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격이라고?”
“그렇다네.”
“... 갑자기??”
“암, 그렇고 말고.”
이런건 어이가 없다고 표현할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힌다고 말 하는 것이 훨씬 더 어울릴 상황이었다. 대뜸 갑자기 와서 한다는 소리가 사격을 하러 나가자니. 그것도 그냥 평범한 사람에게도 아니고, 히키코모리 방구석 폐인이 되어버린 사람을 향해서 사람 좋아보이는 밝은 미소를 건네보이며 한다는 소리가 참으로 웃기지 않을 수 없었다. 정작 권유를 건네는 쪽인 칸 또한 전혀 웃자고 하는 이야기처럼 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 코미디였다. 도대체 왜? 갑자기 왜? 왜 갑자기 가만히 폐인처럼 숨어지내는 사람을 찾아와서 사격을 나가자고 하는 것이지?
하준은 그녀의 말에 이해를 하고 말고를 떠나서, 도무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그녀에게 물었다.
“자네... 지금 부대에 있을 시간 아닌가?”
“외출 나온 걸세.”
“그래, 그럼 그건 그렇다 치고...”
“내가 분명히 날 찾아오지 말라고 말을 했을텐데...?”
“가급적 찾아오지 말라고 한 거지 않나?”
“되도록 될 수 있으면 찾아오지 말란 것이지, 절대로 찾아오지 말라고 하지는 않았잖나.”
“자네가 그렇게 말 한 걸세.”
“크흠... 이럴 줄 알았으면 아예 절대로 찾아오지 말라고 하는 거였는데...”
“그렇다고 아예 안 돌아올 것도 아니잖나.”
“지금은 안 돌아갈 거라고 했잖나.”
“그러니깐 언젠가는 돌아올 거지 않는가.”
“어떻게 한 마디를 안 지려고 하나, 자네는.”
“고진아 의장 만큼은 아닐세.”
“아, 걔는 그래. 나도 걔 앞에선 두 손 두 발 다 들어.”
“아니 지금 그런 이야기를 하자는게 아니잖아.”
“그러니깐 날 왜 찾아왔냐고??”
“사격하러 가자고.”
“나랑 같이.”
“...”
“... 자네...”
“지금 말 하는 거에 앞, 뒤 맥락이 전혀 안 맞는다는 건 알고 있나?”
하준이 그렇게 말했지만, 그럼에도 칸의 눈동자는 전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 기회에 그를 데리고 나가겠다는 자신감과 확신에 찬 듯한 그런 눈빛으로 가득했다. 그를 데리고 나가서, 사격을 하러 갈 것이다. 칸에겐 지금 그 뿐이었다. 이러니 하준에게는 그저 칸이 앞, 뒤, 분위기 맥락 전혀 파악하지 않고 그저 자신을 찾아온 것처럼 보였겠지만, 칸에게도 하준을 갑자기 찾아올 만한 이유 정도는 있었다. 한 번 들어보고 싶었다. 앵거 오브 호드의 대해서. 앵거 오브 호드가 현재 잘 하고 있는지, 부대원들은 어떤지, 나는 지휘관으로 잘 하고 있는지, T-4 케시크에 대해서는 어찌 생각하는지. 지금은 모든 업무를 내팽개치고, 가족마저 등진 채로 홀로 도망쳐버린 그였지만, 그래도 그에게 물어보고 싶었다. 벨리코프 원수도, 라자르 대장도 아닌, 그에게 물어보고 싶었다. 아니, 그여야만 했다. 어쩌면 부하로서의 자신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일 수도 있었으니깐. 그리고 앞의 두 사람에게 물어보기에는 애초에 그 둘은 해군이기도 했고.
