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부터 2003년까지 꾸준히 하나의 기판으로 총 10개의 작품이 나온 [KOF] 시리즈. 10년 동안 매년 하나씩 시리즈가 출시되었던, 게임 업계 사상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없었던 [KOF] 시리즈만큼이나 SNK의 MVS 기판도 긴 수명을 누려왔습니다. SNK가 한정된 성능의 기판을 가지고 10년 동안 꾸준히 게임을 제작한 반면에 아케이드 시장과 콘솔 시장에서는 몇 번의 기종 교체가 이루어졌고, 그에 따라 머신의 성능도 비약적으로 발전했습니다.
기나긴 세월 동안 하나의 기판만을 사용했던 덕분에 MVS 기판의 한계를 넘어선 모습을 보여줄 수 있었던 반면, 멋진 아이디어가 있어도 기판의 근본적인 한계로 인해 구현할 수 없었던 부분도 적지 않았습니다. 결국 [KOF] 시리즈를 비롯한 SNK의 게임들은 MVS 기판에서 아토미스 웨이브라는 새로운 기판으로 터전을 옮겨 시리즈를 이어나가게 되었으며, 이번 리뷰 타이틀인 PS2용 [KOF 일레븐] 역시 아토미스 웨이브로 아케이드에 출시된 후 PS2로 이식된 타이틀 중 하나입니다.
시리즈의 시작이었던 MVS용 [KOF 94]. |
새 기판으로 등장한 [KOF 일레븐]의 타이틀 화면. |
[KOF 일레븐]은 연도제를 채택한 이전 작품들과 달리 [일레븐]이라는 타이틀을 달면서 해마다 시리즈를 내야 한다는 압박에서 벗어남과 동시에 새로운 기판을 채택하면서 성능과 용량 문제에 있어서도 어느 정도 숨통을 틔운 모습입니다. 아토미스 웨이브는 쉽게 말해 나오미 기판의 저가형 버전이라 할 수 있습니다. 나오미 기판에서 문제시되었던 GD-ROM부의 고장을 해소하고 상대적으로 부가 장비를 덜어서 가격대 성능비 쪽으로 초점을 맞춘 기판입니다.
아무래도 저가형 기판이라는 성격상 몇몇 괴물 기판과 같은 수준의 그래픽을 표현할 수는 없겠지만 꽤 훌륭한 가격대 성능비를 보여주는 기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미 [길티 기어 젝스 1.5]와 [더 럼블 피쉬] 시리즈 등이 아토미스 웨이브 기판으로 제작된 바 있으며, [사무라이 스피릿츠 천하제일 검객전]과 [네오지오 배틀 콜로세움]도 아토미스 웨이브 기판으로 제작된 후 PS2로 이식된 바 있습니다.
아토미스 웨이브로 제작된 최초의 [KOF]인 [네오 웨이브]. |
[사무라이 스피릿츠] 시리즈의 최신작인 [천하제일 검객전]. |
기판 변경으로 인해 게임 내에 일러스트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되었으며 배경의 고해상도화, 다양한 특수효과의 연출이 가능해졌습니다. MVS 기판은 자체적으로 반투명 기능을 지원하지 않았지만 [KOF 일레븐]에서는 필살기의 효과나 그림자 효과를 자연스럽게 연출할 수 있었으며, MVS 기판으로는 상상도 못했던 자연스러운 그라데이션 효과까지 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사실 이러한 연출은 [KOF 일레븐]에서 처음 시도된 것이 아니라 이전 타이틀도 각종 콘솔로 이식되면서 다양한 그래픽 효과가 추가된 바 있기에 그리 와닿지 않은 모습일 수도 있습니다). 게임 자체적으로 프로그레시브 모드를 지원하기 때문에 깔끔하면서도 도트 튀는 화면을 감상할 수 있다는 것도 PS2용 [KOF 일레븐]의 장점 중 하나라 할 수 있습니다(게임 부팅시 세모+엑스 버튼).
이제 [KOF]에서도 깔끔한 일러스트를 볼 수 있게 되었다. |
사실 기판이 바뀌었다고 해서 게임이 완전히 새롭게 바뀐 것은 아니라서 큰 기대를 품고 게임을 했다간 실망감이 들 수도 있습니다. 배경은 깔끔하게 고해상도로 만들어졌지만 정작 대부분의 캐릭터 그래픽 데이터는 이전에 제작해둔 데이터를 뿌옇게 처리를 하는 방식으로 소소한 보정 처리를 한 뒤 다시 사용했기 때문에 기껏 새로운 기판으로 바꾼 티가 나지 않으며, 이런 문제점은 전작이라 할 수 있는 [네오 웨이브] 역시 지적된 부분이기도 합니다.
