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는 것이 없다는 가정교사는 미래에서 왔다. 어느 날 마치 원래 있었다는 듯이 자연스럽게 내 방 옷장 문을 열고 튀어 나왔다. 그 소녀는 나를 위대한 영웅으로 키워야 하는 사명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항상 나를 따라다니며 나의 교육을 담당했다.
그녀는 정말 기계 같은 여자였다. 평상시에는 언제나 내 방의 침대에 기대어 작은 탁자를 두고 조용히 책을 읽었다. 읽고 또 읽고. 책을 읽고 있을 때면 내가 답하는 질문 이외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아무런 표정도 없고. 아무런 움직임도 없었다.마치 질문 이외엔 아무것도 필요 없는 로봇처럼.
“정말로 모르는 것이 없어?”
“분명히 없어. 난 네가 묻는 모든 질문에 답변해야 할 의무가 있고. 그런 이유로 태어났고 그런 목적을 위해 성장했으니까. 그러니까 나에게 뭐든지 물어봐도 좋아.”
소녀는 나를 몇 초간 응시했다.
“그럼, 질문이 더 없는 것으로 알고…….”
소녀가 고개를 다시 책으로 돌렸다. 나는 그냥 멍하니 쳐다보고 있다. 하얀 피부,매끄러운 코, 반짝이는 입술, 마치 그림으로 그린 듯 이상적인 눈매, 빛나는 속 눈썹. 새삼스럽지만, 내가 봐온 사람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미래에서 이 정도는 보통인 것일까? 아니면 가정교사를 맡기기 위해 얼굴도 보고 선정한 것일까?
가만히 계속 보고 있노라면 더욱 구체적으로 소녀를 볼 수 있었다. 숨 쉬면 오르내려지는 작은 가슴, 살짝 닫혔다가 다시 열리는 입술. 그 틈새로 나오는 소녀의 속에서 덥혀진 따듯한 숨결. 그리고 고요한 정말 고요한 방 안에 들려오는 소녀의 숨소리.
사실은, 난 그녀가 좋다. 예쁜 얼굴에서부터 차가운 말투하며 도무지 바닥을 알 수 없는 그 지적 능력까지 모두 매력으로 보였다. 책 읽는 것을 보고 있자면 마치 어린 아이로 되돌아가서 여자애를 괴롭히는 초등학생이 되어버리는 듯 했다. 어떻게든 곤란하게 만들어 보고 싶어서. 그리고, 이야기를 해보고 싶어서 황당한 질문이라도 던져버리곤 했다.
“저기, 정말로 모르는 것이 없지?”
“또 같은 것을 묻는구나. 그 질문 벌써 27번째야. 다음에도 같은 질문을 한다면 질문이 아니라 의미 없는 말로 이해하고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겠어.”
“그럼 질문.”
소녀는 책을 덮었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보았다. 정말로, 깊고 투명한 눈이다. 그 속에 얼마나 많은 지식이 담겨 있는지 감히 짐작조차 할 수 없어.
“모르는 것이 없다면서 책은 왜 읽어?”
“너의 성장에 직접 관련되지 않은 쓸데 없는 질문이야. 하지만 어쩌면 좋은 동기가 될지도 모르겠네. 책을 읽는 것은 그것 자체로 머리를 계속 쓸 수 있어 즐거운 일이기 때문이지. 오락이라고 볼 수 있어. 책을 읽는 것은 즐거우니까. 너도 읽을 것을 권해.”
실로 사명에 입각한 대답이었다. 그렇게 재미없는 답변은 처음 들어 본다. 책을 오락으로 읽는다니, 이 여자아이는 대체 어떤 삶을 살아 왔던 걸까? 나와 나이도 똑같아 보이는데.
소녀는 계속 나를 쳐다보면서 다음 질문을 기다린다. 질문 할게 없다. 하지만 단지 사명일 뿐 그 밖에는 아무 것도 없이. 나 따위는 쳐다보지 않는 듯한 저 얼굴에 나를 새겨 넣고 싶다. 당황스럽게 하고 싶어. 정말로 정말 모를 만한 질문을 던지고 싶다.
“어째서 영국은 육군에만 로열이 붙지 않는 거야? 다른데는 로얄이 붙는데, 육군은 브리티시 아미 라고 불러. 이유가 뭘까?”
정말 뜬금 없는 질문이다.
“그건 첫 영국의 상비군이 청교도 혁명으로 왕과 싸운 집단이라서 그래. 이들이 첫 싸움으로 한 일이 찰스 1세를 처형한 것이지. 정확히 말하자면 왕명으로 만들어진 집단이 아니기 때문이야.”
막힘 없이 술술 대답했다. 세상에 이런 것은 대체 어디서 가르쳐 줘?
“다음 질문. 아폴로 호에서 산소공급기가 고장 나서 한 긴급대처가 뭐야?”
