당하는 기분을 느끼는 듯, 귀도 천천히 내려가고 있는 그녀를 보면서 잠시 눈을 감았던 그는 이내 컴패니언의 동물 자매들을 바라봤다.
“내가 리리스한테 뒤를 맡기게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너희 언니는 임무 때문에 잠깐 외부로 나갔고, 그 사이에 페로와 하치코는 기억하고 있을, 소완이 와서 저지른 소동이 일어나게 됐지. 이거까진 펜리르가 딱히 따라가지 못해도 괜찮아.”
그렇게 말한 후, 페로가 함교에서 가져와 줬던 도시락을 살짝 쳐다본 사령관은 한숨을 내쉬었다.
“문제는 리리스가 돌아온 후에 일어났어. 지금도 상상하기 싫네, 결국 소완의 자업자득이긴 했지만.”
“주인님? 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가요? 무슨 일이 있어서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는 거죠?”
페로가 종잡을 수 없는 듯, 동시에 무언가 불길함을 느낀 것처럼 꼬리와 귀가 쭈뼛 선 채로 조심스레 질문을 건네자
“이건 너희들도 이제 알아야 하니까 말해줄게. 소완이 리리스를 피하는 이유가 된 사건을.”
◐
오르카에 소란이 일어났다.
미소 가득한 표정을 짓던 블랙 리리스는 난데없는 소식에 눈을 부릅뜨고 다시 물어보았다.
“소란이라니, 대체 뭔가요. 주인님께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가요?”
[새로 합류한 바이오로이드가 주인님께 낯선 약물을 차에 섞어 마시게 한 후 이상한 일을 벌여서…….]
‘쩌적-.’
자매가 말을 다 끝내기도 전에 마치 무언가가 금이 가는 것만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는 리리스와 링크되어 떠다니는 방패나 다름없는 로자 아줄에 금이 가는 소리였다. 마치 정신에 금이 가는 것 같은 그 섬뜩한 소리에 차출되어 동행해주던 금란도 흠칫, 하고 살짝 몸을 뒤로 뺄 정도였다.
“……고양이, 주인님이 그걸 얼마나 드셨나요?”
[네……?]
“주인님께서 그 약물을 얼마나 드셨냐고 물었습니다, 더 묻게 만들지 마세요.”
처음 보는 맏언니의 그 차가운 모습에 움찔한 고양이 소녀 바이오로이드는 차근차근 답해줬다.
[그게……. 정확히는 알 수 없습니다. 주인님의 목에 주사 자국도 있어서…….]
“........”
침묵.
리리스의 어깨는 떨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과 동시에…… 과거에 제작되었다 사라진 ‘블랙 리리스’ 모델의 동형기들이 남겨둔 기억들과 그녀가 아끼는 자매가 전달한 정보를 종합하여 범인이 누구인지 빠르게 유추해낼 수 있었다.
“소완 S2……. 이런 하극상을 저지를 만한 건 그 모델밖에 없지요.”
[그걸 어떻게……. 그 모델에 대해 아십니까?]
자신의 말에 놀란 페로의 목소리를 뒤로 한 채 리리스는 이를 뿌득뿌득 갈았다.
“그 모델을 복원하려는 라비아타 님을 말렸던 게 리리스니까요.”
그 말을 한 후 그녀는 작게 혀를 차며 말을 덧붙였다.
“이런 하극상을 벌일 줄 알았다면 그날 실수인 척하면서 유전자 기록을 말소했어야 했는데.”
[언니……. 괜찮으신 거 맞습니까?]
섬뜩함마저 느껴지는 리리스의 말에 자매인 페로는 회선 너머에서도 뒷걸음질을 쳤다. 이토록 맹렬한 공격성을 서슴없이 드러낸 적은 손에 꼽았기에, 그걸 마주하는 것은 실로 이질적인 두려움을 느끼게 했다. 자매가 그런 두려움을 느끼는 것을 인지한 것인지 호박색 눈을 잠시 감은 리리스는 잠시 회선을 중단시킨 후, 밴드 무늬가 그려진 가방을 옷에서 떼어내서 금란에게 건네줬다.
“잠시 볼 일이 생겼으니 먼저 주인님께 가져다드리세요. 첨부한 복용 설명서 대로 드셔야 한다고 당부드리고요.”