사실 아토미스 웨이브 기판이라고 해서 모든 면에서 MVS 기판을 월등히 능가하는 만능 기판은 아닙니다. 롬팩 시스템임에도 불구하고 구조상의 한계로 데이터 전송률이 좋지 않아 꽤 짧지 않은 로딩이 발생하며, 용량도 무한정 늘릴 수 없습니다. 전작인 [네오 웨이브]의 경우에는 용량이 128메가로, 이 용량은 기존 MVS 기판으로 제작할 때보다 겨우 4~50메가 정도 늘어난 용량입니다. 결국 이런 저런 문제로 인해 현재 [KOF]의 후속작은 다시 아토미스 웨이브 기판에서 타이토의 Type X2 기판으로 무대를 옮겨 제작되고 있으며, 모든 그래픽 데이터를 새로 제작하고 있는 중입니다(당분간 SNK 플레이모어의 타이틀은 이 기판으로 제작될 예정).
환장적인 로딩 속도를 자랑했던 PS2용 [네오지오 배틀 콜로세움]. |
다른 아토미스 웨이브 이식 타이틀과 다르게 로딩이 짧다. |
옵션에서 캐릭터 보정 효과의 정도를 조절할 수는 있지만 완전한 대안책이 될 수는 없다. |
[KOF 네오 웨이브]가 [KOF 2002]를 베이스로 만든 타이틀이라 하면 [KOF 일레븐]은 [KOF 2003]을 바탕으로 제작한 타이틀이라 할 수 있습니다. 대전 도중 자유롭게 캐릭터를 바꾸어가며 싸울 수 있는 시프트 시스템을 채용했으며, 복잡해진 시스템에 맞춰서 버튼 하나를 추가해 날리기 공격과 리더 필살기용 기술에 할당해 유저 편의성을 높였습니다. 버튼 네 개에 익숙한 유저들에게 조금 어색할 수도 있겠지만 날이 갈수록 복잡해지는 시스템에 버튼 조합이 다양하게 쓰이는 게임이니만큼 하나 정도 추가해서 여유 있게 사용하게 한 듯합니다. 초필살기 등을 사용할 때 사용되는 기존의 파워 게이지와 더불어 스킬 게이지가 추가되었으며, 최대 두 개까지 모을 수 있는 스킬 게이지는 드림 캔슬이나 슈퍼 캔슬, 퀵 시프트와 세이빙 시프트 등을 사용할 때 소비되고 자동으로 게이지가 차는 방식입니다.
태그 시스템은 이전과 마찬가지 방식인 시프트 시스템을 채용했다. |
본 게임에서는 슈퍼 캔슬 시스템과 드림 캔슬 시스템 두 가지가 중요한 공격 시스템이라 할 수 있습니다. 슈퍼 캔슬은 특정 필살기에서 특정 초필살기로 연결해서 사용할 수 있는 비교적 익숙한 시스템(리더 게이지, 슈퍼 게이지 하나 소비)이며, 드림 캔슬은 특정 초필살기에서 리더 필살기로 이어줄 수 있는 시스템(리더 게이지, 슈퍼 게이지 하나 소비)입니다. 게이지 수만 넉넉하다면 필살기-초필살기-리더 필살기까지 이어 넣을 수 있으며, 조작감도 나쁘지 않은데다 캔슬 타이밍도 꽤 너그러운 편이어서 굳이 스틱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PS2 패드로도 그리 힘들지 않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특히 커맨드 저장 기능을 이용해서 한번 만들어놓은 콤보를 버튼 하나로 쉽게 낼 수 있다는 것도 어느 정도 찬반 논란은 있겠지만 패드 조작에 힘들어하는 유저를 고려한 괜찮은 시스템이라 할 수 있습니다.
슈퍼 캔슬 전용 필살기 히트(혹은 가드) 후. |
초필살기로 슈퍼 캔슬. |
초필살기 히트(혹은 가드) 도중. |
역시 리더 필살기로 드림 캔슬 가능. |
기본 캐릭터는 33명이지만 PS2로 이식하면서 아케이드용 히든 캐릭터 5명과 보스 캐릭터 2명을 제외한 PS2 전용 히든 캐릭터 7명을 따로 추가하면서 가정용 타이틀만의 요소를 확실하게 챙겨주었습니다. 새로이 추가된 캐릭터는 미스터 빅, 기스 하워드, 로버트 가르시아, 마이 시라누이 등 모두 어떤 형태로든 예전 시리즈에서 출연한 적 있지만 아케이드용 [일레븐]에서는 볼 수 없었던 캐릭터들입니다. 챌린지 모드을 진행하다보면 얻을 수 있는 이러한 히든 캐릭터들은 특별히 캐릭터 셀렉트 화면에 추가로 캐릭터 선택칸이 생기지는 않고 화면 밖으로 커서를 이동시키면 고를 수 있는 방식입니다. 캐릭터 추가 외에도 새로운 스테이지와 어레인지 BGM, 예전 다른 타이틀에서 사용되던 BGM 등을 추가로 삽입해서 꽤 정성 들여 이식한 가정용 타이틀이라는 수식어를 달아주었습니다.
