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공부는 잘되어가고 있느냐."
"그럭 저럭 입니다 아버지."
엄숙한 분위기가 감돌고 있었다. 테이블 위에는 레어 스테이크와 간단한 빵이 놓인 접시가 놓여 있었으며, 나하고 아버지는 양손에 나이프와 포크를 들면서 스테이크를 잘랐다.
간만에 만난 아버지라 그런지 뭔가 익숙하지 않은 분위기였다. 어릴 적부터 집에도 잘 안 들어오시고 나하고 얘기도 잘 안 하시는 분이 뜬금없이 같이 저녁 먹자고 하시니 불편한 기분을 버릴 수가 없었다.
"학교 측에서 이미 들었다. 기말고사에서 상위권을 유지했다면서?"
"과찬이십니다. 최선을 다한 것뿐."
끼익-
접시 긁는 소리가 아버지 쪽에서 들려왔다. 미간이 찌푸려진 아버지의 표정으로 인해 나는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지금 아버지 심기를 건드렸다고.
"최선? 지금 그것이 너의 최선이라 하였느냐? 그게 너의 최선이라고?"
"아버지 저는..."
"변명 따위 하지 마라!"
아버지는 양손에 포크와 나이프를 쥐신 채 나를 노려보았다. 자세히 보니 그의 양손은 부들부들 떨고 있었고.
"내가 누누이 얘기하지 않았느냐! 세상은 변해가고 있다고! 조금이라도 잘못된 순간 지금까지 쌓아온 모든 것들이 물거품 되는 것은 한순간이다! 너도 길에서 여러 번 봤지! 변해가는 세상에 적응하지 못해 테러리스트나 거지로 되어버린 쓰레기들을 말이다! 너도 그렇게 하고 싶으냐!?"
또 시작이야...
그놈의 세상이 바뀌어 가고 있다 거지나 테러리스트가 되고 싶으냐...
처음에는 엄청 무서워서 콘스탄챠 에게 돌아가기 전까지 울음을 참았지만 (그때는 모모를 만나기 전이었다) 지금은 하도 들어서 이런 기분까지 들 정도다..
지겨워.
한참 동안의 설교 끝에 아버지는 크흠-하시는 헛기침을 하셨다. 끝났다는 신호였다. 동시에 내 마음에 안정이 되찾아왔고.
"이게 다 너를 위해서 하는 소리다 아들아."
아버지는 냅킨으로 입을 닦으면서 말씀하셨다. 위엄을 잡으시려는 듯 아까 처음 분위기로 되돌아오시면서.
"세상은 이미 변해버린 지 오래다. 무능했던 정부는 사라졌고 대한민국은 김지석 회장님의 통치 아래에서 평화를 유지 하고 있고. 너를 새로운 시대에 아무 문제 없이 살아가기를 원하는 것뿐이다. 알아들었느냐."
"네 아버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기시는 말...
다 나를 위해서라고...
...Ha
길고 긴 부자간의 재미없고 지루하고 무의미한 회의가 끝난 뒤, 나는 혼자서 거리를 나왔다. 늘 항상 봐왔던 강남의 화려한 거리를. 어릴 적부터 모모랑 같이 걸어왔던 길을.
원래는 집으로 가야 했지만 내가 이 거리를 나온 이유가 따로 있었다.
"미래 남편 씨 여기야 여기-!"
최근 여행때 사귄 그녀를 만나기 위함이었다.
선글라스에 여름용 티셔츠와 검은 바지를 입고 있던 그녀는 내 얼굴을 보더니 곧바로 달려와 내 팔에 안겼다. 검은색 핸드백을 들면서.
"기다리게 했어?"
"우리 남편 씨를 기다리는 것이 미래 와이프의 기본자세죠- 1분 늦게 오든 말이죠-"
"늦었다는 거네."
그녀를 만나게 된 것은 딱히 큰일이 없었다. 학교 학생회장 자리에 있던 그녀는 모두 선망의 대상이었다. 공부도 최상위권, 운동도 잘하고, 피아노도 잘 치고, 게다가 외모도 학교 내에서 순위를 다툴 정도였으니. 나 또한 그녀에게 끌리긴 했지만 최근 들어 그녀가 나한테 다가온 것이다. 평소에는 엄격한 분위기를 내서 다가가기 힘들었지만, 평상시에는 엄격한 모습은 연기였다는 듯 평범한 또래 소녀의 모습을 보이고 그랬다.
그렇게 해서 이번 유럽 여행 때 우리 둘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고.
서로의 한쪽 팔을 안은 채 걸어가면서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세상 많이 변했네."
"뭐가?"
"그냥. 내가 어릴 적에 봤던 거 하고 너무나도 달라져서."
어릴 적부터 모모랑 같이 걸어온 길이었지만 왠지 모르게 위화감이 들 정도로 달라졌다.
먼저 눈에 띄었던 것은 바이오 로이드 상점. 팔려는 바이오 로이드들을 가게 유리 안에 세워 두고 가만히 있는 모습은 마치 마네킹과 다름없었다. 생체 마네킹이라고 해야 할까?
또 하나는 바이오 로이드 전용 주차장도 예전 보다 늘었다는 것이다.
말 그대로 바이오 로이드들을 주차하는 곳이었다. 바이오 로이드들을 거절하는 건물에는 반드시 있는 주차장.
"으헤헤헤-아가씨 이리 와봐-몸매 죽인데-"
"으읍-읍읍!"
