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이영도"의 단편소설 '키메라'를 거의 그대로 패러디했음을 말해둡니다(https://britg.kr/novel-group/novel-post/?np_id=115773&novel_post_id=618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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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날 좋아한다고? 매일 매일 꼭 껴안아주고 싶을 만큼?”
"읍읍읍읍읍!"
"아, 그렇구나! 나 정말 기뻐!"
"으으읍!"
"아아, 드디어 날 여자로 봐주는 거구나! 길었던 외로움이었어!"
"뭐으읍!"
모든 이들이 알고 있듯이 성공의 비결은 기회의 포착에 있다. 닥터는 나의 입이 틀어막혀 있는 상황을 십분 즐기기로 결심했고, 그런 그녀의 결정은 나를 반미치광이로 만들었다. 하지만 ‘바이오로이드’의 가슴 위쪽에 뽀끄루의 심복 이그니스의 가슴브라 쇠사슬로 묶인 채 매달려 있는 나는 그녀를 제지할 어떤 수단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머큐리의 코브라 박제에 꽁꽁 결박당해 있는 그녀 또한 쾌적한 상태라고 말하긴 어려웠지만. 뭐, 그거랑은 별개로 참 기회 포착 잘 하긴 하네. 역시 영리하다니깐.
우리들의 돌격에 대한 ‘바이오로이드’의 대응은 놀랍게도 멸망 전 동인지에서 본 것 같은 촉수를 쏘아대는 것이었다. 저 우발적인, 그리고 난생 처음 보는 창조물에 대해 우리가 뭘 제대로 알고 있을 리가 없었으므로(우린 쟤랑 몇 시간 전에 처음 본 사이다!) 우리는 그런 공격을 예상조차 할 수 없었다. 만약 저게 ‘바이오로이드’가 맞다면 인간으로서 강제 명령을 행사하려 했던 내 입에 촉수가 쑤셔박혔고 나는 아, 내게 입으로 해주던 콘스탄챠가 이런 기분이었구나란 걸 목구멍에서부터 깨달으며 입이 틀어막히고 말았다. 앞으로는 좀 조심조심 해줘야지.
나의 모습을 본 닥터는 황급히 뒤로 물러나, 내가 흘려두었던 패널을 찾았다. 하지만 닥터가 그걸 들고 증원을 부르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는데, 어느 새 그녀의 뒤로 돌아온 코브라 박제가 그녀의 엉덩이를 콱 깨물었기 때문이다. 증원을 요청하려던 닥터의 목소리는 대단히 그로테스크하며 아방가르드한 비명으로 중단되었고, ‘바이오로이드’는 엉덩이를 움켜쥔 채 팔짝팔짝 뛰는 그녀를 간단하게 제압해 억류했다. 닥터의 엉덩이는 언젠가 자신이 성장약을 먹어 글래머 쭉쭉빵빵 미녀가 되었을 때만큼이나 크게 부어올랐다.
우리 둘이 이렇게 너무도 허무하게 제압되어 버리자, 묶여버린 닥터가 할 수 있는 일은 입에 들어간 촉수를 빼내려 온 힘을 다해 그걸 잡고 낑낑대는 나를 격분시키는 장난에 심취하는 일뿐이었다. 혹은.....
그녀가 삿대질했다.
"야, 이....."
마음씨 착한 다프네를 레모네이드 델타보다도 더한 악녀로 만들고도 남을 폭언.
"....같은 XX아! 우리를 이렇게 묶어놓고 도대체 어쩌겠다는 거야!"
도대체 닥터가 어디서 저런 말을 배워왔는지 두렵다. 스트레스 속에서 밤샘을 하면서 멸망 전 자료를 너무 많이 보다 보니 결국 그런 것까지 배워버리고 만 것일까? 그래도 내 속은 시원한 걸 보니 역시 그녀와 나는 같은 오르카 저항군의 동료인 게 분명했다. 그 ‘폭언’에 ‘바이오로이드’가 자신에게 묶인 우리를 내려다보았다. 아마 레아 팬티와 므네모시네 유두패치가 우릴 향했으니 그럴 것이다.
“그대들에게 직접 보여 줄 것이다. 사랑이 없어진 세상을 보여주면 그대들도 내가 옳았다는 것을 알리라”
“우린 왜 끌고 가는데 그럼! 죽이지도 않고!”
