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밤은 같았다. 그렇지만 분명히 다른 밤. 마계의 그 한 순간조차 긴장의 끈을 놓칠 수 없는 밤과는 분명히 달랐다. 몇 년이나 지났음에도 어린 시절부터 각인된 밤의 기억은 때때로 이렇게 깨어나 선명하게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 보이곤 했다.
소년은 한쪽 머리칼을 헝클이며 눈을 꾹 감았다. 어비스의 깊은 경지. 모두가 부러워하며 두려워했던 그 남자 검은 눈의 뒤를 좇아 오른 이 경지에 올랐을 때 그는 자신의 내면이 기쁨으로 가득참을 느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더해가는 건 허무감 뿐. 이런 힘으로 그 때 그 사람들을 지킬 수 있었다면 하는 후회감의 물결이 한 번 물러가고 한 번 들이칠 때마다 깊어만 갔다.
분명 지금 이 힘으로 그는 다른 사람들을 지키고 있었다. 언더풋과 천계 그리고 시간의 문 그 모든 것들을 헤치고 분명 그는 아라드와 사람들을 지켜왔다. 그리고 이젠 안톤과의 싸움도..그는 잠시 생각을 멈추고 헝클였던 머리를 다시 정돈시키며 일어서 바깥으로 나갔다.
노블스카이의 갑판에선 언제나 두 냄새가 섞여 났다. 흔한 바다내음. 마계에선 맡을 수 없었으나 베히모스를 거치며 질리도록 맡았던 그 냄새.
그리고 불과 재의 냄새. 저 멀리 자신의 존재감을 언제나 과시한 거대한 화산으로부터 오는 냄새가 섞여 기묘한 합주를 이루고 있었다.
어두운 밤하늘엔 먹구름 같은 연기가 펼쳐져있음에도 화산은 붉게 빛나고 있었다.
“잠이 안오나보네.”
유리처럼 맑고 차가운 목소리. 고개를 돌린 곳엔 하얀 빛이 서 있었다. 언제나 함께 해 온 친구 그러나 최근엔 많이 변해버린 모습이 그 곳에 있었다.
“딱히.”
“악몽? 마계의 기억은 언제나 그렇지.. 안톤을 보고 있으면 그 생각이 떠오를 수밖에.”
딱히 그런 건 아니다. 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무슨 말을 해도 제멋대로 생각하리라 그러니 말하지 않겠다. 그것이 소년의 머릿속에 든 생각이었다.
“모든 것은 변해. 세상에 녹지 않는 얼음은 없어.”
“그래. 네가 말하는 걸 듣고 있으니 정말 그런 것 같네. 녹지 않는 얼음이 없다니 웃기지도 않는 소리야. 예전의 너 같으면 말이지..”
얼어붙은 심장이라 불렸던 녀석은 모든 감정을 잃었다는 듯 언제나 냉정한 말만 내뱉곤 했었다. 그 땐 질린다고 저 괴물 같은 녀석은 이미 끝장났다고 생각했었다. 결국 얼음 정령이 되어버릴 거라고 모든 빙결사들이 맞이했다는 운명처럼. 그렇지만 변화는 일어났었다.
“너도 알다시피 모든 변화엔 계기가 있어. 그 대가는 결코 가볍지는 않았지만..”
가슴에달고 있는 작은 장신구 사뭇 여성스러운 그 작은 세공품은 그의 겉모습과 어울리는 부분도 있었지만 그게 무엇인지 소년은 알고 있었다. 알고 있었기에 그는 아무 말도 않고 그 장신구를 소중히 어루만지는 모습을 그저 바라만 보았다.
그러나 말없이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는 그 하얀 눈동자 속에 담긴 무언의 질문에 그는 마지못해 입을 열고 분명히 그가 바라고 있을 말을 내뱉었다.
“그래. 난 궁금해. 한 번 잃었을 때 그 기억은 지워지지 않는 상처로 남았었어. 그 기억이 떠오르는 밤이 수도 없이 많았어. 그런데 넌 어떻게 그럴 수 있는 거야? 애초에 그저 너 자신을 잃어버린 건가? 한 바퀴 돌아서 원래 ㅁㅊㄴ이었다가 정상으로 바뀐 건가 응? 말해 봐. 내가 이렇게 물어보길 바랬잖아. 안그래?”
