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쌔신 크리드: 발할라는 여러 모로 주인공이 (기존 시리즈에 비해)독특합니다. 암살단이 아니라는 것도 그렇고, 이수의 환생이라는 설정도 그렇고, 그게 북유럽 신화의 대빵인 오딘이라는 점도 그렇습니다. 사실 제 느낌에 이번 작 주인공인 에이보르는 여러 모로 안티 히어로에 가깝습니다. 특히 꿈(아스가르드와 요툰하임, 그리고 이번 확장팩의 스바르트알프하임)에서 보게 되는 하비(오딘)의 성격, 행적 등을 보면 더욱 분명해지죠.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서양의 신화라고 하면 대표적으로 그리스, 로마 신화와 북유럽 신화가 있습니다. 그래서 관련 컨텐츠도 아주 많습니다만, 그리스, 로마 신화 관련 내용보다는 북유럽 신화가 차용되는 경우가 더욱 많습니다. 제 개인적인 추측이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바로 북유럽 신화의 모호함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그리스, 로마 신화는 어린이들도 책으로 읽을 정도로 내용이 자세하고 분명합니다만, 북유럽 신화는 대부분의 내용이 불명확하거나, 중구난방이고, 빠져 있거나 유실된 내용도 많은 데다, 지역에 따라서 내용이 다른 부분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변형과 가공이 그리스, 로마 신화에 비해 자유롭고, 창작자의 상상력이 개입할 여지가 더 많죠. 우연이지만, 제가 북유럽 관련 컨텐츠와 게임을 연속으로 접하게 된 것도 타이밍 상 절묘했다고 할 수 있겠네요. 컨트롤(신화 요소는 아주 약간의 조미료 수준으로 들어가 있습니다만), 갓 오브 워(400시간 정도 했네요), 어크 발할라를 연속으로 플레이 하고 나니, 과장 조금 보태면 북유럽 신화 관련 내용들이 머릿 속에서 뒤죽박죽이 될 지경이었습니다. 그러다 게임을 좀 안 하고 쉬다 보니 딱 라그나로크의 서막 확장팩이 등장했지요.
그리스, 로마 신화도 상당한 막장력을 자랑하긴 합니다만, 북유럽 신화는 그보다 더한 Dog 막장과 블랙 코미디의 향연이기 때문에 그 신화의 주인공이 등장하는 이야기도 막장으로 흐르는 건 당연한 것이 아니냐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지만...
북유럽 신화의 신들을 모티브로 한 주인공들이라도 아름답고 착하게 포장한 창작물(대표적인 게 MCU)들이 넘쳐나는 걸 생각했을 때 어크 발할라의 경우가 오히려 특이한 경우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쌔신 크리드를 제가 좋아하는 이유는 대체로 선악의 경계가 뚜렷하지 않은 주인공들이 꽤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주인공이라고 무조건 착하고, 적이라고 무조건 악하지 않은 그런 인간의 복잡함과 다양성에 대한 현실적 묘사들이 영국적 블랙 코미디가 가미되어 등장하는 것 말이죠.
이전의 시리즈들보다 최근의 오디세이와 발할라로 오면서 이런 경향이 더 강해졌는데, 물론 플레이어의 선택에 따라 달라지는 부분도 있지만 주인공들이 현재의 가치관으로 보면 악하거나 비도덕적 행동을 할 때가 꽤 많습니다. 애초에 오디세이에선 그냥 아무나 학살하고 다녀도 경비병들만 달려들 뿐 플레이에는 아무런 페널티가 없었으니 가장 막장 주인공이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사이드 퀘스트나 여러 임무들에서도 최선보단 차악, 도덕보단 이득을 고르는 선택지가 등장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플레이어의 선택에 맡기는 경우가 더 많았고, 선택에 따라 충분히 누구나 납득할 '영웅적' 주인공이 될 수도 있었죠.
하지만 발할라에서는 플레이 상으로는 아무나 죽이고 다닐 수는 없게 되었으나, 스토리나 퀘스트에서 이전 시리즈보다도 더, 주인공이 현대적 관점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선택들과 행동을 합니다. 플레이어의 선택과 관계 없이요. 그래서 막장 드라마 같은 스토리로 보이고, 서사가 허술해 보이거나 불만족스러울 수는 있으나, 뼈대가 되는 내용이 북유럽 신화라는 관점에서 보면 신화 내용을 잘 살리면서 현실적인 내용의 영국식 블랙 코미디를 잘 버무린 듯한 느낌입니다.
