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의 밤.
하늘에서 내리는 수많은 눈으로 지상은 화이트 크리스마스의 낭만으로 가득 차 있었다.
도심 한복판에 세워져 있는 커다란 크리스마스 트리 아래에서 연인들은 서로의 사랑을 속삭이고 있었고 거리의 빵집은 크리스마스 특수로 인해 정신 없이 바빴다.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징글벨 소리에 맞추어 딸랑딸랑 맑은 소리를 내는 구세군의 종소리도 울려 퍼졌다.
크리스마스의 낭만과 행복으로 가득 찬 길거리 속에서 귀마개를 하고 모자를 눌러쓴 청년은 주머니에 손을 쏙 넣은 채 묵묵히 걸어가고 있었다.
남들과는 달리 약간 생기가 없는 듯 한 얼굴을 하던 청년은 잠시 멈추더니 건너편 빌딩에 달린 커다란 화면 속으로 나오는 뉴스를 지켜봤다.
“며칠 전 군 부대를 습격한 정체불명의 생명체에 대한 조사가 이뤄지고 있지만......”
아나운서가 전하는 뉴스를 유심히 듣던 청년은 금방 흥미를 잃었는지 모자를 다시 한 번 꾹 눌러쓰더니 가던 길을 다시 걸어갔다.
걸을 때마다 눈 속에 찍히는 자신의 발자국을 보며 청년은 조용히 발걸음을 옮겼다.
형형색색의 불빛이 내뿜는 은은한 아름다움과 낭만이 가득한 거리.
하지만 그런 거리를 쓸쓸히 거닐고 있던 청년에게는 낭만도, 행복도 느껴지지 않았다.
허름한 검은색 점퍼 위에 하얀 눈이 수북하게 쌓이고 있었건만, 청년은 고개를 푹 숙인 채 땅만 바라보며 묵묵히 걸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청년이 갑자기 걸음을 멈추더니 자신의 발자국을 유심히 보기 시작했다.
청년이 바라보고 있는 발자국이 자꾸 흔들리고 있었던 것이었다.
청년은 자신의 눈을 의심하고는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한 번 발자국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발자국이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땅 전체가 흔들리고 있었다.
청년은 그걸 깨달은 순간, 어디선가에서 전해져 오는 진동을 몸으로 감지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진동이 점점 빠르게, 더 크게 전해져 오고 있다는 것도 느낄 수 있었다. 청년은 순간 긴장하여 주변을 둘러보았다.
콰아아아앙!
그 때였다. 길거리에 있던 맨홀이 폭발하더니 뻥 뚫린 구멍 속에서 세찬 물줄기가 뿜어져 나왔다.
길거리에 있던 사람들은 갑작스런 폭발에 놀라 폭발이 일어난 곳을 곧바로 쳐다보았다.
그러자 구멍에서 세찬 물줄기가 뿜어져 나오다가 얼마 뒤 잠잠해졌다.
길거리에 있는 사람들과 청년은 숨죽이면서 그 곳을 바라보았다.
어느 누구도 인기척조차 내지 않고 모두 조용히 그 곳만을 바라보았기에 거리에는 징글벨 소리만이 들렸다.
그러나 그 때, 엄청난 파열음과 함께 땅이 갈라지더니 거대한 무언가가 그 사이에서 모습을 드러내었다.
“크르르르르르......”
맨홀을 뚫고 나온 것은 기분 나쁜 소리를 내며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아파트 5층 높이는 족히 될 것 같은 거대한 몸집.
사방으로 날카롭게 돋아나 있는 비늘.
그리고 팔 한쪽에 달린 거대한 대포.
여태껏 본 적이 없었던 괴상한 물체는 맹렬한 살기를 내뿜고 있었다.
갑자기 튀어나온 괴생명체를 본 사람들은 놀라 비명을 지르며 뿔뿔이 도망치기 시작했다.
“저.. 저건 뭐야..!!”