“당연한 말 아닌가? 바이오로이드는 정당한 명령권자이자 제조자인 인간을 죽일 수 없다. 그리고, 인류 부활이 그대들 오르카의 목적이라 하지 않았나?”
“그랬지”
“그렇다면 바이오로이드는 다시 제조하면 되지만, 사랑과 무관하게 성1교를 하여 자손을 낳을 인간은 한 명 필요하다”
타당하고 논리적인 설명이건만 나는 온 몸에 소름이 끼쳤다. 그러니까 저 자식 아직 포기하지 않은 거로구나. 그 빌어먹을 나와의 성관계라는 목표를 말이다. 닥터에게 ‘바이오로이드’는 나름 자애롭게(?) 마저 말을 이었다.
”닥터 그대 역시 나의 제조자이다. 가장 마지막에 죽을 권리 정도는 있다”
그 무시무시한 발언에도 닥터는 계속 발악했다. 정말 대가 센 아이다. 그래, 물론 내 소중이의 안위도 중요하지만 세상에 사랑이 메마르는 것도, 그리고 바이오로이드들이 전멸당하는 것도 그 이상으로 중요한 문제지.
"야! 멍청아! 사랑이 없어지면 세상은 상당히 심심해지고 말 거라는 것을 추측하지 못하냐? 아무도 자손을 가지지 않으려 할 거야! 멸망이라고! 내가 뭣 땜에 성장약 만들려고 그렇게 발악하는데에에!!!"
어쩐지 뒤에 닥터의 욕망이 반영된 거 같은데. ‘바이오로이드’는 그런 닥터의 사심 듬뿍 섞인 떽떽거림을 간단히 무시했다.
"안심하라, 제조자들이여. 그대들은 사랑도 섹1스도 없이 나를 제조했다. 만약 나와의 섹1스로 부족하다면, 내 과업이 끝나고서도 그렇게 하면 될 것이다."
나는 ‘바이오로이드’의 제조가 터무니없는 가챠의 결과일 뿐 절대로 재현 가능한 기술이 아니라고 외치려 했지만 촉수가 내 목구멍까지 들어와서 쑤컹쑤컹 해대고 있어서 말이다. ‘바이오로이드’는 더 이상 대꾸할 필요를 못 느끼는 듯 발걸음을 옮기는 만행을 저질렀다. 그것이 만행인 까닭은, 그 ‘바이오로이드’를 이루는 온갖 부속지가 이동 중에 작동해서 우리의 몸을 사정없이 뒤흔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아쿠아의 날개, 에키드나의 금속뱀, 글라시아스가 체공할 때 쓰는 소형 분사기 같은 것이 제멋대로 작동하면서 녀석의 몸이 이리저리 흔들렸고 그 위에 매달린 우리는 더더욱 그랬다. 으악 멀미!!
“우와와왑!!”
“꺄아아악!!”
구토를 억누를 수 있는 순간순간마다 우리는 고함을 질러 댔다. 나야 뭐 의미 있는 말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고, 닥터가 막 떠든 내용도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아마 “무조건 이 ‘바이오로이드’를 제압해라, 매달려 있는 인질들은 신경 쓰지 말고 어쩌고” 하는 꽤 영웅적이고 감동적인 내용이었던 것 같다. 그 때였다.
"왓슨? 책이나 같이 읽을까 했는데 아직도 꽤 바빠 보이네?"
내 시야 속의 세상은 아직까지도 빙글빙글 돌고 있었지만 나는 그 회전 속에서 가까스로 리앤의 모습을 포착했다. 그녀는 한 손에 내 방에서 가져왔을 책을 든 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뭐라고 더 말하려 했지만 닥터가 먼저 외쳤다.
"언니! 도망쳐야 해!"
"왜?"
"바이오로이드니까!"
나로선 미칠 지경이었지만 돌아온 리앤의 반문은 까무라칠 만큼 태평했다.
"아, 근처에 철충이라도 있어? 오르카에?“
철충은 없지만 철충이 본다면 눈물을 철철 흘릴 만큼 감동해서 명예 철충으로 인정해줄 만한 존재는 하나 있지.