“네, 알겠습니다. 경호대장 님의 당부를 주인님께 전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다소 섬뜩한 분위기에 살짝 움츠러든 금란을 먼저 보낸 리리스는 머리카락을 뒤로 쓸어넘기며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그리고 다시 통신을 연결하며 차가운 목소리로 자신의 자매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페로, 소완의 현 위치를 당장 보내.”
분노가 이글거리는 리리스는, 사랑하는 자매한테도 평소와 같은 투로 말하기가 힘들었다.
♠
오르카의 주방.
새로이 부임하게 된 ‘주방장’은 그녀가 며칠간 겪은 일에 대해서 곰곰이 되짚어 보고 있었다.
라비아타에 의해 재생산된 이후, 떠돌이 생활을 하던 그녀가 새로 모시게 된 ‘주인’은 여러 가지 수를 써봤음에도, 그녀의 뜻대로 되지 않았다. 지고의 쾌락을 목표로, 차에 약까지 타보았지만, 그의 정신력은 생각 이상으로 굳건했다.
“이해할 수 없사옵니다. 어떻게 그런 분이 계실 수 있는지…….”
여전히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인지, 아직 식사 시간이 꽤 남은 관계로 한산한 그녀의 구역이나 다름없는 주방에서 몸을 기댄 채 작게 중얼거리던, 혼란스러운 표정의 바이오로이드의 귀에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후후, 공감 능력을 의도적으로 낮춰서 설계한 인격 파탄 제품인 소완, 당신이 주인님의 배려심을 이해 가능할 리가 있나요?]
“……?!”
익숙하지만, 동시에 낯선 목소리에는 서늘한 한기가 느껴질 정도로 차가운 느낌이 감돌았다. 그것을 들은 순간,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것을 느끼며 본능적으로 허리 뒤춤에 차고 있던 칼을 향해 손이 뻗었다.
‘쾅!!!!!’
“커억?!”
하지만 칼을 빼내는 순간, 주변이 깜깜해지더니, 고속으로 날아온 꽃을 닮은 방패가 빙글빙글 회전하며 소완을 강하게 강타했다. 그리고 날 하나가 접히면서 그대로 목을 벽에 때려 박듯이 고정했다.
‘쿠쾅!!!!’
그리고 뒤이어, 또 다른 곳에서 날아온 두 번째 방패가 칼을 쥔 요리사 바이오로이드의 팔을 정확하게 가격한 후 벽에 고정해버렸다.
“큭..... 이게 대체 무슨 야만스러운 짓이옵니까?”
소완은 고통을 어떻게든 참으면서 항의하듯 외쳤다. 요리사 바이오로이드의 그 말에 힐이 굽이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호박빛 눈동자가 어둠 속에서 또렷하게 빛났다.
“블랙 리리스……. 혹시나 과대망상이라도 도져서 저를 공격한 것이옵니까?”
“남을 매도하기 전에 이것부터 설명해보시지?”
경멸 어린 리리스의 말에도 불구하고, 소완은 비꼬는 투로 빈정거렸다. 그것을 보고 이를 악문 호박색 눈을 가진 경호대장은 돌아오는 길에 이미 익숙할 대로 익숙한 오르카의 창고를 샅샅이 뒤져서 찾아낸 무언가를 요리사의 앞에 내던졌다. 눈앞에 던져진 것이 무엇인지 알아챈 소완의 표정은 순식간에 여유를 잃고, 빠르게 굳어갔다,
“이걸……. 어떻게…….”
“경호대장으로서 네 입으로 직접 설명을 들으려고 했는데, 그럴 가치도 없겠네. 라비아타가 널 복구시키는 걸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았어야 했는데.”
습관처럼 하는 존댓말을 내던지고, 분노가 가득 담긴 목소리가 들려오는 가운데 소완의 동공은 지진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잠깐 중요한 임무 때문에 경호대장인 내가 며칠 오르카를 비운 사이에 향정신성 약물을 반입, 그리고 그걸 주인님께 멋대로 강제로 투약하다니……. 하극상의 끝을 달리고도 뻔뻔하게 살아있더라?”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이를 아득바득 갈면서 말하고 있는 블랙 리리스의 호박색 두 눈에는 어떻게든 이성적인 판단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이 엿보였다. 과거의 ‘소완’의 기억에선 결코 본 적 없는 그 모습에서 무언가 본능적인 경고가 울리기 시작한 소완은 빠르게 두뇌를 회전시키며 이 상황을 벗어나기 위한 변명을 시작했다.
