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eR:Automata
우선 솔직해지자.
나는 2B가 도발적인 드레스를 입고 특정 신체 부위의 존재감을 살짝 살짝 드러내며 전장을 종횡무진하는 체험판에 낚여 이 게임을 구매했다. 나를 경멸해도 좋다. 시나리오에 몰입하면 2B의 특정 신체 부위는 신경쓰이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초인들도 있는 모양이다. 하지만 나는 결코 확신한다. 니어 오토마타의 제작자는 플레이어가 2B를 눈앞에 두고 도덕적으로 해탈하는 사태를 바라지 않았을 것이다.
간단한 이야기다. 이제는 거장이 된 요시다 아키히코가 그려낸 2B의 일러스트를 받아본 니어 오토마타의 디렉터는 즉시 모델러를 소집, 이 일러스트에서 유난히 강조된 특정 신체 부위를 혼을 담아 모델링하지 않으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협박했다. 예산과 스케쥴 상 오토마타 팀은 그래픽적 완성도를 극한까지 추구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2B의 엉덩이만큼은 월드 클래스의 완성도로 재현되었다. 아니, 오픈 월드 게임에 이런 퀄리티는 전에 없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터이다. 이런 엉덩이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니 납득할 수 없는 이야기다. 차라리 예수나 석가모니가 아니고서야 이를 수 없는 득도라 해야할 것이다. 그 민망함은 눈을 돌려서 해결될 수준이 아니다. 집착이 지나칠 정도였다.
민망하고 불편하고 자극적. 이것이 니어 오토마타
디렉터는 그렇게 완성된 엉덩이를 모두에게 자랑하고 싶어 안달이 난 것만 같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자폭 커맨드에 2B의 스커트가 날아가는 연출을 넣었을 리가 없다. 그리고 플레이어는 2B의 엉덩이를 아무런 제한없이 볼 수 있게 된다. 그것도 모자라 디렉터는 2B의 엉덩이를 훔쳐보는 행위를 도전 과제로 삼는 만행을 저지른다. 볼거야. 이제 볼거야. 절대로 볼거야. 봐, 보잖아. 그리고 제작자의 의도를 알게 된 플레이어는 2B의 엉덩이를 관음할 있는 면죄부를 획득한다. 분명히 말해 이 디렉터는 변태다. 그리고 이를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자신의 게임을 고객에게 어떤 식으로 어필해야 하는지도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 위태위태하다. 2B의 짧은 스커트만큼이나 아슬아슬하다. 언제 그 변태성을 공격받더라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지금까지 그가 만들었던 게임이 가열차게 공격받고 무시당했던 것처럼.
감히 예상하건데 2B의 액션 모션이 조금이라도 완벽하지 않았더라면 반드시 그렇게 되었을 것이다. 2B의 움직임에 빈틈이 있었다면 그녀의 특이하고도 복잡한 설정이 조명받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절도 있으면서도 부드럽고,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면서도 육중하며, 어디까지나 엘레강트한 2B의 모션이 가져오는 믿기 힘든 상승 효과를 통해 2B의 복장은 파렴치한 상술에서 치밀하게 계산된 성과품으로 탈바꿈한다. 디렉터가 플래티넘 게임즈와 손을 잡은 것은 신의 한수였다. 국내 발매전부터 화제가 되었던 2B 모션 편집 영상은, 한번도 보지 못한 사람은 있을지언정 한번만 본 사람은 한명도 없으리라. 인생 역전급 반전이다. 모션은 이렇게나 중요하다. 2B의 캐릭터성은 훌륭하다.
2B: PERFECT MOTIONSET
충분하다. 이제 내게는 이 완벽하게 기획된 2B를 사역해 광활한 필드를 질주하며 사특한 기계 생명체를 척살할 일만 남았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2B의 엉덩이보다 조금 넓은 맵을 몇 번이나 강제로 왕복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 뿐 만이 아니다. 전투 시스템이 너무 얕고 가벼워 2B의 완벽한 모션에 전혀 걸맞지 않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개성적이고 다채로운 모션과는 달리 2B가 다루는 병장기에는 성능 면에서 별 차이점이 없고, 무적 회피는 너무나 간단하고, 적의 패턴은 단순한데다 한정적이고, 2B는 아무런 제한없이 질풍처럼 달릴 수 있으며, 지원기체가 제공하는 공격은 무한 탄환 치고는 심각할 정도로 강력하다. 결국 모든 전투 장면은 버튼 연타로 끝날 뿐이다.
