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소비자물가지수 전년보다 7.5% 상승
에너지 비용 27%·주거비용 4.4%나 올라
하위 20%, 식료품비로 소득 11% 사용
고정수입·월급 생활자 더 고통받기 쉬워
일손 부족에 임금 인상 수혜
작년 기준 가처분소득증가율 평균 7.6%
하위 50% 증가율은 11.7%로 더 높아져
전문직도 4.4%↑… 화이트칼라까지 확대
노동시장수요 급증… 유례없는 취업 호황
![content/image/2022/03/04/20220304514998.jpg](https://img.segye.com/content/image/2022/03/04/20220304514998.jpg)
“월급 빼고 다 올랐다.”
고공 행진하는 물가에 서민들의 한탄 소리가 커지고 있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이 심화한 영향이다. 그나마 위안 삼을 만한 점은 우리나라만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각국 국민 모두 공급난과 수요 급증 파고를 힘겹게 넘고 있다.
인플레이션으로 장바구니 물가가 치솟으면 소득이 적은 계층이 가장 먼저 타격을 받는다. 기본 생활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비용이 올라 가난한 사람은 더 가난해지기 쉽다. 빈부 격차가 심화해 사회문제화될 가능성이 커진다. 반면 근로 의욕이나 저축 유인은 떨어진다. 국민경제가 건전하게 성장하는 데 인플레이션이 걸림돌이 되는 셈이다.
그런데 물가 상승과 구인난이 겹치면 이 같은 단순화는 어려워진다. 코로나19로 고용이 과거보다 빠르게 회복한 미국의 경우 일손 부족 현상이 심각한 수준에 달했다. 자발적 퇴직자 수가 계속 늘어 노동 수요는 폭발하는데 공급은 부족해 고용주들이 너도나도 임금을 올려주겠다고 나선 상황이다.
이 때문에 미국에서는 두 가지 주장이 공존한다. 한편에서는 ‘빈부 격차를 벌리는 인플레이션을 잡아야 한다’고 역설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유례없는 취업 호황에 근로자들의 주머니 사정이 나아졌다’고 목소리를 낸다.
◆인플레에 가벼워지는 저소득층 장바구니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에 사는 재클린 로드리게스는 18살 첫째 아들을 포함해 세 아이를 홀로 키우는 워킹맘이다. 마이애미국제공항 안 패스트푸드 체인점 웬디스가 그의 직장이다. 15년간 쉬지 않고 일하면서 겨우 내 집을 마련할 자금을 어느 정도 모았다고 생각했던 2020년, 코로나19가 덮쳤다. 공항을 향하는 발걸음이 줄면서 로드리게스는 직장을 잃었다. 시급 13.80달러(약 1만6600원)의 일자리는 그렇게 사라졌다.
워싱턴포스트(WP)는 최근 로드리게스의 일상이 인플레이션으로 흔들리고 있다고 짚었다. 집주인은 월세를 1200달러에서 1500달러로 올렸고, 휴지 한 꾸러미는 14달러에서 18달러로 오른 지 오래다.
로드리게스는 마트 안 선반 앞에서 고민하는 시간이 늘어났다. 그는 “모든 상품이 놀라울 정도로 비싸져서 일단 가격을 보고 어떤 요리를 할지 결정해야 할 정도”라며 “더는 아이들에게 장난감을 사줄 수도 없게 됐다”고 하소연했다.
4일 미 언론에 따르면 미국의 올해 1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 동월 대비 7.5% 상승했다. 40년 만에 가장 큰 오름세다. 전체적인 에너지 비용은 전년 동월 대비 27% 올랐고, 식료품 물가도 7% 상승했다. 주거 비용 역시 전년 동월 대비 4.4% 뛰었다.
![content/image/2022/03/04/20220304515921.jpg](https://img.segye.com/content/image/2022/03/04/20220304515921.jpg)
인플레이션이 장기화하면 가장 약한 이들이 가장 크게 고통받는다. WP는 이 같은 사실을 입증하고자 2020년 기준 미국 국민 하위 20%와 상위 20%가 소득에서 지출하는 품목을 분석했다. 하위 20%가 가장 많이 지출하는 품목은 집세가 압도적인 1위로 27%를 차지했다. 반면 소득 상위 20%는 거주비로 소득의 18%를 썼다. 하위 소득 20%는 소득의 11%가 식료품비로 빠져나가지만, 소득 상위 20%는 식료품비로 지출하는 비중이 소득의 7%에 불과하다.
