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다에서 나가라
협소한공간과 매회 늘어나는 참가자 , 주변으로부터의 항의등 더이상 게임센터 아테나에서 대회를 열기가 힘들어진 아테나컵
아테나컵4회는 무려 록본기!!(우리나라로 치면 이태원과 홍대 강남을 합친 이미지랄까.. 물장사,약,고급, 클럽, 젊은이, 외국인들등의 키워드로 설명되는)에서 클럽을 빌려서 열렸다.23구에에도 들지 않는 동네 오락실에서 도쿄최고의 환락가에서 대회라니. ...
세대교체
이때를 기점으로 대대적인 세대교체에 들어서게 된다. 한국에서는 크게 유행하지 않았으나 일본에서는 2.1로 버젼이 정착되면서 엘보, 니, 잡기 두방이면 승부가 결정나던 게임성에서 밸런스 조정과 함께 소위 변수가 많이 줄었다. 본능으로 또는 운으로 한방승부하던 게임에서 나름의 연구와 전술이 요구되는 운영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내기억에는 끝까지 피지컬쌈이었는데..) 1~2로 유지되온 철인이라는 존재에 대해 격투게임이라면 당연히 생길[내가 더 강한데?] 란 전투본응이 각지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버파2 왜했냐면 내가 철인보다 더 잘한다는걸 알게해주려고..라고 말하는 게이머들이 나오기 시작한게 이때쯤일꺼다. 버파1,2초기가 겜을 하지 않은 사회인들의 참여가 인상적이라면 이런 사회인들을 양분삼아 실력을 키워온 진성 겜돌이들이 일본버파씬을 주도하는 스토리가 시작된걸로 이때부터 기판을 구매해 프레임을 연구하는 모랄리스트들이 존재했다고 한다.
버파에서는 최초의 세대교체라고 해야할까. 2,3,4에서 상위권이 특정팀과 플레이어로 장기간 유지되온 한국에 비한다면 순위변화가 자주 일어났던것도 일본 버파의 특징이라면 특징. 이때를 기점으로 일본 버파씬에서는 2중후반과 3까지를 리드한 플레이어들이 두각을 나타내게된다.
같은해 철인중 3명이 앞서 서술한 맥시멈 배틀의 성적부진을 이유로 철인칭호를 자진반납하게 된다. 치비타 가 전국대회에 데뷰한것도 이 아테나4회.(중딩 치비타의 데뷰가 록본기 클럽 -_-;;)
치비타의 전국대회 대뷰
치비타의 대회 데뷰전이자 팀 추파찹스의 탄생. 대회가 열린게 95년 11월인데 이때의 일본 버파는 앉아대쉬 G캔과 천발이 사용되기 시작한 시기로 한국과의 비교는 변방에 살던 나보다는 더 잘아는 누군가가 해주겠지.
영상에서 매처음 나오는 チビッコアキラ가 당시 치비타의 링네임으로 [꼬마 아키라.](일본나이 現40세) 영상 끝부분이 이대회의 하이라이트로 꼽힌 준결승에 대장전으로 붙은 ZAN아니 VS캬사오 라우경기로 오사카 플레이어인 ZAN아니 는 세가 공식 대회 맥시멈배틀의 우승자다. 그리고 이대회의 우승은 앞에 서술한 진성 겜돌이들로 구성된 메이다이마에가 가져간다. (응?)
VFR 의 발족.
4회 아테나컵이 일본의 버파씬에 남긴 가장 큰 유산은 세대교체가 아니라 엄청난 적자이다.
전국대회로의 형태는 가지게되었느나 작은 동네 오락실 혼자서 운영을 하기에는 부담이 큰 대회가 되었다. 이때를 회고 하면서 대회를 개최한 야마기시씨는 임대료로 3자리..를(백만단위) 낸적이 있다고 했다고 한다. 대회운영을 위한 부담을 줄이고 규모를 확장시킬 방법이 없을까? 당시 버파2의 인기덕에 각종이벤트가 각지에서 열렸으나 아무래도 세가 직영과 같이 수십대의 버파기기를 놓고 여는 이벤트에 대항해 중소 점포들은 어필할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했다. 이런 점포들과 협력하여 대회를 운영하고 지역 예선이나 본선시드권등의 이벤트를 나우어 개최하는 VFR의 구상이 시작된것이 이당시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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