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박 360판 -> 플스 3판 -> 스위치 리마스터로 3번이나 즐긴 시리즈입니다.
회차까지 따지면 지금 스위치로 하는 게 한 5~6회차 정도 될 것 같네요!
사실 스위치 버전도 2019년에 발매하자마자 구입했는데, 아래 쓸 고질적인[?] 문제 때문에 중도 하차했다가 최근에야 다시 잡았습니다.
이제 한 스토리의 80% 정도는 진행한 것 같네요!
1. 그래픽은 역시 깔끔
처음 나온 게 2008년이니 그때는 혁신적인 그래픽이었죠. 지금 봐도 손색 없습니다.
단, 2008년에도 느꼈지만 모션을 딴 게 아니라 등장인물들의 움직임이 뻣뻣합니다.
동시기에 나왔던 "테일즈 오브 심포니아 라타토스크의 기사"가 실제 모션을 따서 굉장히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보였던 것과는
확연하게 차이가 나서 이 부분에서 좀 실망을 했던 것 같네요. 그런데 비주얼이나 그래픽이 워낙 화사해서 괜찮습니다.
2. "판타지아 팀" 테일즈 시리즈의 고질병인 "초반이 지루한 게임"
지금은 아니지만, 베스페리아 때만 해도 테일즈 시리즈는
후지시마 쿄스케 일러스트레이터를 필두로 한 "판타지아 팀"
이노마타 무츠미 일러스트레이터를 필두로 한 "데스티니 팀"
이렇게 두 개의 팀이 있어서 거의 1~2년 주기로 신작을 냈던 걸로 기억합니다.
여기에서 "판타지아 팀"의 테일즈 시리즈는 과거 테일즈 오브 판타지아의 전투 시스템을 개량해서 사용한 터라
초반 약 3~5시간 시스템이 서서히 풀리기 전까진 "평타 3번 + 기술 1번"이라는 답답한 전투 방식을 이어가야 합니다.
마법사 캐릭터들도 SP 부족 문제로 초반엔 마법을 난사하지 못해서 답답하기 그지없죠.
이후로는 "데스티니 팀"의 "테일즈 오브 그레이세스"라는 작품이 전투 시스템을 혁신적으로 바꾸어서
그걸 토대로 한 전투 방식 개량이 이루어져서 지금까지 오고 있으니... 테일즈 오브 베스페리아의 전투는 지금 하면 답답합니다.
제가 중도 하차 한 것도 결국 이 전투 시스템의 지루함 때문이었으니까요.
그래도 초반을 넘기고 2부에 들어선 이후로 스토리가 박차를 가하고 전투 시스템도 스피디해지고
옛날에 했던 터라 잘 몰랐던 디테일 등을 알게 되니 그 이후로 쭉 잡게 되었습니다.
3. 2000년대 감성이라 지금 보면 조금 불편할 수도
사실 테일즈 오브 베스페리아도 2008년 당시엔 굉장히 친절한 게임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편의성이 비약적으로 상승했죠.
그런데 여기 게시판을 보면 "너무 불편하다"는 글이 많아서 의외로 놀랐습니다.
사실 2000년대 게임은 지금처럼 모든 걸 일일이 떠 먹여 주는 방식보다는 플레이어가 능동적으로 행동하며 단서를 찾아 해결하는 방식이 많았죠.
예를 들어, 요즘은 목적지를 궤적 같은 것으로 표시해주는데 본 작품은 캐릭터들이 지나가는 말로 "여기에서 ~쪽에 있어."라고만 합니다.
만일 생각이 안 난다면 줄거리 메뉴에 들어가서 메뉴를 보거나 맵을 펼쳐서 나름의 유추[?]를 해야하죠.
요즘 게임이 너무 친절한 건지, 옛날 게임이 불편했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2008년 게임의 리마스터인 걸 감안하면 저는 이런 감성도 나쁘지 않다고 봅니다. 게임은 숙제가 아니라 즐기는 거니까요.
