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자의 유언장
“내가 죽은 뒤에 다음 세 사람에게 부탁하노라. 1. 최완
택 목사 민들레 교회. 이 사람은 술을 마시고 돼지 죽통에
오줌을 눈 적은 있지만 심성이 착한 사람이다”로 시작되
는 권정생 선생의 유언장은 생전의 성품 그대로 솔직하고
담백하기 이를 데 없다. 그는 다가올 자신의 죽음에 대해
서도 “앞으로 언제 죽을지는 모르지만 좀 낭만적으로 죽
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나도 전에 우리 집 개가 죽었을 때
처럼 헐떡헐떡거리다가 숨이 꼴깍 넘어가겠지. 눈은 감
은 듯 뜬 듯 하고 입은 멍청하게 반쯤 벌리고 바보같이 죽
을 것”임을 예견하는가 하면, “유언장치고는 형식도 제대
로 못 갖추고 횡설수설했지만 이건 나 권정생이 쓴 것이
분명하다” “만약에 죽은 뒤 다시 환생을 할 수 있다면 건
강한 남자로 태어나” “25살 때 22살이나 23살쯤 되는 아가
씨와 연애를 하고 싶다. 벌벌 떨지 않고 잘할 것이다”고 다
짐했으며, 평소의 평화주의자답게 “하지만 다시 환생했을
때도 세상엔 얼간이 같은 폭군 지도자가 있을 테고 여전히
전쟁을 할지 모른다”며 “그렇다면 환생은 생각해봐서 그
만둘 수도 있다”고 했다.
얼간이 같은 폭군 지도자가 없고 전쟁이 없는 그런 세상
이, 과연 오기는 올까?
하동
이시영, 창비시선 4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