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묘지ㆍ上
―encounter
칠흑 같은 산속에서 MayBach는 길을 잃었지. 회장님,
그 회장님이 타신다는 MayBach 말이야. 그래, 죽었는지 살
았는지 알 수 없는 배설물, 인간에게 가장 고유한 서명, 사
망 선고로 자신을 공표하는 것이 자식들에 의해 금지된 좀
비, 세별 회장은 지금 금치산 상태야. 하지만 세별 회장보
다 더 죽지 않는 회장은 바로 우리 회장님이시지. 칼침을
스무 번이나 잡숫고도, “나는 아직도 배고프다”라고 말씀
하셨다는 Dragon 회장님. 회장님은 그렇게 말씀하시고 나
서, 단번에 Tiger의 두 눈알을 뽑으셨지. 셀라! 그때 일은
용아(龍兒)가 잘 알고 있지. Tiger가 회장님의 침실을 습격
했을 때, 용아는 회장님의 근(根)을 빨고 있었거든. 그렇지
용아?
내비게이터도 스마트폰도 먹통이야. 몇 시간 째 산속
을 맴돌던 MayBach는 세면(細麪) 가닥 같은 외길로 접어
들었어. 배고픈 듯, 배고픈 듯이 말이야. 그때 ‘저수지 1킬
로미터’라는 이정표가 보였지. 용환(龍煥)이 운전대를 잡은
MayBach는 염력에 끌린 듯이 저절로 저수지를 향해 슬슬
굴러갔어. 회장님이 설악산국립공원 곁에 새로 지은 설악
임페리얼 호텔 카지노를 접수하고 오라고 삼룡(三龍)을 파
견하면서 당신의 전용차를 내어 주신 것은, 지역구 깡패들
에게 Dragon의 위신을 보여 주기 위해서가 아니야. 용아가
심심풀이 삼아 삼용을 따라나섰기 때문이야, 그렇지 용아?
Dragn의 마스코트.
길은 가는 국수 면발을 이은 듯 외길로만 이어졌고, 운
전대를 잡은 용환이 옆에 입을 꾹 다물고 앉은 용관(龍冠)
은 회장님께 올려야 할 보고를 무려 세 시간 째 올리지 못
해 잔뜩 긴장해 있었어. 그런 중에 길 끝에서 반딧불같이
희미한 인가의 불빛이 반짝였지. MayBach가 소리 없이 외
길을 헤쳐 나가자, 갖가지 판자와 비닐로 얽기 설기 지어
진 작은 매점과 캄캄하고 너른 저수지가 한꺼번에 눈앞에
나타났어. 용환이 은은한 불빛을 밝힌 매점 마당에 차를
세우기도 전에, 너덜거리는 비닐 판자문을 열고 누군가가
MayBach를 반기러 나왔어. 이건 김희선인가, 최지우인가?
뒷좌석에 앉은 용갑(龍甲)이 창문을 내리고 판잣집의 여
자에게 이곳의 위치를 물었어. 여자가 대답하기를, 저수지
건너편이 설악산국립공원 케이블카 공사장 본부라는군.
그러면서 그녀는 “라면 먹고 가세요”라고 교태를 부렸지.
Dragon은 서울에서 Tiger를 괴멸시켰고, 설악임페리얼 호
텔 사장은 오금이 저린 채 우릴 기다리고 있을 테지. 그 호
텔은 케이블카 공사장 본부에서 10분 거리에 있지. 매점의
유일한 메뉴는 라면이었어. 용아, 그런데 저 여자, 사연이
있겠지? 이렇게 섬짓한 곳에 혼자 살려면, 김윤석도 마동
석도 무서워할 거야, 안 그래 용아? 그녀는 누가 지켜 주고
있을까? 판자와 비닐로 얼기설기 지어진 매점의 유리창 밖
으로 저수지의 검푸른 수면이 참선(參禪)을 하고 있아.