이미 여러 타이틀에서 봐왔던 익숙한 캐릭터들이 추가되었으며 [KOF 일레븐] 시스템에 맞게 그래픽 데이터도 수정되었다. |
가정용 버전만의 추가 캐릭터와 추가 배경, 팬들의 심리를 잘 파악한 듯한 BGM의 추가 등 PS2용 [KOF 일레븐]은 아케이드 버전에 비해 추가 요소가 굉장히 풍부한 편입니다. 어떻게 보면 아직까지도 [KOF] 시리즈 최고의 이식작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높은 평가를 받는 DC용 [KOF 99 에볼루션]보다도 더 풍부하고 정성을 들인 추가 요소를 자랑한다고 평가받을 수도 있는 타이틀입니다. 게다가 한국의 경우 아토미스 웨이브 기판을 사용한 [KOF 일레븐]이라는 타이틀 자체를 구경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집에서 편하게 플레이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가정용 [KOF 일레븐]만의 가치는 높은 점수를 줄 수 있을 듯합니다. 다만 여러 문제로 인해 네트워크 대전 모드를 플레이할 수 없다는 것은 아쉬운 부분으로 남습니다.
이전 시리즈와 다르게 꽤 볼 만한 일러스트가 많다. |
캐릭터 컬러 에디트도 굉장히 세세하게 설정할 수 있다. |
하지만 PS2용 [KOF 일레븐]의 강점으로 꼽히는 \'아케이드에서 보기 힘든 게임을 집에서 할 수 있다\'는 것은 되려 약점으로 지적될 수도 있는 문제입니다. 바로 아무리 연습을 해도 제대로 된 대전을 할 수 없다는 것. 대전 격투 게임을 즐기는 사람에게 있어 이보다 더 큰 짜증도 없을 겁니다. 대전을 하고 싶어 열심히 연습을 해서 해당 게임을 잘 할 수 있더라도 아케이드에서 제대로 대전할 수 있는 여건이 안 된다면 결국 친구 몇 명과 대전하는 것에 그칠 뿐입니다. 챌린지 모드나 엔들리스 모드 등의 도입으로 혼자서도 적적하나마 플레이할 수 있는 모드가 있지만 충분한 대안이 될 수는 없는 노릇이며, 일본이야 네트워크 대전을 할 수 있다지만 위에서도 언급했듯 한국은 그마저도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상황이기에 더욱 아픔으로 다가오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특정 조건하에서 대전을 펼치게 되는 챌린지 모드. |
추가 캐릭터들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플레이하자. |
이미 2D 대전 격투 게임은 예전처럼 메이저급 장르로 대접을 받지 못하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고, 활기차게 2D 대전 격투 게임을 제작하던 회사들도 버전업 정도의 타이틀은 내놓지만 제대로 된 후속작이나 신작은 거의 내놓지 않는 상황입니다. 대부분의 게임 장르가 그러하겠지만 즐기는 유저의 수가 줄어들고 그 유저층이 골수 유저화 된다면 그 장르는 좀 더 복잡해지고 매니악해지는 성향이 있는데(혹은 반대로 게임이 복잡해져서 유저들의 수가 줄어든다든가), 한때 [철권] 시리즈와 더불어 국민 게임이라 불리던 [KOF] 시리즈라 해도 이 문제점에서 자유스러울 수만은 없습니다.
처음 시리즈가 등장한 지 10년이 훌쩍 넘었고, 이런저런 외전격 타이틀을 제외하고 순수한 넘버링 타이틀로 시리즈 열한 번째 타이틀이 등장하기까지 끊임 없이 유저들의 요구에 답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으며, 이런저런 시도들 가운데에는 유저들의 싸늘한 반응을 이끌어낸 시도도 존재했지만 [KOF 맥시멈 임팩트] 시리즈처럼 색다른 방향을 모색하기도 하는 등 긍정적인 움직임을 많이 보여준 것도 사실입니다. 완전히 새롭게 제작하고 있다는 후속작과 과거 시리즈의 연장선 사이에 조금은 애매한 위치를 차지하는 [KOF 일레븐]이지만 허술한 이식으로 대충 때우고 보자식의 타이틀이 아니라, 기존 데이터를 활용한 마지막 타이틀의 이식작이니만큼 유종의 미를 확실하게 거두자는 열의가 단단히 느껴지는 것만으로도 PS2용 [KOF 일레븐]의 존재의의는 그리 가볍지만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SNK의 사정이 좋았다면 2007이 제작되고 있었을라나. |
제작자의 집념마저 느낄 수 있었던 [KOF 맥시멈 임팩트 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