하지만 나는 동시에 이 상황이 그렇게 신경쓰이지 않는다는 사실도 함께 깨닫는다. 그것도 당연하다. 디렉터가 니어 오토마타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그가 긴 시간 동안 구축한 음울한 분위기의 세계관이다. 그리고 이를 풀어내는 스토리 텔링이다. 전투 시스템은 스토리를 지지하는데 필요한 부차적인 것에 불과하다. 스토리에 방해가 되는 복잡한 시스템은 불필요하다. 2B가 멋지고 화려하게 기계 생명체를 학살할 수만 있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게임이 어려워 레벨업을 해야하는 수고는 디렉터가 원하는 바가 아니다. 아무 문제 없이 시나리오를 일직선으로 꿰뚫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다.
요코 타로의 머릿속에서 할머니란 어떤 존재일까
그리고 이를 온전하게 뒷받침하는 것이 OST다. 누구든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니어 오토마타의 OST는 각별하다. 세계관을, 나아가 이 게임 그 자체를 완성시킨다. 화려한 기교가 넘치면서도 조잡하지 않고, 장면 장면을 지배한다. 심지어 좁아터진 맵을 몇번이고 왕복할 때 느껴질 법한 따분함까지 전부 쓸어가 없애 버린다. 나는 2B의 시원시원한 달리기 동작과 그 배경에 깔리는 OST와 함께라면 이 조잡한 세계에 언제까지나 머무를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몽롱하고 환상적인 배경음에 취한 채 화려한 2B의 공격을 감상하며 나는 이 게임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무엇인지 다시금 되새긴다.
마침내, 인류에게 영광 있으라. 이제 방해되는 것은 없었다. 나는 2B와 함께 달려 나갔다. 짜임새만 있고 재미는 없는 슈팅 파트만 잘 넘기면 이 게임을 중도하차할 어떤 위험도 없어 보였다. 그렇게 죽이고 또 죽이고 게임 내에서 가장 위험한 적인 아담과 이브마저 9S의 힘을 빌어 물리쳤다. 2B와 9S의 애틋한 관계를 담담히 그려내는 엔딩을 보며 나는 만족한다. 엔딩 스텝롤과 함께 챕터 1이 종료된다.
그러나 이어지는 전개에 나는 디렉터에게 정신적으로 멱살을 잡힌 것 같은 느낌에 사로 잡혔다. 디렉터가 내 귓가에 속삭이는 것 같았다. 내 이름을 말해봐. 알고 있다. 요코 타로. 단언해도 좋다. 나와는 일면식도 없는 그는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걸 들어줄 생각 따윈 애초부터 없었을 것이다. 게임에서 나는 철저하게 약자였다. 우롱당하고 있다는 사실도 인지하지 못한 채 정신을 잃고 표류했다. 아니, 실은 디렉터가 신물이 날 정도로 이상한 사람이라는 걸 나는 잘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나에게 선택지는 없었다. 나는 모르는 척 멱살을 잡힌 채 질질 끌려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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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B! 2B를 내놔!
그랬다. 플레이어가 목을 거북이처럼 늘이고 다음 전개를 갈구할 때 디렉터는 천연덕스럽게 챕터 1의 스토리를 다시 보여준다. 챕터 2는 다만 2B 대신 9S의 시점을 다룰 뿐이다. 이미 2B의 매력에 빠져들어 디렉터를 신봉하기 시작한 사람들은 쉬이 받아들이기 힘든 전개에 아연실색했다. 하지만 오토마타의 세계에서 디렉터의 의지는 절대적이다. 노예 취급을 받아도 어쩔 수 없다. 따를 수 밖에 없다.