긴 머리를 기른 소년은 자신의 하얀 눈동자와 분명하게 대비되는 검은눈을 바라보며 그 안에 담긴 불신과 당혹감을 느꼈다. 얼어붙은 마음이 녹아내린 뒤 그전까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주변 사람들의 마음. 자신을 둘러싼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에서 나온 울림이 자신에게 닿아 생겨나는 공명을 그는 그 누구보다도 예민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덕에 언제나 지신과 함께 하던 이의 마음이 변화했음도 알 수 있었다. 그는 친구의 변화와 자신의 변화에 당황하고 있었음을.
“처음엔 힘들어 누구나. 처음엔 당혹스러울 거야. 하지만 모든 건 변해. 변할 수밖에 없어 언젠가는, 언젠가는 우리가 믿고 있었던 것들이 사라져버리고 생각지도 못했던 것들이 펼쳐져.”
한 순간 검은 눈을 지닌 소년은 입술을 꽉 깨물더니 성큼 성큼 하얀 소년에게로 다가와 그 옷을 붙잡아 자신 쪽으로 거칠게 끌어당겼다.
“그딴 말장난은..!! 누구나 할 수 있어. 말로만 이해하네 어쩌네 하는 건 바보 천치라도 할 수 있지. 다 잊어버린 거냐? 아니면 네가 살았던 그 극지엔 그런 작자들도 없었나 보지. 그래 너희 빼곤 다 얼어붙어 있었을 테니까!”
하얀 소년은 아무 말도 않고 살짝 눈을 찌푸린 채 미친 듯이 말을 쏟아내는 이를 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는 분명히 분노에 차 있어 보였지만 심연과 같은 검정 속에는 다른 감정의 빛이 깜빡이고 있었다.
“할렘에선.. 아무도 믿을 수 없었어. 하루하루 빌어먹고 살면서도 그 빌어먹을 꼬마 하나 등쳐먹겠다고 달려드는 놈만 수십이었지. 개미가 개미를 잡아먹는 그 아수라장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고 알아?”
가쁜 숨을 몰아쉬며 검은 소년은 붙잡았던 옷자락을 내팽겨 쳐버렸다. 고개를 숙인 채 얕게 콜록이는 하얀 소년을 내려다보던 그는 코트자락을 휘날리며 요란스럽게 뒤돌아섰고 모든 걸 부정하겠다는 듯 천천히 떠나가기 시작했다.
하얀 소년은 느낄 수 있었다. 떠나가는 이의 마음속에선 분명 자신을 붙잡아주길 바라는 실낱같은 탄원이 전해져 왔다. 그를 붙잡지 못한다면, 어쩌면 그 결과는 새로운 ‘검은 눈’의 탄생일 수도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뭐야...”
황급히 뛰어가 붙잡은 코트자락에 검은 소년은 뒤돌아보며 한 마디를 내뱉었다.
“꺼져.”
그렇지만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의 눈 안에 담긴 것은 예전의 자신과도 같은 심연. 예전의 자신이 그랬듯 그는 변해버릴 수도 있음을 그는 확신했다. 아무런 슬픔도 연민도 없이 그저 이성적으로 모든 일을 해결하던 그 때의 자신, 그리고 어쩌면 그 때의 자신과 달리 악의로 가득 찬 괴물이 만들어질 수도 있는 가능성을 좌시할 순 없었다. 그는 소중한 친구였다.
“아니. 넌 변할 수 있어.”
나지막히 깔린 작은 목소리 그리고 성큼성큼 걷던 걸음은 멈춰 섰다. 비록 돌아보지는 않았지만 그는 분명히 듣고 있었다.
“나쁜 방향이 아니라 좋은 방향으로 변할 수 있어.”
“...어비스가 우리에게 준 진실은 하나 뿐이야. 힘은 지나간 일들에 대한 후회일 뿐이지. 잃어버린 모든 사람들의 영혼을 먹이로 삼고 불태우는 불길 말이야.”
“아니! 너 자신을 기억해. 워록이 되었을 때의 너를 기억해보라고! 사르포자의 노래 구절을 외던 네가 뭐라고 말했었지? 넌 검은 눈의 뒤를 좇는 수많은 이들 중 하나였어. 하지만 달랐지.”
물기 섞인 목소리에 검은 소년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고개가 살짝 움직였음을 하얀 소년은 놓치지 않았다. 옛 기억. 그 때의 기억을 잊었을 리가 없다. 하얀 소년은 그렇게 생각하며 말을 이었다.
“검은 눈은 모든 감정을 배제한 괴물이지만 넌 그렇지 않다고 했었지. 검은 눈의 힘을 존경하지만 그와 같은 괴물이 되지는 않겠다고 자신만만하게 말했었어 안그래?”