이들 중 녹색 트윈 테일의 바이오 로이드는 웬 통통한 남자에게 잡혀서 끌려갔다. 민감한 부분이 잡혀도 저항도 못 한 채 끌려가면서. 더 가관인 것은 주변의 사람들은 그냥 못 본 채 지나가고 있었고.
"남편 씨 뭐해-"
그녀는 내 팔을 더욱더 강하게 끌어당겼다.
"저런 더러운 거 보지 말고 가던 길 가자. 남의 바이오 로이드 신경 쓰지 말고."
"알았으니까 살살 당겨."
바이오 로이드가 발버둥 쳐도 여자로서 수치스러운 일을 당해도 몸속에 인간들에게는 절대 해를 끼치지 못한다는 명령권으로 인해 저항조차 못 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여전히 무시하고 지나갔고. 마치 못 본 거처럼.
"그래도 다행이네."
"응 뭐가 남편 씨?"
"아 그게-"
그녀가 나를 뚜렷이 바라보고 있었다. 생글생글 미소 짓는 얼굴 속에는 빨리 말해줘-라고 눈빛으로 말하고 있었고.
"저 이상한 남자가 우리에게야 꺼져-혹은 너에게 이상한 짓을 할까 봐 걱정했거든."
"에이-뭘 그리 걱정해-"
나를 더욱더 힘차게 껴안았다. 덕분에 그녀의 전신 온기가 내 팔로 전해졌고.
"내가 바이오 로이드 ㄴ-아니 그러니까 바이오 로이드보다 예쁜 것은 사실이지만 그 예쁜 여친 옆에는 든든한 남친이 있잖아. 그렇죠 남편 씨?"
나는 쓴 웃음을 지은 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다행이네라는 의미는 지금 막 그녀에게 말한대로였지만 사실 더 큰 이유가 있었다.
바로 모모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아 다행이었다는 의미였다.
불행 중 다행으로 흔히 볼 수 있는 양상형 모델이 아닌 모모를 후드나 모자 그리고 선글라스 외모를 가린 뒤 패셔너블한 옷을 입으면은 다른 사람들이 봐도 바이오 로이드가 아닌 평범하게 패션을 좋아하는 소녀로 보였었다.
그 덕분에 바이오 로이드 금지 가게 안에도 몇 번이나 들어갔다 나올 수도 있었고.
일명 매지컬 트랜스 폼이라고 해야 할까.
"네 언니. 두 분 데이트 잘하시는 중이에요."
-잘했어요. 모모. 계속 곁에 있으세요. 절대로 들키지 마시고요.-
"매지컬-"
매지컬 주문과 함께 전화를 끈 뒤 나는 모자를 눌러 얼굴을 가렸다.
도련님은 여전히 여자 친구분과 같이 시간을 보내고 계셨다. 지금까지 어떤 테러리스트들도 나타나지 않았고.
두 분은 중간에 크레이프를 사드셨다. 여자 친구분에게는 딸기와 바나나를, 자신은 블랙 베리를.
저거 도련님하고 어릴 적부터 같이 사 먹은 간식 중 하나였는데. 내가 먹었던 것은 복숭아였고.
처음 먹었을 때의 달콤한 맛이 아직도 기억에 남을 정도였다.
"모모! 볼에 크림 묻었네?"
라면서 도련님은 휴지로 내 얼굴을 닦아 주셨다. 정성 스럽게. 빠짐없이.
하지만 오늘은…. 아니 이젠 도련님 옆에는 내가 아니라 여자 친구분이 계셨다. 콘스탄챠 언니가 말한 도련님의 짝이..
두근-두근-
볼 때마다 심장의 두근거림을 멈출 수가 없었다.
단순히 두근거리는 거면 다행이겠지만 내 심장이 서서히 떨어져 가는 느낌도 들면서...
투욱-
"어?"
눈물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내가 왜 눈물을 흘리는 거지? 원래는 기뻐해야 할 텐데? 도련님이 행복해하는구나! 라는 기쁨을.
그때 느낀 감정들은 글로 표현하기 어려웠다.
단순한 슬픔이 아니었다.
미약하게 그것도 매우 미약하게 다른 감정 또한 느껴오는 것을 나는 알 수 있었다.
'저 여자만 아니었어도.'
라고 속으로 말하게 만드는 감정 그 자체였다.
양팔로 내 몸을 가렸다. 날씨는 추운 날씨가 아님에도.
"도련님..."
이 감정의 정체는 나중에 알게 되었다. 무엇이 나를 그렇게 괴롭혔는지도.
그건 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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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해서 하루에 한편씩 올리기는 수월하게 흘러가네요.
모모가 느낀 감정은? 과연 뭘까요.
피드백 및 아이디어 환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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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친 정체를 시라유리로 생각 안한것은 아니지만 넣으면 나름 재미있을거 같네요. 갑자기 뜬금없이 도련님에게 다가온것도 그렇고 사귀자고 란것도 그렇고 말이죠. (이렇게 되면 모모와의 대결을 피할수 없겠고요) 역으로 언급하신 경호원으 시라우리라고 해도 될거 같기도 하고요. | 23.02.24 20:1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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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소설은 어쩌면 마법 소녀 모모가 블랙 모모가 되어가는것이 주 내용이 될거 같네요 허헛. | 23.03.02 10:4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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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은 해본적이 있습니다. 만약에 한다면 내용 다 뜯어 고쳐서 리메이크로 올릴 계획입니다. | 23.03.02 10:26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