에이보르와 하비의 이야기를 해 보죠. 에이보르는 하비의 환생이지만, 성격이 완전히 같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얼핏 보면 정의로운 것 같기도 하지만, 사실 행동과 그 결과들을 보면 대부분 철저하게 실리를 추구했다는 걸 알 수 있고(물론 플레이어의 선택이 개입할 여지가 있습니다), 중간 중간 나오는 대사들과 하비와의 내면의 대화(실제로 하비의 영혼이 깃들어 있었다기보다는 본인의 내면의 갈등을 그렇게 표현한 걸로 생각됩니다만)를 보면 이기적이거나 비도덕적 행동을 해놓고 가증스러울 정도의 자기 합리화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게임의 제목 자체가 'creed 신조'라는 거창한 이념이나 신념을 표현하는 단어를 포함하고 있는 만큼 이전 시리즈의 주인공들은 자기만의 '신념'이나 '이상' 또는 조직을 위해 암살 활동을 했습니다. 물론 처음부터 그러지는 않았지만, 큰 사건들을 겪으면서 정신이 성장하고 신념을 가지게 되는 경우가 많았죠. '폭력은 나쁘다'라는 현대 도덕의 기본을 놓고 보면 정의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플레이어가 주인공이 그런 신념을 가지게 되는 걸 '납득'할 만은 했다는 겁니다.
그런데 어크 발할라는 그렇지 않습니다. 에이보르는 바이킹이고, 바이킹은 어차피 약탈과 정복, 전쟁을 생업으로 삼던 집단입니다. 물론 그 나름대로의 문화와 체계가 있었지만, 그렇다고 본질이 변하지는 않죠. 그들은 날 때부터 전사이고, 싸움과 약탈을 신성하게 여기는 무리였습니다. 무지성 발할라를 외치며 돌격해서 죽어도 그걸 ㅂㅅ이 아닌, 간지남으로 생각하는 시대였다는 것이죠. 이런 가치는 현대에서 아무리 잘 봐 줘도 '납득'하기는 힘듭니다. 주인공 에이보르는 이런 바이킹 무리의 핵심이었죠. 그런데 바보 바이킹이 아닌 똑똑한 바이킹이어서 실리적인 판단이 바이킹의 가치보다 우선하는 사람이었던 것이고요.
물론 군주의 좋은 덕목입니다만, 에이보르는 군주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군주의 자질을 가졌으니 애초에 시구르드와의 마찰은 피할 수 없었지요. 에이보르는 처음부터 자신이 시구르드를 배신하고 대립할 거라는 계시를 받고 혼란스러워 하지만, 사실은 본인도 속으로는 원하고 있었던 걸지도 모릅니다. 에이보르를 모함할 때는 짜증난다고 생각했었던 다그의 말대로 결과가 진행 되어버리는 것과, 다그를 죽이고 나서의 에이보르의 신경질적 반응은 플레이어에게 별로 개운치 못한 뒷맛을 남깁니다. 이쯤되면 실제로 에이보르를 조종하는 플레이어조차 에이보르의 본심이 무엇인지 잘 모르게 될 정도죠. 시구르드는 본편에서 약간 지능이 모자란 듯한 멍청이 같이 묘사가 되긴 하지만, 상황과 환경 때문에 그렇게 변했을 가능성이 크고, 이 또한 결국 주인공인 에이보르 시점에서의 왜곡이라는 의심이 되기 시작하죠.
중간에 다그가 에이보르를 계속해서 모함하고 결국 홀름강을 신청해서 죽는 장면은 대부분의 플레이어에게 굉장한 답답함을 선사하지만, 가만히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 답답함의 일부는 에이보르의 진심을 플레이어도 100퍼센트 확신할 수가 없다는 것에 기인하기도 했습니다. 혹시나 '정말 다그가 하는 말이 맞는 소리 아닌가?' 라는 의심요. 한 치의 의심도 없이 에이보르를 믿기에는 행동과 내면(하비로 등장하는)에 구린 구석이 많았거든요... 형수님과의 연애도 포함해서...
물론 엔딩에서 결국 모든 게 잘 풀리고, 내면에서 하비(의 인격으로 추정되는 자)와 결전을 벌인 후 그 영향력에서 벗어나는 묘사가 나오긴 합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지난 행적이 다 정당화 되는 것도 아니고, 여전히 정의나 공리보다는 개인적(자신, 자신의 동족 및 친구의)이득만 중요시하는 기본 자세는 변한 게 없습니다. 이건 사실 보통의 인간이라면 거의 당연한 것이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 주인공들은 좀 더 도덕적이고 높은 가치에 매달리는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에 이런 이기적인 모습이 독특하다는 것이지요.