전부 내려놓을 수 밖에 없었던 나는 애써 여유를 갖고 캐릭터를 뜯어보기로 했다. 스캐너 타입인 9S는 배틀러 타입인 2B 처럼 화려하게 싸울 수는 없지만 기계 생명체를 해킹해서 직접 회로를 태워 죽일 수 있는 간지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이를 이용한 스토리 연출이 매우 독특하고 능숙하며 참신하다. 9S는 해킹을 통해 기계 생명체가 숨기고 있는 기억을 소설처럼 읽어내는가 하면, 세계 곳곳에 숨겨져 있는 특수 상자를 열어 레어 아이템은 물론이고 게임의 비밀과 관련된 중대한 문서를 얻기도 한다.
하지만 그 모든 새로운 요소가 생각만큼 신기하진 않다. 정말이지 너무도 재미없었기 때문이다. 특히 전투 시스템이 놀라울 만큼 허무하다는 사실을 되새길 수 밖에 없다. 손가락 한마디나 될까 싶은 얄팍한 깊이가 2B와 그녀의 화려한 움직임의 보조를 받지 못할 때 그 만듦새가 어떻게 무너지는지 직접 친절하게 알려주는 디렉터에게 한숨을 되돌려 준다. 니어 오토마타의 전투 시스템은 아쉽기 그지 없다.
굳이 해킹 연출은 검색하고 싶지 않다
미니 슈팅 게임으로 표현되는 9S의 해킹은 시나리오 연출에 조금씩 사용할 때나 신선했을 뿐이지 반복적으로 줄구장창 사용하면 이 또한 얼마나 지루한지 또한 쉽게 알게된다. 그렇다고 방어력을 무시하는 광역 공격기인 해킹을 봉인할 수는 없다. 액션이 단순하고 재미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해킹도 그에 비슷할 만큼 허무하다. 이 시너지가 얼마나 심각한지 필설로는 형용이 불가능하다. 우로보로스다.
무엇보다 나는 챕터 2가 어떻게 끝나는지, 그 과정에서 어떤 사건이 일어나는지 전부 알고 있다. 물론 새로운 컷신이 없는 것은 아니다. 9S가 2B에게 가진 감정을 절절하게 풀어내고 이를 근거로 새로운 전개를 암시하는 연출은 여전한 흡인력을 과시한다. 그러나 감질맛이 날 뿐이다. 나는 그 뒷 이야기를 알고 싶다. 하지만 전술한 바와 같이 챕터 2는 이전 시나리오를 그대로 반복해 진행할 뿐이고, 플레이 타임의 태반을 손맛도 재미도 없는 슈팅 게임으로 소모한다. 매우 지리멸렬하다. 니어 오토마타에 좋지 않은 평을 내리는 사람들 중 많은 사람들이 챕터 2의 지루함을 문제 삼는다는 것은 억측도 비밀도 아니다. 2B 생각이 간절해진다. 그녀가 돌아오면 이야기가 움직이기 시작할 테니까.
