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오렌 케슬러
역자 - 정영은
출판사 - 위즈덤하우스
쪽수 - 528쪽
가격 - 28,000원 (정가)
아랍 민족주의 VS 유대 민족주의 그 최초의 폭발에 대한 이야기
팔레스타인인이 승리에 가장 가깝게 다가간 순간이자
오늘의 분쟁이 시작된 1936~1939년 아랍 대봉기
그 3년의 고난을 재현하다
많은 사람이 중동분쟁을 1948년 이스라엘 건국으로 인한 나크바(Nakba, 대재앙)에서 기인했다고 알고 있지만, 실제로는 1936년에서 1939년까지 3년간 팔레스타인에서 지속된 아랍 대봉기가 그 출발점이다. 1936년 봄, 팔레스타인에서는 유대인 공동체와 20년 동안 시온주의 프로젝트를 산파했던 영국 위임통치 당국을 겨냥한 봉기가 일어났다. 팔레스타인 전역에서 일어난 이 아랍 대봉기(Great Revolt)는 유대인, 영국인, 그리고 아랍인 수천 명의 목숨을 앗아갔으며, 오늘날 우리가 ‘중동분쟁’이라 부르는 사건 또한 이때 본격화되었다.
팔레스타인 아랍인에게 대봉기는 민족적 정체성이 하나로 모였던 최초의 시기였다. 경쟁 관계의 가문, 도시와 농촌, 부자와 빈자 할 것 없이 모두 독립을 위한 단일 투쟁으로 통합되었다. 그러나 봉기는 내전으로 비화되는 동시에 영국의 공격적인 진압, 시온주의자들의 반격으로 아랍 팔레스타인은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이로써 팔레스타인인의 전투력은 무력화됐고, 경제는 초토화됐으며, 대규모 난민이 발생했고, 유력 정치 지도자들은 추방됐다. 시온주의 종식을 목표로 시작된 대봉기는 오히려 아랍인들을 처절하게 분열시켰다. 이 때문에 그들은 10년 후 유대인의 이스라엘 건설에 맞설 수 없게 되었다.
유대인들에게 아랍 대봉기는 완전히 다른 유산을 남겼다. 대봉기를 목도한 시온주의 지도자들은 영국과 아랍이 유대 국가 건설을 용인해주리란 환상을 버렸다. 주권국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영원히 무력에 기대야 할지 모른다는 불편한 진실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봉기로 인해 수천 명의 유대인이 당대 최고의 군사 강국이었던 영국에 의해 훈련받고 무기를 지급받았다. 어설펐던 경비대는 강력한 유대인 군대의 씨앗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팔레스타인의 대학살과 히틀러의 위협 속에서 ‘분할’ ‘유대 국가’와 같은 불길한 단어가 처음으로 국제 외교 의제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5년간 3개 대륙과 3개 언어를 넘나든 광범위한 기록 연구를 바탕으로 한 이 책은 단순한 사건 나열이 아니라 아랍, 유대, 그리고 영국 세력 내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한 주요 인물들의 행동과 판단을 따라가며 서술된다.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역사의 장면을 통해서 아랍 대봉기 과정뿐 아니라 오늘날 중동분쟁의 패턴이 어떻게 탄생했는지 살펴볼 수 있다.