북유럽 신화 파트로 가서 하비를 살펴보면 완전히 뚜렷하게 이런 특성이 강조되는데요. 이쪽은 아예 대놓고 개인적인 욕심만을 따르고 신뢰나 도덕 같은 건 개나 줘버린 모습입니다. 자만, 유아독존, 안하무인이 이만큼 잘 어울리는 캐릭터도 드물 겁니다. 항상 거만하고, 자신을 업신여기는 걸 참지 못하며, 조금이라도 거슬리거나 자신의 이익에 반하면 죽이는 것도 서슴치 않는 잔인함까지 가지고 있습니다. 원하는 걸 얻기 위한 협박은 그냥 밥 먹는 것처럼 일상이고요. 또한 협박이 먹히지 않는 상대에게는 자신의 이득을 위해 거짓 약속을 하고 챙길 것만 챙긴 뒤, 헌신짝처럼 약속을 던져버리는 모습을 자주(!) 보여줍니다. 가장 하이라이트는 수퉁그르의 딸 히로킨을 거짓으로 꼬셔서 벌꿀주를 훔치는 파트인데요. 정말 양심의 가책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한 마리 제비(까마귀의 신이라며...)의 모습을 제대로 보여줍니다.
어떤 이유인지 알 수는 없지만, 드워프 장인인 이발디는 하비에게 속박이 되어 있는 몸이었는데, 하비가 펜리르를 구속할 수 있는 쇠사슬을 만들면 자유롭게 풀어주겠다는 약속을 합니다. 이 때 이발디는 아주 여러 번 재확인을 할 정도로 하비를 믿지 못하죠. 이것만 봐도 평소에 얼마나 신뢰가 없는 인간, 아니, 신이었는지 알 수가 있습니다. 아스가르드에서는 펜리르와 거의 유일하게 친분이 있는 티르를 이용해 펜리르를 구속하는데요. 펜리르가 자신을 속이면 티르의 팔을 물어 뜯어 버리겠다고 경고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뻔뻔하게 거짓말을 하고 펜리르를 쇠사슬로 묶으려합니다. 그 대가로 티르는 정말 팔을 잃었고요.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는 가장 친한 친구의 팔마저도 고민 없이 희생시켜버리는 그 하비의 성격은 게임을 하는 내내 감탄이 나올 정도입니다. 하비의 악행은 글로 적기엔 너무 많아서 이 정도만. 아무튼 이 게임에서의 하비는 딱 북유럽 신화에 나오는 오딘의 안 좋은 면을 최대한 온전히 가져왔다고나 할까요? 물론 하비 말고 다른 신들도 모두 제 정신이 아닌 듯한 모습을 많이 보여주지만 하비가 당연히 훨씬 비중이 큰 데다 원체 독보적이다 보니 다른 신들의 막장 짓은 좀 묻히는 감이 있네요.
또 하나 재미있는 건 하비와 로키의 관계입니다. 사실 로키는 하비의 혈육이지만, 로키는 너무 많이, 그리고 심하게 하비의 뒤통수를 때렸고, 그게 단순히 용서로 끝날 수준의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하비의 성격이라면 열 번은 죽이고도 남았을 테지만, 로키를 죽이지 못합니다. 물론 과거에 '로키의 피를 절대 보지 않겠다'라는 맹세를 했다고는 하나, 어차피 약속 같은 거 하비에게 별 의미 없다는 건 모두가 알고 있잖아요? 로키도 그걸 잘 알기 때문에 아들 펜리르를 절대 죽이지 않겠다는 하비의 말을 전혀 믿지 않습니다. 이 역시 하비의 업보겠네요. 하지만 로키는 하비를 진짜 죽이려고 작정하고 덤비고 모든 시도가 실패하자, 나중을 기약하며 계속 하비의 목숨을 노립니다. 그걸 알면서도 하비는 로키를 잡아도 계속 죽이지 않아요. 다른 사람에게는 자비 같은 건 거의 보이지 않는데, 오히려 자신을 가장 골치 아프게 하고 모든 사건의 근본 원인이라고 볼 수도 있는 로키를 죽이지 않는(못 하는) 것은 하비의 입체적 성격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겠죠. 물론 가족이기도 하지만, 어차피 하비 자신도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패륜아이니 가족이라는 가치를 중시했기 때문이라고 보기도 힘들고.