그 금단현상 속에서 문득 궁금해진다. 디렉터는 왜 이런 반복적인 구성을 택했을까. 어째서 이야기가 더없이 잘 진행되던 중 2B를 떠나 보내야 했을까. 이유가 떠오른다. 답은 하나밖에 없다. 디렉터가 그럴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 의미를 생각해 본다. 하지만 이내 생각하는 것을 멈춘다. 내가 절대로 인정하고 싶지 않은, 그러지 말았으면 싶은 가정이 현실로 다가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뱃속에 차가운 것이 지나가는 것 같다. 알 수 없는 위화감에 나는 게임을 곱씹어 본다. 결국 9S가 없으면 이브는 커녕 고환처럼 생긴 기계 생명체 하나 썰지 못하던 2B를 떠올린다. 그런가 하면 2B는 컴맹마냥 전자록 걸린 상자도 마음껏 열지 못하지 않았던가. 그리고 챕터 2에서 시간을 1초도 낭비하고 싶지 않다는 정체모를 위기감이 증폭된다. 어서 2B에게 돌아가야 한다. 모든 상자를 사냥해야 한다는 JRPG 유저로써의 본능도 무시한다. 9S 전용 퀘스트라도 찾아볼 요량으로 맵을 탐험해볼까 싶은 마음도 고개를 들지만 애써 접어둔다. 그저 2B를 다시 만나기 위해 시나리오를 서두른다. 제발 내 예상이 틀리지 않기를. 디렉터의 웃음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은 착각이 일었다. 무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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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B는 멋져 보이지만 혼자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이 눈물나는 취급은 뭐야
챕터 3의 도입부에 2B를 만났다. 고향에 돌아온 것 같다. 기대했던 것과 같이 새롭고 묵직한 시나리오가 전개된다. 2B는 무엇을 입어도 어울렸고 언제나처럼 멋지게 전장을 장악했다. 그러나 불안은 여전하다. 2B는 9S 없이 중요한 일은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반편이라는 사실은 계속 강조된다. 이윽고 모든 것이 확실해지는 때 2B는 최악의 형태로 퇴출된다. 정말로 분한 것은 그렇게 되기 까지의 연출이 너무나 인상적이라는 사실이다. 그렇게 2B는 칼날에 기억을, 9S에게 분노를, 나에게는 뒷통수에 통증을 남긴다. 가장 우려하던 사태가 일어났다. 거짓말이다. 디렉터의 이름은 요코 타로. 게임이 그냥 끝날 리가 없다. 실은 예상하고 있었다. 그저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2B는 주인공이 아니었다. 페이크. 주인공은 9S 였던 것이다. 심지어 엔드 컨텐츠를 즐길 때 조차 그렇다. 세상의 비밀을 효율적으로 파헤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2B 선택 비율을 줄이는 것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이에 더해 A2의 존재는 2B를 나락으로 떨어뜨린다. 그녀는 2B와 똑같은 얼굴로, 2B와 똑같은 동작으로, 그리고 2B 보다 훨씬 실용적인 최종기로 시나리오를 지배하고 이야기를 마무리하는 주역 중 한 명이 된다. 9S는 모든 비밀을 탐색할 수 있다. A2는 완벽하게 2B의 상위 호환이다. 그에 반해 2B는, 9S의 구원자 이미지로 묘사된 표지의 주인공은, 실은 썩 대단한 존재가 아닌 조연에 불과했다. 2B를 배제하고, 플레이어에게 충격을 주는 방법이 이보다 더 효과적일 수 없었다.
최소한 9S가 그랬던 것처럼 A2가 2B와는 차별되는 액션을 가지고 있었더라면 내가, 2B의 팬이 된 플레이어들이 이렇게까지 박탈감을 느끼진 않았으리라. 하지만 A2가 2B의 원형이므로, 어쩔 수 없다. 아, 그러세요. 솔직해지자. 돈이 부족했을 뿐이다. 사정상 어쩔 수 없는 면도 있었으리라. 설정을 이용해 예산을 절감하면서 연출 상 설득력을 부여한 디렉터의 수완은 인정해줘도 좋다. 이를 이용해 2B를 완전히 부정함으로써 반전의 강도를 높히는 것도 과연 디렉터 다운 생각이다. 알아, 안다고. 하지만,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게임이 거의 끝날 무렵까지 2B의 귀환을 기대하고 있었다. 9S가 2B를 향한 집착을 폭로하는 장치에 불과한 A2를, 그저 플레이어를 배신하기 위한 도구를 주인공으로 삼아 게임을 끝까지 진행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마지막에 나는 어서 이 게임이 끝나기만을, 스텝롤이 올라가는 것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에게 2B와 9S의 결말 이외에 중요한 것은 아무 것도 없었으니까.
