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방을 나와 내 눈에 보이는 것은 하얀 눈이 덮인 숲이었다. 스노우딘, 아마 이 지역의 이름일 것이다.
눈이 내리는 이 길을 따라가면 분명 키작은 해골, 샌즈와 만나게 될것이다.
엄마는 이 날씨 때문에 날 첫날에 재웠던 걸까...
지금의 나라면 샌즈와 악수하는 순간 그를 칼로 죽일거 같았다. 그리고 곧 그를 만나게 될 나무다리에 도착하게 된다.
난 나무다리 앞에서 누군가 오길 기다렸다.
추, 추워.
하지만 난 그 추위에도 아랑곳 않고 꽤 오랫동안 기다렸다.
추워도 추위를 피할 곳을 찾아 떠날 수도 없었다. 추워도 손도 비빌 수 없었다. 추워도 잠들 수 조차 없었다.
이건... 지옥이야.
"쳇. 아무도 안 오잖아?"
난 이 곳을 그냥 지나갔다. 그리고 아마 샌즈의 감시초소라고 생각 되는 원두막이 있는 눈밭이 보였다. 그 가운데에는 이상하게 찌그러진 등불도 있었다.
이 곳에선 분명 파피루스를 만나게 되는데...
눈이 많이 내려서 그런지 아무도 오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이 곳도 그냥 지나치기로 했다.
그리고 나온 삼거리. 이 곳의 세이브 지점을 그냥 지나치고...
잠깐, 저장하고 가면 안될까?
"왜? 체력도 안 달고, 여긴 쉽게 지나갈 수 있다고."
너무... 추워.
"하하! 걱정마. 난 안 추우니까. 그러고보니 니 말을 무시하려고 했는데. 잊어버렸네? 난 너무 착한가봐."
그리고 삼거리 중앙에서 파란 새같이 생긴 괴물을 만났다. 그는 눈이 내리는데도 초연하게 뭔가 연기같은 것을 연습하고 있었다.
"안녕? 이렇게 눈 내리는 날씨에 뭐 하고 있는거니?"
내가 그에게 친절하게 다가가며 묻자 그가 나를 보았다.
"엥? 넌 누구야?"
"난 그냥 지나가던 인간이야."
"인간? 너 정말 인간이야?"
무슨 말이지? 딱 봐도 인간일텐데?
"내 이름이 인간이야. 내 부모님이 아무래도 인간을 좋아하나봐."
"하긴, 인간처럼 생긴 괴물들은 자신과 비슷한 외모때문에 인간에게 동질감을 느낀다고 하더라."
인간처럼 생긴 괴물?
"뭐 어떤 해골은 인간 같이 생긴 괴물만 보고도 인간이다! 하면서 난리를 치지만."
그, 그랬던거야? 그럼 엄마도 내 행동을 보시고...
확실이 게임 속의 마을 사람들이 인간을 보고도 태연했었는데 이런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넌 여기서 뭐 하고 있던거야?"
내가 그 괴물새에게 묻자 괴물새가 대답해 주었다.
"난 여기서 스탠딩 개그를 연습하고 있었어. 아참! 내 소개를 안 해줬군."
괴물새는 일어나서 조금 앞으로 나가 나를 돌아봤다.
"안'영하'십니까! 저는 스노우드레이크! 차세대 스탠딩 코미디언입니다!"
마치 티비쇼처럼 자기소개를 한 후 계속 연기를 이어나갔다.
"이렇게 눈이 내리는데 안들어가고 뭐하냐고요? 걱정 마세요! 전 눈 위에서 더 강해져요. 눈을 마시거든요. 그래서 제 이름이 스노우드레이크잖아요!"
"하하하하!"
그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는 재미있었다. 분명 농담 자체로는 웃기지 않지만 게임에선 볼 수 없었던 그의 행동과 말투는 그가 어느정도 끼가 있음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이렇게 웃는 것도 내 몫이 아니었다. 난 지금 감정이 있어도 내 맘대로 웃지도 울지도 못했다. 어쩌면 난 플라위와 정 반대의 상황에 처한거란 생각이 든다.