라면이 대령하자, 용아가 매점 여자에게 물었어. “신라면
이에요. 안성탕면이에요? 나는 오뚜기 진라면이 아니면 안
먹어.” 라면 가닥을 한입씩 집어삼킨 삼룡이 돌아가며 핀
잔을 주었어. “라면이 요리야?”(용환), “배고플 때 그냥 먹는
게 라면이지.”(용관), “아무거나 똑같아.”(용갑) 그 말을 다 마
치기도 전에 삼룡은 창자를 토해 내며 죽었지. 취향이 없
었기 때문이야. 용아는 맛에 대한 확고한 취향이 있었기
에 독이 든 라면을 용케 먹지 않았던 거지. 삼룡이 급사하
자 용아가 여자에게 달려들었고, 저수지 여자는 부리나케
MayBach를 타고 달아나려고 했어. 하지만 키를 찾지 못한
저수지 여자는 용아에게 턱을 얻어맞고 몇 초간 기절했다
가, MayBach 운전석을 뒤로 젓히며 용아를 유혹하려고 했
어. 회장님의 스물세 살짜리 애인, 여자 따위는 거들떠도
보지 않는 우리 용아를 말이야. 치마를 걷어 올린 여자의
희멀건 사타구니를 보자 구토가 치솟았어. 용아는 여자의
두 손목을 비틀어 잡고 차에서 끌어내린 다음, 매점 의자
에 꽁꽁 묶었어. 그리고 물었어. “또 Tiger냐? Tiger가 시킨
거냐? 그 고양이 새끼들이?” 여자는 코웃음 쳤어. “Tiger
라니? 이명1박이야? 지만1원이야? 정규1제야? 니가 말하는
Tiger란 변희1재, 김세1의, 윤서1인 따위의 줄무늬 빤스를 입
은 놈들을 말하는 거니?” 용아는 잔뜩 질투를 불러일으키
는 저수지 여자의 가슴을 담뱃불로 지졌어.
용아가 저수지 여자를 심문하는 데 지쳤을 때, 매점에
켜 놓았던 라디오에서, 자줏빛 비, 자줏빛 비, 자줏빛 비를
멋지게 편곡한 블루스가 나왔지. Lucky Peterson의 Purple
Rain 말이야. 용아는 심문을 멈추고 음악에 맞추어 춤을
췄어. 옷가지를 하나씩 벗으면서 말이야. 그러자 고여한 저
수지에 천둥 번개가 치고 비가 쏟아지며 물길이 솟구쳤어
세상에나! 용이 나타난 거야! 용은 물에 젖은 황금빛 비
늘을 번뜩이며 매점의 유리창에 붉은 눈깔을 바싹 붙이고
아가리를 열었어. “나는 오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춤
을 봤다.” 용아의 전신에는 열다섯 살 때 소년원에서 새긴
한 마리의 천연색 용 문신이 있었지. 춤추는 용 문신과 용
아는 하나. 저수지의 용은 거기에 홀렸던 거야. 용이 용에
게 반한 거야. 용과 용아는 용춤을 추기 시작했고, 의자에
묶인 저수지 여자는 아빠가 바람을 피우는 것을 봐야만 했
어. 보름달이 뜰 때마다 저수지에서 올라와 접신을 했던 아
빠, 그녀가 인신을 공양하며 섬겼던 아빠……. 그녀의 두
눈에서 자줏빛 비가 흘렀어.*
* 이 작품은 ‘자동차 묘지’ 3부작 가운데 가장 먼저 발표되지만 이야기
의 시간 순으로는 중간에 해당한다. 이 작품 전후에「자동차 묘지ㆍ
中―origin」과「자동차 묘지ㆍ下―epilogue」가 있다. 1996년부터 구상
한 이 작품은 어느 천년에 완결될지 알 수 없다.
눈 속의 구조대
장정일, 민음의 시 2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