반면에 앞의 두 사람과 달리 민하준 그는 육군의 장수이며 지휘관이었다. 오르카 인류 저항군을 대표하는 3장관들 중 한 명이었고, 그 세 명의 최선임 지휘관들 중 유일하게 육군 지휘관이었다. 인류가 멸망하고 오르카가 그들을 발견하고 나서 오르카가 전력을 확보하는 초창기에는 하준이 오르카 인류 저항군 부사령관에 육군참모총장을 겸하고 지상작전사령관까지 겸하였을 정도로 그는 지상전에 탁월한 귀재였고, 그 어느 누구도 그의 지휘능력에는 이견이 없었다. 통합전투사령관 출신으로 육, 해, 공군을 이미 다 지휘해본 경력이 있는 벨리코프 원수도 지상전을 두고 그의 앞에선 한 수 접어야 했을 정도로 그는 땅 위의 모든 것들을 장악하는 데에 능통했다. 정작 본인은 멸망 전에 참모총장은커녕 참모차장 한 번 안해봤다고 말했었지만. 특히나 27년 전, 두 명의 사령관이 오르카에 합류한 직후 최초로 벌였던 군사작전인 울산 공업지대 점령작전에서 호드의 앞에서 보여준 그의 현장지휘능력은, 그 당시 두 사령관들을 기업인으로서 오랫동안 불신하고 있던 칸도, 그 지휘능력과 야전 감각은 인정해야만 한다고 생각을 했을 정도였다.
그러니, 자신의 부대에 관한 객관적인 평가를, 사단장으로서, 그리고 지휘관으로서 자신을 객관적으로 평가해줄 수 있으리라 굳건하게 믿었다.
사격을 하러 나가자고 한 것은 그저 그와 대화를 하기 위한 구실일 뿐이었다. 왜냐하면 또 민하준 그는 오르카에서도 알아주는 총기덕후이며 사격덕후였으니깐. 이렇게 말하면 지금 방구석 게임 폐인이 된 그라고 할 지라도 나올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래, 솔직하게 말하자면 말하고 나서 그가 거절할 수도 있을 것이란 생각까지는 미처 하지 못했다. 자신이 하준을 찾아간 이유는 있을 지언즉, 그 이유가 하준에게 있어서 타당한 이유일지 조차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복원되어 태어난 케시크를 보고 나니, 갑자기 문득 자신의 부대와, 지휘관으로서 자신에 대해서 누군가에게 객관적인 평을 듣고 싶었던, 그리고 이를 가장 잘 말해줄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되는 사람이 하준이었기에 무작정 찾아온 것 뿐이었다. 이 사실을 알 턱이 없는 하준은, 사격하러 나가자는 제안과 함께 찾아온 그녀를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재차 다시 물었다.
“... 허어어...”
“그래, 자네가 ‘그냥’ 사격을 하러 가기 위해서 날 찾아왔을 리는 없고...”
“... 이유를 물어도 되겠나?”
“같이 갈 텐가?”
“따라온다면 이유를 말해주겠네.”
“흥정을 하겠단 건가, 지금 나한테?”
“안 될것 뭐 있나?”
“왜 이유를 알려줘야지만 따르겠다고 하는 거지?”
“따라오고 나서 이유를 들어도 괜찮잖나.”
“...”
칸은 도통 물러설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분명 자신에게 저렇게까지 찾아와서 사격을 하러 나가자고 하는 것은, 뭔가 이야기를 할 만한 것이 있기 때문에 건네는 권유였으리라. 그것도 자신이 아니면 안 되는 그런 주제로. 그러면서도 자신에게 흥정을 건네는 모습. 하준은 생각했다. 칸이 자신에게 흥정을 건네는 것은 그 권유를 듣고 제 마음 따라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는 도긴개긴의 의미 따위가 아니었다. 그것은 확신이었다. 하준이 자신의 권유와 제의에 따라올 것이라는 확신.
하준이 거기까지 생각이 도달하였을 때, 그는 한 숨을 쉬며 두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리곤 칸을 향해 나지막히 말하였다.
“나더러 지금 사격을 나가자고... 라...”
“... 막말로 내가 수틀리면 총 들고 그 새끼 대가리에 납탄 꼴아박을 거란 생각은 안 해봤나?”
“해봤네. 근데 그럴 거였으면 낙원 때 진즉에 그랬겠지.”
“아니면, 아닌 말로 다가 자네 권한이면 총이던 탄약이던 얼마든지 꺼낼 수 있지 않겠나. 그렇게 해서 진즉에 그 두 사람을 죽여버렸을 수도 있었겠지.”
“... 아니라곤 말 안 하겠네.”
“지금도 그럴까 계속 고민하고 있으니깐.”