북유럽 신화의 가장 특징적인 부분이, 바로 라그나로크라는 종말이 온다는 걸 미리 알고 있다는 점입니다. 결국 자신과 자신이 다스리는 모든 것이 멸망할 것을 두려워한 하비는 종말을 막으려 합니다. 여기까지는 당연하지만, 그 수단과 방법을 전혀 가리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의 시발점이죠. 일상적으로 기만을 일삼고, 자신의 주변인이나, 친구들을 속이는 데도 한 점의 주저함이나 가책이 없고요. 라그나로크를 막으려고 하는 과정은 신화에 이미 나와있는 내용이긴 하지만, 예정된 결말을 막으려는 하비의 노력은 눈물겨울 정도입니다. 온갖 거만을 다 떨지만, 죽을 뻔한 위기를 몇 번이나 타인의 도움으로 넘기기도 하고, 눈까지 하나 바쳐서 지혜를 얻으려 하죠. 그런데 더 가관인 것은 이러한 노력들이 결국 아무 소용이 없다는 점입니다. 온갖 막장 짓과, 잘난 척은 다 하면서도 멍청한(하비는 지혜의 신인데도!) 짓들을 벌이지만 결국 라그나로크는 일어나고 멸망은 다가옵니다.
이번 라그나로크의 서막은 이름 그대로, 라그나로크의 시작까지의 과정을 보여줍니다. 이번 확장팩의 내용은 하비의 아들 발드르가 무스펠의 수장인 수르트르에게 납치 당하면서 그걸 구하러 가는 과정입니다. 여기서도 하비는 아들을 구한다는 명목 하에 또 온갖 야비한 술책과 속임수를 마다하지 않습니다. 드워프를 깔보고 무시하면서도 도움을 얻기 위해서 그들을 위하는 척 하는 건 기본이요(브록크르에게 특히 가장 심했죠), 다른 사람을 도울 때도 철저하게 자신에게 이득이 되는지, 아닌지를 계산합니다. 자신의 적에게는 더욱 더 비열한 술수를 마다하지 않는데 자신의 아들과 거래하기로 한 마법의 유물인 살라카르를 아들을 돌려받고 난 다음 다시 빼앗을 작정도 합니다. 정말 이쯤 되면 하비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 모든 게 자신의 생각대로 움직일 거라는 거만함은 기본 패시브에 자신의 이득을 위해서는 아들의 목숨을 구해야 하는 그 순간까지도 철저한 계산과 술책 짜는 것을 쉬지 않는 모습이었죠.
운명 때문인지, 예언 때문인지, 아니면 인과응보인지는 몰라도 하비는 결국 아들을 잃습니다. 그리고 불사였던 수르트르를 아들과 거래하려던 유물로 죽이고 그 영향으로 라그나로크가 시작됩니다. 자신이 그렇게나 막으려고 했던, 그리고 피하려고 했던 것을 자기 손으로 시작해 버린 거죠. 결과적으로 하비는 철저하게 실패합니다. 아들을 구하지도 못하고, 라그나로크를 막지도 못했으니까요.
보통 자식을 잃은 아버지는 처절하고도 불쌍하고, 무력하게 그려지는데 하비 역시 매우 괴로워하고 고통을 받지만, 그동안 저질러 온 짓들 때문에 동정심과는 다른 여러 감정들이 교차하는 느낌이었습니다. 또한 특유의 잔인함과 복수심이 융합하여 더 끔찍한 괴물을 만들어 낸 거 아닌가하는 걱정까지 들어서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지기도 했고요.
저는 이런 역설적인 캐릭터가 매력적으로 느껴집니다. 주인공인데 안티 히어로이고, 자부심과 자신감이 너무 넘쳐서 그 건방짐 때문에 여러 번 큰코를 다치고, 자신이 똑똑하고 모든 걸 다 안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자신의 뜻대로 목표를 이루지 못하며, 에시르 신의 우두머리인데 정작 우두머리로서의 위엄은 보여주지 못하고, 온갖 타이틀과 이름을 주렁주렁 달고 자신을 자랑하기를 좋아하지만 결국 그 이름들에 걸맞지 않은 행동들을 하면서 부끄러움도 느끼지 못 하는 지혜의 신, 만물의 아버지.