그 광경을 본 청년은 놀라 뒷걸음질 쳤다. 뒷걸음질 치던 청년의 머릿속에서 순간 아까 봤던 뉴스의 화면이 떠올랐다.
“며칠 전 군 부대를 습격한 정체불명의 생명체에 대한 조사가 이뤄지고 있지만......”
자신과는 관계 없을 일이라고 여겨 무심코 지나쳤던 뉴스 기사 내용. 그 기사에서 이야기한 생명체가 지금 눈 앞에 나타난 생명체인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
찰나의 순간 속에서, 청년의 머릿속에는 수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그러나 청년의 머릿속을 떠돌던 생각들은 단 1초만에 한 가지의 결론에 도달했다.
'도망치자…!'
청년은 위험을 감지하고는 서둘러 피하려 했다. 그는 쓸쓸하게 거리를 걸었던 아까와는 달리, 급박함이 느껴질 정도로 빠르게 달리기 시작했다.
그의 옷 위에 쌓여있던 눈들이 전부 바람에 흩날렸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괴생명체는 청년을 노려보더니, 그 거대한 몸을 일으켜 세우고는 청년을 향해 달려오기 시작했다.
“뭐… 뭐야! 왜 따라와!!”
청년은 황급히 뒤를 돌아보고는 냅다 뛰었다. 바람에 모자가 날아가 버렸지만 청년은 그걸 신경 쓸 겨를도 없이 죽을힘을 다해 뛰었다.
하지만 뒤쫓아 오는 괴생명체와 청년 사이의 거리는 오히려 눈에 띄게 좁혀져만 갔다.
“으악!!”
그 때였다. 짧은 단말마가 거리에 울려 퍼졌다.
정신 없이 내달리던 청년은 결국 눈에 미끄러져 엎어지고 말았다. 무릎이 까진 것은 물론이거니와 옷도 더러워지고 얼굴에도 상처가 생겼다.
하지만 청년에게 그건 문제가 되지 않았다. 괴생명체는 어느덧 청년의 바로 뒤에 멈춰 서서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청년은 어떻게든 도망가 보려고 몸을 힘겹게 일으켜 세우려 했다.
그러나 그의 몸은 말을 들지 않았다. 죽음을 앞둔 상황에서 그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크르르…"
괴생명체는 곧바로 한 손에 달려있던 거대한 대포의 포문을 청년에게 겨눴다.
그 모습을 본 청년은 두려움에 얼어붙은 채 자신에게 겨눠진 포문을 쳐다보았다.
다가올 죽음에 대한 공포와 마주한 그의 머릿속에서 무수한 생각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이윽고 어두컴컴했던 포문에서 빛이 서서히 모아지기 시작했다.
청년은 두려움에 눈을 질끈 감고
“으아아아아아아아아!!!”
하고 소리쳤다.
“컹?!”
청년은 순간 놀라 눈을 부릅떴다.
그의 두 눈에 보이던 것은 어두컴컴한 밤하늘도, 괴생명체도 아닌 방 안의 형광등이었다.
정신을 차린 그는 땀에 흠뻑 젖은 채 이불을 걷어찬 채로 누워있었다.
"……?"
청년은 눈을 깜빡이면서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후… 꿈이었나…"
청년은 너무나도 생생했던 악몽에 몸이 땀에 흠뻑 젖은 모양이었는지 부스스한 머리를 긁적이고는 이불을 걷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난생 처음 꾸는 악몽에 많이 놀랐는지, 청년은 가슴을 쓸어내리며 어떻게든 마음을 진정시켰다.
그러고는 어느 정도 진정이 되자 청년은 아무것도 없이 허전한 벽에 조그맣게 뚫려있는 창문을 바라보았다.
눈으로 뒤덮인 하얀 세상이 그의 두 눈에 들어왔다.
"눈… 많이 왔네…"
창 밖을 바라보던 청년의 뒷모습은 어딘지 모르게 쓸쓸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