“치기어린 헛소리였어. 아무 것도 모른 채 말한 거였지.”
“그렇게 생각해? 하지만 넌 지금 이 순간에도 천계와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싸우고 있잖아.”
“하!”
어처구니없다는 듯 외마디 소리를 낸 검은 소년은 고개를 옆으로 돌리더니 한쪽 손을 살짝 들어올렸다. 손 위에 떠오른 것은 무지갯빛 마법구. 깊어진 어비스가 이끌어낸 궁극의 마력.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채지 못할 수는 없었다.
“아니. 아니야. 그런 유치한 장난 따위 하지 마. 넌 알고 있어 아주 잘 알고 있지. 네가 지금 하는 협박은 네가 말했던 할렘의 가장 멍청한 꼬마보다도 멍청한 짓이야.”
“과연? 이것 봐 이터널. 지금 이 함선의 모습을. 기함 노블 스카이 천계 군의 수뇌가 다 모여 있지. 방비는 철저하지만 내부에선? 밤은 깊었고 아무도 없어.”
무지갯빛 일렁이는 마법구는 크다고는 할 수 없었다. 그것을 들고 있는 소년의 얼굴보다도 작은 크기였다.
그러나 마법에 대해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것을 보곤 경악할 터였다. 그 작은 마법구에 담긴 마력이 상상조차 할 수 없을 만큼 막대함에 그리고 그 막대한 마력을 그리도 안정적으로 다루고 있음에.
“장난이 지나쳐 오블리비언. 그런 위험한 장난을 친다면 나도 가만히 있을 수 없어. 그 마력 빨리 내려놔.”
“왜? 나보고 옛 기억을 잊었냐고 하더니만 왜 네 스스로 잊은 것처럼 구는 건데? 응? 옛날의 나는 이런 장난을 아주 많이 쳤던 걸로 기억하는데 말이야.”
마법구를 내려다보며 냉소를 짓던 오블리비언의 눈은 이터널에게 향하지 않았다. 대신 그의 눈은 넌지시 하늘을 향했고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분명했다.
“어린애 같은 소리..! 잘 알고 있잖아. 그 때의 장난과 지금 네가 하는 짓은 차원이 달라.”
“진짜 웃기네. 예전의 너는 내가 무슨 짓을 해도 이런 반응은 안보였었는데 말이야. 이거 정말 웃겨. 모든 건 변한다며? 내가 보기엔 너만 변한 것 같은데 말이야 크크크큭.”
오블리비언의 손 위에 떠 있던 무지갯빛 마법구가 한 순간 사라졌다. 그러나 이터널은 긴장을 풀지 않았다. 아니 긴장을 풀 수 없었다. 다음 순간 그의 입가엔 허탈한 웃음만이 흐를 뿐이었다.
“하..하하. 너 정말 갈 데까지 가버린 거야..?”
오블리비언의 몸 주위로 4속성의 원소 구체가 떠올랐다. 그야말로 극한까지 압축된 원소 마력은 이루 말할 데 없이 안정적이었지만 저것이 하늘로 쏘아 올려졌을 때의 결과는 감히 말할 수 없을 터였다.
“자, 쇼타임이다. 할렘에선 힘이 법이고 진리였지. 옳고 그름을 가리는 것도 마찬가지야. 넌 내가 변하는 걸 두려워하고 있지? 그럼 한 번 해보라고 할렘의 방식으로 내가 틀렸음을 입증해 보란 말이야!”
한 순간의 지체도 없었다. 오블리비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냉기를 품은 마법진이 그의 발아래 나타났다. 그곳에서 솟아오른 냉기의 마력이 그를 사로잡기 직전 오블리비언은 그곳에서 몸을 빼내었다.
방법이 없었다. 이터널은 분명히 더 이상 프로즌하트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하여 그가 물러진 것은 아니었다. 오블리비언은 자신이 거친 할렘 출신임을 거듭 이야기했지만 그가 삶의 대부분을 보냈던 극지 또한 결코 호락호락한 곳은 아니었다. 그들 모두 말로만 해결할 수 없는 일에 말로 매달릴 만큼 무르진 않았다.
“그래. 그렇게 나와야지!”