아랍 대봉기는 어떻게 일어났나
제1차 세계대전 후 영국의 위임통치를 받고 있던 1930년대 팔레스타인은 아랍인의 민족 국가 건설 계획에 치명적인 위협을 마주한 상황이었다. 일단 “팔레스타인에 유대인을 위한 민족적 고향을 건설”한다는 영국-유대 간의 밸푸어 선언(1917)에도 소수를 유지하던 팔레스타인 내 유대인의 숫자가 급격히 증가한다. 4년 만에 2배 증가해 1937년 약 40만 명이 된 유대인은 이제 전체 인구의 30%에 육박했다. 토지 매입도 급격히 늘어 1935년 유대인의 토지 매매 건수와 면적 모두 2배가 된다. 팔레스타인 전역에서 유대인 정착촌과 키부츠가 건설되기 시작한다. 전 세계적인 불황에서도 유대인이 지배하는 은행업, 산업, 건설업 부문은 번창했다. 시온주의자들은 팔레스타인 내에서 정착촌을 지키는 무장단체 하가나, 노동조합연맹 히스타드루트, 유대인 경찰 노트림, 토지를 사들이는 유대민족기금, 임시정부인 유대인기구를 설립하는 등 이미 강력한 국가적 조직을 확립한 터였다. 반면 팔레스타인 아랍인에게는 이에 대응할 만한 조직이 거의 없었다. 양질의 일자리는 유대인이 장악했다. 이라크가 독립을 승인받고(1932), 시리아가 50일에 걸친 총파업 끝에 프랑스 철수 협상(1936)이 시작됐지만, 팔레스타인에서는 아랍인이 참여하는 입법의회조차 친시온주의 영국 정치가에 의해 무산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알 카삼의 죽음은 팔레스타인인들의 독립(이스티클랄, Istiqlal)을 향한 열망, 그것도 무력 쟁취의 불씨를 당겼다. 알 카삼에 대한 복수, 독립을 위해 죽음도 불사하겠단 신념, 실질적 위협이 된 유대인으로 말미암은 아랍 대봉기는 시위와 불매운동, 공공시설 파괴, 게릴라전, 그리고 전 세계 역사상 유례없는 6개월간의 총파업을 포함해 3년간 지속된다.
아랍-유대 간의 투쟁 방식과 대응 논리의 기원을
치밀하게 재구성하다
팔레스타인 아랍인 또한 대봉기의 유산을 상속받았다. 시위, 공공시설 파괴, 게릴라전과 총파업도 그렇지만, 오늘날 범아랍권으로 널리 퍼진 이스라엘 불매운동은 대봉기 기간 내내 지속했던 유대인 상점에 대한 불매운동과 유대인 손님에 대한 판매거부운동에서 비롯된 유서 깊은 방식이다. 1987년 결성된 팔레스타인 민족주의 정당이자 무장단체인 하마스는 자신들의 군사조직에 대봉기를 촉발한 알 카삼의 이름을 붙였다. 팔레스타인인들이 오스만식 페즈 모자를 벗고 아랍 무장투쟁의 상징인 체크무늬 케피예(머리에 두르는 아랍 전통 스카프)를 착용한 것도 대봉기 시기 아랍국가위원회의 지시에서 시작되었다.
저자는 아랍 대 유대 민족주의 충돌, 서로를 향한 공격과 대응을 치밀하게 재구성하면서도 ‘서술식 역사서’답게 유려한 이야기로 독자를 이끈다. 연대기가 아니라 현장감이 느껴지는 1936~1939년 팔레스타인의 시공간 속에서 독자들은 오늘날 아랍-유대 간의 투쟁 방식과 대응 논리의 원천을 파악할 수 있다.
