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을 맞고있는 모리야 스와코의 좌선은 풀리지 않았다. 사라진 자신의 신자를 하릴없이 기다리기만 하는 그녀의 눈동자는 산의 중턱을 향해서만 머물러있었다. 그렇지만 집중력은 떨어져갔다. 자신을 이루던 신앙이 차차 희미해져가며, 그것을 따라 몸과 마음까지도 폭삭 무너져가는 탓이었다. 기구한 팔자로 이승을 뜨게 된다는 사실에 스와코는 스스로 안타까움을 표했다. 그녀의 혀가 쯧, 하는 부질없는 소리를 냈다.
"사나에...."
생의 종착을 맞고있는 스와코가 그렇게 중얼였다. 신으로서는 최악의 방법일 잊혀지는 죽음임에도, 그녀에게선 부끄러움이나 종말에 대한 부정, 허탈따위는 전혀 찾을 수 없었다. 그녀의 미련은 오직, 자신을 지탱해와주던 마지막 신자에게마저도 실망감을 안겨주었다는 후회에만 집중되었다. 그렇기에 신자의 이름만을 뇌까렸다.
마찬가지의 죽음을 자신의 오랜 동지도 맞고있었다. 야사카 카나코. 신앙심에 미쳐 최후의 신자... 최후로서 존재하던 갸륵한 기적에게마저 스스로 등을 돌려버린 우둔한 멍청이다. 그런데 그건 자기도 마찬가지였다고, 스와코는 스스로를 잠시 비웃었다. 자신은 그저 낙관할 뿐으로, 평소대로 지내다 보면 카나코도 자신이 왜 이러는지 차차 알게 될 것이라 생각했었으니까. 그런 어리석음이 결국 이런 폐해를 낳은 것이겠지만.
"카나코, 멍청한 자식."
"......."
"너 때문에 나도 죽는다. 그러게 왜 그렇게까지 신앙에 집착해서는."
정신을 잃은 카나코는 대답하지 않았다. 스와코는 적당히 비아냥하면서 팔자를 노래한다. 그러다 과거를 후회해봤자 소용없는 것이라 적당히 죽음을 맞기로 한다. 그래, 뭐가 소용있겠는가. 미리 언질을 했다 한들 카나코는 신앙에 대한 집착을 놓지 않았겠지. 신이 아닌, 수호령으로서의 자신을 납득할 수 없는 카나코라면 결국 지금과 같은 일을 벌였겠지. 결국 사나에에게 시련이 내려진다는 건 변함치 않을테니.
"얼마 뒤면 죽는데 너도 말 좀 해보지 그러냐?"
"......"
"......글렀구만. 아니, 너로서는 이게 차라리 낫겠다만."
차라리 눈을 감고 편안히 가라. 스와코는 그것으로 카나코에게 고개를 돌렸다. 어차피 얼마 남지 않은듯한 목숨이다. 이대로는 얼마나 더 존재할 수 있는지조차 의구스럽다. 스와코는 죽음을 의연히 맞을 자신이 있었으나 마지막으로, 그래도 신자를 보며 떠나고싶었다. 몸이 이 꼴인 걸 보니, 사나에는 자신을 반기지 않을 것이겠지만. 그래도 떠나면서 미안했다고 얘기나 하며 겸허히 죽음을 받아들이고 싶어서.
그런데 찰박찰박, 하는 소리가 빗물 사이를 헤치고 고막을 때렸다. 스와코는 일말의 기대를 가지고 그곳을 봤다. 기대대로, 사나에는 그곳에 있었다. 물로 얼룩진 얼굴을 하곤, 한 손에는 우스꽝스럽게 뭔지 모를 심장이나 든 채로, 울먹거리는 표정을 참지 못하면서.
"......스와코님."
"사나에, 뭔가 오랜만에 보는 기분이구나."
"몸이 왜..."
"벌이지. 신자를 험하게 다룬."
피식거리는 스와코의 웃음은 평소대로였지만 다소 힘빠져있었다. 축 늘어진 침울함이 깃든 스와코의 우울한 입꼬리에 사나에는 침묵했다. 곧 고개를 쳐들고 마주보는 것조차 포기한 스와코가 말했다.
"사나에, 똑바로 들어라. 섬김받던 신으로서 너에게 마지막으로 해주는 말이다."
"네? ..예? ....어째서?"
