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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음…….”
식은땀을 흘리며 몸을 뒤척거리던 한 여성은 이내 부스럭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안 되겠어.
짙은 남색의 머리카락이 촉촉하게 젖은 여성은 비적거리며 침대에서 내려와 몸을 이끌며 중얼거렸다.
“도저히 제대로 잠을 못 자겠어… 바람이라도 좀 쐐야겠는걸.”
머리맡에 놔둔 화관도 쓰지 않고, 자매들이 깨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문을 연 요정의 여왕은 시원한 복도의 바람을 쐬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오베로니아 레아는 그렇게 또다시 전날과 마찬가지로 원치 않는 새벽 산책을 나섰다.
-
항상 느긋하던 오베로니아 레아가 이렇게 잠까지 설치게 된 계기는 며칠 전으로 거슬러가야 한다.
“끼에에에에에에에엑! 모르겠어, 모르겠다고! 도저히 저 망할 물건의 정체를 모르겠다고오오오!”
오르카 한 구석에 있던 연구실 문이 쾅 하고 열리더니, 실험 가운을 입은 소녀가 뛰쳐나왔다. 그녀는 손에 들고 있던 캔을 구겨서 벽에 집어 던지더니 자신의 양갈래 머리칼을 부여잡고 줄넘기를 하더니 방방 뛰고 비명을 내질렀다.
주변의 모두가 그녀를 바라보았지만 그녀는 주변의 시선은 아랑곳 않고 한참 동안 자신의 머리를 쥐어뜯고 머리를 벽에 쾅쾅 박더니 바닥에 드러누워 발버둥쳤다.
누가 보아도 닥터가 제정신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아니, ‘제정신’이었을 때는 이상한 걸 만들어내니 지금이 오히려 더 제정신인가.
“흑… 모르겠어… 모르겠다고….”
바닥에 드러누운 닥터는 이제 눈물까지 흘리고 있었다. 누구라도 닥터를 달래줘야 하지만 어찌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닥터가 저렇게 난동부리는 걸 보면 보통 문제가 아닐 테고, 그런 문제에 공감해주고 위로해줄 수 있는 사람은 몇 없기 때문이었다.
“닥터.......”
결국 모든 바이오로이드의 큰 언니, 라비아타가 나섰다. 그녀는 지금 닥터를 괴롭게 하는 게 무엇인지 알고 있었고, 그 원흉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으니, 그녀야말로 이 일의 적임자라 할 수 있었다.
“그 돌덩어리 때문에 그렇지?”
닥터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잘 모르겠으면 일단 작동시켜보는 게 어떨까?”
“리리스 언니한테 부탁해서 당연히 잠깐이나마 작동시켜봤지. 그래도 모르겠어….”
“모르겠다니?”
“대체 어떻게 이걸 작동시켰는지, 그리고 무슨 원리인지 리리스 언니도 몰라….”
“뭐…?”
분명히 작동은 시켰는데 어떻게 작동했는지 모른다니, 라비아타는 이 황당한 대답에 머리가 혼란스러워졌지만, 닥터는 그에 상관 않고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라비아타 언니도 저걸 가까이했을 때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손을 따서 핏방울을 떨어트린 적이 있잖아? 자신도 모르게 말이지. 그 이유를 설명할 수 있어?”
“아.”
라비아타 프로토타입이 그제야 무언가를 깨달은 듯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녀가 분화구에서 막 회수된 커다랗고 각진 돌덩이를 본 순간, 무의식적으로 손가락을 베서 핏방울을 떨어트린 기억이 떠올랐다.
그 돌덩이는 핏방울이 떨어지기 무섭게 세밀하게 조각나서 꿈틀거렸다. 대체 저 돌덩이가 뭘 하려는지 몰라서 서둘러 핏방울을 닦아내자 작동은 멈췄지만, 아무래도 만만한 대상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라비아타가 보자마자 무의식적으로 다가가 피를 떨어트리게 만들었으니, 분명 정신을 조종하는 장치일 것이고, 다른 바이오로이드 역시 위험에 빠트릴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간 닥터가 이 돌덩이를 작동시키는 일 없이 이리저리 둘러보고 조사해보려 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결국엔 포기하고 블랙 리리스에게 부탁해서 작동시켜봤지만,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 많은 의문만 생길 뿐이었다.
꼬마 바이오로이드는 어깨를 들썩거리면서 무언가를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대체 내가 놓친 것이 뭘까, 누가, 무슨 이유로 이런 걸 만들어낸 걸까, 이걸 구성하는 소재가 과연 무기물이긴 할까?”
아무리 봐도 돌덩이인데 저게 돌인지조차 의심하다니, 라비아타는 닥터가 드디어 완전히 미쳤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방치하다가는 이 무기물이 아닌 돌덩이에게 말을 걸어보고, 이름도 지어주곤 친구 삼을지도 몰랐다. 어떻게든 화제를 돌릴 필요가 있었다.
라비아타는 주변을 둘러봤다. 그러다가 돌덩이 중 하나가 사라진 것을 깨닫고 조심스레 질문을 건넸다.
“그러고 보니까 돌덩이 중 하나가 없네?”
“응? 응? 아, 그거. 오빠한테 보냈어.”
“아, 그렇구… 뭐?”
“나 혼자서는 도저히 답이 안 나오니까, 나 말고 다른 똑똑한 언니가 뭐라도 발견하면 좋겠다~ 싶어서 대충 포장해서 보냈어!”
라비아타는 닥터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항상 지성으로 반짝이던 닥터의 눈은 초점을 잃고 동공이 완전히 풀려있었다.