맥마흔 선언 VS 밸푸어 선언
최대의 이익을 위해 끊임없이 말을 뒤집는 영국
1921년 야파에서 벌어진 폭동을 진압하기 위해 식민장관 처칠이 발표한 〈처칠 백서〉, 1929년 8월, 예루살렘을 비롯해 20여 개 지역에서 벌어진 유혈사태의 대책 마련을 위해 발표한 〈호프 심프슨 보고서〉와 〈패스필드 백서〉는 모두 유대인 이민 허용치에 대한 제재를 약속했다. 그러나 시온주의 측의 로비와 홍보 총력전에 1931년 로이즈 조지 총리는 ‘대규모 유대인 이민은 계속’될 것이라는 일명 “검은 편지(Black Letter)”를 발표함으로써 이를 무효화한다. 이렇듯 영국의 팔레스타인 정책은 대개 ‘맥마흔 선언-밸푸어 선언’ 패턴의 반복이었지만, 1937년 ‘필 왕립위원회’가 발표한 보고서는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1947년 국제연합 분할안, 클린턴 대통령의 클린턴 초안, 트럼프 대통령의 “세기의 거래” 그리고 바이든 정부의 공식 정책에 이르기까지 모든 ‘분할안’의 원전 격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1936년 아랍 대봉기 발발 후 파견된 필 위원회의 조사 과정을 유대와 아랍 측의 증언으로 재구성해 보여준다. 바이츠만(초대 이스라엘 대통령)을 비롯한 유대 측과 하지 아민(아랍고등위원회 창설자)과 같은 아랍 측 대표자들의 목소리를 통해 이른바 ‘두 국가 해법론’이 어떻게 제시됐는지 입체적으로 드러난다. 유대 국가, 아랍 국가, 영국 관리 구역으로 팔레스타인을 나누는 이 제안을 일컬어 위원회는 “깔끔한 분할(clean cut)”이라고 자평했지만, 압도적으로 많은 유대인 증인 수, 시온주의자들의 로비 등으로 인구 대비 분할 면적뿐 아니라 위치 자체도 이미 시온주의 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아랍 측은 제안을 받아들일 이유가 없었고, 유대 측은 ‘유대 국가’는 받아들이되 보고서가 제안한 분할선은 거부하자고 협의한다. 대봉기를 잠재우기 위해 영국이 제시한 대책은 유혈사태를 잠재우기는커녕 봉기에 다시 불을 붙인다. 다시 영국은 〈우드헤드 위원회 보고서〉(1938)로 분할안 폐기를 권고하고 〈맥도널드 백서〉(1939)에서 독립적인 팔레스타인 국가 설립을 약속하는 등 말을 바꾸지만, 아랍 땅에 100년간 계속될 분쟁의 씨앗을 남긴 채 곧 제2차 세계대전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된다.
대봉기가 진압당한 후 팔레스타인인들은
1948년 이스라엘 건국까지 다시는 일어서지 못했다
유대 진영에도 500여 명의 사망자와 1000명가량의 부상자가 발생했지만, 그들은 대봉기를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활용했다. 그들은 3년간 단 한 곳의 정착촌도 포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벽과 탑’ 사업으로 전략적 요충지에 60개의 정착촌을 추가로 건설했다. 아랍의 유대인 불매운동은 오히려 ‘자급 자족적이고 독립적인’ 유대인 농업과 산업을 만드는 데 직접적인 도움이 됐다. 시온주의 금속 산업과 무기 산업이 등장하면서 지뢰와 수류탄을 생산할 수 있게 되었고, 곧 박격포와 폭탄의 생산까지 가능해졌다. 정착촌을 지키는 무장단체 하가나는 영국에 의해 대대적인 훈련과 무기를 지원받아 영국의 팔레스타인 치안 유지에 동참하기 시작했고, 건국 후 이들은 이스라엘방위군의 핵심이 되었다.
1936~1939년에 일어난 대봉기는 시온주의자들의 역사에서도, 아랍의 역사에서도 중요한 위치에 있지 않았다. 유대인들은 시온주의를 유대인 자결권을 위한 투쟁으로만 볼 뿐 타인의 자결권을 부정하는 행위로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봉기는 그저 자신들의 위대한 건국 신화의 방해물일 뿐이었다. 아랍인들은 대봉기에서 교훈을 얻지 않았다. 나크바에 집중함으로써 작금의 상황에 대한 탓을 시온주의자나 주변 아랍 국가들, 영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에 돌렸다. 저자가 5년간 3개 대륙의 20개의 기록보관소를 넘나들며 아랍 대봉기를 재구성한 이유는 바로 거기에 있다. 과거를 정확히 알 때 얽히고설킨 실타래의 첫 매듭을 풀 수 있기 때문이다. 바로 오늘도 이스라엘에서는 90년째 아랍 대봉기가 이어지고 있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땅에 평화는 찾아올 것인가. 이 책이 시급하고 시의적절한 이유다.
