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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편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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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몇 번을 말씀드립니까.”
“...”
“물론 저희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베로니카 언니가, 잔뜩 화가 난 목소리로 언성을 높였다.
신시아가 움찔하며 몸을 움츠리자, 곁에 서 있던 엔젤 언니가, 손을 뻗어 신시아를 감싸 주었다.
“... 이건 본인이 생각하시기에도 과하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라미엘 님!”
“...”
베로니카 언니에게, 혼나고 있는 언니는, 아까 쓰러져 있던 언니... 라미엘 언니였다.
베로니카 언니의 시선을 피하듯, 시선을 아래로 한 채, 눈을 피한다.
“라미엘 님께서는 관서사제이자 추기경, 치품천사! 현재 신성교회의 중추 중의 중추, 게다가 천군님의 반려자이십니다! 그건 라미엘 님 본인이 가장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
“도대체 몇 번을 말씀드려야 그만두실 겁니까?! 이번에도, 엔젤 님께서 조금만 늦었더라면 분명히 천군님께서 급히 오셔야 했을 겁니다!”
“...”
“저희가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부탁드리지 않았습니까, 이런 일은 제발 부탁이니 멈추어 달라고! ... 그런데 또!”
진심으로 화가 난 듯 몇 번이고 질책하는 베로니카 언니는 이마에 손을 짚고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드리고 싶은 말씀은 정말 차고 넘칩니다. 하지만... 굳이 하지는 않겠습니다.”
“...”
“제발 부탁입니다. 이젠, 이젠 그만두시고...”
“-제가 그만두면?”
그 순간, 조용히 듣기만 하던 라미엘 언니가 나직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당황한 듯한 베로니카 언니를 향해, 숙였던 고개를 들고는 조금의 흔들림도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죄를 용서하는 관서사제이자 천사인 제가, 기도를, 고행을 멈추면? 그럼 저들은? 저들은 어떻게 용서받나요?”
“무슨 말씀을...”
“그들의 죄를 용서해주어야 할 제가 기도를 올리지 않으면?!”
갑작스러운 큰 목소리에 화들짝 놀란 신시아도 알아채지 못한 듯, 라미엘 언니는 소리쳤다.
“저 불쌍한 어린양들은?! 자신이 지은 죄에 고통스러워하는 이들은? 어떻게 구원받느냔 말이예요!”
“그건 그들이 어떻게 참회하느냐에 달린 문제이지 라미엘 님께서 고행을-아니 고통을 고집할 이유가 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왜 관서사제인가요? 왜 자비의 천사라는 거창한 이름을 짊어지나요?! 죄를 덜어줄 수도 없고 죄를 용서해 줄 수도 없는데!”
“지금 무슨 말씀을 하고 계신 건지 알고 계십니까, 그렇다면, 만일 라미엘 님께 큰일이라도 생긴다면! 그럼 그들은 그때부터 누구에게 용서받을 수 있습니까? 누구에게 자비를 구합니까?!”
“그야 당연히! 이 몸이-”
언쟁이 격해지며 점점 언성이 높아지던 그 순간,
“-라미엘 님!”
깜짝 놀란 신시아를 진정시켜 주던 엔젤 언니가, 방이 울릴 정도로 크게 소리쳤다.
모두가 깜짝 놀라 정적이 내려앉은 가운데, 엔젤 언니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 말씀, 아니, 생각은, 결코 용납될 수 없는 것이예요.”
“... ...”
“...베로니카 님도, 여기까지만 하세요. 마음은 알지만, 싸운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잖아요...”
“...실례했습니다.”
또박또박 말하려 애쓰는 듯한, 떨리는 목소리.
엔젤 언니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새하얗게 질린 엔젤 언니의 표정을 본 라미엘 언니는, 아픔을 참듯 가슴께를 꽉 움켜쥐고 고개를 숙였다.
“...엔젤 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이건 싸워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죠.”
지켜보던 아자젤 언니의 한숨 섞인 말이었다.
언니는, “이 이야기는 일단은 여기까지만 합시다” 하고 손벽을 짝 치더니,
“시아 양.”
“네, 넷?!”
“아직 저녁식사를 하지 않은 것 같네요. 배고프지 않나요?”
“네? 아, 네...”
“자, 모두들 다시 기운 차리고 저녁식사를 먼저 하러 가죠. 저녁 미사도 있으니, 준비도 해야 할 거고요. 갈까요?”
당황한 신시아의 손을 잡고, 아자젤 언니와 엔젤 언니가 방으로 가자며 재촉했다.
어쩐지 슬픈 표정의 라미엘 언니는, 한참 동안이나 방에서 나오지 못하는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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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을 먹는 내내 감돌던 어색한 분위기는 잠자리에 들 때까지 이어졌다.
