잿간
서른살 넘은 딸애에게 아버지 어렸을 적에는 뒷간에 가
서 볼일을 보고 난 뒤 짚으로 밑을 닦았다는 얘기를 했더
니 “우웩!” 하며 토악질을 하더라. 그러나 1960년대까지
시골에는 잿간이라는 여성용 변소와 흑돼지가 밑에서 입
을 쩌억 벌리고 있는 남성용 뒷간이 따로 있었는데 어린
나는 주로 잿간을 찾아 용변을 해결했다. 아궁이에서 퍼온
재가 수북이 쌓인 잿간은 솔잎 타고 남은 재 냄새가 그윽
했는데 볼일을 보고 망태에 담긴 부드러운 볏짚으로 밑을
닦고 난 뒤 곁에 놓인 삽으로 그것을 듬뿍 떠서 잿더미에
던지면 퇴비가 되는 것이었다. 호박넝쿨과 박덩이가 자라
는 뒷간 지붕도 그윽하거니와 돌담에 황토를 입힌 안벽은
사색의 공간이기도 해서 안방이나 작은방처럼 친숙했다.
남자 어른들이 사용하는 사랑채에 딸린 변소는 커다란
돼지가 밑에서 꿀꿀거려 좀 무서웠지만 인분을 받아먹고
자란 돼지의 배설물은 퇴비가 되어 거름자리에 쌓였다. 아
직 비료가 없던 시절, 잿간과 돼지막에서 나온 거름은 마
당가에 높이 쌓여 아침마다 모락모락 훈김을 내뿜었는데
싫지 않은 들큼한 냄새였을 뿐만 아니라 바지게에 실려 나
가 모든 논농사와 밭농사의 요긴한 비료로 쓰였다. 그러므
로 우리가 어릴 적 먹고 자란 음식은 몬산토가 아니라 이
슬 젖은 밭고랑에 뛰던 청개구리 같은 싱싱한 것이었다.
하동
이시영, 창비시선 4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