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잠깐 컴퓨터 좀 켜 보겠나?"
나는 시키는 대로 컴퓨터의 전원을 켰다.
그는 컴퓨터가 부팅되는 동안 기계 밑바닥에 있는 뚜껑을 열고, 거기에서 선을 끄집어낸다. 흔히 볼 수 있는 USB케이블이었다.
"충전도 USB로 하기 때문에, 반드시 하루에 한 번은 컴퓨터에 연결을 해 주어야 하네.
하긴, 어차피 데이터를 전송하기 위해서는 컴퓨터에 연결해야 하지만…."
케이블을 컴퓨터에 접속하자 윈도우에 USB가 연결되었다는 메시지가 떠오르더니, 잠시 후 기계에 파란 불이 들어온다.
충전이 되고 있다는 표시이거나, 컴퓨터에 접속 중이라는 표시일 것이다.
그는 인터넷 웹 브라우저를 열더니 어떤 사이트에 접속한다.
처음 보는 사이트였지만, 외형으로 짐작해 봤을때 개인적인 파일을 저장할 수 있는 웹 하드 서비스 사이트인 것 같았다.
그는 그 사이트에 로그인을 한 후, 파일 하나를 다운 받는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서 내게 데이터를 전송할 수 있네. 만약 실수로 지우게 된다면 내게 연락하게. 메일로 보내주지."
그는 직접 그 프로그램을 실행한다.
아주 심플한 프로그램으로, 화면에는 고작 '데이터 전송', '데이터 삭제' 버튼밖에 없었다.
데이터 전송 버튼을 클릭하자, '보낼 데이터를 선택해 주십시오.' 라는 메시지가 표시된 창이 떠올랐고,
'o월 o일 oo시 oo분 ~ oo시 oo분' 같이 파일들이 리스트 형식으로 표시되었다.
"이 중에서 보낼 데이터를 선택하고, 확인 버튼을 누르면 자동으로 내 이메일로 파일이 전송되네.
굳이 이 프로그램을 쓰지 않고 메일로 보내도 되지만, 조금 귀찮을 테니 그냥 이것을 사용하게.
파일 용량이 조금 클 테니 전송하는데 시간이 좀 걸릴걸세."
하기야 잠자는 동안 기록된 데이터를 모두 저장하기 위해선 막대한 용량이 필요할 것이다.
"여기에 데이터는 몇 개까지 저장되죠?"
나는 기계를 가리키며 말했다.
"잠든 시간에 따라 다르네. 아마 5~10개 정도는 저장이 될 걸세.
파일이 전송 완료되면 자동으로 그 파일은 삭제가 되기 때문에 용량은 신경 쓸 필요 없네."
"그럼 데이터 삭제 버튼은 왜 있는 겁니까?"
"그건 만약 자동 삭제가 안 될 경우를 위해 넣어둔 기능이네. 하지만 완전히 전송되지 않은 파일은 삭제가 안 된다는 것을 알아두게."
실수로 파일을 삭제하게 되는 일을 방지할 목적일 것이다.
그걸로 끝이었다.
즉, '기계를 켜놓고 잔다.' → '일어나서, 기계를 컴퓨터에 접속하여 데이터를 전송한다.' 만 반복하면 되는 것이다.
더 이상 해야 할 일도 없고, 무엇보다 내가 직접 연구실에 출근하지 않아도 된다는 게 커다란 매력으로 느껴졌다.
출퇴근하지 않아도 되니 시간과 돈을 아낄 수 있다는 것도 이점이지만.
만약 연구소에 직접 들락거려야 한다면, 폐쇄된 공간에 감금당한 채 위험한 실험을 강제 당하게 되는 일도 발생할 수 있다.
하지만 100% 재택근무이기 때문에 그럴 염려는 전혀 없다.
게다가 절차도 매우 간단하고, 시간도 오래 걸리지 않는다.
내가 곧바로 취직을 하게 되더라도, 아무 문제없이 병행할 수 있다.
이대로만 계속된다면, 실험이 끝날 때까지 이 아저씨의 얼굴을 더 이상 볼 일이 없을지도 모른다.
이러니까 내가 실험에 동의하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돈이 눈앞에 아른거리는데 잡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나머지 금액은 자네가 빚을 갚은 것을 확인한 뒤에 넣어주겠네.
자네를 못 믿는 건 아니지만, 큰돈이 갑자기 생기게 되면 충동적으로 써버리고 싶은 것이 인간의 본성이거든.
자네가 빚 때문에 더 이상 실험을 못하게 되거나 하면 나도 곤란하니 말일세."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 ATM에서도 순간적으로 강렬한 충동에 휩싸였던 경험이 있으니 공감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오히려 잘 된 일이다. 덕분에 충동 소비를 억제할 수 있을 테니까.
"이상이네. 또 궁금한 것 있나?"
"아뇨. 뭐, 궁금할 게 있겠습니까? 이렇게 간단한데…."
기계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도 많으니, 누구나 자유롭게 사용하기 위해선 최대한 단순하게 만들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솔직히 너무 단순해서 고작 이런 것만으로 꿈을 조종하는 게 가능할까 하는 의심도 들었다.
나는 정품 MC스퀘어를 써본적은 없지만, 인터넷에 MP3파일이 돌아다니는 것을 보고 시험 삼아 다운받아 본 적이 있었다.
MP3플레이어에 집어넣고 한 학기 정도를 사용 했었지만, 내가 느끼기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어서 사용을 그만두었지.
이것도 그것처럼 일부의 사람들에게만 효과가 있거나, 어쩌면 전혀 효과가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실험의 성공 여부는 내게 있어 별로 중요한 게 아니다.
실패한다고 해서 계약이 무효가 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지.
물론 빨리 성공해서 실험이 끝나버리면, 그만큼 더 빨리 자유로워지겠지만,
이렇게 단순한 실험이라면 조금 오래 걸리게 된다고 해도 별로 상관없다. 신체에 해가 되는 일도 아니니까.
그는 시계를 들여다보더니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럼 난 가 보겠네. 만약 문제가 생기거나, 모르는 게 있다면 언제든지 물어보게.
메일을 보내도 좋고, 문자를 보내도 좋으니 부담 갖지 말고 연락하게."
"알겠습니다."
그가 나가는 것을 지켜 보고난 후, 나도 외출할 준비를 했다.
또 쓸데없는 생각이 떠오르기 전에 빨리 빚을 갚아버려야 했기 때문이다.
드디어 지긋지긋한 빚에서도 해방이다. 젠장. 이제 두 번 다시 빚같은 건 안 질 테다.
그렇게 다짐하면서도 자꾸만 '남은 50만원으로는 무엇을 할까?' 같은 쓸데없는 생각이 떠오르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돈 때문에 억지로 억누르고 있었던 '돈이 생기면 지를 목록들' 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쳇. 그동안 원치 않은 금욕 생활을 했더니 그만큼 유혹도 강렬하구만.
젠장! 절대 써선 안 돼. 이건 소중한 내 취업 준비 자금이란 말이다!
나는 서둘러서 신발을 구겨 신고 밖으로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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