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최근 데스 스트랜딩1, 2를 연달아 플레이했습니다.
1의 경우 몇 개월 전 시도했다가 3시간 플레이 후 그만 뒀으나
최근 마음을 다잡고 다시 시도해 2까지 모두 클리어했습니다.
데스 스트랜딩을 플레이하는 동안 참으로 행복했습니다.
기존 게임의 문법과 영 다른 플레이 방식,
우월한 폭력성을 과시하며 파괴하지도 죽이지도 않는데
인간이라곤 다니지 않는 황무지 대자연을 홀로 쏘다니는 이 게임을 하며 도대체 왜 행복을 느꼈는지
그 이유에 대해서 말해보고자 합니다.
그 이유를 말하자면, 니체주의에 대해 언급해야합니다.
니체에 따르면 행복은 필연적으로 고통을 수반합니다.
고통은 행복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고
그 고통이 해소되는 지점이 행복입니다.
애초에 해소될 고통이 없으면 행복도 성립할 수 없습니다.
인간은 무언가에 도전하거나 응전합니다.
도전이란 힘의 발현이고 그것이 외부로 분출되는 건데
외부로 향하는 힘이 좌절됐을 때 어떤 이들은 힘을 외부가 아니라
자기 자신의 내부로 향하게 하는 방식을 택하기도 합니다.
자기 자신을 억압하는 방식으로의 힘의 발현, 즉 도를 닦는 일입니다.
이처럼 외부를 제어하는 힘을 스스로 느끼는 것, 그것이 행복이고
반대로 자기 자신을 억압하는 힘을 스스로 느끼는 것도 행복입니다.
그 진리를 니체는 일찍이 깨달았습니다.
행복이란 힘의 이동을 느끼는 일이라는 걸.
인간은 힘이 발현되고 움직이는 순간에 살아있음을 느끼고, 충만함을 느낍니다.
즉 행복이라는 것은, 무엇을 성취했느냐 또는 무엇을 소유하고 있느냐 하는 것이 아니라
힘이 흐르고 이동하는 체험에서 오는 것.
그것이 바로 니체주의 핵심입니다.
인간은 살아있다는 감각, 생명력을 잊고 삽니다.
일상은 인간의 주체성과 감각을 망각시키는데
산악인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산에 가는 이유가 그것입니다.
생존이 달린 극한의 환경 속에서는 인간 본연의 감각기관이 날이 서듯 또렷해지고
살아있다는 느낌, 그 요동치는 생명력이 파도처럼 밀려오는데
한 번 그걸 맛본 그들에게 일상은 미지근한 맹물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고산 등반가들은 니체주의자들입니다.
두 가지 길이 있습니다.
인생은 차지도 뜨겁지도 않은 미지근한 맹물이라는 걸 인정하고 수도적인 삶을 살거나
아니면 하루를 살아도 호랑이처럼 도전하며 뜨겁게 살거나
고통이 없다면 행복도 없습니다.
고통 없는 편안함음 진정한 행복이 아닙니다. 그건 자기 기만입니다.
적과 나 사이의 힘의 이동을 느끼는 것을 통한 쾌감의 취득이 기존 게임이 취하는 태도였다면
데스 스트랜딩은 이 니체주의적인 게임의 태도를 통해 패러다임을 뒤집었다고 생각합니다.
외부로 뻗치는 힘의 이동을 느끼는 데에서 게임플레이의 즐거움을 찾는 것이 아니라
고행과 인내를 통해 내부로 수렴되는 힘의 이동을 느끼게 하는 것, 그것이 이 게임의 요체입니다.
이 게임이 취하는 전반적인 고행과 극복의 조건들을 말해보겠습니다.
첫째, 낯선 것에 대한 공포의 극복.
서두 말했다시피 저도 처음엔 3시간 플레이 후 포기했었습니다.
수개월 뒤 다시 마음을 다잡고 시도해 클리어했습니다.
이 게임은 특히 초반에 적응이 쉽지 않은데 그 이유는 몇 가지가 있습니다.