돌이켜 생각하면 늘 이런 식이었다. 집단성교. 질척한 체액과 함께 아담이 태어나고, 태어나자 마자 살해당한 아담의 갈비뼈에서 이브가 생을 얻는다. 영아살해.인간을 흉내내 독립 국가를 세운 기계 생명체의 어린 왕을 A2가 꿰뚫는다. 광신교도. 죽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기계 생명체가 죽음을 통해 신이 된다. 카니발리즘. 아무런 조짐도 없이 폭주한 이웃 기계 생명체에게 잡아 먹힌다. 유아 집단 자살. 어린 기계 생명체들이 공포에 먹혀 스스로의 심장을 뚫어 자살한다. 이 디렉터는 언제나 그렇다. 자극적인 소재 없이 스토리를 진행시키지 않는다. 플레이어는 영문도 모른채 그저 격류에 휘말릴 뿐이다.
이야기의 중심에 두고 몰입하던 주인공이 바뀌는 스트레스는 범상치 않은 것이다. 아무리 설득력 있게 진행된다 하더라도 결국은 양날의 검이다. 가짜 주인공이 매력적일수록 충격과 거부감이 함께 커지는 폭탄이다. 하지만 이 디렉터는 이에 대해 조금도 걱정하거나 신경쓰지 않는다. 그는 단지 자극적인 소재를 그러모아 어떻게 하면 플레이어의 감성을 나락으로 떨어뜨릴 수 있을지만 고민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마치 그것만이 지상 과제인 것처럼, 철저하게 반전과 괴이함, 불편함에 집착한다. 굳이 강조하고 싶다. 그는 외도다. 약점을 찌를 줄은 알지만 정면 승부를 하지 못하는 것이 그의 강점이자 약점이다. 휘몰아치는 이야기에서 감히 눈을 돌릴 수는 없다. 하지만 그 수법은 그저 처절하고 비열할 뿐이다. 잔잔함 속에 숨겨둔, 지긋하게 쌓아올리는 감동을 이 디렉터에게서 기대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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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B의 이야기를 좀 더 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나 깨닫고 만다. 그 모든 결말을 목도한 나는, 2B의 이야기를 그토록 갈구하던 나는 언제부터인가 지금의 니어 오토마타가 최선이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고 의심하게 된다. 물론 A2와 2B는 비교할 수 없다. 쿨하고 입은 거칠지만 실은 상냥하고 따뜻한 A2의 캐릭터는 그저 평범하고 심심할 뿐이다. 그래서 2B를 더 많이 사용하고 싶었다. 그녀의 본심을 더 알고 싶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9S의 광기를 좀 더 보고 싶어하는 내가 있었다. 이를 위해 2B가 자리를 비워야 한다면 그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인지도 모른다고 체념하는 내가 있었다. 결국 내 상상력은 이 디렉터를 뛰어넘을 수 없었다. 그랬다. 어쨌든 디렉터의 방식이 더 재미있다. 디렉터가 니어 오토마타를 자신만의 작품으로 완성시키기 위해, 이 오만한 작법이 반드시 필요했다. 그러므로 인정해도 좋다. 내 푸념은 개인적인 칭얼거림에 불과하다.
나는 분명히 니어 오토마타의 시나리오를 충분히 즐겼다. 2B가 9S의 시체 앞에서 오열하는 알기 쉬운 연출부터 로딩 화면이나 메뉴까지 이용하는 참신한 시도, 얼굴도 모르는 동지들의 도움을 발판으로 현실에 개입하여 진엔딩으로 연결되는 도발적인 스텝롤까지. 탄막 슈팅에 집착하는 디렉터의 고집과, 그간 인정받지 못했던 자신의 작품 세계에 대한 자기 연민과, 이제야말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이래도 내 게임이 아무 것도 아니라고 생각해? 치기어린 자신감까지. 나는 게임의 모든 것을 온전히 즐겼다.