“13호야. 산소공급기가 고장 나서 착륙선의 산소공급기와 연결하기로 했었는데.비닐과 덕테이프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지. 서로의 규격이 안 맞았거든. 다른 회사에서 만들었기 때문이야.”
또 막힘 없다.
“그럼 알터에서 지난 12월에 발매한 피규어는 뭐지?”
“그게 그렇게 궁금한 질문인지 모르겠는데……. 요스가노 소라의 등장 인물 카스가노 소라의 차이나 드레스 버전으로 2번이나 발매를 연기한 피규어이지. 나오자 마자 바로 검은색 버전을 예약을 받았어.”
“그런 걸 어떻게 아는 거야.”
“모르는 것이 없다고 말했잖아.”
아무 것도 아니라는 듯이 대답해 버린다. 그 대답의 눈빛에 흔들림도 애매함도 없다. 틀림 없이 분명한 것이라고 얼굴로 증명하고 있다. 정말로 정말로 모를 질문을 하자.
“현대식 RV의 탄도계수는 몇이야?”
“10에서 15만 뉴턴 퍼 제곱미터다. RV는 탄도미사일의 재돌입체를 말하는거고.”
“모르는 게 뭐야! 미니트맨 지하사일로가 견딜 수 있는 한계응력은 어느정도야?”
“미니트맨은 핵 미사일이지. 한계응력을 기압으로 환산하면 136기압이다. 이것은1km거리에서 20메가톤의 탄두가 폭발했을 때의 압력이고. 덧붙여서 소련은 미국의 지하 사일로 하나 당 3개의 탄두를 폭발시키면 90퍼센트의 확률로 파괴한다고 보았지. 또 그렇게 배치하고 조준했어. 핵 미사일 사일로는 숨기지 않았는데. 이는 핵 무기는 적에게 보여주고 위협하는데 의의가 있는 무기였기 때문이야.”
“으음……”
정말로 모르는 것이 없다.
“아직은 네가 몰라도 되는 지식일 뿐이야. 나중에 성장 했을 때는 싫어도 알게 되니까. 조급할 필요 없어. 그리고, 나를 시험하는 유치한 일은 그만 해줬으면 좋겠네.”
소녀는 도도히 말했다. 내 질문을 기다리다가 다시 책을 펼치고 읽으려고 했다.
“대체 모르는 것이 뭐냐고! 그렇게 잘난 듯 뚝딱 뚝딱 시시하게 대답해버리고. 너 정말로 재미없는 사람이구나. 재미없어!”
답답해서 나도 모르게 가정교사의 탁자를 손바닥으로 내리쳤다.
“그런 흥미 위주의 질문만 골라서 하는 것은 너에게 큰 도움이 되지 못해, 넌 앞으로 위대한 인물이 될 사람. 그러니 당장 필요한 질문부터 하는 것이 좋겠지.”
소녀가 대답했다. 가정교사는 나의 성장 그 밖에 무엇도 생각하고 있지 않은 모양이다. 내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궁금하지도. 내가 어떤 사람인지도 궁금하지 않은 모양이다. 그럼 가정교사 자신은 대체 무엇인데?
“모르는 것이 없는, 실수 하지 않는 것은 사람이 아니야. 기계일 뿐이라고. 넌 대체 어떻게 살아왔어? 정말 네 인생은 나의 가정교사가 되는 것뿐이야? 그게 전부인 인생이 있을 수 있어? 그럴 거면 차라리 미래의 기술로 로봇을 보내면 되잖아.”
힘 줘서 말했다. 소녀는 그럼에도 변함없는 눈빛을 나에게 보내고 있다. 어디까지 도도하게 굴 수 있는 거야. 이 로봇 같은 여자.
“있어. 그만큼 네가 중요하기 때문이야. 네가 없는 미래는 상상 할 수 없어.”
“너의 인생만큼이나…….”
진심이 담긴 말에 질려버렸다. 나는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대체 어떤 삶을 살아왔어?”
소녀는 말을 아끼려는 듯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가. 결국 조용히 힘주어 말했다.단호하게, 늘 그렇듯이 단호하게.
“내 인생보다도 네가 중요해. 그 밖의 질문은. 금칙사항이다. 역사를 바꿀 위험이 있으니까.”
“정말로 모르는 것이 없다면, 나에 대해서는 알고 있어?”
소녀는 손쉽게 대답했다.
“물론, 네 이름도. 언제 태어났는지. 언제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 네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지. 앞으로 어떻게 되는지 전부 알고 있어.”
모르잖아. 전혀 몰라. 아무 것도 몰라. 이 소녀는 그냥 똑똑한 척 하고 있을 뿐일 바보다. 사람의 마음 하나 모르는 도서관에 불과해. 그런 존재에게 내가 배워봤자 무엇을 배운단 말이야. 어떤 미래를 만들 수 있다는 말이야?
왜 나랑 이야기 하지 않아? 나에 대해서 궁금하지 않아?