“무, 무슨 헛소리를! 그건 제가 아니라…….”
“후후, 누구한테 뒤집어씌우려고? 이게 뭘까?”
그녀가 무어라 말하려는 순간, 리리스는 살벌한 눈웃음을 지으며 손에 쥔 메모리 칩 하나를 흔들어 보여줬다.
“네가 저지른 짓에 대한 정보를 듣자마자 에이미와 탈론 페더의 협조로 확보한 네 행적이 담긴 폐쇄회로 메모리야. 내가 그렇게 만만해 보였을까?”
그 말에 소완의 등골이 서늘해지기 시작했다.
눈앞의 ‘블랙 리리스’는 단순히 전임 ‘소완’들의 기억에 남아있는 허세에 가득한 모습과는 달리, 진짜로 오르카의 경호대장에 걸맞은 행동을 취하며 그녀를 추궁하고 있는 것이었다.
사령관의 조종을 시도하기 위하여 차에 타서 음용시키고, 수틀리면 주사까지 했던 약품. 거기에 그녀의 행적이 담긴 폐쇄회로의 메모리까지 리리스의 손에 떨어져 있다는 것을 본 이상 소완은 그저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증거를 들이대니 부정이라도 할 줄 알았는데 그냥 입을 다물어 버리네? 하긴, 바이오로이드 중에서 이런 악랄한 ‘암살 미수’를 저지를 수 있는 건 너뿐이니 도저히 빠져나갈 구멍이 안 보이지?”
그런 그녀를 보면서 혀를 찬 컴패니언의 경호대장은 자신의 권총 한 자루에서 탄창을 빼낸 후, 탄환을 빼내기 시작했다. 그것을 하면서 리리스는 독설을 쏟아냈다.
“이 세상에 하나뿐인 인간이신 주인님을 상대로, 만약 까딱했으면 목숨을 빼앗을 수도 있었을 극약을 먹이다 못 해 주사까지 해? 덜떨어진 사이코패스 같으니.”
“자, 잠깐만! 오해이옵니다! 저는 그저 주인님께 지고의 쾌락을 제공하기 위해!”
그녀가 무슨 짓을 할지 예상도 안 되는 상황 속에서 소완은 어떻게든 변명을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이 진심으로 혐오스러운지 리리스는 탄창을 잠시 내려둔 후 호박색 눈에 살의를 담은 눈으로 노려보며 소완의 턱을 붙잡았다. 그리고 이리저리 흔들며 말 한마디 한마디에 깊은 분노를 담은 채 입을 열었다.
“그 지고의 쾌락을 추구하다 파멸한 인간이 한둘이 아닌데 사령관까지 파멸시킬 생각이었어? 지금 상황 파악이 안 되지?”
“말이 심하옵니다!”
“입 다물어, 혀를 뽑아버리기 전에.”
그녀는 그대로 소완의 턱을 비틀어 버리면서 뒤를 돌았다.
“최소한 네가 주인님의 건강 상태를 파악하려고 조금이라도 고민을 해봤다면 상황이 달라졌을지도 모르지만, 우리 ‘요리사’ 씨는 눈치 없는 저성능 사이코패스라서 그런 건 못 했겠지.”
“그 무슨……. 주인님의 건강에 문제라도 있었단 말이옵니까? 그것을 당신은 대체 어떻게 아는…….”
‘찰칵-.’
권총 한 자루에 탄환 하나만 남은 탄창을 끼운 블랙 리리스는 차가운 목소리로 답했다.
“넌 주인님의 팔을 주의 깊게 본 적이 있을까? 아니면 이상할 정도로 식은땀을 흘리시는 모습을 봤을까? 하다못해 지휘하실 때 패널 보실 때 표정을 관찰이라도 안 해봤어?”
조곤조곤 말하는 그녀의 말에는 지금껏 소완이 봐왔지만, 별문제 없을 거로 생각하고 넘길 정도로 대수롭지 않았던 사령관의 ‘증세’가 예리하게 담겨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하나씩 듣고 나서야 소완의 표정이 창백해지기 시작했다.
“설마…….”
