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골(貴骨)
이불을 깔지 않은 맨바닥 위에선 잠이 잘 오지가 않더군. 드러눕
지도 못하겠어. 몸이 원체 말라서 이리저리 뼈가 튀어나와 방바닥
에 살이 배기기 때문. 그런데도 서울역 대합실이나 남대문 지하도의
노숙자들과 거지 아이들은 시멘트 바닥에서 잠을 잘도 자고 있었어.
그것도 대낮에. 괜히 육신이 예민하여 조그만 소음이나 자극에도 잠
을 잘 못 이루는 나보다 그들은 그래도 행복해 보였어. 이런 고통
을 어머니께 호소하면, 으레껏 어머니는 “그건 네가 귀골(貴骨)인 탓
이야”라고 말씀하시며 대견스레 당신의 아들을 바라보시더군. 오늘
도 퇴근길에 벗어논 내 양말을 빨아 주시며, “발에 땀이 없는 걸 보
면 넌 역시 귀골이야, 귀골. 천골(賤骨)인 사람들은 꼭 발에 땀이 많
아 가지고 썩는 냄새가 나거든. 사람은 확실히 날 때부터 천골과 귀
골이 따로 있는 모양이야” 하시며 흐뭇한 표정을 지으시지 않아. 그
러고 보니 정말, 어디서나 잠을 쿨쿨 잘 자는 친구들, 살이 질펀하게
찐 친구들이 곡 천골로 보여. 피곤한 모습으로 시장터에서 정신없이
낮잠을 자고 있는 행상 아주머니들도 확실히 천골. 노숙자도 천골.
자장면을 20초에 게걸스럽게 먹어치우는 사람도 천골. 천골로 태어
난 그들은 참 불쌍하지. 귀골, 귀골로 태어난 나는 참 그래도 행복하
지. 돈은 없어도 나는 몸이 말랐어. 신경도 날카로워. 큰 부자는 못된
다고 해도, 그래도 노동을 하지 못하고 다방 구석에서 담배 연기를
뿜으며 세월을 한탄하고, 거지들에게 십 원짜리 동전이라도 떨어뜨
리며 흐뭇해 할 수 있는 귀골인 나는 그래도 얼마나 행복한 놈이야?
귀골 귀골 귀골. (발음이 이상해, 꼭 개구리들이 악마구리처럼 떠드는 소
리 같지 않아?) 아무튼 좋은 게 좋지. 귀골이 좋지. 사람은 태어날 때
부터 귀골과 천골이 따로 있다더군. 천골은 날 때부터 눈이 세 개라
더군. 뿔이 달렸다더군. 흉측한 꼬리도 달렸다더군.
가자, 장미여관으로
마광수, 책읽는귀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