그래도 좀 더 2B를 사용하고 싶었다
허나 아쉬움은 사라지지 않았다. 나는 세이브 파일을 삭제하지 못했다. 미련이 남았기 때문이다. 만족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여전히 아직 2B라는 캐릭터가 아쉽다. 2B에게 숨겨진 가장 중요한 진실과 9S와 엮여있는 파멸적인 관계성을 고작 텍스트 몇 줄로 얼버무린 디렉터가 원망스럽다. 그것을 2B의 대체자에 불과한 A2가 전부 알고 있다는 듯 잘난척 하며 폭로하는 장면도 싫다. 제대로 조명받지 못한, 2B와 9S의 복잡미묘한 감정선이 안타깝다. 이야기의 주역으로 2B가 아닌 9S를 선택해 챕터 2를 비루한 슈팅으로 채워넣은 디렉터의 독단에 고개를 세로 젓고 싶지 않다. 납득하고 싶지 않다. 시나리오 전개에 대한 디렉터의 자기 주장이 강한 만큼 반발력도 커지는 법이다. 이런 점은 전작과 마찬가지다. 디렉터가 시종일관 충격적인 전개에만 집착하기 때문에, 그 고집이 게임성에 강하게 영향을 주기 때문에, 그의 작법에 공감하지 못하는 플레이어가 그를 쉽게 외면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런 탓일 것이다. 나는 요코 타로가 정성스레 준비한 최종 병기로 플레이하면 클리어가 더욱 용이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굳이 2B를 선택해 DLC 투기장을 클리어하고 있다. 9S가 아니면 들어갈 수 없는 투기장은 아예 두 번째 발걸음 조차 하고 있지 않다. 알고 있다. 나는 어린 아이처럼 억지를 부리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2B가 즐겁다. A2를 순순히 받아들이고 싶지 않다. 9S로 플레이할 때에는 심지어 재미까지 없다. 이제와서는 굳이 그를 고르고 싶지 않을 정도로 그렇다. 결국엔 니어 오토마타도 게임이다. 스스로 재미없다고 느끼는 부분까지 포용할 필요는 없다. 디렉터가 스스로 초래하고, 인정해야만 하는 결과다. 이 게임은 재미있다. 그와 동시에 아쉽고 당혹스럽다.
죽여, 다 죽여, 2B!
후속작은 기대된다. 나는 올해 발매된 그 어떤 게임보다 니어 오토마타를 몰입해서 즐겼다. 아니, 기대되지 않는다. 자극적인 소재 없이 스토리를 진행하지 않는 디렉터가 이렇게까지 자극적인 소재를 남김없이 써버린 다음 또 어떤 자극적인 이야기를 쓸 수 있다는 말인가. 아니, 기대된다. 자극적인 소재에 한계따윈 없으므로. 나는 아직 디렉터의 변태성을 전부 간파하지 못했으므로. 아니, 기대되지 않는다. 디렉터가 2B와 9S를 가만히 놔둘 리 없으니까. 천신만고 끝에 겨우, 전세계의 유저들의 자발적인 희생 끝에 마침내 안식과 평화를 찾게된 2B와 9S를 가만히 놔두지 못하고 절망의 무저갱에 처박을 테니까. 아니, 기대된다. 니어 오토마타에서 평화를 쟁취해낸 것처럼, 2B와 9S는 어떤 상황에서든 살아갈 테니까. 아니, 기대되지 않는다. 대신 댁이 하고 싶다던 어덜트 비디오라도 만들면 어때.
그래서 결론은 무엇인가. 나는 이 변태 디렉터의 후속 작품을 원하는 것인가, 아닌 것인가. 모르겠다. 나 스스로도 잘 모르겠다. 술을 쳐먹고 시나리오를 쓰면 더 잘써진다는 디렉터의 저주스러운 개성이 어느 쪽으로 튈지 내가 어떻게 예상한단 말인가. 니어 오토마타가 예상밖의 성적을 거뒀으니 이 저축을 갉아 먹으며 살겠다는 그를 내가 어찌 믿을 수 있단 말인가. 그저 분명한 것은 내가 총력을 기울여 니어 오토마타를 마무리 지었다는 사실이다. 요코 타로가 앞으로 어떤 작품을 발매하든 상관없다. 진실을 보지 못해도, 말하지 못해도 상관없다. 나는 챕터 2의 애석함과 그 외 모든 어려움을 뚫고 2B와 9S를 구해냈다. 내 안에서 니어 오토마타는 해피 엔딩으로 끝을 맺었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러니까, 시끄러워. 세이브 파일은 지우지 않을거야. 안지워. 그만 포기하라고. 그런 걸 나에게 강요하지 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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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넘치는 말씀도 감사합니다. 디렉터가 고집이 워낙 강하다보니, 말씀하신 것 처럼 연출 곳곳에서 반감이 들 수도 있지만... 오히려 그 덕분에 특이하면서도 좋은 작품이 나올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저에게 니어 오토마타는 후속작이 기대되고, 또 걱정되기도 하는 아이러니컬한 작품이 되었네요. 2B의 캐릭터성이 매력적이라는 것은 사실 두 말할 필요가 없지요. 그만큼 안타깝습니다만. 그래도 주역 커플이 해피 엔딩을 맞이한 요코 타로의 기념비적인 작품이 된 만큼, 다소의 아쉬움은 접어둬도 될 것 같습니다.