하늘에서 얼음 결정 소나기가 쏟아져 내려왔다. 동시에 화염의 불줄기가 발아래 쓸어내리고 번개로 이루어진 사슬채찍이 매섭게 휘갈겨졌다. 어둠의 구체가 시야를 가렸지만 끝없이 이어지는 주문의 영창을 이터널은 들을 수 있었다. 그야말로 원소폭격사. 어비스의 끝없는 마력에 기반한 주문 폭격엔 그침이 없었다. 이러한 전투방식에 익숙치 못했다면 그 또한 고전했을 터.
그러나 이터널은 침착하게 자신을 방어하며 쏟아지는 원소 주문 속을 파고들어갔다. 불과 얼음의 사이 틈을 비집고 들어간 곳으로 번개 장막이 나타나자 이터널은 왼손으로 얼음을 일으키고 오른손에 마력을 집중했다.
번개 장막이 그를 덮치는 순간 주먹에 집중된 마력이 얼음 기둥을 강타하며 해방되었고 얼음 기둥에 담긴 마력과 섞여 다가오는 장막의 마력에 부딪쳤다. 에너지의 소용돌이가 퍼져나가고 얼음의 마력과 번개 장막이 상쇄되어 사라지는 순간 이터널은 그곳을 빠져나간 뒤였다.
그의 시야를 가리는 어둠 구체 너머 어느 곳에 시전자가 있는지는 마력의 흐름을 느끼면 쉽게 알 수 있는 문제. 이터널도 오블리비언도 분명히 알고 있는 부분이었기에 막으려는 자와 뚫으려는 자의 격돌은 피할 수 없는 결과였다.
“폭풍이여.”
무지갯빛 커다란 원소구체가 그를 향하여 쇄도함을 목격한 이터널은 어비스의 마력을 불러내어 폭풍의 모습으로 풀어놓았다.
“몰아쳐라!!”
그의 고향에 휘몰아치는 눈보라를 형상화한 폭풍은 순식간에 그의 주위 전체를 휩쓸어버리고 지워버렸다. 어둠의 마력으로 가려졌던 시야가 맑게 갠 하늘처럼 투명해진 찰나 두 사람의 눈길은 서로를 발견하였다.
하늘에 둥둥 뜬 채 오블리비언은 재밌다는 듯이 웃어제꼈고, 잠시간의 정적 후 새로운 주문을 영창하였다. 다음 순간 검은 하늘에 별이 수놓아졌다. 푸른빛 붉은빛 노란빛 보랏빛 깜빡이는 별들이 하늘을 가득 채운 채 반짝이고 있었다.
“자 이것도 한 번 받아보라고. 선체에 손상이 가면 안 되잖아? 엘레멘탈 레인!!”
가만히 반짝이던 별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삽시간에 별똥별이 되어 맹렬히 낙하하였다. 아무리 노블스카이가 튼튼한 함선이라 해도 방어막 아래에서 저런 폭격을 맞아 무사할 수 있을 리
가 없었다. 이터널은 입술을 잘근 씹으며 오블리비언을 노려보았다.
“오버프리즈..!”
어비스로부터 발현된 마력이 모든 것을 얼어붙게 만드는 파장이 되어 하늘을 향해 퍼져나갔다. 출력을 조절할 여유 따윈 없었기에 그것에 닿는 모든 원소 마력은 얼어붙은 채 소멸해 갔다.
자신의 발밑 바로 아래까지 와 닿는 파장을 보면서도 오블리비언은 그저 웃을 뿐이었고, 이터널은 그런 모습을 보며 최근 되찾은 감정이 울렁거림을 느꼈다. 아주 어린 시절 이후론 거의 잊은 채 살고 있었던 그 감정은 생소하기 짝이 없었지만 지금은 당장에라도 폭발할 것만 같았다.
“...그거 너한테 닿았으면 어쩌려고 했어?”
“뻔한 거 아냐? 얼어 죽었겠지. 네 세심한 배려 덕에 안 그랬지만 말이야.”
이터널은 진심으로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와 동시에 어비스를 감싸는 마력이 그의 감정을 따라 요동치기 시작했다. 살짝 고개를 숙이곤 그는 한 손으로 길게 내려온 귀밑머리를 뒤로 넘기며 고개를 들었다. 고개를 든 그의 눈은 다른 의미로 불타고 있었다.
“오, 이제 좀 제대로 할 생각이..”
오블리비언은 말을 채 잇지 못하였다. 자신의 눈 바로 앞에 새하얀 눈동자가 와 있었기 때문에. 무언가를 말하려던 입은 곧바로 손에 잡혀 봉해지고 그는 붙잡힌 채 하늘로부터 곤두박질 쳤다. 순식간에 등이 딱딱한 갑판에 닿음을 느끼며 오블리비언은 어떻게든 입과 턱을 붙잡은 손을 떼어내려 바둥거렸지만 떨쳐낼 수가 없었다. 이터널은 말 그대로 그의 위에 올라타 있었다.