(빠르게 게임을 클리어하고 싶은 분들에게는 답답할 수도 있을 듯합니다)
>> 아래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
4. 후반부에 힘이 빠지는 스토리
테일즈 오브 베스페리아는 분명히 좋은 게임인데, 개인적으로 스토리에는 큰 점수를 못 줄 것 같습니다.
이건 2008년, 2009년, 그리고 지금 2024년에 하면서도 바뀌지 않는 평가 중 하나입니다.
등장인물들의 캐릭터성은 좋으나, 1부-2부와 3부 사이의 스토리 간극이 너무나 큽니다.
주인공 유리가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해 나름 고민하고 답을 냈던 1부 스토리
주인공 유리의 답으로 인해 주변 인물과 갈등을 빚게 되고 오해를 푸는 2부 스토리
에스텔의 목숨과 세계 위기를 구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는 3부 스토리...?
이처럼 스토리는 갑자기 2부 중반부터 주인공인 유리에서 에스텔로 초점이 이동합니다.
유리의 신념과는 전혀 상관없는 "만월의 아이"가 나오면서 두 갈래의 스토리가 병렬적으로 진행되게 되고
2부 후반에 이르러서는 갑자기 붙잡힌 에스텔을 구하고 듀크와 싸우는 등 유리의 신념과는 상관없는 스토리가 벌어집니다.
오히려 유리가 에스텔의 스토리에 끌려 다니는 신세가 되어버리죠.
"유리"라고 하기엔 후반부가 너무 밍숭맹숭하고, "에스텔"이라고 하기엔 에스텔이 초반에 한 일이 거의 없습니다.
물론 초반에 후반부 떡밥을 뿌려두긴 했지만, 그게 초반 당시 진행됐던 "유리"의 이야기와는 전혀 맞지 않았죠.
이 삐걱거림, 스토리를 하나로 묶는 과정이 실패하여 결국 스토리의 어색함을 불러온 듯합니다.
이 삐걱거림은 최종 보스의 정체에서 극에 달합니다.
사실 지금도 왜 이 녀석이 최종 보스인지 이해가 잘 안 갑니다. 에스텔의 이야기와 유리의 이야기(아울러 프렌까지)를 통틀어
마무리할 거라면 알렉세이가 최종 보스로 어울릴 텐데 말이죠.
더욱이 1부 스토리는 기존 JRPG와는 다른(요즘은 좀 흔하지만) 주제를 다루고 있어서 기대를 많이 했는데,
2부 중후반부터는 갑자기 클리세를 그대로 따르는 전개가 되어 좀 아쉬운 면도 있습니다.
>> 스포일러 끝 <<
5. 썩 높지는 않은 한국어 번역 퀄리티
"한국어화 된 게 어디냐!"라고 말하면 할 말이 없지만, 번역 퀄리티가 의외로 둘쑥날쑥합니다.
정말 잘했다고 생각되는 부분이 있는가 하면 번역기를 돌렸나 싶을 정도로 한국어-일본어간의 한자 차이도 생각하지 않고
무작정 발음 그대로 번역한 부분도 있죠. 심지어 대화와 스킷에서 쓰이는 표현 등이 일관되지도 않습니다.
(특히 "義理はない"를 한자 그대로 "의리는 없다"라고 한 부분이 많습니다. 일본어와 한국어의 차이도 모르고 1:1로 번역한 거라
아마 이 부분 번역한 사람은 프로가 아닌 번역 경험이 거의 없는 아마추어(혹은 대학생 아르바이트, 일본어 학습자)가 아닐까 싶습니다.
굳이 번역한다면 "내가 굳이~ 해야 하나?"란 뉘앙스로 했어야 하는 부분이죠.)
검수가 제대로 안 된 것으로 보이는데, 그렇다 보니 더욱 아쉽습니다.
그래도 15~16년 동안 쭉 붙잡는 걸 보니 게임 자체의 완성도는 좋나 봅니다 ^^;
새로 하시는 분들은 이게 "2000년도 중반의 감성을 담고 있는 JRPG 게임이다"라는 걸 감안하시고 하시는 게 좋을 듯합니다.
요즘과는 표현 방식이나 스토리 감성, 편의성 등이 확연하게 다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