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양
경상남도 서부에 위치한 함양은 전라남도 구례의 북쪽
이다. 구례에서 함양을 가려면 오륙백 미터가 넘는 험준한
팔량치 고개나 육십치 고개를 넘어야 한다. 철도나 자동차
길이 없던 아득한 시절, 그러나 이곳에 지리산 곰들이 닦
아놓은 혼도(婚道)가 있었다면 사람들이 믿을까. 구례 쪽
곰이 함양으로 넘어가 함양 곰이 되듯 내 어렸을 적 함양
에서 시집온 바지런한 함양댁들이 구례 들엔 넘쳐났다. 그
리고 60년대 초반까지 구례중학교 운동장에선 구례―함양
간 축구정기전이 열렸다. 코스모스가 피고 오색기가 휘날
리는 운동장을 달리는 곰의 아들들은 눈부셨다. 그러나 언
제부터인지 이 혼도는 끊기고 더이상 정기전도 열리지 않
았다. 그리고 오늘 함양은 함양, 구례는 구례. 두곳을 이어
주는 젊은 함양댁들도 들녘엔 없다. 다만 가을 어스름녘
구례 쪽에서 어슬렁어슬렁 산마루턱에 오른 늙은 곰이 볕
들의 고향인 함양 쪽을 내려다보다 고개를 외로 꼬고 앉아
그 옛날을 모두 잊었다는 듯 무연한 명상에 잠길 뿐.
하동
이시영, 창비시선 4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