“...야 무슨..!”
“제대로 하자며? 제대로 해줄게 어디.”
전혀 차갑지 않고 뜨겁게까지 느껴지는 목소리는 오블리비언이 이터널에게서 처음 듣는 종류의 것이었다. 무언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으며 이 상황을 풀어낼 주문을 떠올려내기도 전에 오블리비언의 머릿속엔 다른 생각이 가득 들어찼다.
“헉..!”
그의 가슴을 이터널의 주먹이 강타하였다. 엘레멘탈 실드가 작동하고 있었기에 충격은 경감되었지만 한 순간 숨을 못 쉴 정도의 격통이 그를 휘어잡았다. 간신히 숨을 몰아쉰 순간 다음 주먹이 그의 몸통으로 날아들었다. 그리고 또, 다시, 계속..
간신히 얕은 숨만 이어 쉬며 오블리비언은 바로 위에서 자신을 똑바로 내려다보는 이터널의 눈을 바라보았다. 말을 할 기력조차 더는 없었다. 이터널의 주먹은 명백하게 그에게 상처를 입히는 것을 피하고 있었지만 확고하게 고통만을 목적으로 하고 있었다.
그리고 한계에 이르러 기절하기 직전에 그 주먹세례는 멈췄다. 오블리비언은 생각을 정리하지조차 못하고 있었다. 평소 수십 가지 주문을 순식간에 떠올리고 영창으로 이어 붙이는 그의 두뇌도 완전히 백기를 올린 상태였다.
“네가 바라는 대로 해줬어. 자 어떻게 할까 특별히 너한테 선택지를 줄게. 첫 번째 네가 그리도 지겹게 말하고 또 말했던 할렘의 방식, 두 번째 내 고향의 방식, 세 번째 아라드의 방식. 자 골라봐.”
만약 오블리비언이 말을 할 수 있었다면 당장에라도 미친 놈이라고 내뱉었을 것이었다. 그러나 그럴 기력조차 낼 수가 없었기에 오블리비언은 아무런 행동도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아, 말을 못하겠으면 눈을 찡그리는 걸로 결정해 한 번 두 번 세 번.”
끊어져가는 의식을 붙잡으며 오블리비언은 이터널이 제시한 선택지에 대하여 떠올렸다. 그가 항상 말하던 할렘의 방식 그것은 패배자의 운명은 승리자에게 맡기는 것... 이터널의 고향 극지의 방식은 이전에 딱 한 번 들은 적이 있었다.
생존 그자체가 위협받는 그곳에서 분쟁은 무조건적인 죽음만으로 보답받는다고.. 그리고 세 번째 아라드의 방식은 이것이 결투라면 단순히 결투를 끝내는 것.
‘당연히 3 번이지..!’
오블리비언은 생각을 정리하고 자신의 선택을 표현하려 했지만 그가 한 번 눈을 찡그리는 순간 암흑이 그의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정말 고집스럽구나. 결국 할렘의 방식이라니...”
이터널은 두 눈을 감은 오블리비언을 내려 보며 말하였다. 그리곤 그의 몸 위에서 내려와 살짝 옆에 앉더니 축 늘어진 오블리비언의 몸을 붙잡아 안았다. 그를 품에 안은 채 검디검은 머리칼을 만지작거리며 이터널은 예전에 워록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할렘의 방식은 말이야 결투의 패배자가 승리자 마음대로 되는 거야. 뭐든지 말이지.’
“흐응... 그럼 이제 뭐든지, 내 마음대로구나. 오블리비언.”
밤이 깊은 노블스카이의 갑판에서 불침번 겸 순찰을 돌던 천계 병사는 갑판 위에 있는 사람을 보고 잔뜩 긴장한 채 그들에게 다가갔다. 그러나 그는 이내 긴장한 마음을 풀곤 하던 순찰을 계속하였다. 그가 본 것은 그들과 함께 싸우는 마계의 마법사들의 모습. 언제나 장난기 많은 검은 마법사가 언제나 친절하던 하얀 마법사의 무릎을 벤 채 잠들어 있는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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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부터 던파 팬픽을 쓰기 시작해서 개인 블로그에 올리고 있었는데
그 중 맨 처음 썼던 걸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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