"아무래도 너는 여기 있을 재목이 못 된다. 하쿠레이의 무녀였나? 그 녀석 말대로, 돌아가라. 이곳은 너랑 안 맞아. 현실에 돌아가 그대로 우리를 잊어라."
스와코는 애써 사나에의 얼굴을 보지 않았다.
"그래, 생각해보면 너는 억지로 끌려온 것일 뿐이지. 우리의 고집에 떠밀려 굳이 밟지 않아도 될 가시밭길을 딛게되어버린 아이지. 참으로 구슬프구나. 불쌍하구나. 애타는구나. 그러니까 돌아가거라. 가서 너의 인간으로서의 생을 되찾거라. 우리는 이곳에서 당연히 맞아야 할 종말을 맞을 테니."
"안..."
사나에가 격한 토로를 하려다 힘에 부쳐 내지르지 못한다. 그녀는 한 번 울컥임을 삼키고서야 외친다.
"안 가요!! 왜 가요!! 제가 스와코님을, 카나코님을 버리고 어디로요? 왜 그런 말을 하세요? 제가, 제가.... 흑!"
그렇지만 삼켰던 울컥임은 절규같은 비애를 하면서 같이 튀어나왔다. 하도 울어 붉은 사나에의 눈언저리에서 다시 눈물이 흘렀다. 그것은, 신앙하던 신에게 잠시 실망했었다는 죄책과 그런 죄책으로 인해 버려지게 되어버렸다는 슬픔과 앞으로의 고독을 상상하면서 생기는 절망이 뒤섞인 울음이었다. 그래서 사나에는 그런 이유를 꼬치꼬치 내밀어가면서 사죄와 토로를해간다.
"잠시... 의심을 해서, 그러시는 거예요? ..네? ..흑! 만약 그렇다면, 죄송해요... 앞으로는 그러지 않을게요.... 제발, 그러니까. 절 버리지 말아주세요.... 전, 시험에 들어져도 상관없으니까! 그러니까... 제발 절 버리겠다는 소리를 말아주세요..."
"..널 버리겠다거나 그러는 게 아니야."
"그러면 왜요!! 왜냐고요!!"
"우리는, 이미 신이라기엔 이질적인 존재다. 토착신? 재앙신? 그건 옛말이지. 우리의 신앙은 오직 너의 것으로만 이루어져 있고, 그 신앙은 우러름이라기보단 소중한 무엇을 반기는, 그런 성질로 이루어졌지. 그런데 우리는 그것을 알면서도 너를 저버렸어. 그 대가로 너에게서 '소중한 존재'로서의 가치를 잃었지. 그러니 우리가 존재할 수가 있겠느냐?"
스와코의 억지스런 덤덤함은 사나에에게 또 하나의 충격을 안겼다. 스와코는 사나에를 배반했다는 죄책에 스스로 갈피를 못 잡아 자신의 죄를 온존히 설명하지 못했고, 그것은 사나에에게 오해를 낳았다. 사나에가 들은 스와코의 말은, 우리를 이제 소중한 존재로서 여기지 않는데 너에게 가치가 있겠느냐, 라는 의미로서 들렸다. 지금껏 시련조차 벅찼던 아이는 신앙하던 신에게 그런 직설적 불만을 듣자 미쳐버릴 듯이 머리를 쥐어뜯었다.
"흐...하, 하하..! 흑! 흐흐...... 네." 그러다 뚝 멈추는 그녀의 모습은 소름돋을 정도로 오싹했다.
".....사나에?"
"죄송해요..... 저는, 배은망덕한 아이에요. 은혜도 모르고 그걸 배반으로 돌려주는 아이에요. 저는 지금껏 신님들에게 얼마나 의존했는데... 얼마나 지탱해왔는데.... 겨우 시련 하나가지고 이런다니.... 아아, 정말로 파렴치하죠."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녀가 그런 절규를 행하면 행할수록 스와코의 정신이 똑바라지고 형상마저 본래대로 돌아가는 것이 아닌가. 반투명해 너머가 비쳐지던 그녀의 잔상같던 몸이 질량을 지니고 힘이 생기는 것이 아닌가. 스와코는 당혹스러워하면서도 우선 미쳐가는듯한 자신의 신자를 살폈다. 그런데 살피기 전부터 스와코의 몸은 사나에로부터 덮쳐져 왈칵 하는 느낌으로 껴안아져 있었다. 힘에 밀려 기우뚱 넘어져버린 스와코는 사나에의 포옹을 전혀 풀지 못하고 껴안아진 채로 있었다. 사나에는 쉰 목소리로 애절하게도 운다.