“이제야 눈치를 챈 걸까 멍청이. 주인님은 육체를 교체하신 후, 중추신경계와 새로 구축하신 육체의 오리진 더스트의 충돌로 인한 면역 장애 증세를 보이고 계셨어.”
사령관이 보이던 증세의 정체를 임무를 통해 확실히 알게 된 리리스가 또박또박 말해준 후, 진심으로 격노를 담은 투로 소리쳤다.
“넌 그런 분을 지극 정성으로 모셔도 모자랄 판에, 독약을 억지로 권하고, 주사해서 살해할 뻔한 거라고!”
그 말을 하며 몸을 숙여 눈을 마주친 호박색 눈동자는 실로 살의에 가득한 악귀를 연상케 했다. 철충의 연결체 엑스큐서너나 철충에 감염되고 뒤틀린 고블린도 이보다는 순해 보일 인상일 것이리라.
“네 말마따나 망상증에 걸린 경호대장인 나보다 특급 요리사인 네가 더 빠르게 눈치채야 정상이 아니었을까?”
공포로 고개를 숙인 소완의 몸이 조금씩 떨리기 시작했다.
눈앞의 블랙 리리스가 한 말이 사실이라면, 그녀는 하마터면 최후의 인간인 사령관의 목숨을 앗아갈 뻔했다. 이빨이 조금씩 부딪히며, 앞으로 닥칠 일에 대한 두려움이 머릿속을 잠식해나갔다. 그 모습을 경멸 어린 눈으로 내리깔아 보던 리리스는 이내 차가운 웃음을 띤 얼굴로 말했다.
“이런 암살 미수를 저지른 해로운 짐승에 대해선 컴패니언의 VIP 호위 규정은 물론 더 상위인 삼안 호위 규약에서도 즉결 처분이 원칙이거든? 하지만 착한 리리스는 좀 다르게 해수 구제를 해보려고 해.”
그리고는 탄환이 단 한 발만 장전된 권총을 건네줬다.
“우리 나쁜 요리사 씨, 러시안룰렛이라고 들어본 적 있어?”
♠
리리스가 약을 구해오는 과정은 절대 순탄하지 않았다.
우선 사령관을 괴롭히는 병이 무엇인지 알아야 했기에, 리리스는 사령관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면서 사소한 몸의 이상을 전부 다 기록했다. 남들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일 수 없는 사령관, 불쌍한 사령관은 마음 놓고 팔에 힘을 빼고 다닐 수도 없을 것이다. 오리진 더스트로 강화된 탄탄한 근육질 팔이 미세하게 떨리는 걸 볼 때마다 리리스의 가슴도 철렁했다.
증상을 알아냈으니, 이제 병이 무엇인지 알아내야 했다. 그녀는 탐색 임무를 가장해서 질병과 관련된 정보는 뭐가 되었든지 다 수집했다. 철충이 잠식한 곳이건 아니건… 그 곳이 의학 약학과 관련된 곳이라면 블랙 리리스의 발걸음을 피할 수 없었다.
수백 마리의 철충이 그녀의 총 앞에서 찢겨나갔고 수십의 AGS 역시 그녀의 총탄을 피할 수 없었다. 그 무엇도 블랙 리리스의 집념 앞에선 상대가 될 수 없었다.
그렇게 병원과 도서관과 학교를 뒤진 끝에, 그녀는 답을 찾아낼 수 있었다.
순정 상태나 다름없는 인간의 뇌와 이식된 육체에 전반에 퍼져 있는 고농도의 오리진 더스트가 일으킨 면역 거부 반응. 그것이 육체를 새로 얻은 사령관을 괴롭히는 ‘후유증’의 정체였다.
블랙 리리스에게는 다행히도, 그 후유증을 치료할 수 있는 약은 생각보다 흔했다. 멸망 전 인류가 오리진 더스트를 펑펑 써댄 탓에 의체를 이식한 후 사령관과 같은 증세를 보이던 사람들이 많았던 탓이었다. 리리스는 만약을 위해 기밀 유지 스티커를 붙인 작은 상자에 밀봉한 후, 늘 가지고 다니는 구급약을 넣어두는 작은 가방에 다시 넣어서 귀환하였다.
그렇게 리리스가 보름 넘게 남몰래 임무를 진행하여 구해온 약은 효과적이었다.