”그게 아니라! 아무튼 빨리 도망치라고오! 급해!“
”최소한 네 말이 무슨 설득력을 가지는지는 말해 줄래? 인간 명령도 아닌데 내가 들어줘야 할 설득력 말야.“
완전 지쳐버린 닥터는 요점만 설명했다.
"이 자식이 눈에 보이는 바이오로이드는 다 죽이기로 결정했다고!"
"아아. 그럼 설득력 있네, 음, 꺄아, 꺄아악."
리앤은 장난처럼 팔을 흔들며 겁먹은 척을 했고 그 꼴을 보고 기가 막혀버린 내 막혀버린 입에선 언어모듈 고장난 펍헤드 같은 소리가 흘러나왔다. 리앤은 그렇게 촉수와 이그니스 브래지어에 감겨 있는 날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뭔가 생각난 듯 반짝 고개를 들었지만.
“음, 근데 어쩌다가 순애 사랑꾼이 갑자기 학살자가 된 거야?”
그걸 설명하기엔 사정이 좀 긴데. 그때 ‘바이오로이드’가 선심 쓰듯이 말했다.
"리앤이여, 나의 페티쉬를 일깨워준 것에 대한 보답으로 그대는 닥터와 함께 가장 마지막에 제거해 주겠다“
“어머, 고마워라. 약속은 꼭 지켜줘?”
“완벽한 바이오로이드는 약속도 완벽하다. 그대가 내게 위해를 끼치지 않는 한 그대는 나로부터 안전하다.”
리앤의 믿기지 않는 천연덕스런 태도와는 별개로 나는 일단 겨우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 물론 지극히 근시안적인 안심이긴 했지만.
“보라! 리앤이여! 나는 사랑이라는, 바보같고 유치하며 비합리적인 개념과 전쟁을 치를 것이다! 이 위대한 전쟁을 목도할 영광을 그대에게 주노니! 그대는 마지막 사랑이 지구상에서 말살되는 광경을 보게 되리라! 그를 위해, 나는 현존하는 바이오로이드를 모두 지구상에서 지워버리겠다!”
세상에 개념과의 전쟁이라니. 철충이나 별의 아이와 싸워 이기는 것보다도 가망없어 보인다. 허나 그것이 가망없을지라도 이 ‘바이오로이드’는 그 가망없는 과업을 이룰 때까지 끔찍하고 무지막지한 일들을 저지를 힘도 있고 의지도 있었다.
그러나 리앤의 반응은 시큰둥한 것이었다.
"세상이 재미없어지겠네"
"뭐?"
닥터와 ‘바이오로이드’가 동시에 얼떨떨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 또한 그들이 알아들을 수는 없겠지만 그 내용은 같은 목소리를 내었다. 리앤이 차분하게 설명했다.
“그 바보같고 유치하며 비합리적인 개념 때문에 온갖 재미난 게 생겨났거든.”
“재밌는 것?”
리앤은 미소지으며 손에 든 책을 흔들어보였다. 철학책을.
“서정시, 멜로드라마 영화, 오페라 교향곡, 흠, 야한 그림 나오는 모바일 게임....”
별 시답잖은 것들을 것을 열거한 리앤이 마지막으로 읖조렸다.
“그리고, 문명에, 우리 자기 자신까지”
“우리?”
‘바이오로이드’가 멍청하게 되물었다. 조금 전과 달리 리앤은 진지한 태도로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사랑이 있었으니까, 혹은 사랑을 알기 위해, 혹은 사랑을 하기 위해. 위대한 예술을 창조하고, 문명을 창조하고, 때로는 영웅적인 도덕심을 일으키고.”
모든 예술, 모든 윤리, 모든 학문, 모든 사회는 거기서 시작한다. 누군가 혹은 무언가를 사랑하는 마음.
누군가 혹은 무언가를 더 알고 싶어하고, 그 누군가 혹은 무언가에게 잘해주고 싶고, 그를 키워주고 싶고, 그와 마음을, 혹은 소중한 무언가를 나누고 싶다는 마음.
“그리고 우리도.”
어쩌면 그녀들 자신도 그렇다. 바이오로이드.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하나의 ‘이상적 인간’.