“우히히히… 나만 당할 수 없어, 그래… 나만 당할 수 없지. 머리 좀 쓴다는 언니들은 전부 이 돌덩이에 좀 고통을 당해봐야 한다구.”
“하, 하하…….”
아무래도 닥터한테는 제대로 된 긴 휴가가 필요해 보였다.
-
“이거 아무리 봐도 장식품으로 쓰라고 보낸 거 같은데.”
높이 1.2m에 달하는, 이리보고 저리봐도 ‘저 정교하게 만들어졌습니다.’라는 거 빼면 도통 알 수 없는 직육면체 돌덩어리가 함장실 안에 세워져있었다. 딱히 둘 곳이 없어서 방 한구석에 세워둔 거지만, 사령관은 정말로 이 돌덩이를 장식품으로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어머, 주인님. 닥터 양이 그 말을 들으면 엄청나게 삐질 거라고요?”
그런 그의 말에 늘 옆에서 호위와 보좌를 겸해주고 있던 블랙 리리스가 살짝 딴죽을 거는 것도 이젠 익숙한 일상이었다.
“다들 너무 어렵게만 생각하는 것 같아서 그래. 실제로는 별 대단한 게 없는데, 뭔가 굉장한 수수께끼가 숨어있을 거라고 생각하니까 어렵게 느껴지는 게 아닐까?”
닥터의 의도대로, 함장실에 보고를 위해 찾아오는 ‘두뇌파’ 바이오로이드들은 저것을 볼 때마다 저 돌덩이의 수수께끼를 풀려고 시도했다.
하지만 어떻게, 어디서부터 분석을 해야할 지부터 알 수 없었다. 단추도 없고, 구멍도 없고, 손잡이도 없는데다가 속에 뭐가 있는지도 보이지 않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흐음, 그건 그렇긴 하지만요~.”
블랙 리리스도 사령관의 말을 딱히 반박할 수 없었다. 저 돌덩이가 그녀의 피를 받으면 작동하는 걸 보니 그녀와 연관이 있는 건 확실했지만, 저게 뭔지는 그녀도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저걸 남긴 사람에게 물어볼 수 있으면 좋을 텐데…….”
“곳곳을 돌아다녀 봤지만…… 흔적만 있고 도저히 찾을 수 없었어요.”
“흠….”
사령관은 방 안에 놓인 돌덩이를 보며 말을 이었다.
“레아 프로토타입, 이라고 했지. 저걸 남긴 게.”
“아마도 그럴 거예요.”
최후의 인간은 펜으로 자신의 턱 끝을 톡톡 치면서 말했다.
“그 말을 들으니 저 돌덩이가 뭔지 더 알 수가 없네.”
“무엇이 이해가 안 가신다는 건가요, 주인님?”
“생각해 봐, 과연 ‘프로토타입 레아’가 이렇게 어려운 수수께끼를 남기고 자신을 찾아오길 기다릴 것 같아? 나는 프로토타입 레아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겠지만, 너나 라비아타, 그리고 지금 오르카에 있는 레아를 볼 때 일부러 복잡하게 일을 꼬아놓는 사람은 아니…….”
‘똑-. 똑-.’
그 순간, 예상치 못한 방문자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주인님, 오늘은 리제한테 일이 있어서 제가 대신 왔답니다.”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 오베로니아 레아, 페어리 시리즈의 맏언니가 급한 일이 생긴 자매 대신 찾아온 것이었다.
그 때였다.
치잉, 치이이잉…!
지금껏 침묵하고 있던 돌덩이가 갑자기 격렬하게 진동하며 조각조각 나뉘더니 꿈틀거렸다.
“레아, 건들지 마! 당장 돌아서!”
돌덩이에서 흘러나오는 기괴하고 경이로운 푸른빛에 홀린 것일까?
그녀가 도착하자마자 작동하는 이 돌덩이에서 강렬한 정신적인 이끌림을 느낀 것일까?
이유는 모르겠지만, 레아는 리리스가 미처 대처하기도 전에 에메랄드 색 눈동자를 희미하게 빛내면서 격렬하게 진동하며 꿈틀거리고 있는 모노리스로 검지를 슥, 밀어 넣었다.
‘기이이이잉….’
그 순간, 그 괴물체는 작동을 멈췄다.
아니, 정확히는 함장실 내부의 모든 전자기기와 함께 동시에 그 불이 꺼졌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지?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잘 켜져 있던 패널들이 깜빡거리다가 완전히 화면이 나가버렸다. 함장실 안에 있는 모두가 영문을 몰라 당황하고 있을 때, 하얀색 불꽃이 틈 사이에서 기어 나와 돌덩이로 빨려 들어갔다.
‘치잉, 치이잉, 치이이잉!!!!’
돌덩이는 빛을 흡수하더니 급격히 진동하며 푸른빛을 사방으로 내뿜었다. 레아의 손과 접촉했던 부분부터 산산이 부스러져 고운 가루가 되었고……
“나비…?”
‘쾅!’
-왜애애애애애앵!!!!!
함장실에서 작은 폭발음이 울리며 오르카 내에 비상 알람이 울렸다.
급작스레 펼쳐진 아수라장을 뒤로하고 날아가는 작은 나비는 마치 자신을 따라오라는 것만 같이, 문 너머로, 복도 너머로 나풀거리며 나아가며 희미한 궤적을 남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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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 준비하느라 바쁘니 글 쓸 겨를이 없었습니다
아무튼 레아 is ba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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