어제와는 달리, 아자젤 언니는 누군가 부른다며 나가 버렸고, 사라카엘 언니는 일하러 간다고 하고는 아직까지도 돌아오지 않았다.
베로니카 언니와 엔젤 언니는 사라카엘 언니와 마찬가지로 해야 할 일이 있다며 나가 버리는 바람에, 원래는 엔젤 언니와 한침대를 썼던 신시아는 혼자 누워 잠을 청해야 했다.
엄마와 살게 된 후론 늘 엄마와, 오빠와, 가끔은 언니들과 잠에 들었기 때문일까. 오늘은 유독 비어 있는 옆자리가 크고 외롭다고 느끼고 말았다.
-그래서. 일까.
알고 있다. 꿈이란 것 정도는.
더 이상 이런 짓을 당할 리 없다는 것. 신시아는, 엄마와 아빠, 오빠, 언니들에게 구해졌고, 이제 가족들은 이런 짓, 하지 않는다는 걸.
이젠 이 여자는 자신의 엄마가 아니라 남이라는 걸.
이제 ‘리코리스’ 는 없고, ‘신시아’가 자신의 이름이라는 걸.
그런데도.
‘꺼져, 보기 싫으니까’
꼬집히는 건, 애교 수준.
‘왜 너 같은 게 아직도 살아 있어서’
팔이나 다리를 맞는 날은, 약간의 짜증.
‘너 같은 게 태어나서, 내가 이렇게 비참하게 살아야 하는 거잖아’
배를 맞는 날은, 화가 난 날.
‘왜 네가 클 때 까지 기다려야 해? 왜 아직도 살아 있어?’
커터칼을 들고 살을 그을 땐 내가 잘못한 날.
‘제발- 네 존재가치를 증명해 보란 말이야. 돈이나 축내지 말고’
라이터를 가져와서 몸을 지질 땐 ‘아빠‘를 본 날.
‘너 같은 건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는데’
‘넌 태어난 것 자체가 죄야’
‘너 같은 건 존재 자체가 쓰레기야, 알아?’
‘너 같은 건- 너 같은- 너는- 너는-’
내 목을 조르거나,
온몸을 묶고 욕조에 빠뜨릴 땐.
‘-넌,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죄야.’
그저,
단지,
친구들이 자주 먹는다는 맛있어 보이는 음식,
먹고 싶다고.
서툴게 그린 가족 그림을 들고, 찾아간 날-
살을 꼬집혔다. 괜찮았다. 오늘은 운이 좋네.
오늘은 팔이네. 괜찮아. 다리는 조금 절뚝거리지만 오늘은 별로 화난 게 아니었던 것 같아.
배를 맞았어. 아파. 정말 아파. 병원, 가지 않아도 되는 걸까.
몇 번을 당해도 익숙해지질 않네. 칼에 베이는 건. 흉터, 남아 버릴 것 같은데. 따가워. 아파...
살이 하얘졌어. 물컹해졌어. 이상한 노란 물도 나와. 뜨거워, 뜨거워-
몇 번이고 몇 번이고 괴롭혀지면서, 몸이 이상해졌다.
처음에는 죽을 만큼 아팠던 것도, 점점 버틸 만한 아픔으로 변했다.
몇 번이고 지져진 피부는 더 이상 감각도 없어서, 맞을 때 일부러 그 부분을 맞기도 했다.
왜?
왜?
어째서?
난 그냥, 난 그냥 맛있는 걸 먹고 싶었을 뿐인데.
난 그냥, 엄마와, 웃으면서, 밥을 먹고 싶었을 뿐인데.
난 그냥, 칭찬받고 싶었을 뿐인데. 안기고 싶었을 뿐이었는데.
난 그냥-
난 그냥, 사이좋게 살고 싶었을 뿐인데.
그런데?
난, 살아있는 것 자체가, 기분나빠?
엄마에게 피해를 주는 거야?
모두에게 피해를 줘?
모두를 아프게 만들어?
난-
난 존재해서는 안 되는 건가요-?
“...시아 양?!”
아픈 것도 참아보고, 웃고, 울지 않게 노력하고, 숨이 막혀도, 정신을 잃을 것 같아도 견뎠다. 기분 나쁘다는 말만을 들었다.
“... ... 아 양!”
도망쳤다. 돌려보내졌다. 살려달라 빌었다. 더 아프게 맞았다. 배고프다고 말했다. 3일을 더 굶었다. 도움을 요청했다. 무시당했다. 누구도 도와주지 않았다. 날 아무도 구해주지 않았다. 날 다시 밀어넣었다. 날, 날, 다시, 다시, 다시, 돌아가면, 아프다. 집에 가면, 또 혼난다. 그걸 알면서 다들 날 돌려보냈어. 그걸 알면서. 알면서, 지금처럼 욕조에 빠뜨릴 걸 알면서, 목을 조를 걸 알면서, 알면서, 알면서-
“시아 양!!”