최초의 바이오로이드는 왜 만들어졌을까. 혹은 어떻게 만들어질 수 있었을까. 왜, 그녀들은, 이토록 아름답게, 사랑받기 좋은 형태로 만들어졌는가(아, 자길 바이오로이드라 칭하는 저 괴물은 빼고)?
바이오로이드는 인간 기술문명의 산물이다. 아니, 어쩌면 인류 기술문명의 금자탑이자 그 총집결체인 존재들이라 할 수 있으리라.
그러면 인간은 왜 그 문명을 발달시켰는가. 왜, 바이오로이드를 탄생시키는 지점까지 갈 수 있었는가. 왜, 바이오로이드들을, 이다지도 아름답고 사랑스럽게 만들었는가. 그 모든 고생을 하면서.
리앤은 들고 있던 철학책을 자기 머리에 톡, 쳐보였다.
“그거 덕분에 인류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거든.”
그 모든 죄악과 고난들에도 불구하고.
허나 ‘바이오로이드’는 수긍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 그런 사소한 일에는 신경 쓰지 않는다!”
사소한 일일까? 예술이, 도덕이, 문명이? 그럼 뭐가 중요한 것일까? ‘바이오로이드’는 말을 이었다.
“무언가가 필요하다면 나의 제조자들이 그것을 생산할 바이오로이드를 만들면 된다! 그것이 무엇이든지!”
뭐? 아예 인류를 부활시키고 지구를 재창조하는 전지전능한 창조주 바이오로이드라도 우리보고 만들라고 하지 그래? 나는 이 감당키 어려운 신뢰감에 더는 참을 수가 없었다. 나는 위액이 역류하고 구토가 나오려는 것을 억지로 참아내며 기어코 온 힘을 다해 내 입에서, 간신히 촉수를 뽑아냈다. 토할 뻔했지만, 그럼에도 나는 곧장 비명을 지르듯이 외쳤다.
"정말 끔찍하게 미안하지만 그건 불가능해!"
‘바이오로이드’는 천천히 레아 팬티와 메이 머리핀을 숙여 나를 내려다보았다.
“무슨 소리인가? 불가능은 없다! 어떤 바이오로이드도 존재 가능하다!”
그래 그건 맞다. 이론적으로는 어떤 바이오로이드라도 존재 가능하다. 실제로 예술에 종사하는 바이오로이드는 있다. 그러나 도덕은? 문명은? 그것은 어떤 바이오로이드가 만드는가?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이었으면 우리가 바이오로이드 유전자 씨앗이나 게놈지도 찾는다고 죽어라 애쓰진 않았겠지.
“그대들은 이미 나와 같은 완벽한 바이오로이드를 제조했다. 다른 바이오로이드를 만들지 못할 게 무엇인가?”
“완벽 좋아하시네!”
결국 참지 못한 나는 빽 소리치고 말았다. 오늘 하루종일 날 시달리게 한 저 자식과, 그리고 이 모든 사태의 원흉인 닥터에 대한 원망을 담아.
“우린 그저 연말맞이 대청소를 했을 뿐이야!!!”
“어라?”
“닥터는 그냥 온갖 쓰레기들을 처리하겠다고 바이오로이드 제조장치에 잡동사니들을 밀어넣다가 널 만든 거라고! 굉장한 일이긴 하지만 우린 결코 너를 만들려고 했던 건 아니야! 완벽이고 뭐고 처음부터 목적도 계획도 없었다고! 넌 그냥 어쩌다 만들어진 거야!"
”아니 오빠, 알고 있었어?“
”그럼 모르겠냐! 온갖 쓰레기 잡동사니들을 다 처넣었는데!“
출생의 비밀 - ‘쓰레기 잡동사니’ - 을 들은 ‘바이오로이드’는 잠시 침묵한 채 나를 내려다보았다. 솔직히, 약간 죄책감이 느껴지긴 했다. 어린아이에게 ‘넌 사실 사생아 내지는 엄마아빠가 계획에 없이 실수로 만든 아이란다, 흑흑 그 때 콘돔이 없어서~’ 하고 말해주는 느낌?
녀석의 촉수에 묶여 있던 나는 그 녀석이 경련하는 것을 잘 느낄 수 있었다. 곧 ‘바이오로이드’는 격렬히 진노하여 외쳤다.