".......죄송해요. 죄송해요. 정말로요. 그래도요.. 저버리지 말아주세요. 배신한 건 알고있어요. 재앙신으로서, 토착신으로서. 신님들을 모시지 않고 그저 멋대로 생각한 것. 그건 신님들에게 있어 치욕이고 떨칠 수 없는 수치였겠죠... 그래도, 그러지 않으면.. 신님이 언젠가 사라질 것만 같아서. 그걸 감으로 느꼈었어서. 그래서 그랬어요..."
"......괜찮은 게냐? 사나에."
"아아, 아니요. 전혀요. 그래도 신님이 괜찮다고 말하면 괜찮아질 거 같아요. 그러니까 마지막으로 말해주세요. 신님을 멋대로 주물렀던 염치없는 신자이지만, 그래도 딱 한번만요... 이게 마지막 고집일 테니까요. 이제 토착신과 재앙신으로서만 남게 될 스와코님과 카나코님께는 마지막 소원일 테니까요... 좋아한다고. 아니 좋아했다고. 나쁘지는 않았다고."
스와코는 사나에의 그 말을 듣고 의도를 눈치챘다. 또한 자신이 왜 사라지지 않는가를 깨달았다. 눈앞의 신자는 또 다시 자신들에 대한 관념을 변혁시킨 것이다. 소중한 존재로서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그 신앙을 뒤집어 다시 우러름의 것으로 바꿔버린 것이다. 때문에 이것이 마지막 아양이라고. 그러니까 너그럽게 봐달라며 비는 것이다. 아이로서는 마지막 기회일 것이기에. 그나마 버팀목으로서 존재하던 기둥을 이제 포기하고 혼자서만 꿋꿋이 서 있으려 할 것이었기에.
".....괜찮은 게냐?"
그래서 스와코는 아까 전과 똑같이 말할 수밖에 없었다.
"말했잖아요... 아니라고. 그래도 신님이 괜찮다면 괜찮을 거라고."
"......"
"마지막 아양일 테니까..... 한 번만 부탁드릴게요."
"너는 그러고도 살 수 있는게냐. 버틸 수 있는게냐?"
"아무래도..... 모르겠어요."
"그게 정말로 너의 선택인거냐?"
"그건... 맞겠지만..."
아무래도 분위기에 떠밀려 한 선택일 거라고 사나에는 스스로 생각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자신의 신을 존속시킬 방법이라곤 이것밖에 떠오르지 않아서 괴로움에도 해나가야 했다. 스와코는 사나에의 결단이 그런 종류의 것임을 알았지만 이제와서 다시 무르기에는 늦었음을 알았다. 해줄 수 있는 것이라곤, 자신에게 등돌리고 신앙을 모으기 위해 애쓸 아이에게 응원의 한 마디를 하는 것 정도밖에 없을 것이었다.
"....미안하다."
"....그런 말이 아니라."
"그래,"
스와코의 손이 사나에의 등을 포근히 감싸며.
"밉지 않다. 오히려 좋다. 너는 우리의 신자야. 그 어떤 신자가 생기더라도 너는 우리에게 으뜸이야. 변치 않을 거다. 모리야 스와코, 야사카 카나코는 이 말을 배반하지 않음을 신의 이름을 걸고 맹세하마. 또, 응원하마. 굳이 가시밭길을 다시 걷겠다는 너의 선택을. 변해버려 우러름받는 우리로서는 이제 너에게 간섭할 수 없겠다만 그래도..."
"가시밭길이 아니에요..."
"그렇다고 하여..."
"저는, 신님이 좋아서 하는 거니까. 언젠가 올려다본 신님이 거룩하다고까지 느낀 적이 있어서, 그러는 거니까..."
사나에는 이제 포옹을 놓고, 일어나 스와코에게서 등을 돌렸다. 스와코는 그녀의 결심을 알고 본존으로 쓸쓸한 발걸음을 옮긴다. 카나코를 끌며. 그래도 말한다.
"슬프구나. 억지로 이런 짐을 떠맡게 한 것을..."
"언젠가, 제가 마음이 변해도 신님으로서 남아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