허우적대던 손을, 누군가 붙잡았다.
“시아 양, 괜찮아요?!”
“... ...... 하, 악...!”
그 순간, 목을 감싼 끔찍한 압박감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숨을 토해내며 눈을 뜨자, 얼굴 위로 무언가 뜨거운 게 흘러내렸다.
“저, 정신이 들어요?! 괜찮나요?!”
“으... 아....?”
숨이 막혀 있었는지 빙빙 도는 머리와 흐릿한 초점 사이, 하얀 머리카락이 보였다.
머릿속에 아직도 맴도는 ‘엄마’의 목소리 사이로, 신시아는 멍하니 그 언니의 이름을 떠올렸다.
“라..미엘, 언니...?”
“네, 저예요..! 괜찮은 건가요?! 숨도 제대로 못 쉬고, 아무리 불러도 일어나질 못하고 계셔서, 저는 정말 어떻게 해야 할 지...?”
언니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언니에게 아무 생각 없이 달려들어 안기자, 언니는 깜짝 놀란 듯 움찔했다.
“시... 시아 양?”
“... ... ...”
몸이, 마구 떨려서.
누구라도 끌어안지 않으면, 누군가를 붙잡지 않으면, 다시 목을 졸릴 거라는 공포가.
“...안아, 주세요...”
“...네...?”
“안아, 주세요...! 그냥, 그냥 안아주세요,,,!”
필사적으로 참은 것도 소용없이, 훔쩍이는 소리가 새어나갈 대마다 가슴이 철렁했다.
이 모든 게 내가 만든 꿈이라면?
훌쩍이는 소리를 낸 순간, “-듣기 싫다고 했잖아!!” 라며, 화장실 문을 벌컥 열고, 손을 들어올리면- 어쩌지?
“부탁, 이예요...!”
이게 꿈이 아니라고, 확인시켜 주세요.
목을 조르지도 물에 바뜨리지도 때리지도 않고, 안아주겠다고, 그렇게 말해주세요...
“...”
라미엘 언니는, 한동안 꿈쩍도 하지 않았다.
신시아의 몸이 마구 떨고, 훌쩍이는 소리를 죽이는 것이 한계에 가까워질 즈음에,
“...제 품이라도.”
언니는 가녀린 팔로 신시아를 감싸안았다.
“제 품이라도 괜찮으시다면. 안아드릴게요.”
“...으, 아...”
“괜찮아요. 울지 말아요... 뭐가 시아 양을 그렇게까지 무섭게 했나요? 언니는 모르겠지만... 괜찮아요. 이곳에 그건 없어요. 나쁜 꿈을 꾼 거예요. 괜찮아요...”
라미엘 언니의 목소리는, 다정했다.
조용했고, 차분했다.
소리치지도 않았다. 그만 울라고 고함치지도 않았다. 작작 하라며 때리지도 않았다.
“으... 흐끅... 언, 니..!”
“시, 시아 양?”
언니는 당황하며 우는 신시아를 달래 보려고 했지만,
그럴수록, 눈물이 터져나와서, 멈출 수가 없어서.
내가 원한 건.
내가 원한 건 단지 이런 거였는데-
“으... 으아아앙...! 흑, 히끅, 흑, 아... 으아아아아...!”
“...”
계속해서 울음을 그치지 못하는 신시아를, 한동안 어쩔 줄 모르겠다는 듯 쩔쩔매던 언니는,
이내 날개를 펼쳐 조용히 감싸안아주더니, 토닥토닥, 등을 두드려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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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을 서럽게 울고서야 진정한 뒤,
“...”
옆자리가 비어 있는 게 무섭다는 신시아의 말에, 라미엘 언니는 빙긋 웃으며 함께 자자고 해 주었다.
“...정말로, 모르겠어.”
신시아는 누워 잠든 언니의 얼굴을 바라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이렇게나 다정한 사람이, 이렇게나 착한 언니인데.
이렇게나 아름답고, 좋은 언니가... 왜?
“...왜, 그렇게까지 하는 거예요...?”
왜...?
작게 중얼거린 말을, 라미엘 언니는 듣지 못하겠지만, 신시아는 물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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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 회차에서 아자젤은 교황인 걸로 나왔고, 사라카엘은...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농담이고, 사라카엘은 베로니카(이단심판관)과 함께 일을 하거나 아자젤과 미사를 보거나 하고 있습니다. 물론, 일이 없을 때는 방에서 감자칩을 먹곤 합니다. | 22.12.22 19:4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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