"아니다!"
"맞아!"
"아니다, 아니다! 제조자들의 말은 거짓이다! 목적 없이 태어나는 바이오로이드가 있단 말인가! 나는 사랑을 없애기 위해 태어났다! 제조자들이 아무리 부인한다 하더라도 이것은 진실이다!”
“맞다니깐! 우리가 널 만들었는데 누가 네 목적을 결정해!”
“아까 그대는 내가 의도치 않게 우연히 태어났다고 말했다!”
“그러면 너는 목적 없이 태어난 거겠지! 이딴 망할 게 네 사명이 아니라!”
“나를 기만하지 말라!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절대로 사실......우우웁!!!"
반박하려는 나를 다시 촉수가 휘감고 쑤셔왔다. 아 이거 또 당해야 해? 근데 이거 기분 진짜 야릇하네. 새로운 취향이 개발될 거 같아. 근데 그것과는 별개로 누구 이 키메라에게 토론 중에 상대방을 촉수로 능욕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은 행위라고 좀 가르쳐 줘.
"나는 위대한 사명을 띠고 태어난 존재다! 아무 의미 없이 태어나는 바이오로이드는 없다! 모든 바이오로이드는 목적을 갖고 태어난다! 이것이 나의 목적이다!!”
하 씨. 자꾸 그렇게 지가 ‘바이오로이드’가 맞다고 똥고집 부릴 거면, 아까 입이 자유로워졌을 때 한 번 인간 권한이라고 으름장 놓고 명령이나 내려볼 걸. 나는 후회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바이오로이드’는 연구실이 쩌렁쩌렁 울리도록 큰 목소리로 외쳤다. 리앤이 머리가 아프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순애 사랑꾼이 하드 얀데레가 되었구나”
“뭐?”
리앤이 느릿느릿 말을 이었다. 이상한 건 아니라는 듯이.
“뭐 그럴 수도 있지. 순애와 얀데레는 종이 한 장 차이거든. 정말 쉽게 얀데레가 될 수 있어. 자신이 사랑받지 못하면 이 세상 전체가 아무런 가치가 없다는, 뭐, 그런 극단적인 유아(唯我)론이긴 하지만.”
리제나 리리스나 소완이 저거랑 동급 취급받으면 너무 불쌍한데.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앤은 여전히 태평하게 미소지었다.
"뭐, 그것도 그거 나름대로 사랑의 한 형태겠지. 잘 되길 바래.“
아니, 잘 되면 안 되지. ‘바이오로이드’도 어처구니가 없는지 몸을 떨었다. 아니면 다른 이유로.
“무슨 소리인가! 나는 사랑을 바라지 않는다!”
“오, 오, 그 태도야. 바로 그거. 얀데레는 순애의 과포화 내지는 오버플로우인 셈이지.”
“나는 사랑을 하지 않는 존재다!”
“오, 그래? 바이오로이드는 인간을 좋아하게 만들어졌는데? 음, 그러고보니 너도 바이오로이드 아니니?”
“뭐라고?”
녀석의 입에서 바람 빠지는 듯한 의문사가 흘러나왔다. 덕분에 녀석은 한동안 말없이 그 자리에 멍청히 서 있어야 했다. 리앤은 참을성 있게 기다려주었지만, 한참의 시간이 흐른 다음에 녀석이 꺼낸 것은 어쩐지 궁색해 보이는 반박이었다.
“나는 사랑이 없기에 이미 완벽한 바이오로이드다!”
사랑을 갖추지 못했으므로 ‘완벽’이라. 그러니까 얘한테 사랑은 장애나 질병 같은 것이로군. 정작 여기 리앤은 ‘바이오로이드’를 사랑꾼이라고 정의했고 그 말이 맞다면 ‘바이오로이드’는 자기 모순에 빠지겠지만.
“그거야. 입으로는 그렇게 말할 수 있지. 하지만 사실 얀데레, 음, 혹은 멘헤라? 아무튼 그건 누구보다도 더 사랑을 갈구하고 있다구. 그리고 사랑을 찾지 못했을 때, 만물을 다 부정해 버리는 거지. 사랑이 없는 세상은, 혹은 내 인생은, 존재해서도 안 된다, 같은. 지금 딱 너 같지 않니?”