(IP보기클릭)115.136.***.***
어제 밤에 엔딩을 본 작품이네요. 아직도 여운이 남아 니어 OST 를 구해 듣는 와중에 이 리뷰글을 정독하게 됐습니다. 게임 내/외적인 상세한 해석과 설명글이 필력이 상당하시네요. 흡사 기자의 잡지글을 읽는듯한 기분이네요. 그나저나 막판 엔딩의 여운이 지루하게 긴 탄막슈팅과 디렉터의 억지같은 지시사항에 약간은 반감이 들긴 하더군요ㅎㅎ 맵 해독이 너무나도 불편했던 점 빼고는 만족스런 작품이었습니다. 생각해보니 2B를 잃어버린 상실감에 미친듯이 게임에 몰입했던 건 아닌가 싶네요. 주연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조연은 아닌듯한 캐릭터 2B 충분히 매력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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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리뷰를 할 때면 손에 흑염룡이 깃듭니다. 그게 절 이렇게 만들곤 하죠. | 17.12.30 19:3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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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과 연출이 조화롭고 시나리오의 임팩트가 강해서 몰입도가 높지요. 전작에 비하면, 특히 연출면에서의 발전이 정말이지 눈부실 정도입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이 부분에서 플래티넘 게임즈의 힘이 컸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전작은 굳이 추천하지 않습니다. 니어 오토마타에 의해 높아진 기준을 통과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아요. 다만 후속작은, 계속 플래티넘 게임즈의 지원을 받는다는 전제하에, 꽤 기대해도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 18.01.05 17:5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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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밤에 엔딩을 본 작품이네요. 아직도 여운이 남아 니어 OST 를 구해 듣는 와중에 이 리뷰글을 정독하게 됐습니다. 게임 내/외적인 상세한 해석과 설명글이 필력이 상당하시네요. 흡사 기자의 잡지글을 읽는듯한 기분이네요. 그나저나 막판 엔딩의 여운이 지루하게 긴 탄막슈팅과 디렉터의 억지같은 지시사항에 약간은 반감이 들긴 하더군요ㅎㅎ 맵 해독이 너무나도 불편했던 점 빼고는 만족스런 작품이었습니다. 생각해보니 2B를 잃어버린 상실감에 미친듯이 게임에 몰입했던 건 아닌가 싶네요. 주연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조연은 아닌듯한 캐릭터 2B 충분히 매력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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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넘치는 말씀도 감사합니다. 디렉터가 고집이 워낙 강하다보니, 말씀하신 것 처럼 연출 곳곳에서 반감이 들 수도 있지만... 오히려 그 덕분에 특이하면서도 좋은 작품이 나올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저에게 니어 오토마타는 후속작이 기대되고, 또 걱정되기도 하는 아이러니컬한 작품이 되었네요. 2B의 캐릭터성이 매력적이라는 것은 사실 두 말할 필요가 없지요. 그만큼 안타깝습니다만. 그래도 주역 커플이 해피 엔딩을 맞이한 요코 타로의 기념비적인 작품이 된 만큼, 다소의 아쉬움은 접어둬도 될 것 같습니다. | 18.01.06 12:2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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