그런 신을 플레이하면서 전 불쾌함보다는 동정심을 많이 느꼈습니다. 그리고 본 게임의 표현 방식 특성상 일부러 영국식 블랙 코미디처럼 연출한 장면들도 꽤 있어서 실소를 뱉으면서 플레이하게 되더군요. 결론적으로 이번 라그나로크의 서막 DLC는 아쉬운 점이 제법 있으나 스토리만 놓고 봤을 때의 개인적 만족도는 그럭저럭 합격점을 줄만합니다. 결말은 이미 정해져 있고 그 중간의 과정과 캐릭터의 매력으로 승부를 봐야한다는 불리한 점이 있는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캐릭터의 매력으로 어느 정도는 이야기를 잘 만들었다고 평하고 싶네요. 물론 서사가 그리 깊거나 치밀하지도 않고, 군데 군데 이가 빠진 듯이 허술한 부분도 있습니다만, 어차피 확장팩에서 엄청난 서사를 바라기에는 무리가 있는 데다, 대놓고 서막이라는 제목을 붙인 걸 보니 앞으로 후속 DLC를 또 낼 생각인 것 같아서 대충 마무리 될 때까지 지켜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사족으로 게임플레이 측면에서 이번 DLC에서의 추가요소에 대해 짧게 말해보자면
이번 확장팩에서 추가된 여러 장비들과 시스템은 재미있는 것들이 좀 있었습니다만, 그걸 제대로 살리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특히 후그르 약탈로 사용하는 능력들은 정말 강력하면서도 재미있는 방향으로 게임 플레이를 크게 바꿀 수 있는 능력들인데, 사용에 너무 제한이 걸려 있어서 '이렇게 제한을 해놓을 거면 굳이 왜 다섯 가지를 만들었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발할라는 으픈월드의 탐험이 주 컨텐츠입니다. 즉, 빠른 이동 포인트를 해금하기 전까지는 필드 이동과 탐험에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합니다. 게이머의 성향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저의 경우에는 새로운 지역에 가면 웬만한 수수께끼나, 보물상자, 지식의 서 같은 걸 모두 얻어버리는 편인데, 이런 탐험을 할 때 까마귀 변신이 가지는 이점은 어마무시합니다. 하늘을 날아서 목표 지점으로 이동할 수 있다는 것은 무엇과도 비교가 안되는 이 게임에서의 이점이죠. 그런데 후그르 능력을 배정할 수 있는 슬롯은 두 개(후그르 능력 중 세 칸으로 늘리는 것도 있긴 합니다만, 다른 이득을 포기해야 하는 선택)뿐입니다. 문제는 후그르 능력 배치를 플레이어가 임의로 자유롭게 변경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이죠. 슬롯에 없는 특정 후그르 능력을 사용하려면 그 능력을 가진 적을 죽이거나 시체를 찾아서 그 능력을 '흡수'해야만 합니다. 그나마도 기존에 배치한 능력을 빼고 대체해서 넣어야 하죠. 그런데 까마귀 변신이 탐험이나 은신 플레이에 너무 압도적 효율을 자랑하다보니 이건 그냥 거의 고정으로 놓게 되고, 나머지 슬롯 하나만 계속 변경하게 되는데 사실상 이 하나의 슬롯도 대부분 무스펠의 힘을 쓰게 됩니다. 왜냐하면 필드 대부분의 적이 무스펠인데다 중요하거나 어려운 전투에는 꼭 무스펠과 용암이 등장하니 당연히 화염 면역이 전투에 아주 중요해지기 때문입니다.(에시르 난도 기준) 특히 회피 위주의 플레이를 선호하는 플레이어는 용암이 잔뜩 있는 좁은 구역에서 쓸만한 후그르 능력이라고는 무스펠의 힘 밖에 없습니다. 어차피 후그르 능력은 한 번에 하나밖에 사용이 안 되니까요. 게다가 상자까기나 보물 찾기 할 때도 무스펠의 힘 사용이 강제되는 구간이 많기 때문에 그냥 '까마귀 변신', '무스펠의 힘' 두 개로 세팅해 놓고 다니다가 무스펠의 힘만 상황에 따라 바꾸고 다시 무스펠의 힘을 흡수하는 식으로 플레이하게 되더군요.
결국 나머지 후그르 능력은 정말 특정한 상황이나, 투기장(새로운 엔드컨텐츠)에서나 사용하는 능력으로 전락해 버립니다. 물론 후그르 능력 슬롯을 세 개로 늘려주는 업그레이드를 적용하면 조금 편해지긴 합니다만 어차피 능력 두 개는 고정이고, 나머지 하나만 바꾸는 플레이는 벗어나기 힘들더군요. 후그르 자체는 재미있는 시스템이었지만, 그걸 적용하는 데에 고민이 살짝 부족하지 않았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잡설이 굉장히 길어져 버렸는데, 솔직히 유비 게임은 명작까지는 아니어도 항상 평작 이상은 해주니 습관적으로 사서 하게 됩니다. 뭔가 당하는 것 같으면서도 안하면 안 될 거 같은 묘한 기분을 느끼면서 하는 게 유비 게임의 매력(?)이랄까...요... 아무튼 간만에 스토리 재미있게 즐긴 게임이네요. 끄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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