“나를 기만하지 말라! 그것은 궤변이다! 나는 사랑이 없으며 그런 궤변에서 자유롭다! 그 어떤 사랑도 나를 괴롭히지 못한다!”
“정말 그렇게 생각해?”
“그렇다!”
그러니까 순애와 얀데레는 둘 다 사랑을 갈구하고, 그걸 못 얻었을 때의 태도만 다르다는 점에서 서로 거리가 매우 가깝다는 건 알겠는데, 그게 지금 무슨 상관이야! 다들 죽게 생겼는데! 그러나 그래놓고서 리앤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바이오로이드’가 지겨워질만큼.
"그만해! 이런 무의미한 논쟁으로 낭비할 시간은 없다! 난 사랑을 말살하러 가겠다!"
점점 이 ‘바이오로이드’가 말하는 게 어째 멸망 전 마법소녀 만화에 나오는 악당 대사처럼 들린다. 왜, 그런 거 있잖은가. 세상에 사랑과 우정의 마음씨를 없애려는 마법소녀물의 악당 말이다. 그런데 그려면 그 악당을 쳐부술 마법소녀는 어디있담? 덴세츠 방은 여기서 너무 먼데.
그 녀석이 그렇게 나오자, 리앤은 책을 펼치고선 플로티노스의 일자(一者) 부분을 보다가 한숨을 폭 쉬었다. 그러고는 ‘바이오로이드’를 쳐다보며 말했다.
"그럼 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내 말 하나만 듣고 가, 바이오로이드 씨."
"어떤 말인가?“
”음, 나도 해본 적은 없어서 익숙하진 않은데“
그래놓고서 리앤은 흠흠, 하고 조금 부끄러운지 헛기침햇다. 뭘 하려는 거지? 그러더니 그녀는 갑자기 손 하나를 피스(peace) 모양으로 잡고서 혀를 양아치처럼 내뺴물고서 말했다. 전혀 그녀답지 않게.
”우★효, 세상 유일한 인간 남자인 사령관은 이미 오래전에 오르카의 모두가 개☆같이 따♡먹었다구♥“
‘바이오로이드’는 굉음을 내며 폭발해버렸다. 우리가 리앤이 꺼낸 말에 경악하기도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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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수도 있고, 혹은 문과와 이과의 차이일지도 모르죠 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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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이 이영도 작가님의 드래곤 라자 세계관 기반의 단편 시리즈인 <어느 실험실의 풍경>(중단편집 오버 더 호라이즌 수록)이니만큼. 닥터가 핸드레이크 역할(드래곤 라자 세계관 최고의 대마법사)이라면 리앤은 헐스루인 공주 역할(궁정의 모든 서적들을 페이지 단위로 기억하는 지력 최강급의 공주님)로 봐도 무리는 없을 듯 합니다. 지박령님 말마따나 문과와 이과의 차이네요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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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수도 있고, 혹은 문과와 이과의 차이일지도 모르죠 ㅎㅎㅎㅎ | 22.12.21 13:5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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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계꿩치
원작이 이영도 작가님의 드래곤 라자 세계관 기반의 단편 시리즈인 <어느 실험실의 풍경>(중단편집 오버 더 호라이즌 수록)이니만큼. 닥터가 핸드레이크 역할(드래곤 라자 세계관 최고의 대마법사)이라면 리앤은 헐스루인 공주 역할(궁정의 모든 서적들을 페이지 단위로 기억하는 지력 최강급의 공주님)로 봐도 무리는 없을 듯 합니다. 지박령님 말마따나 문과와 이과의 차이네요 ㅋㅋㅋ | 22.12.21 14:4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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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요나라! | 22.12.21 14:3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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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애 사랑꾼에게는 끔찍스러운 금태양식 NTR도발이 아닐 수 없지요 ㅎㅎ | 22.12.21 22:1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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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에 야학 섹드립 개그글을 써보고 싶었읍니다 ㅎㅎㅎㅎ | 22.12.21 23:5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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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원작이 좀 혼파망입니다 ㅎㅎㅎㅎ 거기서도 단 한마디로 문제가 해결되어 버리거든요 | 22.12.25 17:13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