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님. 스즈킵니다.”
사쿠라바 잇토키가
그레이스에게 다가가 귓속말을 했다.
계속 소리를 지르던 그레이스는
스즈키의 목소리가 들리자
비명을 멈추었다.
그리고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스즈키를 바라보았다.
눈물과 콧물, 침으로 범벅이 된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잇토키는 고개를 뒤로 빼서
엉망이 된 박사의 얼굴에서 거리를 두었다.
“박사님. 진정하지 않으시면.”
잇토키가
박사의 눈을 보면서 말했다.
그레이스는
자신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탑승을 거부당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박사님이 탑승거부를 당한다 해도,
저희는 박사님을 기다리지 않을 겁니다."
그런 뒤
나지막한 목소리로
"아주 쉽게 말하자면
니 년이 탑승거부를 당한 뒤
공항에서 평생동안 안 나오든
바깥이 그리워서
공항 바깥으로 나간 뒤
갈기갈기 찢겨 뒈져도
난 상관하지 않겠다는 거야.
이 머리에 먹물만 든 썩은 관료만도 못한 개년아.”
사쿠라바 잇토키가 조용하게,
하지만 단호하면서도
지금까지
그를 무시한 것에 대한 비웃음과 조롱을 섞어서 말했다.
그 말에
그레이스는 정신이 들었다.
탑승을 거부당한다.
그리고
혼자 남는다.
이 지옥 같은 곳에.
“그러니 진정하시길.”
잇토키는
여기까지 말하고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항공사 직원과 경비 대원에게 말했다.
“다 끝났습니다.
이제 괜찮을 겁니다.”
항공사 직원은
몇 마디 듣지도 않았는데
바로 발작을 멈추는 그레이스 박사를 보고는
황당함을 느꼈다.
“그....녀의 공황발작이...”
“발작이 아닙니다.
그저 조금 놀랐을 뿐입니다.”
잇토키가 말을 잘랐다.
앤 챔버가 그레이스를 부축해
다시 의자에 앉혔다.
그리고는
손수건을 꺼내
그녀의 얼굴을 닦아 주었다.
“발작이 아닙니다.
비행 공포증도 없습니다.
비행기에 탈 수 있습니다.”
사쿠라바 잇토키가 다시 말했다.
항공사 여직원이 무언가 말을 하려다
잇토키의 눈을 보고 입을 닫았다.
그가 그렇다고 한다면 그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럴 것 같았다.
“보호자신가요?”
공항 직원이 확인차
잇토키에게 물었다.
“전 관계자입니다.
보호자분을 모셔오는 게 좋겠군요.”
항공사 여직원은
잇토키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비즈니스 클래스 라운지에 미스터 아고스토가 계실 겁니다.
그를 불러 주시죠,”
사쿠라바 잇토키가 말했다.
그레이스는
많이 진정된 모습을 보였다.
반면에
비즈니스 라운지에서
음식을 잔뜩 퍼 놓고
베네수엘라에서 마지막 만찬을 즐기려다
갑작스럽게 호출되어 온 아고스토는
당황한 표정으로
그레이스 옆자리에 앉아 있었다.
항공사 직원이
아고스토에게 그레이스의 보호자냐고 물었고,
평소 신사를 자청하는 아고스토는
넋이 나간 그레이스를 보면서
차마 아니라고 말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라운지의 음식들을,
프리미엄 위스키들을,
베네수엘라에서의 마지막 식사를 포기하고
그레이스 옆을 지킬 수밖에 없었다.
사쿠라바 잇토키는 그 모습을 보면서
속으로 웃었다.
하지만
그 웃음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도록
근엄한 표정을 지으며
앤 챔버에게 말했다.
“챔버 양.
식사는 하셨습니까?”
그 질문에
앤과 아고스토 두 사람의 시선이
잇토키에게 집중됐다.
“네?
아..아니. 저기 전 생각이 없어서...”
앤이
당황하며 말했다.
갑자기 무슨 이야기지?
식사라니?
“또 쓰러질 수 있으니
간단하게 무언가를 먹어두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아고스토 이사님께서
그레이스 박사님을 잘 보살펴 주실 테니,
우리는
간단하게 뭐라도 먹고 오도록 하죠.”
잇토키가 앤 챔버에게 말했다.
앤 챔버는
잇토키의 의도를 전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그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저기... 그...”
자신을 두고 떠나려는 두 사람에게
아고스토가 말을 건넸다.
잇토키가 뒤돌아보았다.
“그레이스 박사님을 잘 부탁드립니다.
이사님이 곁에 계시니
박사님이 한결 편안해 보이시는군요.
역시 이사님이십니다.”
그 말에
아고스토는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뒤돌아 걸어가는
두 사람만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잇토키는
아고스토와 그레이스를 뒤로 하고 걸어가면서
보이지 않게 웃음 지었다.
그러나
그의 웃음은 오래 가지 못했다.
공항에 울리는 안내 방송이
그의 발을 멈춰 세웠기 때문이다.
“아메리칸 에어라인 914편,
아메리칸 에어라인 914편을 통해 마이애미로 떠나시는
루시아 그레이스 승객.
루시아 그레이스 승객께서는
중앙에 위치한 안내 데스크로 오시길 바랍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아메리칸 에어라인 914편에 탑승하시는
루시아 그레이스 승객께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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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찬의 말씀을...... | 23.03.27 20:16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