그리고 연기를 마친 스노우드레이크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내 개그를 끝까지 들어줘서 고마워. 그러고보니 그 칼은 왜 들고 돌아다니는 거야?"
"아... 이거?"
나는 일어나서 그에게 다가가 그의 귀에 조용히 속삭였다.
도망쳐! 도망쳐! 도망쳐!
"재미도 없는 널 죽이려고."
아... 또...
나는 그를 밀어 넘어뜨린 후 얼빠진 표정을 짓는 그를 깔고 앉았다.
"우선 그 재미없는 농담을 하는 혀부터 처리해주지."
또 한번... 다시 한번 나는 잔인한 난도질을 시작했다. 나는 가루가 될 때까지 그를 난도질했다. 방금 전에 토리엘에게 외쳤던 건 그저 우연 이었던걸까...
난 그저 넋 놓고 가만히 보는 수 밖에 없었다. 아니 봐야할 수 밖에 없었다. 내가 눈을 감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
마침내 그는 내 난도질을 견디지 못하고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이, 인간!"
나는 고개를 돌려 목소리가 들려온 곳을 보았다. 그곳에는 히어로 영화에서나 나올 거 같은 옷을 입은 키 큰 해골, 파피루스가 있었다.
"시, 실수 한거야. 녜혜. 그렇지?"
나는 그에게 천천히 다가갔고 파피루스는 그런 나를 보면서 조금씩 뒷걸음질 쳤다.
"넌 분명 엄마의 심부름으로 칼을 가져오다가 방금 죽은 괴물과 부딪혀 넘어져서 실수로 그를 죽인거야. 맞지?"
"흐흐흐흐"
"오, 오지마!"
그리고 그는 달아났다. 차라리 그 편이 나았다. 그는 나를 전혀 막을 수 없으니까.
파피루스는 이 게임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였다. 허세가 심하긴 해도 순진하고 착해서 언제까지고 주인공을 믿어주는,
심지어 주인공이 학살을 저질르고 있어도 주인공에게 자비를 배풀기까지 한 녀석이다.
그런 녀석을 해치고 싶진 않았다. 차라리 이대로 도망쳐서 더이상 안 마주치길 바랬다.
언젠가 넌 심판 받게 될거야.
난 파피루스가 얼기설기 만든 초소를 지나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움직이는 것만 감지할 수 있는 도고는 가까이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목을 배어버렸고,
레서 독은 날 보자마자 으르렁거리며 달려와 돌검을 휘둘러 왔지만 간단히 피하고 그의 뒷목을 찔러주었다.
도가미의 느린 도끼를 피해 죽였고, 이에 분노한 도가레사는 도가미의 도끼를 들어 저돌적으로 달려들었지만,
힘이 빠져 쓰러졌고, 그런 그녀를 난 아무런 망설임 없이 찔러버렸다.
퍼즐들은 파피루스가 도망가면서 풀어버렸는지 손쉽게 지나갔고, 그레이터 독은 넘어뜨린 후 찌르려는 순간,
재빨리 갑옷에서 빠져나와 나에게 달려들었지만, 소형견인 그가 나를 상대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긴 구름다리를 지나 마침내 스노우딘 마을에 도착했다. 아무도 없어 조용한 것을 봐선 아마 파피루스가 대피시킨게 아닐까 싶다.
나는 세이브 지점에서 세이브를 했다. 내가 긴 길이 지겨웠는지 세이브를 한 거 같았는데, 난 잠깐 몸을 녹일 수 있어 좋았다.
그리고 난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누군가 이글루 통로를 부셔버려서 할 수 없이 걸어서 지나갈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난 마을 중앙에서 누군가와 마주쳤다.
"안녕..."
웨이터 복장을 입은 얼굴이 불덩어리인 남자.
"네 소문은... 들었다... 살인마..."
그는 다름아닌 그릴비였다.
"사람들은... 대피시켰다..."
말수가 없는 그가 이렇게 많이 말 하는 것은 처음 봤다.
"넌..."
그는 이렇게 소리치며 내게 달려들었다.
"이 그릴비 이프리트가 태워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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