솔직하게 말해서, 그랬다. 당장에라도 어디 무기고와 탄약고를 털어서 라자르를 죽일 준비야 얼마든지 할 수 있었고, 실제로도 당장에 실행에 옮긴다면야 못할 일도 아니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수 많은 사람들이 피를 볼 것이며, 마찬가지로 결국 자신 또한 피를 볼 것이다. 애초에 라자르를 죽이고 나서 자신도 죽는 것이 자신의 복수의 완성이었으리라. 알 바냐고? 솔직히 말해서 처음에는 저 알 바인가 싶었다. 하지만 지금껏 살아온 세월의 길이 쉽사리 자신에게 이를 허락하지 아니하였다. 주먹은 이미 한 번 잘못 휘두른 것으로 족하다. 총구는 이미 한 번 잘못 겨눈 것으로 충분하다고, 스스로에게 말해주고 있었다. 만약 자신이 정말 각잡고 지금 당장에라도 뛰쳐나가서 라자르를 죽인다면 그야 그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랬다간 또 누군가의 소중한 사람이 또 죽고 말 것이다. 이 또한 알 바냐고 묻는다면, 대답은 ‘아니다.’ 이다. 이제는 자신이 챙겨야 할 가족이 있었기에 함부로 그럴 수가 없었다. 라자르를 죽이고 자신 또한 죽는다면 당장에 자신은 속은 편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 뒤에는? 라자르를 죽이고 나서 자신이 죽은 후에는? 그렇게 자신의 복수를 이루고 나서 남겨질 이들은? 가족들은? 아이들은? 다른 건 몰라도 확실한 것은 자신을 계기로 또 다른 피바람이 불어닥칠 것이라는 것쯤은 쉽게 예상할 수 있었다.
복수는 또 다른 복수를 낳을 것이다. 자신은 동생을 죽인 자를 죽이고 그 순간의 복수의 쾌감에 절어 맘 편히 눈을 감겠지만, 자신이 눈을 감고 난 후에 남겨진 이들은 서로를 향한 증오의 복수심에 불타오를 것이다. 또 다른 이가 총과 칼을 들어올릴 것이다. 서로를 향해 피를 뿌릴 것이며, 그렇게 그들의 운명이 그들의 손에 피를 묻히고 말 것이다. 누구로 인해? 바로 자신에 의해. 나비효과 따위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자는 것이 아니었다. 이미 하준은 자신의 아이들이 그 라자르 녀석의 아이들과 싸웠다는 이야기를 소문으로 익히 들었다. 아이들끼리 벌써 아버지들 사이의 문제로 이렇게 싸울진데, 자신이 라자르를 죽이고 자신이 사라진 그 뒤에 벌어질 일은 너무나도 확정적이었다. 라자르를 죽이는 것 하나만 바라보기에는 죽은 후의 자신이 감당해야 할 문제들이 너무나도 컸다. 그렇다고 동생 생각을 하니, 여전히 라자르가 가슴에 한이 사무칠 정도로 죽여버리고 싶었다. 즉, 행동으로 옮길라면 얼마든지 옮길 수 있었지만, 지금은 그 후환이 두려워서 안 하고 있는, 아니 못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 칸은 그런 사람을 더러 사격을 가자고 한다. 말이 사격을 하러 가자이지, 까놓고 말해서 총을 쥐어주겠다는 소리나 다름 없었다. 지금 당장에야 하준이 혼자 지내다보니 어느 정도 마음이 정리된 부분이 있었지만, 혹여나 자신이 또 혹해서 뭔 짓을 저지를지 몰라서 칸에게 떠보듯이 물어보는 말이었다.
하지만 칸은 그런 걱정은 전혀 생각하지 않는 듯한 반응을 내보였다.
오히려 그녀는 그런 하준의 대답에 되려 당당하고 한 치의 주저함과 망설임 없는 꿋꿋한 반응이었다.
“하지만 안 그럴 거잖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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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예약을 할 때 앞으로 시간을 18시나 18시 30분 정도로 맞춰야 겠습니다. 그래야지 나도 맛보기를 올릴 여유가 좀 생길 거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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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도 볼 수 있져... | 23.11.18 11:5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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