눈여겨볼 부분은 소득 하위 20% 계층에서 13위에 오른 ‘은퇴 및 사회보장 연금 비용’(1.5%)이 소득 상위 20%에서는 2위(16%)를 차지했다는 점이다. 거꾸로 생각해보면 저소득층은 미래를 생각할 여력이 그만큼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WP는 부동산 등 비현금 자산을 가지고 노후에 대비한 사람들은 장기적인 인플레이션 상황에서 이득을 보는 경향이 있다고 분석했다. 예컨대 임대사업자라면 월세 수입이 늘어날 여지가 있다는 의미다. 반면 저소득층의 경우 구매력 저하와 같은 부정적인 영향밖에 없다고 부연했다.
미 당국도 이를 인지하고 있다.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의 발언이 이를 뒷받침한다. 올해 1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를 마친 뒤 파월 의장은 “인플레이션이 취약 계층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살펴보느냐”는 질문에 “사회 경제적으로 계층을 나눠 그 영향을 분석하진 않았지만, 인플레이션이 높을 때 고정 수입에 의존하거나 월급으로 생활하는 사람들은 더 고통받기 쉽다”고 답했다. 이어 “물론 경제적으로 부유한 사람에게도 인플레이션은 나쁘지만, 그래도 그들은 계속해서 먹고, 집을 유지하고, 차를 몰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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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근로자 가처분 증가… 소득 하위 계층서 두드러져
40년래 최고인 미국의 인플레이션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다. 다만 ‘인플레이션이 경제 불평등을 초래해 심각한 위협이 된다’는 데 반대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 적지 않다. 즉, 낮은 실업률과 임금 인상 등 긍정적인 경제 상황이 많은데 인플레이션에 관한 과도한 우려가 이를 다 지워버리고 있다는 주장이다.
미국에서는 코로나19 이후 일손 부족 현상이 두드러졌다. 지난해 12월 실업률은 3.9%를 기록해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 이래 최저치를 기록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당시 “기록적인 일자리 창출과 기록적인 실업 감소”라고 자찬했다.
기업들은 경쟁적으로 임금을 인상했다. 그 결과 기업이 지출하는 노동비용의 변화를 지수 형태로 작성한 미국의 고용비용지수(ECI)는 연간 기준으로 지난해 4분기 20년 만의 최대를 기록했다. 지난해 4분기 ECI는 전 분기 대비 1.0% 올랐고, 지난 한 해를 전년과 비교하면 4% 올랐다.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의 바라트 라마무르티 부위원장은 임금을 더 주는 직장으로 옮기기 위해 수백만명이 기존 직장을 그만두는 상황에 대해 “위대한 진전”(The Great Upgrade)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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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자들의 가처분소득은 늘어났다. 미국 UC버클리대 경제학과 연구진은 비영리단체 ‘실시간 불평등’(Realtime inequality)와 협업해 미국 국민의 가처분소득 증가율을 분석했다. 분석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인플레이션 영향을 반영한 가처분소득 증가율은 평균 7.6%였고, 하위 50%의 증가율은 11.7%로 더 높았다. 즉 구인난의 수혜가 저소득층에서 더 컸다는 뜻이다.
2020년과 묶어볼 때 분석 결과는 더 유의미하다. 2019년 12월부터 지난해 12월까지 미국 국민의 평균 가처분소득 증가율은 5.3%였고, 하위 소득 50%의 가처분소득 증가율은 10.9%로 평균보다 두 배 이상 높았다. 같은 기간 중위 소득 40%의 가처분소득은 3.8% 늘었고, 소득 상위 10%에서는 4.4% 증가했다.
미 근로자들의 주머니 사정이 나아졌다는 연구는 또 있다. 매사추세츠주 애머스트대학의 애린 두베 교수는 임금 변화만 놓고 보면 지난 2년간 인플레이션을 반영하고도 미국 노동자의 3분의 2가 임금 인상을 경험했다고 밝혔다. 그는 인플레이션이 심화한 지난 1년간만 봐도 노동자의 3분의 1이 상황이 나아졌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미국 저임금 근로자들의 근로 기회가 늘어났다면, 최근 들어서는 이 같은 현상이 화이트칼라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애틀랜타 연방준비은행의 임금 추적 자료에 따르면 지난 1월 미국에서 전문직 근로자의 임금은 전년 동월 대비 4.4% 올라 전체 근로자의 임금 상승률 4%를 앞질렀다.
고용중개 사이트 인디드의 닉 벙커 이코노미스트는 “지난해 저임금 노동자들의 임금 상승세는 정말 가팔랐다”며 “전반적으로 노동시장에서 수요가 급증했고, 이것이 나머지 근로자들(전문직)의 협상력까지 높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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