- 등장인물 7
들어가는 글:역사에서 사라진 팔레스타인 대봉기 11
1장 평온한 사막의 지배자들 21
신실한 소년 27│위임통치령의 탄생 33│팔레스타인의 잔혹한 봄 38│무프티 중의 무프티 42│평온한 나날들 47│고통의 나날들 50│벽은 우리의 것이다! 54│히틀러와 뜻을 같이하다 63│무사 얘기는 다르던데? 67
2장 피로 물든 야파 83
장작 패고 물 긷는 노예 91│테살로니키에서 온 남자 95│굉장한 도덕적힘 105│파업과 반격 112│동방에서 온 세 명의 왕 130
3장 두 국가 해법론 137
위원회, 항해를 떠나다 143│생각을 바꾼 대무프티 153│관개전문가의 등장 160│억누를 수 없는 갈등 173│예상치 못한 반향 181│두 총회 이야기 188
4장 검은 일요일 193
신의 선물 201│오직 이를 통해서만 209│불안한 운명 218│뒷걸음질 225
5장 예루살렘의 평화를 위한 기도 233
사람은 빵만으로 살 수 없다 242│에덴동산 246│완벽한 대가관계 251│죽음이라는 특권 262│무법이 곧 법이다 276
6장 유대의 로렌스 283
사실의 논리 291│시온의 군대 299│9월의 두 주 318│디베랴와 타바리야 319│대무프티의 미소 324│다시, 필 330
7장 불타는 땅 339
자유 팔레스타인은 가능할까 350│3인방의 죽음 368│흩어진 마음 374│라헬, 내 민족을 사랑하는 384│다시 만납시다 387
마치는 글: 끝나지 않은 봉기 392
감사의 말 426
참고문헌 506
주 428
찾아보기 518
추 천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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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에 함께 살았던 아랍-유대 두 이질적인 민족의 갈등과 적대적 대결은 1948년 이스라엘 건국으로 생긴 사건은 단연코 아니다. 1920년대 영국의 배반으로 아랍 국가 건설의 희망이 서서히 사라지면서 팔레스타인 아랍인의 본격적인 저항의 정점은 1936년부터 1939년까지 진행된 대봉기였다. 서로의 이해관계로 분열되어 있던 아랍인이 공동의 적인 유대인 시온주의자에 맞서 처음으로 하나로 뭉친 사건이었다. 그들은 역사상 가장 길었던 장장 6개월간의 총파업을 강행했다.
대봉기는 국제사회의 지지보다는 오히려 유대인들의 위기감을 극대화시켰고 무장화를 촉발하면서 이후 기나긴 유대인 무장 투쟁의 단초가 되었다. 더욱이 아랍 대봉기를 겪으면서 ‘소극적 대응은 민족적 자살이나 다름없다’는 강경 주장이 힘을 얻으며 유대인에 의한 테러공격이 확산되었다. 오늘날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의 데자뷰 같은 대사건임에도 그동안 아랍 대봉기를 다룬 책은 국내외를 통틀어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이 책이 더없이 소중한 이유다.
특히 이 책은 아랍-유대 간의 투쟁 방식과 대응 논리를 치밀하게 재구성해 줌으로써 미래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해결을 위한 중요한 길잡이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도 높이 평가되어야 한다.” -
“이스라엘-팔레스타인에서 벌어지는 암울한 분쟁의 패턴에 대한 통찰력이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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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의 현재 상황을 이해하는 열쇠가 되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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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립될 수 없는 시오니스트와 팔레스타인 민족운동 간의 입장이 확고해진 시기, 지금과 같은 폭력의 사이클이 시작된 시기가 바로 아랍 대봉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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