나는 여자아이를 덮쳐버렸다. 여자아이는 바닥에 드러누워 나를 덤덤히 올려다보고 있다. 여전히 표정도 변하지 않고. 아무런 말도 없이. 이런 상황에도 당황하지 않고 있다.
“나에 대해서 모르잖아? 넌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몰라.”
숨이 거칠어진다. 눈을 피하지 않고 마주쳤다. 방은 고요하다. 우리는 말 없이 눈만 마주치고 있다. 사고 쳤다는 생각에 내 심장이 마구 뛴다. 이대로 가정교사가 미래로 돌아가버리면 어떻게 해. 도대체 어떻게 해야 좋아. 하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나에게 관심을 주지 않을 테니까.
한참이나 서로 쳐다보다가, 여자아이가 짧게 한숨을 쉰다. 그리고 전에 없던 말투로 신중히 단어를 골라 말한다.
“……알아. 넌 나를. 좋아해.”
울컥 화가 치밀어 올랐다.
“뭐? 넌 정말로 몰라. 안다면 그렇게 할 수 없어. 사랑도 연애도 네가 아는 것도 한계가 있어. 넌 인간이 아냐, 기계야.”
기계라는 말에 여자아이의 눈빛이 흔들렸다. 눈이 동그랗게 커져온다.
“알아. 나는 모르는 것이 없어. 그렇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어.”
“몰라.”
“알아.”
“몰라!”
“안다고! 알아!”
유치한 말 싸움 끝에 여자아이가 폭발했다. 사납게 나를 올려다 보았다.
“내 인생? 아무래도 좋아. 난 그냥 옛날부터 너를 만나기 위해 태어났고 교육받았어. 내 인생을 바쳐야 하는 대상이 누군지 너무 궁금했어. 나는 너를 만나고 싶었어.”
이제서야 자신의 이야기를 할 마음이 생겼는지, 가정교사는 과거의 이야기를 털어 놓았다. 마치 짝사랑을 고백하듯이. 말이 점점 빨라지고 떨려왔다. 벅차오는 감각 때문에 더 말을 잇기 힘든지 잠시 멈추었다가. 다시 말했다.
“……사랑조차도, 나는 모르는 것이 없어.”
여자아이가 말했다. 한 번 터진 둑은 말을 빠르게 쏟아낸다.
“네가 누군지 상상해보는 것, 너를 만나는 날을 기다리는 것. 그것도 사랑이었고.너를 직접 보게 된 그 날부터 너와 친해져서는 안 되는 것을 아는 것도. 그걸 받아들이는 것도 사랑이잖아. 아니야? 이렇게 떼쓰고 힘으로 밀어 부치는 것만이 사랑이 아니라는 거야.”
가정교사는 어른스럽게 말했다.
“그럼 내가 좋아?”
내가 물었다.
“꼭 대답 해야 해?”
“응.”
“그래, 솔직히 말하면 좋아. 너와 같은 영웅과 살게 되어서 좋아. 하지만 내가 너에게 간섭하면, 앞으로의 역사가 어떻게 될지 몰라서…….”
모른다고 말했다. 미래에서 온, 모르는 것이 없다고 말한 여자아이는 지금 자신의 입으로 모른다고 말했다.
“모른다고? 모르는 것이 있다고 말했다?”
“그……. 그건 당연히 모르지, 가보지 않은 미래를 어떻게 알아.”
소녀가 당황했다. 늘 자신 있는 그 눈빛이 기가 죽었다. 그 시무룩한 표정이 귀엽다. 내가 보고 싶었던 인간적인 표정이다.
“그러면, 모르는 미래로 가자.”
“그건…….”
“그게 더 좋은 미래 일 수도 있잖아. 그래, 영웅이 될게. 네가 날 옆에서 가르쳐줘. 영웅이 되어서, 더 멋진 미래를 만들어 줄게.”
내 진지한 표정과 말이 웃겨 보였을까. 가정교사는 피식 웃었다.
“무슨 근거로 그렇게 자신할 수 있어?”
“지금은 허세일 뿐이지만. 이렇게 똑똑한 가정교사가 도와주면 못 할 이유가 없잖아. 모든걸 다 알고 있는 건 인간으로선 불완전한 거라 생각해. 그리고, 그렇게 되면 사귈 수 있잖아…….”
가장 중요한 말인데 말꼬리를 흐려버렸다.
“정말 터무니 없네. 게다가 사심까지 가득하고.”
여자아이는 팔을 뻗어 내 목을 감싸 안았다. 이내 자신의 몸에 바싹 붙였다. 숨결도 심장고동도 모두 들린다.
“좋아.”
내 귀에 속삭이는 그 짧은 두 음절이 내 몸을 기쁨으로 떨리게 만들었다. 당장이라도 널 안고 싶다.
“그럼, 이것도 알고 있는거야? 질문 하나 해도 될까?”
“뭐? 뜬금없이.”
“아기는 어떻게 생기는 거야?”
내 질문에 여자아이가 웃었다.
“그래, 가르쳐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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