가방 안에 들어있던 설명서에 따라 차례대로 물과 함께 입에 털어 넣자 흐릿해지고 있던 정신도 순식간에 또렷하게 돌아오기 시작했다. 이제는 숨기는 것도 힘들 정도로 심각해진 떨림이나 오한도 씻은 듯이 사라졌다. 아마 완전히 치료되려면 며칠에 걸쳐서 가져온 약들을 다 먹어야겠지만, 이토록 효과적일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그리고 그것을 가지고 리리스와 함께 임무에 나섰던 또 다른 호위용 바이오로이드에게 감사를 표했다.
“수고했어, 금란. 보급받기도 힘들었을 텐데.”
“소첩은 그저 경호대장 님께서 하시는 일에 보조하였을 뿐이옵니다.”
그의 말에 공손히 답하는 가운데, 사령관의 머릿속에 문득 의문이 들었다.
이런 공로를 세웠는데, 블랙 리리스는 왜 금란에게 그것을 맡기고 모습을 보이지 않는 것인가?
“그러고 보니 리리스는 어디 갔어? 밖에서 오랫동안 일하느라 힘들었을 텐데.”
“그게.....”
사령관의 의문이 담긴 질문에 금란은 제대로 답을 하지 못하고 주저했다. 마치 무언가 말하기 꺼려지는 일을 하러 간 것만 같이, 순식간에 불길한 느낌이 스멀스멀 기어 올라오기 시작한 가운데…….
[자기, 시간 괜찮지?]
느닷없이 에이미 레이저에게서 본래 잘 쓰이지 않는 회선으로 통신이 걸려오는 것으로 그 불길함이 더욱 가파르게 치솟아 오르기 시작했다. 도저히 종잡을 수 없는 그 불길함을 어떻게든 누르면서 사령관은 입을 열었다.
“에이미, 무슨 일이야? 이렇게 긴급 회선을 써서 통신을 걸다니.”
[그럴 만한 상황이 벌어져서 그래. 이런 일이 벌어질 걸 예상을 못 한 내 탓이 크지만.]
꽤 심각한 표정의 금발의 여성은 다소 아리송한 말을 한 후, 잠깐 고민하다가 본론으로 넘어갔다.
[하여튼, 자기를 부른 건 다른 게 아니고 빨리 주방으로 가보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그래.]
“주방이면, 소완이 또 무슨 일을 저지르기라도 한 건가?”
당최 짐작을 못 하는 투로 그가 말하자 에이미는 고개를 살짝 내저었다.
[아니, 그 반대야.]
그렇게 말한 후 그녀는 말을 덧붙였다.
[시간을 지체하면 그 소완이라는 요리사가 경호대장의 손에 처분당할 수도 있어, 빨리 가서 막아야 해.]
“뭐라고?!”
‘쨍그랑!’
상상도 못 할 정도로 충격적인 그 말을 들은 순간, 책상 위에 있던 물컵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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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리스 조와요
소완 시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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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소재도 언젠가는? | 20.07.31 12:4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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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인 사건의 크기가 크기인만큼 적당히 넘어가지는 않을텐데말이죠...ㄷㄷ | 20.07.31 12:4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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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놓고 약물 투약과 뭣모르고 독버섯 먹임(해독 가능한 수준?)은 사실 차원이 다른 문제긴 하다보니 | 20.07.31 12:4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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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리르는 찰과상 수준에서 멈췄지만 하치코는 잘못하면 죽을수도 있었으니까요. 죄질만 따지면 소완은 고의고 하치코는 아니지만 하치코가 경호원이란 위치인거 감안하면 대형사고감이고 레아도 펜리르가 아닌 이거 알았으면 페로는 레아줌마라 비꼬기는 커녕 입막음을 위해 매달려 빌어야할수준 아닌가싶어요. 하치코 독버섯 사건은 바닐라 소완 사령관만 알던 일로 보이니. 생각해보니 사령관이 그대로 사망해버리는 팬픽도 괜찮겠네요. | 20.07.31 12:4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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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h.... 일단 전 해피엔딩 지향입니다 | 20.07.31 12:4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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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여유되면 도전해봐야겠네요. 제 필력이 딸려서 제대로 못쓸거같지만. | 20.07.31 12:5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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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시발 좀 무서운데요 | 20.07.31 23:1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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