외롭고 쓸쓸한데 귀신까지 등장하는 기묘한 세계관과 뭐가 뭔지 알 수 없는 난해한 내러티브, 그리고
미추의 경계에 있는 아방가르드한 예술적 표현들이 주는 낯설음이 익숙해질 수 없을 것 같은 공포로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어떤 게이머들은 해보니 "재미없다"는 말로 퉁치며 게임을 접지만 사실상
대부분 그 고행의 과정에서 인내와 극복을 통한
달콤한 해소를 경험하기 전에 접었기 때문에 재미를 느끼지 못한 것입니다.
둘째, 인류를 구원하고자하는 대의가 아니라 실은 자기 자신을 구원하기 위한 여정.
도시간 단절되어 인간의 외부 이동이 불가능한 세상을 두 발로 오가며 연결시키는 임무를 수행하는 주인공 샘.
그것은 인류를 위한 대의이지만, BB를 품에 안고 이런 저런 배달 임무를 수행하다보면
삶의 무게를 지고 이 세상을 걷는 것 자체가
인간과의 관계성을 단절하고 살던 고독한 자기 자신을 치유하는 일이라는 걸 경험할 수 있습니다.
게임의 매커니즘과 기술적 목적 자체는
장비나 국도 등을 건설, 증축을 통한 물류시스템을 구축해 배달을 효율성을 증대시키는 것입니다만
그 과정의 고생과 달성이 즐거움의 요체인 것이지
막상 다 구축되어있는 그 시스템을 쾌적하게 이용하는 즐거움은 그리 오래 가지 않습니다.
시간과 노력을 들여 산악지대에 촘촘히 깔아놓은 집라인도 처음엔 신나지만
한 두 번 탄 이후엔 그걸 타고 다니는 게 대단한 쾌락으로 다가오진 않을 것입니다.
즉 이 게임이 가져다주는 재미의 본질은 바로
걷는 것입니다.
기침 같은 숨을 토해가며 균형을 잃고 넘어지려는 몸을 간신히 일으켜 세우며 고생하며 걸어다니는 것.
이곳에서 저곳을 향해 반드시 가야만 하는 사람을 등에 업고 처절하게 죽을 힘을 다해 산을 넘어 가는 것.
그 고행 속에 시린 바람이 있고 한 바가지 땀도 있고 참을 인이 있고 스트레스가 있고 말못할 뜨거움이 있는 것입니다.
그 지점에서 플레이어는 말못할 감동을 경험합니다.
제 경우, 주인공 샘이 호랑이 같은 숨을 토해가며 여자를 업고 눈보라가 몰아치는 설산을 넘는 가운데
추위에 얼어붙은 등에 업힌 여자가 힘겹게 내뱉는 한 마디 "샘, 힘내."
하는 그 대목에서 울었습니다.
제작자는 플레이어가 그 말못할 해소의 감각 즉 힘의 이동을 느낄 시점에
어김없이 서정적인 BGM을 깔면서 이 덧없는 세상, 자연의 장엄한 풍경을 보여줍니다.
셋째, 이 데스 스트랜딩은 대사량이 방대합니다.
내러티브의 짜임새가 촘촘하게 짜여져 있어
어떤 하나의 결과에 대한 원인이나 이유를 설명하려면 내러티브 전체를 설명해야 합니다.
따라서 이 내러티브의 골조를 파악하려면 마지막까지 플레이하고 모든 내용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컷신과 대사가 그야말로 방대합니다.
안타까운 점이지만, 두 발로 직접 체험하는 주인공 샘이야말로
진리에 가까워 먼저 깨닫는 사람이어야 할텐데
천재적인 지적 능력을 가지고 있는 주변 캐릭터들이
다 조사하고 연구해서 샘에게 장대하게 설명을 늘어놓는 식으로 시종일관 진행됩니다.
그 방대한 양의 컷신과 끝날 때까지 끝나지 않고 나열되는 대사들.
그것을 견디는 고통 또한 이 게임의 조건입니다.
끝으로 한 마디 하고 남기고 싶습니다.
샘을 조작해 산을 넘다보면
오르막이라고 불평 않고 내리막이라고 들뜰 것도 없이
묵묵히 가는 샘에 대한 존경심이 일어납니다.
우리 인생도 득락이 반복되는 산맥이며
인생의 속성은 고독이지만
인생의 정수는 인연이므로
걷다가 때론 만나고 헤어지고 하면서, 샘처럼
그저 묵묵히 가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